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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4.23 네바다 핵실험 그리고 존 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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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 23일 네바다 핵실험 그리고 존 웨인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는 핵무기의 미국 독점 시대가 끝난 것을 의미했다. 여차하면 너는 죽는다는 일방적인 으름장이 통하던 시대가 거하고 우습게 놀면 나도 쏜다는 대결 국면의 시작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도 프랑스도 핵실험을 서두르고 있었다. 1952년에는 영국도 핵실험을 성공시킨다. 이제 미국의 선택은 더 크고 더 강력한 핵무기 개발이었다. 1952년 4월 23일 그때껏 있었던 핵실험 가운데 가장 대규모의 핵실험이 펼쳐진다.



 핵실험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이 핵폭발을 언론을 통해 생중계했다. 불과 폭발 장소 16킬로미터 밖에서 기자들이 찍은 내용은 그대로 전파를 탔고 폭발 장소로부터 불과 100여 킬로미터 남짓 떨어졌던 라스베가스 시민들은 티브이 속의 폭발을 보며 무서워하기보다는 호기심을 폭발시켰다. ‘원자의 도시’로 불린 라스베이거스는 관광객들을 위해 핵실험 날짜와 전망이 좋은 장소까지 안내하는 대단한 친절도를 보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의 위력을 경험하긴 했으나 그 후유증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소련도 마찬가지여서 주민들을 불러앉혀 놓고 원폭을 터뜨리며 소비에트의 힘을 찬양하던 미치광이짓도 불사해다 하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52년에는 네바다에서의 핵실험이 그야말로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행해졌다. 4월 23일의 최대규모 실험에 이어 일종의 전술무기인 핵대포 실험도 감행됐다. 미국은 당시 교착 상태에서 지루한 고지전으로 이어가던 한국에서 이 무기를 쓰고 싶어했고, 이승만도 그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 양반, “공산당을 한 놈도 이 산하에 남길 수 없으니 정히 떨어뜨릴 수 없다면 내 머리 위에 떨어뜨리기를 바란다.”고 망발했다고 하는 소문도 있는데 차마 믿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1954년 네바다 주 핵폭탄 실험 장소로부터 200킬로미터 떨어진 유타의 사막 지대에 한 떼의 영화 촬영진이 몰려들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마초이자 극우적인 사고를 지녔던 것으로 유명한 존 웨인과 여배우 수잔 헤이워드도 함께 왔다.



 해괴하게도 <정복자>라는 이 영화에서 존 웨인이 맡은 역은 칭기즈칸이었다. 그리고 수잔 헤이워드는 타타르 공주였다. 칭기즈칸같은 위대한 정복자가 검은 눈에 찢어진 눈의 동양인일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쓸만한 동양인 배우가 없었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해괴한 것은 몽골병 엑스트라들은 또 몽땅 인디언들을 썼다. 금발의 칭기즈칸이 몽골로이드인 인디언들을 이끌고 말달리는 이 희한한 풍경의 영화가 어떤 흥행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설마 쫄딱 망했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 일어난 비극보다 더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의 스탭들, 배우들, 엑스트라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선 감독 딕 파우엘이 암으로 쓰러진다. 존 웨인도 폐암에 걸려 폐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고 수잔 헤이워드는 피부암 자궁암 유방암이 세트로 들이닥쳐서 악전고투했고 영화 스탭 200여 명 가운데 절반이 백혈병에 걸리는 등, 그야말로 죽음의 사신이 이 영화 <정복자>의 스탭들을 정복해 버렸다. 물론 암세포가 그런 속성이 있긴 하지만 수술을 통해 암세포를 제거해도 다른 부위에서 암세포가 돋았다. 폐를 잘라냈던 존 웨인은 결국 대장암에 걸려 사망한다. 그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인디언들은 그 일대에 사는 부족이었는데 이들은 전멸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1952년 오늘을 필두로 일어났던 핵실험이었다. 네바다 핵실험장은 캘리포니아 등 인구 밀집 지역에 인접해 있었던 바 풍향이 그쪽과 반대되는 방향이며 인적이 드문 유타 쪽으로 향할 때를 잡아 핵실험을 벌였고 그 죽음의 먼지들이 유타의 불모지대이며 <정복자> 감독이 보기에 “몽골과 꼭 닮은 분위기의” ‘스노 캐니언’에 떨어졌던 것이다. “몽골군은 기병대”였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라 수백 필의 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욱한 흙먼지를 날렸고 “몽골군들은 씻지 않았다.”고 해서 제대로 씻어내지도 않았다고 하니 (또 그럴 시설도 없었겠고) 그들은 그야말로 방사능 물질로 샤워에 칠갑을 했던 셈이었다. 영화 <정복자>의 비극은 그렇게 벌어졌다. 물론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핵폐기장 건설 반대 시위가 불거졌을 때마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디든 세워져야 한다면 충분한 보상과 설득을 통해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원자력으로 뿜어낸 전기를 물 쓰듯 하고 앉았으면서 어디든 핵폐기장을 지을 수 없다면 대관절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었다. 하지만 일본 대지진 이후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참화와 철부지같은 북한 정권의 핵실험을 보면서 좀 생각이 바뀌고 있다. 어렸을 때 본 SF 소설에서 까마득한 미래의 주인공이 20세기의 역사를 돌이키면서 한 소리, “원자력은 인류에게 칼을 주었지. 그걸로 자살을 하라고.”라는 뇌까림이 새삼 떠올랐을 뿐 아니라, 원자력을 꿈의 에너지라고 우기는 선전에 혹하기에는 일본의 비극이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절대 안전”하다는 당국의 말만 믿고 불꽃놀이 보듯 버섯구름을 구경했던 소련 사람들과 핵실험장으로부터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니만큼 핵물질이라고는 꿈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존 웨인과 수잔 헤이워드의 비극이 나에게, 우리에게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원자력 폐쇄를 외치자니 컴퓨터 절대 제 때 안 끄고 불 훤히 켜놓고 나가서 마누라한테 벼락맞는 내 전기 습관부터가 골치다. 아직은 원자력 폐쇄 외칠 정도의 깜냥은 안되지만 ‘전기 중독’으로부터 일단 벗어나는 습관부터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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