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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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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12.20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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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68년 12월 20일 존 스타인벡 별세

 

1968년은 세계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떠들썩한 해였습니다. 미국의 인종분규는 극단으로 치달았고 유럽에서는 좌파 학생운동권이 유럽 각국의 수도를 뒤덮었죠. 베트남에서는 전쟁의 포화가 잔인하게 불을 뿜었고 한국에서는 북한이 내려보낸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까러 오기도 했습니다. 그 다사다난한 해를 지켜보던 한 미국의 작가가 끝내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1968년 12월 20일이었고 그 작가의 이름은 존 스타인벡이었습니다. 스타인벡은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뒤를 잇는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소설은 한창 자본주의의 첨단으로 자라나던 미국의 사회 경제적 모순 때문에 뒤틀리고 짓밟히는 사람들을 즐겨 담고 있고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자신 스탠포드 대학이라는 명문 대학을 다녔지만 농장과 도로공사장, 목화밭 등에서 소금땀 흘리며 일한 적이 있고 출신 지역이 캘리포니아로서 농업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들이 그야말로 널려 있던 곳이었던지라 그 경험과 기억들은 그대로 작가로서의 소양과 재능의 토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 그의 대표작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분노의 포도>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오클라호마에 사는 가난한 농부 가족. 은행에 그 땅을 빼앗겨 버린 그들의 갈 길은 Go West! 밖에 없었습니다. 젖과 꿀은 흐르지 않더라도 최소한 먹고 살 일거리가 있는 캘리포니아를 찾아서. 살인죄로 복역했다가 풀려난 아들 톰 조드와 그 부모, 동생, 얼치기 목사 케이시 등 대가족은 갖은 고생을 무릅쓰고 그들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지만 그곳은 착취와 고통이 만연한 지옥 같은 농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또 하나의 지옥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키’라고 경멸스런 호칭의 대상이 되어 이주민 캠프에 수용되는데 여기서 이주민들과 보안관들의 싸움이 일어나고 톰 조드는 여기에 휘말리는데 자칫 잘못할 경우 가석방이 취소될 수 있는 톰의 사정을 잘 아는 목사 케이시가 자신이 주동자라고 주장하며 잡혀갑니다. 쥐꼬리만한 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 그리고 노동자들이 분노라도 할라치면 ‘용역’을 써서 그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버리는 현실은 캘리포니아에서 태평양 건너 일본을 지나면 있는 나라의 사정과 매우 유사합니다만, 포도 농장의 풍요로움 앞에서 이주민들의 가슴에는 분노의 포도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목사 케이시는 어느덧 이주민 조직의 리더로 커 갑니다. 그는 파업을 벌이던 중 자경단원에 의해 목숨을 잃는데 톰 조드 또한 그 자경단원을 죽이고 맙니다. 결국 톰 조드는 그곳을 떠나야 했지요. 이때 톰과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는 실로 사람의 마음을 울립니다. 어머니는 갑갑한 심경이 돼서 묻습니다.

“이제 네 소식을 어떻게 듣지? 놈들이 널 죽여도 내가 모를 텐데. 놈들이 널 해칠 수도 있는데. 네 소식을 어떻게 듣지?”

이때 톰은 ‘불편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합니다.

“뭐, 케이시 말처럼,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저는 어둠 속에서 어디나 있는 존재가 되니까.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어디를 보시든.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케이시의 말이 옳다면,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러 댈 때도 제가 있을 테고,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앞에 두고 웃음을 터뜨릴 때도 제가 있을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스스로 가꾼 음식을 먹고 스스로 지은 집에서 살 때도, 저는 거기 있을 거예요. 아시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지만 또한 그 개개인의 뜻과 의지가 모여 만드는 거대한 염원의 분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 염원 안에 있을 때 사람은 동떨어진 개인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 인간의 권리와 품격을 갖게 되기도 하지요. 그 사실을 저 문장만큼 명확하고 간단하게 묘사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도로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라그라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막가는 사회에서 조드의 선언은 땅에 떨어진 우수리 열매가 아니라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분노의 포도에 매달린 한 알 한 알의 열매가 되겠다는 것이었겠지요.

 

스타인벡의 영감이 <분노의 포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그 마지막 장면입니다. 아이를 사산한 조드의 여동생은 굶어 죽어가던 한 노동자를 발견합니다. 참을 수 없는 절망과 희망의 빛을 잃은 어둠이 만난 거지요. 거기서 조드의 여동생은 옷을 치켜 올리고 젖이 샘솟는 자신의 가슴을 남자의 말라 비틀어진 입술에 물리웁니다.

 

““이걸 빠세요. 그래야 해요.”

그녀는 더 바싹 몸을 들이대고 그 남자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자, 됐어요. 어서요!” 그녀의 손이 그의 머리 아래로 들어가서 그의 상체를 받쳐 주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부드럽게 그의 머리카락 속을 어루만졌다.”

 

에로틱한 상상은 전혀 개입의 여지가 없는 남녀가 아닌, 한 인간과 한 인간의 도움과 도받기의 현장은 이런 인상적인 문장으로 끝나더군요. “그녀의 입술이 한데 모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 소설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킵니다. 이주민들의 지옥으로 묘사된 캘리포니아도 기분이 좋을 수 없었겠지만 ‘오키’들의 고향 오클라호마의 사람들은 소설을 불사르며 분노합니다. 당연히 ‘빨갱이’ 소리는 기본으로 따라붙었고 심지어는 ‘환희의 포도’라고 해서 중부에서 온 이주민 가족이 캘리포니아 농장주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소설까지 ‘분노의 포도’에 대응하여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앨리노어 루스벨트 여사는 “잊을 수 없는 책”으로 ‘분노의 포도’를 극찬했고 스타인벡은 퓰리처상으로 그 명작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아요. 그것이 미국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FBI의 수십년 국장 후버는 스타인벡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았고 어느 날 미국 법무부는 “이 후버의 똘마니들 좀 치워 주시오!” 하는 분노에 찬 스타인벡의 편지를 받기도 합니다. 그것도 미국이겠죠.

 

미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 가장 희망적인 모습으로 승화시킨 능력의 작가 존 스타인벡이 1968년 12월 20일 죽었습니다. 그가 톰의 어머니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얘기해 준 말을 옮겨 보고자 합니다. 요즘같이 멘붕이 잦은 시절에는 유용할 거 같아서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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