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45년 2월 13일 드레스덴과 아서 해리스
‘블록버스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으레 돈 많이 들이고 볼거리 확실한 헐리웃 영화가 눈 앞에 그려지겠습니다마는 사실 이 단어는 매우 무시무시한 뜻을 지니고 있어요. 한 블록 (block)을 날리는 (bust) 위력을 지닌 폭탄을 뜻하거든요. 대략 4-5톤의 폭탄이면 한 블록을 날릴 수 있는 ‘블록버스터’로 불리웠던 거죠. 이 말의 탄생은 1945년 2월 13일 저녁 느지막히 시작된 드레스덴 대공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의 고도(古都)이며 엘베 강변에서 맞는 저녁놀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우기도 했던 이 아름다운 도시는 그날 영국 공군 랭카스터 폭격기 796대, 미국 공군 B17 폭격기 311대가 그로부터 이틀 동안 합동으로 퍼부은 폭탄들에 불바다가 됩니다.
오래된 도시답게 낡은 목조 건물들을 태우기 위한 소이탄을 위주로 뿌려진 이 대공습에 드레스덴은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수의 사람들이 그날 그 자리에서 타 죽거나 질식해 죽거나 화상을 입고 절규하다가 지쳐서 죽어갔습니다. 함부르크, 쾰른 등 대공습이 진행된 도시는 많았지만 드레스덴은 특히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죠. 그 중 한 소녀의 증언을 옮겨 볼까요. “엄마는 내게 젖은 담요를 덮어 주고 키스해 주며 어서 달리라고 외쳤다. 나는 다시 엄마를 보지 못했고 거리는 불바다였다. 다리가 녹아 길에 들러붙은 채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드레스덴은 이렇다 할 대공 무기도, 폭격에 맞설 독일 공군의 비행기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폭격기 조종수들은 그야말로 드라이브하면서 사과 던지듯 유유자적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럼 많게는 10만 적게는 4만의 사람들이 시체가 되는 이 폭격이 과연 전략적으로 필요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글쎄요. 그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젓습니다. 1945년이면 이미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쓸어버리면서 베를린을 향해 탱크 캐터필러를 굴릴 때였고 서부전선의 독일군도 급격히 와해되고 있었습니다. 즉 전쟁의 축은 이미 기울었고 인구 수십만의 대도시를 폭격으로 날려 버릴 합리적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마뜩지 않아 하는 미국까지 끌어들이며 ‘동부전선 소련군의 진격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이 폭격을 감행합니다. 여기에는 한 인물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아서 해리스. 영국 포격사령부 사령관
식민지를 전전하면서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비행기에 눈을 뜬 그는 1차대전에 참전했고 적기를 격추시킨 공로로 훈장도 받고 입신하게 됩니다. 전후 아랍의 영국 식민지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아랍인들이 말썽을 부리면 일단 폭탄 하나 안겨 주고 얘기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한 모양이구요.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태세가 완비된 사람이었고 그 와중에 죽어갈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 따위는 그야말로 ‘아웃 오브 안중’이었습니다.
“적군 수십만의 시체보다 영국군 한 명의 뼈가 더 귀하다.”거나 “적국의 민간인도 적이다.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적을 위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던 이 공군 장관은 전략적 목적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많은 고통을 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드레스덴이 그렇게 곤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베 강에 놓인 철교는 멀쩡했다는 사실은 영국 공군이 어떤 목적을 지녔던 것인지를 여실히 입증해 주죠. “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 자리에 임명된 것”이라는 그의 선언에 이르면 그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그는 공군 원수까지 되지만 전후 그의 폭격 전술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의 지시에 따라 수행한 업무에 따른 포상을 받지 못하자 이에 항의하고 영국을 떠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 버립니다. 그 후 그의 폭격 전술에 머리를 저으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던 윈스턴 처칠이 이 똘끼 흐르는 장군에게 준남작의 작위를 주어 아서 해리스 경(卿)이 되지요. 그리고 아흔 두 살까지 천수를 누리다가 1984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죽은 8년 뒤에 불거집니다. 1992년 이 사람의 동상이 세워진 거죠.
그때까지도 폭격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던 드레스덴의 나라 통일 독일은 이에 반발하고 양국은 껄끄러운 관계에 돌입하지만 그래도 아서 해리스의 동상은 버젓이 섰고 “(그의) 폭격기 사령부에게 국가는 빚을 지고 있다.”는 문구가 그 발밑에서 빛난다고 합니다. 엘리자베드 여왕의 모후가 그 동상을 제막했는데 그때 “아서 해리스는 전범이오!”라고 누군가 소리치는 소동이 있었고 어떤 독일인은 “히틀러도 하루에 10만 명을 죽이지는 못했소!”라고 절규했지만 영국은 오불관언 해리스의 동상은 지금도 엄존하고 혹시 모를 해꼬지를 대비해 24시간 경계를 받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다 그런 건지도 모르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 이기는 게 장땡인 것이 전쟁인 이상, 아서 해리스만을 욕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황이 기운 상태에서 그런 식의 도살자(그의 별명) 노릇을 했던 이의 동상까지 세우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참 다양하죠. 아서 해리스같은 이가 있는 반면, 드레스덴에 미군 포로로서 수용되어 있던 커트 보네컷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는 경비병들과 함께 지하 고기 저장고로 들어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그 참상을 목격하고서 <제 5 도살장>이라는 소설을 씁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잠깐 빌렸던 그의 책의 구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죠.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 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늘 가르친다.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친다.”
그는 평생 미국이라는 나라가 저지르는 전쟁과 학살의 범죄에 대해 항의했으며 노구를 이끌고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을 제에 비애국적 행동이라는 비난이 잇따르자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다!” 그가 영국에 갈 일이 있었다 해도 아서 해리스의 동상을 일부러 찾아가 보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만약 보네컷이 그 앞에 설 기회가 있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Good morning Butcher?"(안녕? 도살자)였을까요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였을까요.
그의 소설 가운데 한 구절을 더 들고와 봅니다. 지구인 빌리가 어떤 행성에 가서 하는 말입니다. “ 한 행성의 주민이 어떻게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태초 이래 무의미한 살육에 열중해온 행성에서 왔습니다. 내 나라 사람들이 급수탑에 넣고 산 채로 삶아 죽인 여학생들의 시체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시 자기들이 절대 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에 차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나는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삶아져 죽은 여학생들의 오빠와 아버지들이 살육한 인간들의 지방으로 만든 촛불로 밤을 밝혔습니다. 지구인들은 우주의 골칫거리가 분명합니다...... 그러니 내게 비결을 좀 가르쳐주세요. 내가 지구로 가져가서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게요. 어떻게 한 행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찔리는 단어들이 있죠? 특히 “절대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 그저께 우리는 그런 모습의 극을 봤지요. 인민들 굶어죽어도 미국에 맞서는 무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벽창호 정권과 기어이 그 시도를 즈려밟고 말겠다며 악의 축 북한에 대해 눈을 부라리는 미국.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인 수백만을 ‘무의미한 살육’에 돌입시킬지도 모를 핵무기는 함경북도 길주의 복잡한 갱도에서 불을 뿜고 말았습니다. 드레스덴이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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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13일 드레스덴과 아서 해리스
‘블록버스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으레 돈 많이 들이고 볼거리 확실한 헐리웃 영화가 눈 앞에 그려지겠습니다마는 사실 이 단어는 매우 무시무시한 뜻을 지니고 있어요. 한 블록 (block)을 날리는 (bust) 위력을 지닌 폭탄을 뜻하거든요. 대략 4-5톤의 폭탄이면 한 블록을 날릴 수 있는 ‘블록버스터’로 불리웠던 거죠. 이 말의 탄생은 1945년 2월 13일 저녁 느지막히 시작된 드레스덴 대공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의 고도(古都)이며 엘베 강변에서 맞는 저녁놀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우기도 했던 이 아름다운 도시는 그날 영국 공군 랭카스터 폭격기 796대, 미국 공군 B17 폭격기 311대가 그로부터 이틀 동안 합동으로 퍼부은 폭탄들에 불바다가 됩니다.
오래된 도시답게 낡은 목조 건물들을 태우기 위한 소이탄을 위주로 뿌려진 이 대공습에 드레스덴은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수의 사람들이 그날 그 자리에서 타 죽거나 질식해 죽거나 화상을 입고 절규하다가 지쳐서 죽어갔습니다. 함부르크, 쾰른 등 대공습이 진행된 도시는 많았지만 드레스덴은 특히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죠. 그 중 한 소녀의 증언을 옮겨 볼까요. “엄마는 내게 젖은 담요를 덮어 주고 키스해 주며 어서 달리라고 외쳤다. 나는 다시 엄마를 보지 못했고 거리는 불바다였다. 다리가 녹아 길에 들러붙은 채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드레스덴은 이렇다 할 대공 무기도, 폭격에 맞설 독일 공군의 비행기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폭격기 조종수들은 그야말로 드라이브하면서 사과 던지듯 유유자적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럼 많게는 10만 적게는 4만의 사람들이 시체가 되는 이 폭격이 과연 전략적으로 필요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글쎄요. 그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젓습니다. 1945년이면 이미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쓸어버리면서 베를린을 향해 탱크 캐터필러를 굴릴 때였고 서부전선의 독일군도 급격히 와해되고 있었습니다. 즉 전쟁의 축은 이미 기울었고 인구 수십만의 대도시를 폭격으로 날려 버릴 합리적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마뜩지 않아 하는 미국까지 끌어들이며 ‘동부전선 소련군의 진격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이 폭격을 감행합니다. 여기에는 한 인물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아서 해리스. 영국 포격사령부 사령관
식민지를 전전하면서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비행기에 눈을 뜬 그는 1차대전에 참전했고 적기를 격추시킨 공로로 훈장도 받고 입신하게 됩니다. 전후 아랍의 영국 식민지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아랍인들이 말썽을 부리면 일단 폭탄 하나 안겨 주고 얘기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한 모양이구요.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태세가 완비된 사람이었고 그 와중에 죽어갈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 따위는 그야말로 ‘아웃 오브 안중’이었습니다.
“적군 수십만의 시체보다 영국군 한 명의 뼈가 더 귀하다.”거나 “적국의 민간인도 적이다.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적을 위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던 이 공군 장관은 전략적 목적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많은 고통을 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드레스덴이 그렇게 곤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베 강에 놓인 철교는 멀쩡했다는 사실은 영국 공군이 어떤 목적을 지녔던 것인지를 여실히 입증해 주죠. “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 자리에 임명된 것”이라는 그의 선언에 이르면 그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그는 공군 원수까지 되지만 전후 그의 폭격 전술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의 지시에 따라 수행한 업무에 따른 포상을 받지 못하자 이에 항의하고 영국을 떠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 버립니다. 그 후 그의 폭격 전술에 머리를 저으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던 윈스턴 처칠이 이 똘끼 흐르는 장군에게 준남작의 작위를 주어 아서 해리스 경(卿)이 되지요. 그리고 아흔 두 살까지 천수를 누리다가 1984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죽은 8년 뒤에 불거집니다. 1992년 이 사람의 동상이 세워진 거죠.
그때까지도 폭격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던 드레스덴의 나라 통일 독일은 이에 반발하고 양국은 껄끄러운 관계에 돌입하지만 그래도 아서 해리스의 동상은 버젓이 섰고 “(그의) 폭격기 사령부에게 국가는 빚을 지고 있다.”는 문구가 그 발밑에서 빛난다고 합니다. 엘리자베드 여왕의 모후가 그 동상을 제막했는데 그때 “아서 해리스는 전범이오!”라고 누군가 소리치는 소동이 있었고 어떤 독일인은 “히틀러도 하루에 10만 명을 죽이지는 못했소!”라고 절규했지만 영국은 오불관언 해리스의 동상은 지금도 엄존하고 혹시 모를 해꼬지를 대비해 24시간 경계를 받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다 그런 건지도 모르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 이기는 게 장땡인 것이 전쟁인 이상, 아서 해리스만을 욕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황이 기운 상태에서 그런 식의 도살자(그의 별명) 노릇을 했던 이의 동상까지 세우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참 다양하죠. 아서 해리스같은 이가 있는 반면, 드레스덴에 미군 포로로서 수용되어 있던 커트 보네컷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는 경비병들과 함께 지하 고기 저장고로 들어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그 참상을 목격하고서 <제 5 도살장>이라는 소설을 씁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잠깐 빌렸던 그의 책의 구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죠.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 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늘 가르친다.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친다.”
그는 평생 미국이라는 나라가 저지르는 전쟁과 학살의 범죄에 대해 항의했으며 노구를 이끌고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을 제에 비애국적 행동이라는 비난이 잇따르자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다!” 그가 영국에 갈 일이 있었다 해도 아서 해리스의 동상을 일부러 찾아가 보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만약 보네컷이 그 앞에 설 기회가 있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Good morning Butcher?"(안녕? 도살자)였을까요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였을까요.
그의 소설 가운데 한 구절을 더 들고와 봅니다. 지구인 빌리가 어떤 행성에 가서 하는 말입니다. “ 한 행성의 주민이 어떻게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태초 이래 무의미한 살육에 열중해온 행성에서 왔습니다. 내 나라 사람들이 급수탑에 넣고 산 채로 삶아 죽인 여학생들의 시체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시 자기들이 절대 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에 차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나는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삶아져 죽은 여학생들의 오빠와 아버지들이 살육한 인간들의 지방으로 만든 촛불로 밤을 밝혔습니다. 지구인들은 우주의 골칫거리가 분명합니다...... 그러니 내게 비결을 좀 가르쳐주세요. 내가 지구로 가져가서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게요. 어떻게 한 행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찔리는 단어들이 있죠? 특히 “절대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 그저께 우리는 그런 모습의 극을 봤지요. 인민들 굶어죽어도 미국에 맞서는 무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벽창호 정권과 기어이 그 시도를 즈려밟고 말겠다며 악의 축 북한에 대해 눈을 부라리는 미국.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인 수백만을 ‘무의미한 살육’에 돌입시킬지도 모를 핵무기는 함경북도 길주의 복잡한 갱도에서 불을 뿜고 말았습니다. 드레스덴이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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