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92.12.11 한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복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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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2.11 한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복국집
산하의 오역
1992년 12월 11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복국집
복 요리를 매우 즐기는 일본과 가까워서인지 부산에는 유명한 복국집들이 많다. 금수복국, 할매복국 등등 각처에 체인점을 내고 있는 기업형 가게들도 있고 각 동네마다 ‘잘하는 복국집’ 하나씩은 꼭 있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개인적으로도 잘 끓인 맑은 복국은 술 마신 뒤 해장거리로서 전주 콩나물국밥을 능가한다고 보거니와 오늘 아침같이 쓰린 속을 달래며 일어나는 날은 콩나물과 미나리 사이에 튼실한 복어 살이 오롯한, 복국의 개운한 맛의 기억이 참을 수 없도록 절실해지기도 한다.
...
1992년 12월 11일 아침, 초원복집이라는 부산에서 나름 이름난 복국집에 모여든 8명의 신사들도 그 맛을 익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종업원들의 시중드는 손은 유난히 정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복국집 내실에 둘러앉은 그 8명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또르르한 감투들을 쓴 사람들이었다. 좌장은 전 법무부장관인 김기춘이었고,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소장이 그들의 직함이었다. 공무로 모으려고 해도 밑의 직원들이 스케줄 짜느라 골머리 꽤나 썩을만큼 바쁘실 분들이었다.
그 쟁쟁한 직함들이 단지 해장을 하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은 며칠 뒤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있었다. 기관장들이 모여서 선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이겠지만, 그들의 대화는 좀 사정이 달랐다. 그 주도자는 유명한 공안검사 출신으로서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해서 “미스터 법질서”라는 별명까지 지녔던 김기춘이었다.
미스터 법질서는 이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당신들이야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해도 괜찮지 뭐…,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것이고,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대의민주주의제를 몸통으로 하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나라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자가 지방의 행정 책임자와 경찰 총수와 검찰 수장에게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라고 떠들어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이번에 "(YS가 떨어지면) 다들 영도 다리에서 떨어져 죽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에 대한 가장 훌륭한 맞장구는 부산경찰청장 박일룡의 입에서 나왔다.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 관권 개입을 ‘양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독려’하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정갈한 복집의 은밀한 내실에서 그들은 흉금을 터놓고 추악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듯, 그들의 아침말은 당시 대통령에 출마하여 여당을 위협하던 정주영이 이끄는 통일국민당 당원들이 설치한 도청기가 듣고 있었다. 그 적나라한 대화는 녹취록으로 전이되어 세상에 폭탄처럼 투하됐다. 선거 자체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또한 ‘초원복집’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복집으로 부상하게 된다. 복어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초원복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으니까.
한 나라의 전직 법무부 장관이 지방의 기관장들에게 선거 개입을 사주하고 기관장들은 그에 동조하는 내용의 녹취록의 파도는 너울처럼 대한민국을 덮쳤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YS는 이걸로 끝난 것 같지?”라고 내게 동의를 구해 왔던 것도 그 결과이리라. 그게 공화국 시민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산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이런 어불성설의 일이 벌어진 데 대한 반성보다는 “그래 우리는 그런 놈들이다 와? 떫나?”와 같은 터무니없는 오기가 더 컸고, “안방에서 뭔 말을 못하노. 도청하는 놈이 나쁜 놈이지.” 라는 해괴한 논리가 우세했으며 “노태우 시키가 디제이하고 짜고 와이에스 쥑일라 한 거 아이가.”하는 기상천외한 상상력까지도 발휘되고 있었음을.
초원복국집 내실에서 벌어진 고위 공무원들의 관권선거 모의는 엄청난 범죄적 사실이며 공화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지만 주류언론은 주요 프레임을 ‘도청’으로 몰아갔고 그 내용상 비교가 안되는 관권선거의 음모자들은 어이없게도 도청의 ‘피해자인 양 책임 추궁을 모면한다. 이것은 주류언론 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건이 불거진 부산 시민을 비롯한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게 가해자에 동조했다. “강간한 건 잘못됐지만 그 계집애는 왜 따라갔냐고!”를 부르짖는 성폭력 가해자의 부모와 동급의 논리에 자신의 표를 실었다. 초원복국집에 둘러앉았던 이들은 그 뒤로도 승승장구했고 그 대화들은 인생의 오점은 커녕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가장 역사적인 아이러니는 2004년 탄핵 때 있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을 이유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이 됐던 것이 바로 초원복국집의 좌장 김기춘이었던 것이다. “임기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과 연계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겁나게 한 것으로 법 위반 정도가 중하다.”고 준엄하게 얘기하던 그의 얼굴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은 지금도 선연하다.
“다른 사람이 되면 다 영도다리에 떨어져 죽자.”고 큰소리치고 “당신들이 노골적으로 해야지. 지역감정 좀 일어나야 돼.”라고 막말하던 그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때 그 혀에는 초원복집의 아침 복국 맛이 뱀처럼 휘감겨 그 양심을 건드리지는 않았을까. 하긴 그렇게 심약한 분이라면 애초에 저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테지만.
1992년 12월 11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복국집
복 요리를 매우 즐기는 일본과 가까워서인지 부산에는 유명한 복국집들이 많다. 금수복국, 할매복국 등등 각처에 체인점을 내고 있는 기업형 가게들도 있고 각 동네마다 ‘잘하는 복국집’ 하나씩은 꼭 있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개인적으로도 잘 끓인 맑은 복국은 술 마신 뒤 해장거리로서 전주 콩나물국밥을 능가한다고 보거니와 오늘 아침같이 쓰린 속을 달래며 일어나는 날은 콩나물과 미나리 사이에 튼실한 복어 살이 오롯한, 복국의 개운한 맛의 기억이 참을 수 없도록 절실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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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11일 아침, 초원복집이라는 부산에서 나름 이름난 복국집에 모여든 8명의 신사들도 그 맛을 익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종업원들의 시중드는 손은 유난히 정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복국집 내실에 둘러앉은 그 8명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또르르한 감투들을 쓴 사람들이었다. 좌장은 전 법무부장관인 김기춘이었고,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소장이 그들의 직함이었다. 공무로 모으려고 해도 밑의 직원들이 스케줄 짜느라 골머리 꽤나 썩을만큼 바쁘실 분들이었다.
그 쟁쟁한 직함들이 단지 해장을 하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은 며칠 뒤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있었다. 기관장들이 모여서 선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이겠지만, 그들의 대화는 좀 사정이 달랐다. 그 주도자는 유명한 공안검사 출신으로서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해서 “미스터 법질서”라는 별명까지 지녔던 김기춘이었다.
미스터 법질서는 이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당신들이야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해도 괜찮지 뭐…,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것이고,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대의민주주의제를 몸통으로 하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나라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자가 지방의 행정 책임자와 경찰 총수와 검찰 수장에게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라고 떠들어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이번에 "(YS가 떨어지면) 다들 영도 다리에서 떨어져 죽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에 대한 가장 훌륭한 맞장구는 부산경찰청장 박일룡의 입에서 나왔다.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 관권 개입을 ‘양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독려’하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정갈한 복집의 은밀한 내실에서 그들은 흉금을 터놓고 추악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듯, 그들의 아침말은 당시 대통령에 출마하여 여당을 위협하던 정주영이 이끄는 통일국민당 당원들이 설치한 도청기가 듣고 있었다. 그 적나라한 대화는 녹취록으로 전이되어 세상에 폭탄처럼 투하됐다. 선거 자체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또한 ‘초원복집’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복집으로 부상하게 된다. 복어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초원복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으니까.
한 나라의 전직 법무부 장관이 지방의 기관장들에게 선거 개입을 사주하고 기관장들은 그에 동조하는 내용의 녹취록의 파도는 너울처럼 대한민국을 덮쳤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YS는 이걸로 끝난 것 같지?”라고 내게 동의를 구해 왔던 것도 그 결과이리라. 그게 공화국 시민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산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이런 어불성설의 일이 벌어진 데 대한 반성보다는 “그래 우리는 그런 놈들이다 와? 떫나?”와 같은 터무니없는 오기가 더 컸고, “안방에서 뭔 말을 못하노. 도청하는 놈이 나쁜 놈이지.” 라는 해괴한 논리가 우세했으며 “노태우 시키가 디제이하고 짜고 와이에스 쥑일라 한 거 아이가.”하는 기상천외한 상상력까지도 발휘되고 있었음을.
초원복국집 내실에서 벌어진 고위 공무원들의 관권선거 모의는 엄청난 범죄적 사실이며 공화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지만 주류언론은 주요 프레임을 ‘도청’으로 몰아갔고 그 내용상 비교가 안되는 관권선거의 음모자들은 어이없게도 도청의 ‘피해자인 양 책임 추궁을 모면한다. 이것은 주류언론 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건이 불거진 부산 시민을 비롯한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게 가해자에 동조했다. “강간한 건 잘못됐지만 그 계집애는 왜 따라갔냐고!”를 부르짖는 성폭력 가해자의 부모와 동급의 논리에 자신의 표를 실었다. 초원복국집에 둘러앉았던 이들은 그 뒤로도 승승장구했고 그 대화들은 인생의 오점은 커녕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가장 역사적인 아이러니는 2004년 탄핵 때 있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을 이유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이 됐던 것이 바로 초원복국집의 좌장 김기춘이었던 것이다. “임기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과 연계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겁나게 한 것으로 법 위반 정도가 중하다.”고 준엄하게 얘기하던 그의 얼굴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은 지금도 선연하다.
“다른 사람이 되면 다 영도다리에 떨어져 죽자.”고 큰소리치고 “당신들이 노골적으로 해야지. 지역감정 좀 일어나야 돼.”라고 막말하던 그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때 그 혀에는 초원복집의 아침 복국 맛이 뱀처럼 휘감겨 그 양심을 건드리지는 않았을까. 하긴 그렇게 심약한 분이라면 애초에 저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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