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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16 조승희 때 우리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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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의 비극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대형 총기 학살 사건 뉴스를 처음 접한 것은 사무실 안에서였다. 네이버와 다음과 엠파스에 연속부절로 뜨는 뉴스들을 초 단위로 읽으면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읊어 주었는데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 저마다 한 마디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미국이란 나라 참 이상하다." 류의 탄식에서 왕년에 경남 의령에서 일어났던 ...경찰관 우범곤의 총기 난사 사건까지 들먹여지면서 말들이 분분한 가운데 범인이 누구냐로 화제의 중심이 점차 옮겨 갔다. "걔 백인이야?" "백인은 아니래..... 아시아계라는데......" 그때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던 몇 명의 몸이 움찔하면서 몇 프레임 차이로 똑같은 반문이 튀어나왔다.

"걔 어느 나라 애냐?"

그 가시에 찔린 듯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을 것 같다. 아시아계라니 혹시나 한국인이 아닐까 하는 당연한 의문도 있을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개망신이다 하는 낭패감도 섞일 것 같고, 더하여 미국에 재미교포든, 유학생이든 머물고 있는 친척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오히려 더 드문 형편에 '버지니아 쌍권총 학살사건'의 사이코가 한국인이라면 그 파장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걱정도 포함되어 있었을 게다.

"중국인 같다는데?"

이 답변 하나로 그 움찔함은 정리됐다. 정작 미국인들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분해서 판단해 줄까 하는 의구심은 논외로 하고, 그때부터 이야기의 축은 총기 난사 사건이 수시로 일어나는 미국 사회에 대한 탄식으로 다시 옮겨 갔고, 그에 더해서 약간 묘한 뉘앙스의 책임론이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 중국놈 참...... 중국놈들이 한 번 돌면 저런다니까."

한국인이 아니라는 우리들만의 안도감(?)은 밤 늦게 브라운관을 장식한 주먹만한 글자의 속보에 산산조각이 났다. 한국인 조승희. 그 자막의 획 하나 하나,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 속에서도 유난히 크게 들렸던 코리언 스튜던트의 발음 기호 하나 하나가 낭창낭창한 사시나무 가시가 돼서 귀에 와 박혔으니까. "아이고 하필이면 한국 사람이냐."는 걱정부터 더럭 뇌리에 떨어졌다. 즉 2억 정 가까운 총기가 자유로이 유영해 다니며 초등학생으로부터 저격테러범에까지 거침없이 몸을 맡기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 같은 건 삼천리 밖으로 사라지고, 범인의 국적과 같다는 것만으로 영문을 알 수 없는 걱정과 가해자로서의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뭉실거리며 일어났던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상당수의 친지들도 맘에 걸리고 9.11 이후 아랍계 사람들에게 가해졌다는 행동들에 대한 으스스한 소문들이 스멀거리며 되살아났다. 당장 미국인들이 코리아 타운에 살인마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난입할 것 같고, 안그래도 양키들한테 설움 받고 사는 한국 사람들이 곱배기로 맘 고생 하겠다 싶어 이마에 주름을 모으게 됐던 것이다.

백두백의의 내가 이랬을진대 나라의 외교를 책임진다는 사람들의 마음도 꽤나 급했으리라. 국적이 밝혀지자마자 애도와 유감의 성명을 낸 건 그렇다고 치는데, 주미 한국 대사의 32일 금식 제안에 이어 다음과 같은 대화까지 오갔다는 것은 그분들의 마음이 급하다 못해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린 듯 했다.

" 조문사절단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언제쯤 가면 되나."(정부 당국자)
"그럴 필요 없다. 한국계 이민자가 사고 낸 거지 한국이 사고 낸 게 아니다. 모국이 상황에 끼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 (미 국무성 당국자)

미국인으로부터 "서방예의지국"이라는 칭호라도 받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저 과공에 대해 혀를 차면서 나는 내 자신은 왜 그리 당황했을까에 대해 생각을 기울여 봤다. 그때 그 낭패감은 무엇일까. 왜 그렇게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을까. 미국에 친지가 살고 있기 때문일까. 외국 사람들은 북핵 위기 때 한국을 전시상황으로 생각했다는데, 나 역시 이 사건 터진 후의 사태에 대해 지레 겁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고민 후에 슬며시 끼어든 명제는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미국 영주권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초등학교엔가 학적부가 보관되어 있는 조승희라는 이름의 한국인이라는 것이었고, 그의 개인적 특성을 넘어 한 집단과 범죄자를 동일시하는 해괴한 공동체의식(?)에 사로잡히는 습관 자체가 다분히 한국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국 범죄 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지존파 사건 때 추석상에 둘러앉아 있던 친지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역시 00도 놈들이야." 하는 혐오스럽기까지 한 투덜거림을 필두로, 어떤 사건이 터지면 이상하게도 그 출신지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예측이 빗나가면 그만이지만 그 예상이 맞아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러면 그렇지. 하여간......"을 연발하던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만났던 처지로서는 미국인들도 당연히 그와 같으리라 지레 짐작하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어떤 사태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는 이들이 책임자를 자처해야 했던, 그리고 무슨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어느 지역 사람이냐가 제일 처음 물어지고, 혹시나 우리 지역은 아닐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에서 2007년 나의 낭패감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선족 가운데 악질 하나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전체 조선족 추방하라는 목청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고, 외국인 범죄율 (내국인 범죄율에 비해 낮은)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 같은 통탄이 무르익는 나라에서, 어쩌면 2007년 이맘때 한국 정부와 일부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과공'의 풍경은 일종의 본능적인 회피가 아니었을까. "버지니아 택의 살인마가 한국인이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내가 느낀 공포란 우리가 익히 해 본 짓거리와, 당해 본 짓거리를 상상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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