2007.4.16 조승희 때 우리는 왜 그랬을까
산하의 오역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의 비극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대형 총기 학살 사건 뉴스를 처음 접한 것은 사무실 안에서였다. 네이버와 다음과 엠파스에 연속부절로 뜨는 뉴스들을 초 단위로 읽으면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읊어 주었는데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 저마다 한 마디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미국이란 나라 참...
View Article1982.4.17 조진수의 실종
산하의 오역 1982.4.17 조진수의 실종 1970년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2층 유리창을 닦던 한 학생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국전 상이용사의 4남매 중 장남으로 똑똑하고 듬직하여 가족의 기대를 받던 학생이었지만 허무하게 생명을 잃고 말았다. 요즘 같으면 학교측의 관리 소홀이 인정될 테지만 5층 유리창틀에 아무 안전장치 없이 걸터앉아 유리를 닦았던 내...
View Article1943.4.18 야마모토 이소로쿠 격추
산하의 오역 1943년 4월 18일 야마모토 이소로쿠 격추 1943년 4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 전 해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패한 이후로 알루샨 열도에서 과달카날까지 전 태평양을 호령하던 일본의 기세는 완연히 꺾여 가고 있었다. 그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일본의 암호를 미국측이 고스란히 해독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일본은 이 사실을...
View Article1960.4.19 어느 국민학생의 죽음과 시
산하의 오역 1960년 4월 19일 어느 국민학생의 죽음과 시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최루탄 눈에 박힌 김주열이 떠올랐다. 3월 15일 역사에 남을 부정선거를 목도했던 국민들은 급기야 사람을 죽여 바다에 내던진 정권에 대한 임계점을 넘어선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오히려 조용한 것은 대학가였다. 4월 4일 전북대에서 시위가...
View Article1967.4.22 한국 여자농구 세계 2위
산하의 오역1967년 4월 22일 한국 농구 세계 2위 1999년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에는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이 세워졌다. 여자농구 규칙을 확립한 ‘여자농구의 어머니’ 센다 에벗, 올림픽 2회 우승에 빛나는 리디아 알렉시바 소련대표팀 코치, 18세의 최연소선수로서 미국에 올림픽 은메달을 안겼던 리버만 클라인 등 쟁쟁한 여자농구 선수와 지도자 26명이...
View Article1952.4.23 네바다 핵실험 그리고 존 웨인
1952년 4월 23일 네바다 핵실험 그리고 존 웨인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는 핵무기의 미국 독점 시대가 끝난 것을 의미했다. 여차하면 너는 죽는다는 일방적인 으름장이 통하던 시대가 거하고 우습게 놀면 나도 쏜다는 대결 국면의 시작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도 프랑스도 핵실험을 서두르고 있었다. 1952년에는 영국도 핵실험을...
View Article1948.4.24 우리 학교 조선 학교
산하의 오역 1948년 4월 24일 한신교육투쟁 일본의 ‘한신’ 지역은 오사카와 고베를 중심으로 한 인구 밀집 지대다. 일본은 크게 관동과 관서 지역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그 중 관서 지역의 중심에 해당하는 오사카와 고베, 즉 한신 지역은 일제강점기 이래 재일교포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1948년 4월 재일교포들의 역사에서 기억에 남는...
View Article1988.4.25 가투 와 삽질
산하의 오역 1988년 4월 25일 가투와 삽질 1988년 4월 25일 오후 내 가슴은 뛰고있었다 .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 수업 한 시간을 날려먹은 채 나는 학교 앞에서 명동으로 가는 34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530 명동 상업은행 이라는 단어를 주문처럼 되뇌고 있었다 . 정거장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눈들을...
View Article1991.4.26 서글픈 이름 강경대
산하의 오역 1991년 4월 26일 서글픈 이름 강경대 1991년 봄은 한국 현대사에서 잊지 못할 봄 중의 하나다. 그리고 4월 26일은 그 선연하고도 끔찍한 봄의 시작이었다. 서울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돌연 연행되고 학생들이 '구출투쟁'에 나서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분주히 오가는 풍경은 80년대 이래 낯익은 풍경이었다. 교문 밖으로 전투조가 나가 싸우는데...
View Article꽃다지를 기억하십니까
아마도 지금은 세상에 몇 권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대학 입학식 치르고 갈 데가 없어서 정말 갈 데가 없어서 가입한 동아리가 하필이면 이상한 노래 부르는 동아리였는데, 지금은 각자 참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 선배들이 기타 뚱땅거리며 노래 가르쳐 주는 책이 있었지요. 그 책 뒷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워낙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 정확한 문구는...
View Article1979.4.27 땅벌 작전
산하의 오역 1979년 4월 27일 땅벌 작전 지금은 그 이름이 장히 시들었지만, 한때 서울의 밤문화를 선도하던 7공자의 일원으로서 온갖 사치와 향락을 부리던 재벌 그룹 회장이 있었다. 이른바 재벌 2세였던 그의 일화는 차고 넘치지만 하나만 소개해 본다. 젊은 날의 그가 제주도에 나타나 그룹 회사의 제주 지사장에게 거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등...
View Article1985.4.28 어느 청년의 부모님 전상서
산하의 오역 1986년 4월 28일 어느 대학생의 부모님 전상서 “아버지 어머니 ... 저를 믿어 주십시오. 이 글을 받을 때쯤이면 이미 알게 되실 일을 준비하기 위해 무척 피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아주 행복합니다. 돌이켜보면 아주 피곤하고 힘들고 바쁘게 보낸 3년 2개월의 대학 생활이지만 저는 저의 기득권이 포기되고 구속이 되더라도 조금도 후회스럽지...
View Article1991.4.29 46년의 분단 46일의 통일
산하의 오역 1991년 4월 29일 46년의 분단 46일의 통일 대학 들어가서 낯선 것 중의 하나는 ‘연호’였다. 튀어 보이고 싶은 욕구라고 하기엔 좀 비장한 연호들이 대자보와 문건과 심지어 자판기 커피 컵에까지 수놓여 있었다. ‘분단조국’이나 ‘통일염원’까지는 대수롭잖게 넘겼는데 ‘미제강점’이며 ‘광주민중항쟁’ 같은 연호 앞에선 좀 긴장을 했었던 기억이...
View Article1975.4.30 남베트남의 마지막 자존심 즈엉 반 민
산하의 오역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마지막 자존심 즈엉 반민 작년에도 베트남 패망 또는 해방의 날을 짤막하게 얘기했는데, 오늘은 조금 더 세세한 얘길 해 봐야겠다. 1973년 초 미국이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베트남에서 사실상 손 뗄 것을 선언한 이래 남베트남의 운명은 사실 결정되어 있었다. 이 평화협정으로 키신저와 월맹 협상 대표 레둑토에게...
View Article1945.5,2 베를린의 붉은 깃발
산하의 오역 1945년 5월 2일 베를린의 붉은 깃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그리고 또 그만큼의 사람이 모르고 있듯,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격렬한 충돌은 독일과 소련 사이에 있었다. 히틀러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미군의 참전이었다기보다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늪에 발을 디민 일이었고, 소련은 수천만 명의 인명을 내던진 끝에 독일을 침략을 분쇄하고 마침내...
View Article1986.5.3 인천에 모인 사람들
1986년 5월 3일 해방구(?) 인천의 사람들 1985년 2.12 총선은 정국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관제야당으로 불리우던 민한당은 새롭게 부상한 신민당이라는 블랙홀에 허무하게 빠져들어갔다. 신민당은 여당이었던 민정당과 맞먹을만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고, 그들은 2.12 총선 1주기를 맞아 71년 이래 대한민국 국민의 숙원 중 하나였다 할 대통령 직선제...
View Article1980.5.4 티토 사망
1980년 5월 4일 티토, 부러운 이름의 최후 남북을 다 합친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의 면적은 22만 제곱 킬로미터다. 그리고 그 가운데 70 퍼센트가 산지다. 이 조건과 가장 비슷한 나라를 꼽으라면 지금은 갈기갈기 찢겨 사라진 한 나라를 들 수 있겠다. 그건 유고슬라비아다. 왕년의 유고슬라비아의 넓이는 25만 제곱 킬로미터에 역시 70퍼센트는 산악...
View Article1954.5.7. 디엔비엔푸의 한국인
산하의 오역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의 한국인 시민 혁명의 나라 프랑스지만 식민 지배의 끈질김과 잔혹함, 그리고 집착은 오히려 제국주의 열강 가운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웠다. 독일에게 맥없이 무너진 뒤 일본에게 자신의 식민지를 무력하게 내 줬지만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는 또 다시 그 추잡한 발길을 베트남에 들이밀었다. 여기에 단호하게 대응해 싸운 게...
View Article1951.5.9 위대한 부통령의 사임
산하의 오역 1951년 5월 9일 위대한 부통령의 사임 ‘대한민국 부통령’이라는 단어는 웬지 낯설다. 하지만 한국의 50년대는 정,부통령의 시기였다. 대통령은 이승만 혼자서 독상을 차렸지만, 부통령은 인촌 김성수부터 만송 이기붕까지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자리를 지켰다.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이름을 꼽으라면 역시 성재 이시영을 들지 않을 수 없겠다. 그는...
View Article1961,5.16 이한림 장군의 5.16
산하의 오역 1961년 5월 16일 이한림 장군의 5.16 선글라스를 낀 작달막한 투스타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군이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 다리를 건넜다. 그들이 방송국을 장악한 뒤 숙직 아나운서를 시켜 발표한 대로 “은인자중하던 군부”의 일부가 행동을 개시한 순간이었다. 한강 다리를 지키던 헌병대는 쿠데타군에 가담한 해병대의 기세에 눌려 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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