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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3.14 교사들의 양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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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94년 3월 14일 교사들의 양심선언 

요즘 뜨는 드라마 <야왕>을 볼 때 느끼는 건데 권상우라는 배우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최고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가 “씨발 대한민국 학교 다 좃까라 그래~!”라고 부르짖는 장면은 그의 일생일대의 연기였고 리얼리즘의 극치였고 두고두고 남는 명대사로 빛날 것이다. 그런데 이 학교는 어느 학교였을까. 영화 속에서는 ‘정문고등학교’로 등장하고 말죽거리를 ‘나와바리’로 한 학교라면? 그 수수께끼는 이 영화의 유하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선도부원 역을 한 이종혁, 그리고 하다못해 엔딩 타이틀 곡을 부른 김진표까지 한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에서 쉽게 풀린다. 우연의 일치였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출과 연기만큼 진솔한 것은 없는 법. 

두 번째 퀴즈. 정준호가 떴던 코믹 조폭 영화 <두사부일체>에서는 아주 황망한 학교 하나가 등장한다. 교장이 앞장서서 성적을 조작하고 학교를 자기 호주머니 속에 넣고 주무르던 학교, 급기야 학교 간 조폭이 열 받아 “학교를 접수한다.”고 똘마니들을 출동시키고 아이들을 때려잡는데 일가견이 있던 교사가 눈물의 양심선언을 하는 희한한 학교. 영화에 등장한 학교의 이름은 상춘고등학교였다. 교장 이름은 상춘만. 

권상우가 좃까라고 외쳤던 정문고등학교와 두사부일체의 상춘고등학교를 합치면 그 학교의 이름이 나온다. 상문고등학교. 그리고 단군 이래 최대의 사학비리의 주도자였던 교장의 이름은 상춘식. 나에게 상씨라는 성씨가 있음을 처음으로 알려 줬던 그의 복마전이 1994년 3월 14일 강남경찰서 기자실에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강남경찰서 기자실을 찾은 7명의 상문고등학교 교사들은 지금껏 교사의 양심을 허물어 가며, 짓밟혀 가며 감내해야 했던 상문고 내의 기상천외한 비리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영어 채점을 하고 있는데 교감과 학년 주임이 와서 31점 받은 박모군이 영어 수를 받을 수 있도록 34점으로 고치라고 강요했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가 김포 세관 간부더군요.”

“이야기 나온 그 학생 세계사 채점을 하고 있는데 비슷한 요구가 있어서 거절했더니 교감이 와서 왜 말을 안듣냐며 직접 고쳤습니다.” 

“어느 회사 이사의 아들이 ‘우’가 나온 것을 교감이 직접 ‘수’로 고치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교사들은 숫제 통곡을 했다. 너무도 쌓인 것이 컸으리라. 교사의 양심으로 똘망똘망한 눈이 충혈되도록 공부를 하고 코피를 쏟는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가 김포세관 간부가 어디 이사라는 이유로 ‘수’를 챙겨가는 모습에 허파가 뒤집혔으리라. 그것도 ‘교감샘’ ‘교장샘’이 앞장서서 그 짓을 했으니. 거기다가 찬조금은 어찌나 탐관오리식으로 거두었는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교사는 자기 월급으로 그것을 메워야 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교육청 감사관이 긴급 출동하여 상문고등학교에 쳐들어갔으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버티는 통에 멀거니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는 사실이고, 교직원들이 취재진의 접근을 막으면서 증거가 될 시험 답안지들을 불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학생 보기를 물로 알고 교사 보기를 졸로 알아도분수가 있지, 상춘식 교장은 <두사부일체> 영화 속의 상춘만 교장보다 더한 인간이었다. 영화 속에서 상춘만 교장은 이렇게 얘기한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조선 땅에는 널린 게 선생이야." 상춘식 교장은 교육청 감사관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조선 땅에서는 사립학교 주인이 장땡이야.” 

이렇게 한 학교를 말아먹고 수십억 돈을 챙기고 성적을 조작하여 뭇 선량한 학생들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상춘식은 끝까지 상문고등학교에 돌아오려고 기를 썼다. 그도 그럴 것이다. 1974년 14평 연탄 아파트에 생활하던 사람이 1994년에는 200억 원이 훨씬 넘는 거부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으니 세상에 그런 재테크 수단을 뺏기고도 눈에 불을 켜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1999년 상춘식 교장의 처 이우자는 행정소송을 냈고 이에 승소, 관선이사들의 업무가 정지됐다. 그 이전에도 이우자 등 상춘식의 측근이 이사회로 복귀하려는 기도를 학생들과 교사들이 들고 일어서 저지했던 바, 행정소송의 재판부는 “교사들이 불법적인 실력 행사로 재단의 이사진을 바꿀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는 감자탕에도 못들어갈 개뼈다귀같은 판결로 상문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경악시켰다. 

이후 상문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들은 기나긴 싸움에 들어갔다. 그 하이라이트는 2001년 상문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벌어진다. 이날의 주인공은 장방언이라는 사람이었다. 94년 당시 교감으로 교사들이 성적 조작의 주범으로 지목한 그 사람이고 감옥까지 갔다 온 사람, 이 인간이 교장이랍시고 입학식에서 훈화하겠다면서 학교에 발을 들이밀었다. 이 사람이 학부모들에게 했다는 말은 이른바 교육자라는 사람의 얼굴이 어느 정도 두꺼울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속지마세요. 어머니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94년도에 나는 위에서 시켜서 한 죄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쯤 되면 험한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아가리를 열 십자로 찢어버릴라. 끝내 그는 졸업생들에게 학교 밖으로 끌려 나갔고 상춘식 일당은 결국 대법원에서 패소하여 학교에서 손을 떼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정의가 승리한” 순간. 

상춘식이라는 물건과 그 하수인으로 감옥까지 갔다 와 놓고도 교장을 맡겠다고 그 철면을 들이밀던 장방언이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복마전을 일궈 놓을 수 있었을까. 그건 한 교사의 양심선언 중 일부 증언으로 짐작할 수 있다. “상교장은 학교를 입시사관학교로 만들었습니다. 교사와 학생들을 옥죄어 명문대학교에 많이 입학시키면 모든 부정이 덮어진다는 것이 상교장의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상춘식이라는 주범은 많은 공범을 거느리고 있었다. 장방언을 위시한 그 똘마니들은 물론, 명문대학교 많이 입학시키면 그걸로 장땡이라고 여기고 무슨 인성교육이니 뭐니 하는 한가한 소리하는 교사들을 멸시하던 학부모들, 그리고 그 자제들이 모두 그들의 공범이었던 셈이다. 그러고보면 나도 어느 새 그 공범이 되어 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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