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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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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12,19 크리스마스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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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일지 모를 산하의 오역 

ㄴ1843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 캐롤 출간, 그리고 우리의 12월 19일 

찰스 디킨스는 영국이 바야흐로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던 19세기에 유성우처럼 출현했던 작가군들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 중의 하나입니다. 디킨스라고 하면 누구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올리버 트위스트’ 하면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죠. 소설은 좀 가물거리더라도 캐롤 리드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올리버!”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겠죠. 영화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지만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는 산업혁명 과정에서 양산되었지만 그늘 속에 방치되었던 어두운 풍경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수프를 더 달라고 했다가 혼찌검이 나는 구빈원 (고아 수용소같은)이나 퀴퀴하기 이를데없는 런던의 빈민가와 잔인한 범죄의 소굴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불쌍한 소년의 모습은 사실 디킨스 본인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디킨스의 어린 시절 그 아버지가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간 적이 있었고 12살의 디킨스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 구두약 공장에서 얼굴이 누렇게 뜰 때까지 일해야 했으니까요. 그런 생생한 체험들은 그의 소설 곳곳에 굵직하게 틀어박혀 있습니다. 이 디킨스가 남긴 소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 하나가 1843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출간됩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었죠. 

천하의 구두쇠에다가 돈이 아까와 난로도 때우지 않고 일하면서 직원을 들들 볶는 스크루지 영감에게 그와 비슷한 성격이었던 동업자 말레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세 유령이 방문할 것임을 알려 주죠. 그 유령은 스크루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 줍니다. 스크루지는 자신의 과거를 여행하면서 아름답고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과 자신이 구박해 마지않던 조카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엿보면서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쳐지는지를 확인하며 아연실색하기도 하고 그 가운데 한 소년의 예정된 죽음을 듣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 유령은 쾌활하면서 달변이었던 이전의 유령들과는 달리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과묵한 유령이었고 그는 스크루지를 그의 묘지 앞으로 안내합니다. 그 묘지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죠. “한평생 자기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구두쇠 스크루지가 여기에 잠들다.” 스크루지는 이에 울며불며 유령에게 매달리다가 잠을 깹니다. 그리고 사람이 변하죠. 

저도 가물가물해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그런데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는 이렇게 한 구두쇠의 변신 스토리만 있는 건 아니에요. 군데 군데 그가 살던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이 스며들어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두 번째 유령, 즉 현재를 보여 주던 유령이 스크루지와 헤어질 무렵, 그는 품 안에서 두 아이를 풀어 놓습니다. 사내 아이 하나와 여자 아이 하나. 둘은 엄청나게 악을 쓰고 떼를 쓰면서 다시 유령에게 달라붙으려고 발버둥치는데 그 몰골이 워낙 흉악하여 스크루지는 그들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 유령은 이렇게 답합니다. 

““사내아이는 ‘무지’ 계집 아이는 ‘빈곤’이라고 한다네. 이 두 아이를 조심해야 돼. 그런데 위험한 건 사내아이 ‘무지’다. 무지 다음에 오는 것은 멸망이거든 ” 유령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두 존재로 무지와 가난을 설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무지를 더 치명적인 존재로 꼽지요. 딴은 그렇습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할 것이라지만 ‘잘 살아 보세’ 하는 노력과 ‘안되면 되게 하라’는 깡다구로 극복되기도 할 거고, 실제 그런 사례는 많이 발생했지요. 하지만 무지는 다릅니다. 단순한 지식의 부재만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음, 알고 싶어 하지 않음, 알아도 모르는 체 등 당면한 현실과 깨쳐야 할 지혜에 대한 외면의 총합인 무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는 디킨스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는 일일 테니까요. 2007년 12월 19일 ‘부자 되세요’를 내세운 이를 뽑았던 한국인들이 그 재앙을 경험한 이후 2012년 12월 19일 다시 한 번 ‘잘 살아 보세’의 신화를 부르짖는 이에게 자신들을 맡긴 것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구요. 

어쨌든 다시 훑어 보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흥미롭습니다. 디킨스는 이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1주일도 안 남았던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수천 부가 팔려나갔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 소설의 강독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한 공장주는 이 소설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직원들에게 유급 휴가와 칠면조 하나씩을 선사했다는 아름다운 일화도 전해집니다. 이 크리스마스 캐롤의 감동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한 분 계십니다. 오늘 밤잠을 못 이룰 대통령 당선자입니다. 

어차피 잠 못 주무실 거, 기왕이면 그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알려 주는 유령 하나씩이 나타나 그분의 앞길을 밝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명예 회복 노력 이전에 그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였는지, 그 공에도 불구하고 치를 떨며 싫어하는지를 소상하게 살피고, 오늘 멘붕에 빠져 술을 푸며 땅을 치는 49퍼센트의 한국인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철탑 위에 올라가 이 드센 칼바람을 맞으며 농성하는 이들의 외침을 통감하며, 그러지 못할 시 “한평생 박통의 딸로만 살았던 여자”로 묘비명이 서게 될 것임을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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