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전염된다고 한다. 한 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게 되고 영문도 모르고 웃게 되고 결국은 모두가 함께 웃게 된다던가. 그래서 복이 온다던가. 하지만 나는 오늘 한 웃음에 울컥한다. 그 웃음에 동참하고 싶지만 마음 한 구석이 구겨지고 눈이 뜨거워져서 웃지 못한다. 분위기만 보면 어느 회사에서 MT를 와서 한바탕 놀아 제낀 후 집에 가기 전 포즈를 취한 것도 같고, 누가 장가 시집간다고 해서 모인 동창들이 간만에 김치!를 부르짖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아니다.
7년 전 그들은 전 세계 기타의 30퍼센트를 생산하는 유망한 중소기업 콜트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무지 망할 리가 없고 망할 수도 없는, 1996년 이후 10년간 누적 순이익이 170억원에 이르렀던 회사에 별안간 ‘경영 위기’가 닥쳤고 노동자들은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됐다. 그로부터 7년 동안 노동자들은 별의 별 일을 다 겪었다. 공장을 점거했고 대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또 정반대의 판결을 받고 아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엄동설한의 어느 새벽 공장에서 쫓겨나 내동댕이쳐졌다. 공장 부지를 매입한 이가 그들을 주거침입으로 고발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들어간 공장에서 그들은 저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다. 무엇이 그리 흥겨운지 그 입들은 함지박처럼 벌어져 있고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으면서 그 기분을 발산하고 있다. 청춘을 다 바쳐 일한 공장에 다시 들어올 수 있어서일까.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다. 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정말 저 사람들은 기뻐서, 신나서 웃고 있는 것이다. 강산이 바뀌고 코흘리개 초딩이 머리 굵은 중딩이 될 때까지의 그 세월 동안 월급 한 푼 못받고 싸워 온 사람들이 뭐가 좋아서, 무슨 신이 나서 저렇게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짝다리 짚고서 환한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들은 잠시 후 경찰이 들어와 자신들을 끌어내리라는 사실을 전달받은 뒤였다는데.
무슨 이야기들을 했을까. 언젠가 후지 락 페스티발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뮤지션 오조 메들리의 라울 페치코가 자신들을 무대에 올려 함께 노래했을 때의 감동을 이야기했을까. 처음 농성할 때 파들파들 떨던 아무개가 어느 새 깡패가 되어 있노라고 비웃으며 배꼽을 잡았을까. 또박또박 반박하는 여자 노동자에게 말려 말 한 마디 못하고 얼굴만 시뻘개지던 회사 간부의 토마토같던 얼굴을 떠올렸을까. 개처럼 끌려나와야 했던 공장, 이번에는 경찰이 들어와 영창으로 낚아채 간다는데 어떻게 저렇게 맑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과장되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사진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본다. 수백억 흑자가 쌓인 기업이 한 해 적자 봤다고 휘두르는 칼날에 하루 아침에 목이 잘리는 아픔도, 공장을 빼돌려 외국으로 튀어버린 뒤의 망연함도, 7년 동안 이어진 엄동설한과 삼복더위 속 농성과 싸움의 지겨움도, 이제는 공장 부지까지 남에게 팔려 버린 막다른 골목에서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흑암 앞에서도 저렇게 관솔불 같은 웃음을, 사람은 지을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퍼뜨릴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하물며 저렇게 풍부한 감성의 사람들이 기타를 수십년 수 년 만졌다면 음악적 감수성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터, 저들은 저 웃음을 남긴 뒤 노래를 불렀을 지도 모른다. <사노라면>이나 <자 이제 다시 우리 시작이다> 같은. 이미 머리 희끗희끗해진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자고 가슴 쫙 펴자고 깔깔대고 ‘절망만큼의 성숙, 그 깊이만큼의 희망’을 노래하며 경찰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이윽고 경찰이 왔을 때 그들은 열심히 저항했다. 노동자로서의 태를 묻고 뼈가 굵은 직장, 그 현장에서 떨려나지 않기 위해 어떤 이는, 저 웃음을 웃고 있는 여성들 가운데 몇 명은 창문에 매달려 버텼다. 지금 이 시간 저 사진 속의 인물들 중 따뜻한 방 안에서 이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두 군데 경찰서에 분산 수용되었다지만 그들은 그래도 한데 모여서 다시 웃고 있을 것이다. 다친 데는 없는지 물으면서 내일은 뭐할 건지 얘기하다가 또 누군가의 우스개에 배를 쥐고 웃으며 서로의 어깨에 힘을 불어넣고 있을 것이다. 사진 속, 오늘의 나의 영웅들에게 경의를.
7년 전 그들은 전 세계 기타의 30퍼센트를 생산하는 유망한 중소기업 콜트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무지 망할 리가 없고 망할 수도 없는, 1996년 이후 10년간 누적 순이익이 170억원에 이르렀던 회사에 별안간 ‘경영 위기’가 닥쳤고 노동자들은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됐다. 그로부터 7년 동안 노동자들은 별의 별 일을 다 겪었다. 공장을 점거했고 대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또 정반대의 판결을 받고 아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엄동설한의 어느 새벽 공장에서 쫓겨나 내동댕이쳐졌다. 공장 부지를 매입한 이가 그들을 주거침입으로 고발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들어간 공장에서 그들은 저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다. 무엇이 그리 흥겨운지 그 입들은 함지박처럼 벌어져 있고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으면서 그 기분을 발산하고 있다. 청춘을 다 바쳐 일한 공장에 다시 들어올 수 있어서일까.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다. 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정말 저 사람들은 기뻐서, 신나서 웃고 있는 것이다. 강산이 바뀌고 코흘리개 초딩이 머리 굵은 중딩이 될 때까지의 그 세월 동안 월급 한 푼 못받고 싸워 온 사람들이 뭐가 좋아서, 무슨 신이 나서 저렇게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짝다리 짚고서 환한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들은 잠시 후 경찰이 들어와 자신들을 끌어내리라는 사실을 전달받은 뒤였다는데.
무슨 이야기들을 했을까. 언젠가 후지 락 페스티발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뮤지션 오조 메들리의 라울 페치코가 자신들을 무대에 올려 함께 노래했을 때의 감동을 이야기했을까. 처음 농성할 때 파들파들 떨던 아무개가 어느 새 깡패가 되어 있노라고 비웃으며 배꼽을 잡았을까. 또박또박 반박하는 여자 노동자에게 말려 말 한 마디 못하고 얼굴만 시뻘개지던 회사 간부의 토마토같던 얼굴을 떠올렸을까. 개처럼 끌려나와야 했던 공장, 이번에는 경찰이 들어와 영창으로 낚아채 간다는데 어떻게 저렇게 맑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과장되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사진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본다. 수백억 흑자가 쌓인 기업이 한 해 적자 봤다고 휘두르는 칼날에 하루 아침에 목이 잘리는 아픔도, 공장을 빼돌려 외국으로 튀어버린 뒤의 망연함도, 7년 동안 이어진 엄동설한과 삼복더위 속 농성과 싸움의 지겨움도, 이제는 공장 부지까지 남에게 팔려 버린 막다른 골목에서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흑암 앞에서도 저렇게 관솔불 같은 웃음을, 사람은 지을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퍼뜨릴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하물며 저렇게 풍부한 감성의 사람들이 기타를 수십년 수 년 만졌다면 음악적 감수성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터, 저들은 저 웃음을 남긴 뒤 노래를 불렀을 지도 모른다. <사노라면>이나 <자 이제 다시 우리 시작이다> 같은. 이미 머리 희끗희끗해진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자고 가슴 쫙 펴자고 깔깔대고 ‘절망만큼의 성숙, 그 깊이만큼의 희망’을 노래하며 경찰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이윽고 경찰이 왔을 때 그들은 열심히 저항했다. 노동자로서의 태를 묻고 뼈가 굵은 직장, 그 현장에서 떨려나지 않기 위해 어떤 이는, 저 웃음을 웃고 있는 여성들 가운데 몇 명은 창문에 매달려 버텼다. 지금 이 시간 저 사진 속의 인물들 중 따뜻한 방 안에서 이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두 군데 경찰서에 분산 수용되었다지만 그들은 그래도 한데 모여서 다시 웃고 있을 것이다. 다친 데는 없는지 물으면서 내일은 뭐할 건지 얘기하다가 또 누군가의 우스개에 배를 쥐고 웃으며 서로의 어깨에 힘을 불어넣고 있을 것이다. 사진 속, 오늘의 나의 영웅들에게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