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지금은 세상에 몇 권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대학 입학식 치르고 갈 데가 없어서 정말 갈 데가 없어서 가입한 동아리가 하필이면 이상한 노래 부르는 동아리였는데, 지금은 각자 참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 선배들이 기타 뚱땅거리며 노래 가르쳐 주는 책이 있었지요. 그 책 뒷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워낙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 정확한 문구는 아닐 겁니다만 대충 다음과 같았습니다. “문화는 단순한 투쟁의 도구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삶이 바닥으로부터 와해될 때 그 와해시키는 세력에 대한 투쟁의 무기로 쓰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문화’라는 태평양처럼 넓은 뜻의 단어 대신에 ‘노래’를 넣어 봅니다. 사실 노래란 인간의 희노애락과 결부된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새겨진 문신과도 같다 하겠지요. ‘와 이래 좋노 와 이래 좋노’ 하는 민요를 부르다보면 그게 노래인지 환호인지 모를 것 같고, 실연당한 다음에 듣는 대중가요는 어찌 그리 다 내 마음을 노래한 것 같았던지, 또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레아 부르면 무슨 태엽을 감은 듯 어깨가 들썩이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희노애락 아니 삼라만상을 담은 것 같은 노래가 단순한 투쟁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얼마나 무식한 얘기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래가 기쁨을 돋구고 슬픔을 위로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겠죠. 노래는 혼자서만 부르는 게 아닐 경우가 많으니까요. 나의 희노애락이 아니라 더 많은 나, 나 아닌 나들의 감정을 담을 때, 즉 사회적 성격을 담아내는 훌륭한 그릇이 될 때도 많으니까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 마라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씩씩한 노래까지 말입니다. 더구나 “삶이 바닥으로부터 와해될 때 그 와해시키는 세력에 대한” 분노와 풍자와 결의를 담은 노래라면 이미 단순한 ‘도구’는 아니겠죠. 자신을 지키고 주변에 용기를 불러 일으키고 오만한 상대방 앞에서 쳐들 수 있는 방패이며 칼일 수가 있는 거겠죠.
노래방에서 부를라치면 그 기나긴 가사 탓에 온갖 야유에 시달리기 일쑤인 고 김광석의 <나의 노래>는 바로 그 노래의 힘을 아름답고 함축적으로 묘사한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게는 <나의 노래>보다는 거칠 수도 있고 직설의 까칠함이 남아있을지언정, 노래의 의미를 굵고도 강하게 깨우쳐 주는 노래 한 곡이 더 있습니다. 꽃다지가 부른 <노래여 나의 삶이여>라는 노래입니다.
먼길 걸어온 우리에겐 언제나 변함없이 곁에 있던 노래 있어
땀과 눈물 어린 오선지위엔 아직은 못 다이룬 꿈과 사랑이
하지만 슬플 때 흘렸던 나의 눈물과
기쁠 때 보여준 너의 환한 웃음 싣고
굳게 손잡아준 모든 이의 꿈을 새겨 이제 들꽃처럼 끝없이 피어나리니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어둠속에서 더욱 밝게 비춰준
노래여 우리의 꿈이여 끝내 온 세상에 울려 퍼지리
하지만 쓰러져간 벗들의 맑은 영혼과
오늘을 살아갈 너와 나의 다짐 싣고
따스히 보아준 모든 이의 희망 새겨 이제 강물처럼 끝없이 흘러가리니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어둠속에서 더욱 밝게 비춰준
노래여 우리의 꿈이여 끝내 온세상에 울려 퍼지리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가끔 제 나이가 믿기지 않습니다. 대체 어느 세월에 40대 중반을 바라보고, 아들 딸은 어느 새 제 키를 추월했거나 육박한단 말입니까. 나는 지금도 미팅할 수 있을 것 같고, 여차하면 기타 치고 노래하면서 날밤 그냥 깔 거 같은데. 하지만 세월은 갔고, 나이는 먹었습니다. 변진섭의 “변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한 노래는 어림짝도 없는 희망이었고, 김광석의 야유처럼 세상은 “우 너무 쉽게.... 우 너무 빨리 변해”만 갔지요. 시인 신석정의 시 <꽃덤불>처럼 그간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 버린 벗도 ,멀리 떠나 버린 벗도, 몸을 팔아 버린 벗도, 맘을 팔아 버린 벗도” 많았고 말입니다.
노래도 그랬습니다. 한때 대학생들이 어설픈 코드 짚어 가며 배우려 애쓰던 노래들은 사라호 태풍처럼 밀어닥치는 변화 속에서 잊혀지고 사라지고 우리 기억 속에서 멀리 떠나 버린 것들이 많았죠. 가장 공교로운 것은 “그 삶을 바닥으로부터 와해시키려는 세력”은 온전한데 그에 대한 과감하고도 단호한 삶의 표현이었던 노래들마저 희미해졌던 겁니다. 저 위에 언급한 꽃다지의 노래 <노래여 나의 삶이여>가 나왔던 것은 90년대 초중반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현실을 다짐하고 스스로를 재우치는 노래였으나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뒤 근 20년 동안 풍요로와진만큼 각박해지고, 화려한만큼 칠흑같아진 대한민국의 뒤켠에서 불평불만에 그득하지만 자신만 그로부터 해방되면 그만이었던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노래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를 멈추지 않아온 <꽃다지>의 여정을 미리 내다본 독백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솔아 푸르른 솔아>가 집회장보다는 노래방에서 더 많이 불리울 것 같고 조금 심각한 가사 같으면 “분위기 깬다.”는 일갈을 듣기 딱 좋은 요즘, 우직하게 스스로 부르고 싶은 노래,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지켜 왔던 <꽃다지>가 다음 주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8시 홍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다시 그들의 노래를 펼칩니다. 어떤 노래들을 부르겠냐구요. 무슨 신곡이 나왔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작년에 제가 들었던 노래 가사 몇 부분으로 답을 대신해 보고자 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단단하고 복잡한 세상 앞에서 우린 무너졌지. 이리로 저리로 불안한 미래를 향해 떠나갔고 손에 잡힐 것 같던 그 모든 꿈들도 음~ 떠나갔지...... 젊음은 흘러가도 우린 점점 늙어간다 해도 우리 가슴 속 깊이 서려 있는 노랜 잊지 말게., 노랜 잊지 말게” (정윤경 작사 작곡, ‘당부’ 중) ,
“.... 방조제 너머의 너는 진정 나인지. 이 안에 갇혀 버린 나는 진정 바다인지. 다시 갯벌로 돌이키지 못하는 세월을. 더 이상 너에게 내 숨결이 닿을 수 없고, 여리고 여리던 속살도 딱딱히 굳어 버렸어..... 난 바다야 난 바다야. 굳은 살에 새살 돋는 난 살아 있는 바다야. 난 바다야. 난 바다야. 죽음마저 이겨낸 난 자유로운 바다야. 날 바다로 바다로.” (‘바다’ 중)
“돈과 돈 속에 나를 죽이고 돈과 돈 속에 내 꿈을 죽이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미친듯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게 내 운명인걸. 죽도록 싸워야 하지. 살아남기 위해서, 죽도록 싸워야 하지. 나는야 파이터 파이터 파이터.” (Fighter 중에서)
가슴 속에 서린 노래가 가물가물하게 꼬물거리는 분들이라면, 바다였지만 갯벌과 멀어져 버린 말 뿐인 바다가 된 분들이라면, 돈 놓고 돈 먹기에 하루 해가 저무는 파이터들이라면 한 번쯤 노래가 자신의 삶이라고 20년 전에 이미 노래했던 이들의 오늘을 함께 지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의 영탄에 적합할 일일 것입니다. 다음 주 목 금, 3일과 4일 밤 8시 홍대 상상마당입니다. 공연 제목은 <혼자 울지 말고>랍니다. “.....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 내 인생을 위해서 싸워야 할테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힘을 모으자 혼자 울지 말고 혼자 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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