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69년 3월 28일 아이젠하워 별세
어렸을 적 들었던 잡다한 유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아이젠하워가 죽으면서 한 말은? “아 이젠 hour(시간)가 없구나.” ‘아 이젠 하워’를 빗댄 유머였다. 그 아이젠하워, 미국의 전 대통령이자 육군 원수. 2차대전 때 나찌 독일을 굴복시킨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1969년 3월 28일 표표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군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글러스 맥아더와 즐겨 비교된다. 맥아더는 미 육군 사관학교를 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아이젠하워는 61등에 그쳤다. 맥아더는 승승장구하여 최연소 장성이 되고 육군 원수까지 줄달음쳐 올라갔지만 아이젠하워는 그의 동기들 가운데에서 늦게 소령을 단 편이었고 맥아더의 부관으로도 근무했다. 나중에는 별 다섯 개를 함께 단 처지였지만 맥아더와 아이젠하워의 경로의 차이는 그렇게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바로 그 둘의 성격이었을 것이다.
맥아더는 무척이나 오만하고 자존심이 센, 귀족적 성향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필리핀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서 그는 흡사 왕같은 호사를 누렸고 그런 문화에 익숙했다. 고집이 셌고 일단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면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물며 대통령의 말조차 그 의 귀에는 좀 큰 새가 파닥거리는 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놀라운 군사적 성공도 거두었지만 황망한 전략적 실수도 못지않게 범한다. 그 오만함을 꿰뚫어 본 사람 중의 하나가 모택동이었다. 모택동은 “맥아더의 오만함에 감사한다. 우리는 그가 오만하면 오만할수록 승리를 더 쉽게 쟁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럼 아이젠하워는 어땠을까. 어떤 사람이 점심은 맥아더와 저녁은 아이젠하워와 함게 나누는 행운을 누린 일이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맥아더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알았다. 그런데 아이젠하워랑 저녁을 먹으면서는 내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알았다.”
아이젠하워의 진가는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으로서보다는 온화한 중재자로서 더 빛났다. 고집불통의 ‘패튼 대전차군단’의 지휘관 패튼, 그에 한 치도 뒤지지 않는 무뚝뚝한 영국인 몽고메리, 패망한 나라의 망명정부 수반인 처지에 자존심 하나는 대기권에서 놀았던 프랑스인 드골 등을 두루두루 어루만지고 조율하고 때로는 아우르면서 자칫하면 삐거덕거리다 못해 덜컹거렸던 연합군 총사령관의 자리를 유연하게 지켜냈다. 저녁을 함께 한 사람의 기분을 맞춰 주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한 겸손함과 친화력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하나 더 그에게 중요한 미덕이 있었다면 그는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그를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의 보유자였다. 유럽에서 나찌 독일이 항복했을 때 아이젠하워의 참모들은 종전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근사하고 멋지게 남길까 고민했고 여러 안들을 사령관들에게 올렸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그저 사실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로 그 모두를 일축한다. "연합군의 임무는 1945년5월7일 현지 시각 02시41분부로 완료되었다." (정진홍 저,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중)
교착상태에 빠진 한국 전쟁을 일단 끝낸 것도 그였다.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아시아인의 전쟁은 아시아인의 손으로”의 원칙 하에 한국 전쟁을 끝맺고 한국군을 증강시킨 후 미군은 철수시킨다는 복안을 세웠다. 북진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심지어 자신을 겁쟁이로까지 몰아붙이는 신생 독립국의 완고한 대통령은 적당히 무시했고 그가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에 들렀을 때는 환영식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경무대에 들르지도 않았다.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의 39도선 북진 주장도 물리쳤다. 그는 한국전을 휴전으로 끝맺겠다는 명료한 결심을 하고 있었고 그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긴다. 한국 현대사는 그렇게 형성된 구도를 따라 60년을 흘러오게 된다. (휴전,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하지만 그의 기일을 맞아 가장 인상 깊게 떠오르는 것은 1961년 그의 퇴임 연설이다. 영화 JFK의 프롤로그에도 등장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의 퇴임 연설은 항상 명료하면서도 핵심을 찔렀던 그의 일처리 방식과 닮아 있다. 그리고 50년 전이 아니라 마치 지금 의 누군가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저 한 번 읽어 보자.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밤 저는 국민 여러분께 작별의 인사말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몇 가지 의견을 나누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4번이라 큰 전란이 일어났던 지난 반세기 이후 10년이 지났습니다. 그 중 3번의 전쟁에는 미국도 개입되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방대한 규모의 방위산업체를 설립, 유지해야 했습니다. 350만 명의 미국인들이 직접적으로 군사기관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년 군사적 안보에 미국 기업 전체의 순익보다 많은 비용을 쓰고 있습니다....... (중략)
이러한 거대 군사기관과 거대방위산업체 간의 결합은 이제까지의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던 현상으로 부득이하게 생성된 것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산복합체에 내포돼 있는 숨은 의미를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것이 경제와 정치, 정신적인 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모든 도시와 주 의회, 연방정부기관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정부는 군산복합체가 원래 의도에서 벗어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 잘못된 권력으로 발생할 재앙의 가능성은 지금 이 순간에 상존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러할 겁니다. (중략)
앞으로 쓰여질 기나긴 역사를 따라 미국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이 우리의 세상이 가공할 공포와 증오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피하고, 그 대신 상호 신뢰와 존중의 자랑스런 연합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 가장 약한 자도 우리 (미국과) 같은 자신감을 가지고 (평화를 위한) 회의 탁자로 와야 하며 우리처럼 우리의 도덕, 경제, 그리고 군사력에 의해 보호 받아야 합니다. 그 탁자는 과거 많은 좌절로 상처투성이가 돼 있지만 전장(戰場)의 고뇌 때문에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군축은 상호 존중과 신뢰로, 계속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함께 무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성스럽고 고상한 목적을 지니고 의견의 차이를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전쟁의 공포와 그에 따르는 슬픔을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수천 년에 걸쳐 서서히, 공들여 건설된 오늘의 문명이, 전쟁 재발시 모두 다 파괴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 밤 지속적인 평화가 우리 앞에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행히도 나는 전쟁을 피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꾸준한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한 민간인으로서, 나는 세계가 그 길을 따라 전진하도록 돕는데 아무리 미약한 일이라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이 이 퇴임연설을 다시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