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넣기 산하의 오역
1945년 3월 7일 레마겐의 철교
존 길러맨이라는 헐리우드 영화 감독이 있다. 누구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영화 두 개만 대면 바로 아 아!! 하면서 고개를 상하로 크게 끄덕일 것이다. 재난영화 <타워링>과 1976년 여배우 제시카 랭을 기용하여 리메이크한 괴수 영화 <킹콩>의 감독이다. 그가 1969년 만든 전쟁 영화 하나가 있는데 바로 <레마겐의 철교>라는 영화다. 가끔 현충일날 재방송되곤 해서 제목이라도 스치고 지나간 기억이 많은 2차대전 전쟁 영화다.
레마겐은 지금도 인구가 2만이 좀 안된다는 독일의 소도시다. 이 레마겐이 유명해지고 영화의 제목으로까지 남게 된 것은 그 도시 앞을 흐르는 라인강에 놓인 다리 때문이었다. 다리의 이름은 루덴도르프, 즉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영웅으로서 러시아군을 격멸시킨 타넨베르크 전투의 승리자이며 히틀러의 맥주홀 봉기 때 히틀러와 뜻을 같이 했으나 후에는 히틀러를 악마라고 부르며 히틀러를 수상으로 기용한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는 아래 세대의 무덤을 팠습니다.”라고 전보를 보내기도 했던 독일군의 옛 원수(元帥)를 기념하기 위한 다리였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미군은 발지 전투같은 독일군의 사력을 다한 반격을 무찌르면서 점차 독일의 목을 죄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들 앞을 막아서는 주요한 독일의 방어선 가운데 하나는 자연이 쳐 둔 것이었다. 바로 라인 강이었다. 원래 연합군은 공습을 통해 라인강 다리들을 폭격했었다. 독일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독일군들이 라인 강에 놓인 즐비한 다리들을 폭파하면서 미군들의 라인 강 도하를 막으려 했다. 당연히 미국의 진격을 저지하고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작전을 펴던 미군 9 기갑사단 라인 강을 공략 중이었던 연합군 미국 9 기갑사단 30수색대대 소속이었던 에버트 버로즈 소위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기가 막힌 풍경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멀쩡한 다리 하나가 라인 강 위에 버젓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다리가 남아 있었던 이유는 라인 강 건너편에 아직 남아 있던 독일군들을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상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장군 폰 브룩은 책임감 강한 소령에게 강 건너의 독일군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최후의 순간까지 사수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미군이 이 다리를 발견한 이상 루덴도르프 다리는 하시라도 빨리 폭파돼야 했다. 반대로 미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다리를 확보해야 했다. 뒷 얘기지만 아이젠하워는 이 다리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그 무게만큼의 금(金)과 맞먹는 다리” 이 레마겐 철교를 둔 공방전을 그린 영화가 <레마겐의 철교>다.
<레마겐의 철교>는 흔해빠진 2차대전판 배달의 기수와는 좀 성격이 다르다. 미군도 그렇고 독일군도 그렇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군대나 악마의 졸개들로 그려지지 않는다. 노획 물자를 챙기려다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미군 병사도 있고 진급 욕심 내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날리는 미군 장교도 나오며, 이길 수 없는 전투에 부하들을 내몰면서 인간적 고뇌에 시달리는 독일군 장교,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독일군 하사관도 영화의 주요한 축이 된다. 다리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물론 그 전략적 가치가 높다고는 하지만 끝내 미군에 점령된 열흘 뒤에는 아예 허물어져 버렸던 다리를 지키고 빼앗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간다.
독일군에게는 다리를 폭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장치에 기폭장치가 가동되지 않거나 어느 하사관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폭파에 성공했지만 다리는 멀쩡하게 남아 있는 기가 막힌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전자의 경우 강제로 징발돼 온 폴란드 인 기술자가 도화선을 잘라 버렸다는 설이 유력하고 두 번째는 폭파에 필요한 화약 계산을 잘 못 했거나 필요한 화약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 속에서는 TNT 품질이 나빴던 걸로 소개된 거 같은데) 부족한 장비와 병력을 이끌고 사력을 다했지만 끝내 연합군을 저지하지 못한 방어 책임자는 후방의 사령부로 달려가 지원 요청을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게슈타포였다.
히틀러는 방어책임자 이하 관련자 전원 총살을 명했고 명령불복종, 즉 다리 폭파를 완수하지 못한 죄로 영화 속 크루거 소령, 레마겐 철교 방어 책임자는 총살을 당한다. 그 뿐 아니라 크루거를 도와 레마겐 철교 폭파에 사력을 다한 공병대원들도 슬프게도 아군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영화 속 사형 집행 장면. 총살을 기다리는 크루거의 귀에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그때 크루거의 질문 “Ours? theirs?" 즉 “우리 비행기인가 적기인가?”를 묻는다. 그러자 총살대가 대답한다. “Enemy plaens,sir." (적군 비행기요.)” 그때 크루거는 전쟁 영화의 명대사라 할 대사 하나를 남긴다. “But, who is the enemy?" (그런데 누가 적이지?)
“처음에는 왜 싸웠는지 알았는데 하도 오래 싸우다 보니 이제는 모르겠어.” 라고 고백하던 영화 <고지전>의 인민군처럼 크루거 소령도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다리를 폭파하려고 그 기를 쓰는지, 그리고 최선을 다한 자신이 명령 왜 불복종죄로 사형대에 서야 하는지, 과연 적은 누구고 아군은 누군지 갈수록 불분명해졌을 것이다. 전략적으로는 중요한 다리였지만 기실 레마겐의 철교는 그다지 즐겨 이용되지도 않았고 전투의 후유증과 이제는 미군 것이 된 다리를 폭파하려는 독일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뒤에는 재건되지도 않았다. 사실상의 무용지물이던 다리가 수천 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누가 그랬다. 전쟁은 잘못된 결혼같은 거라고. 안하면 미칠 것 같고 마치 신이 내린 운명이라 착각하기도 하고 무리한 결정까지도 서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존재.
핵무기 틀어쥐고 정전협정 파기 선언을 해 버린 철없는 나라를 머리에 이고 사는 백성의 하나로 전쟁이 실감날만큼은 아니지만 걱정될만은 한 단어로 다가와 버린 지금, 무슨 수를 쓰든 내 후배들과 내 조카들과 이르면 내 아들같은 아이들이 총을 들고 ‘조국’ 같은 걸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없게 되기를 바랄 밖에. 그들이 “근데 누가 적이지?”를 뇌까리다가 고개를 떨구는 일이 결코 존재하지 않기를 소망할 밖에.
1945년 3월 7일 레마겐 철교가 숱한 희생을 뒤로 하고 미군에게 점령됐다.
1945년 3월 7일 레마겐의 철교
존 길러맨이라는 헐리우드 영화 감독이 있다. 누구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영화 두 개만 대면 바로 아 아!! 하면서 고개를 상하로 크게 끄덕일 것이다. 재난영화 <타워링>과 1976년 여배우 제시카 랭을 기용하여 리메이크한 괴수 영화 <킹콩>의 감독이다. 그가 1969년 만든 전쟁 영화 하나가 있는데 바로 <레마겐의 철교>라는 영화다. 가끔 현충일날 재방송되곤 해서 제목이라도 스치고 지나간 기억이 많은 2차대전 전쟁 영화다.
레마겐은 지금도 인구가 2만이 좀 안된다는 독일의 소도시다. 이 레마겐이 유명해지고 영화의 제목으로까지 남게 된 것은 그 도시 앞을 흐르는 라인강에 놓인 다리 때문이었다. 다리의 이름은 루덴도르프, 즉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영웅으로서 러시아군을 격멸시킨 타넨베르크 전투의 승리자이며 히틀러의 맥주홀 봉기 때 히틀러와 뜻을 같이 했으나 후에는 히틀러를 악마라고 부르며 히틀러를 수상으로 기용한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는 아래 세대의 무덤을 팠습니다.”라고 전보를 보내기도 했던 독일군의 옛 원수(元帥)를 기념하기 위한 다리였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미군은 발지 전투같은 독일군의 사력을 다한 반격을 무찌르면서 점차 독일의 목을 죄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들 앞을 막아서는 주요한 독일의 방어선 가운데 하나는 자연이 쳐 둔 것이었다. 바로 라인 강이었다. 원래 연합군은 공습을 통해 라인강 다리들을 폭격했었다. 독일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독일군들이 라인 강에 놓인 즐비한 다리들을 폭파하면서 미군들의 라인 강 도하를 막으려 했다. 당연히 미국의 진격을 저지하고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작전을 펴던 미군 9 기갑사단 라인 강을 공략 중이었던 연합군 미국 9 기갑사단 30수색대대 소속이었던 에버트 버로즈 소위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기가 막힌 풍경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멀쩡한 다리 하나가 라인 강 위에 버젓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다리가 남아 있었던 이유는 라인 강 건너편에 아직 남아 있던 독일군들을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상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장군 폰 브룩은 책임감 강한 소령에게 강 건너의 독일군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최후의 순간까지 사수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미군이 이 다리를 발견한 이상 루덴도르프 다리는 하시라도 빨리 폭파돼야 했다. 반대로 미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다리를 확보해야 했다. 뒷 얘기지만 아이젠하워는 이 다리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그 무게만큼의 금(金)과 맞먹는 다리” 이 레마겐 철교를 둔 공방전을 그린 영화가 <레마겐의 철교>다.
<레마겐의 철교>는 흔해빠진 2차대전판 배달의 기수와는 좀 성격이 다르다. 미군도 그렇고 독일군도 그렇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군대나 악마의 졸개들로 그려지지 않는다. 노획 물자를 챙기려다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미군 병사도 있고 진급 욕심 내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날리는 미군 장교도 나오며, 이길 수 없는 전투에 부하들을 내몰면서 인간적 고뇌에 시달리는 독일군 장교,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독일군 하사관도 영화의 주요한 축이 된다. 다리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물론 그 전략적 가치가 높다고는 하지만 끝내 미군에 점령된 열흘 뒤에는 아예 허물어져 버렸던 다리를 지키고 빼앗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간다.
독일군에게는 다리를 폭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장치에 기폭장치가 가동되지 않거나 어느 하사관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폭파에 성공했지만 다리는 멀쩡하게 남아 있는 기가 막힌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전자의 경우 강제로 징발돼 온 폴란드 인 기술자가 도화선을 잘라 버렸다는 설이 유력하고 두 번째는 폭파에 필요한 화약 계산을 잘 못 했거나 필요한 화약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 속에서는 TNT 품질이 나빴던 걸로 소개된 거 같은데) 부족한 장비와 병력을 이끌고 사력을 다했지만 끝내 연합군을 저지하지 못한 방어 책임자는 후방의 사령부로 달려가 지원 요청을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게슈타포였다.
히틀러는 방어책임자 이하 관련자 전원 총살을 명했고 명령불복종, 즉 다리 폭파를 완수하지 못한 죄로 영화 속 크루거 소령, 레마겐 철교 방어 책임자는 총살을 당한다. 그 뿐 아니라 크루거를 도와 레마겐 철교 폭파에 사력을 다한 공병대원들도 슬프게도 아군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영화 속 사형 집행 장면. 총살을 기다리는 크루거의 귀에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그때 크루거의 질문 “Ours? theirs?" 즉 “우리 비행기인가 적기인가?”를 묻는다. 그러자 총살대가 대답한다. “Enemy plaens,sir." (적군 비행기요.)” 그때 크루거는 전쟁 영화의 명대사라 할 대사 하나를 남긴다. “But, who is the enemy?" (그런데 누가 적이지?)
“처음에는 왜 싸웠는지 알았는데 하도 오래 싸우다 보니 이제는 모르겠어.” 라고 고백하던 영화 <고지전>의 인민군처럼 크루거 소령도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다리를 폭파하려고 그 기를 쓰는지, 그리고 최선을 다한 자신이 명령 왜 불복종죄로 사형대에 서야 하는지, 과연 적은 누구고 아군은 누군지 갈수록 불분명해졌을 것이다. 전략적으로는 중요한 다리였지만 기실 레마겐의 철교는 그다지 즐겨 이용되지도 않았고 전투의 후유증과 이제는 미군 것이 된 다리를 폭파하려는 독일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뒤에는 재건되지도 않았다. 사실상의 무용지물이던 다리가 수천 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누가 그랬다. 전쟁은 잘못된 결혼같은 거라고. 안하면 미칠 것 같고 마치 신이 내린 운명이라 착각하기도 하고 무리한 결정까지도 서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존재.
핵무기 틀어쥐고 정전협정 파기 선언을 해 버린 철없는 나라를 머리에 이고 사는 백성의 하나로 전쟁이 실감날만큼은 아니지만 걱정될만은 한 단어로 다가와 버린 지금, 무슨 수를 쓰든 내 후배들과 내 조카들과 이르면 내 아들같은 아이들이 총을 들고 ‘조국’ 같은 걸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없게 되기를 바랄 밖에. 그들이 “근데 누가 적이지?”를 뇌까리다가 고개를 떨구는 일이 결코 존재하지 않기를 소망할 밖에.
1945년 3월 7일 레마겐 철교가 숱한 희생을 뒤로 하고 미군에게 점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