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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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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23일 논바닥의 보물, 세상에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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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93년 12월 23일 논바닥의 보물 세상에 공개되다

1993년 겨울, 부여의 능산리 고분군 근처에서는 주차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능산리 고분들은 일제 시대 또는 그 이전에 도굴이 끝나 버리기는 했지만, 사비, 즉 부여로 도읍을 옮긴 뒤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것들로서 사적 13호로 지정, 깔끔하게 정비를 끝낸 터였다. 자연히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고, 부여군청이 나서서 관광객들을 위해 주차장을 확장하기로 한 것이다.,
...
부여군청이 주차장을 조성하려고 눈박아 둔 곳은 고분군과 부여 나성 사이의 계단식 논들이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서 할 일이 있었다. 매장 문화재 조사였다. 하지만 질퍽거리는 논바닥을 파헤쳐 봐야 똑똑한 것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한 사람은 없었다.

12월 중순일이면 무지하게 추운 때였다. 발굴 현장에 계속 흘러드는 논물을 고랑을 파서 끌어내면서 힘겹게 작업을 하던 도중, 12월 12일 오후 4시30분, 절집 공방의 물구덩이라고 추측되던 곳에 있는 잘게 부수어진 기와조각이 한 연구원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곳을 파내려갔다. 1m 정도 파냈을 때 불에 탄 흔적이 있는 기와, 뭔가 뚜껑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있었다. 이미 마음이 부풀대로 부푼 조사단은 전원 달려들어 4시간 만에 유물을 온전히 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그들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열흘 남짓한 처리 작업 끝에 유물의 본모습이 드러났을 때 연구진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태가 완벽에 가깝게 남은 금동대향로였다. 무령왕릉 발굴에 비교되는 고고학적 대발견이 실로 우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이는 12월 23일 언론에 공개된다. 1993년 12월 23일의 모든 신문의 톱기사는 대문짝만한 향로의 사진으로 장식됐고 방송 리포터들은 흥분한 어조로 이 기적적인 유물을 찬미했다.

고고학계는 향로가 온전하게 보존됐던 이유를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어낸 ‘진흙’에서 찾았다. 발견 당시 백제금동대향로는 목곽 수로 안의 진흙 속에 있었는데 주변에는 섬유조각이 발견됐다. 향로를 쌌던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가 어떤 위기나 급박한 상황을 맞아 자애지중지해 오던 향로를 싸서 물 속에 던져 버렸던 것이다. 그 주인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가 던져버린 향로는 진흙 속에 형성된 진공 상태에서 1400년을 견뎠다.

전체 높이 62.5㎝에 용 모양의 향로받침 위에 연꽃 모양의 향로 몸체가 우아하게 피어오른 듯 사뿐하게 얹혀 있다. 뚜껑 부분에는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그 안에는 말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들, 호랑이·사자·원숭이·멧돼지·코끼리·낙타 등 여러 동물들을 생동감 있게 빚어놓았다. 손잡이 부분은 봉황이 날아갈 듯 깃털을 퍼득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표현했다. 봉황 바로 아래에는 다섯 악사가 각각 소·피리·비파·북·현금을 연주하고 있다. 모습 하나 하나가 생생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동서교류사의 탁월한 연구가 정수일 교수의 말을 빌려 본다. “지금까지 이웃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향로의 높이는 보통 20cm 안팎인데 비해, 이 백제 향로는 그 3배나 되며, 구성요소, 갈무리하고 있는 사상이나 상징성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특히 당대 동서문명의 제반 요소들을 잘 어우르고 있는 점에서는 실로 독보적이다.”

그래서 이름을 짓는 것도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향로에 짙게 드리운 도교적 영향을 감안하여 용봉봉래산향로로 불렀다가 불교 쪽에서는 연꽃 무늬나 새겨진 산봉우리가 수미산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수미산향로라고 부르자고 제안했고 외국 학자들도 끼어들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자 결국 “백제금동대향로”로 낙찰을 보게 된다.

어느덧 한국 고대 미술의 상징같이 되어 버린 이 금동대향로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성의 있는 매장 유적 조사였다. 논바닥에 있을 것이 무엇이 있겠냐면서 하시라도 주차장을 넓혀 오는 손님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것만을 바라보았다면 아마 4대강 유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것처럼 집채 만한 중장비들이 즉각 투입되어 논바닥을 갈아엎었을 터이고, 금동대향로는 어느 포크레인의 삽날인지도 모를 것에 박살이 나거나 더 깊숙이 묻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1400년 전 백제의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새기고 조각하고 모양을 냈던 국보 287호 금동대향로를 찬찬히 들여다봐 보시기 바란다. 그 안의 인물들과 동물들이 소리를 내고 말을 거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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