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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9 군산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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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2002년 1월 29일 군산의 비극 

2002년 1월 29일 오전 11시 쯤 전북 군산 개복동의 유흥업소 카드체크기에서 연기가 새어나오고 곧이어 불꽃이 튀었다. 전기누전이었다. 인근의 물건들로 튄 불꽃은 이내 불길이 되어 그 지옥같은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발견한 것은 주방장 아주머니. 너무 당황한 아주머니는 “불이야!” 소리도 까먹은 채 밖으로 뛰쳐 나왔다. 옆 건물로 달려가 불이 났다고 얘기한 뒤에야 소방대가 출동했지만 이미 불은 번질 대로 번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회식 후 정신없이 자고 있던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15명의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발생 3시간 뒤 군산시와 소방서는 합동으로 이렇게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대명동 화재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종업원들이 전날 술을 마시고 잠들어 술기운에 2층 창문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1층으로 몰려내려오다가 사망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대명동 화재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이곳은 군산에서 가장 번다한 사창가 골목이었다. 이른바 ‘쉬파리 골목’이라 불리우던. 2년 전(2000) 화재가 났을 때 성매매 여성들은 불길 속에서 나오지 못한 채 타 죽거나 질식해 쓰러졌다. 이유는 포주가 설치한 쇠창살이었다. 

여성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 포주는 쇠창살을 둘러쳤고 그 안에서 애타게 구원을 호소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죽어갔던 사건이었다. 화재는 단 5분만에 진압됐는데 그 사이 5명이 죽었다. (영화 <이끼>의 한 장면을 생각해 보시면 된다) 이 사건으로 실컷 여론의 몰매를 맞았던 공무원들로서는 이 사건과 그 사건이 다르다는 선을 우선적으로 긋고 싶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했을까. “여종업원들이 조금만 침착했어도 2층에 있는 유리창문을 깨고 비상사다리를 통해 빠져 나갈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해 대형 참사를 당했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쇠창살은 없었지만 밖으로 난 창은 베니어 합판으로 막혀 있었다. 반대편의 창 역시 시멘트로 발라 버려 밖에서는 창이지만 안에서는 벽이었다. 즉 피해자들은 그나마 창살 사이의 햇볕조차 받지 못하고 일상을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2층에서 비상시 탈출하도록 만들어진 비상계단이 있었지만 그곳 창문은 빈틈없이 못이 박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출입구는 특수하게 제작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감금이었다. 뜨거운 불길 속에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컴컴함 속에 15명의 생명들은 쇠창살 너머 손을 뻗어 볼 새도 없이 죽어갔다. 

그런데 업주 측은 “베니어합판은 보온용으로 설치한 것”이라고 우겼고 관계기관은 그 말을 받아서 감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잇단 취재와 증언으로 사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개복동에서 얼마 전까지 일했던 여성은 언제나 문은 잠겨 있었고 ‘삼촌’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메모는 2년 전 지척의 대명동에서 일어난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메모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닮아 있었다. 
“힘든 하루였다. 부모가 보고 싶다. 희망 없는 미래, 무엇에 의지하고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갈까.” (개복동) “나 좀 도와주세요. 제대로 인간답게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이 정도면 옛날에 죄값은 다 치른 것 같은데 제 생각만 그런가요.” 

유족들은 이런 지경으로 여성들을 방치한 국가에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승소했지만 2심에서는 패배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유족들은 정부로부터 공식 배상을 받게 됐다. 그런데 그 죽음으로 유족들이 배상이나마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망자 15명 가운데 13명이었다. 2명은 고아였던 것이다. 정말로 뜻하지 않게 이 세상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나이 스물 댓까지 제대로 된 보살핌 한 번 받지 못한 채 세상의 바닥에서 모진 꿈만 꾸면서 아등바등 살아가다가 별안간 주위를 감싼 화마에 휩싸여 고단한 삶을 마친 두 명의 고아 여성은 배상 명단에서도 빠져 있었다. 저 위에서 얘기한 발견된 메모는 혹시 그녀 중 하나의 것이 아니었을까. 부모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면서 절망적으로 끄적인 그녀의 마지막 흔적은 아니었을까. 

군산 개복동 화재는 성매매 여성들의 처참한 인권 실황을 흉측하게 드러냈고 이로 인해 들끓는 여론은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제정의 기폭제가 됐다. 그로부터 8년.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위헌이 제청됐고 오히려 이 법으로 인하여 성매매가 근절되기는 커녕, 더욱 음성화하고 조직화하며 오히려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차라리 성매매를 합법화하여 제도권 내에 진입시키고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부여하자는 주장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어디에도 손을 들지 몰라 엉거주춤을 춘다. 성매매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처벌한다고 해서 성매매가 뿌리뽑히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군산 개복동에서 보듯 일종의 브레이크는 필요했다고 보고 성매매 특별법이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고도 본다. 반면 브레이크만 가지고는 주변을 씽씽 추월해가는 불법 차량들을 다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합법화의 길을 밟는다면 대관절 어디까지 국가가 개입하고 관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나오고 거기에서 나는 또 한 번 길을 잃고 만다. 보건복지부에서 성매매 단가를 정할 수도 없고 경찰이 “변태 성매매 강요 신고센터”를 운용할 수도 없고.. 

그저 다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제도가 들어서든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상식과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없이는, 그리고 가난 때문에, 그리고 본인의 의사와 반하는 상황에서 그 일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겠다. 사람을 ‘똥치’로 대우하는 한,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여기는 한, 도망갈까봐 쇠창살을 둘러치고 베니어합판으로 창문을 막는 한, 그리고 깡패를 동원해서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 머리채를 잡아오는 일이 있는 한 성매매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군산 개복동은 계속 있을 것이기 때문이겠지. 즉 불법과 합법이냐는 헌법재판소에 물어 볼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볼 일이겠다. 우리나라의 사람 대접은 과연 나아졌는가. 나아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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