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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9 하디타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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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 오역 

2005년 11월 19일 하디타 학살 

바그다드의 북서쪽으로 차를 달리면 서울에서 문경 정도 되는 거리의 도시 하다티. 이라크라는 나라가 미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미군이 순찰을 돌고 점령군 행세를 한 것은 하다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미군이 순찰 도중 사단이 발생했다. 도로에 매설된 폭탄이 터져 미군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한 것이다. 미군 해병대 당국자는 이렇게 발표했다. “현지 주민 15
명과 미 해병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날 폭발은 해병 순찰조와 이라크군을 노린 것이다. 또 폭발 직후 무장괴한들이 해병대를 겨냥해 총기를 난사했으며, 총격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적어도 8명의 저항세력이 사살됐다.”

그런데 뒤이어 밝혀진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동료 1명을 잃은 미군들은 눈이 돌아 버렸다. 그래서 지나던 택시를 세워 그 승객들에게 총격을 퍼붓고 인근의 민가를 습격해 어린아이고 여자고 그 머리와 등에 대고 탄창을 비워 버렸다. 당연히 수류탄도 곁들여졌고...... 일대 화력이 퍼부어졌다. 결과는 머리와 등에 총을 맞은, 즉 교전 중 총을 맞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처형식으로 총을 맞은 시신들 스물 네 구가 병원에 실려 온 것이었다. 

이에 대한 보도가 터져 나오자 당연히 조사단이 파견됐고 당연한 결론이 나왔다. 그 가운데 몇 명은 ‘컬레트럴 데미지’ 즉 부수적 피해로서 무고한 민간인이지만 나머지 몇 명은 무장 세력으로서 민간인 행세를 하면서 미군을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부수적 피해(?)를 입은 몇 명에게는 우리 돈 2백 - 3백만원 정도의 보상금이 주어졌다. 그나마 24명 중 15명이었을 뿐, 나머지는 ‘무장 세력’으로서 당연한 작전 중 전과(?)로 치부돼 버렸다. 

세월이 흘렀고 고발도 있었고 폭로도 만발했다. 미군도 관련 병사들을 조사를 벌였다. 장교 4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이 기소됐지만 중대장을 포함해 6명은 기소유예로, 1명은 무죄로 석방됐다. 재판까지 간 사람은 사건 당시 현장을 지휘했던 분대장 1명이었다. 그에게 2012년 1월 내려진 형벌은 24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의 혐의자치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등병으로 강등, 최대 90일 구금, 3개월 감봉.’ 그나마 이 하사관은 ‘직무태만’ 혐의를 인정한 댓가 - 이걸 폴리바기닝이라고 하던가- 로 구금조차 면했다. 

이쯤 되면 미군의 만행과 오만과 잔학함에 치를 떨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렇다. 이런 개새끼들이 있는가. 있지도 않은 대량 살상 무기를 끌어대어 이라크의 석유를 노려 전쟁을 일으킨 조지고 부시고 2세의 잔학함은 백번 나무라도 모자란다. 양키들의 잔인함과 그 피에 굶주린 만행을 규탄하는 것에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 얼마나 미친 놈들의 만행인가. 그걸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부정할 수도 없다, 미국은 이 원죄를 뒤집어써야 한다. 그 죄는 미국인들의 후손들이 두고 두고 갚을 것이다.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저주했듯이 그 핏값은 그 후손들이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도발적이 되어 보자. 

희생자들이 양민이었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비정규전이 펼쳐지고 있는 이라크였음을 상정해 보자. 여덟살 꼬마가 수류탄을 까서 던지고 아주머니가 허리에 폭탄을 두르고 미군들 여럿을 날리는 상황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미군들도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미군의 만행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미군들도 인간이고 공포에 질릴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할 따름이다. 그런 비극이 수시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침략군이 감당해야 할 당연한 몫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전쟁의 희생자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자신의 아들만한 아이가 언제 자신에게 수류탄을 까 던질지 모르고 호의를 베풀었던 친구가 폭탄을 두른 채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는 인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이니까. 

전쟁은 그런 거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네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공포가 전쟁의 기둥이며, 내가 저들을 죽이는 것이 정의롭다고 믿는 것이 전쟁의 서까래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에서 가장 파괴적인 전쟁을 치른 우리는 카인의 후예들일 수 밖에 없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우리는 서로의 적을 찾아냈고 적과 비슷한 민간인들 찾아냈고 그들을 토끼몰이하듯 몰아서 싹쓸이해 버렸었으니까. 즉 미 제국주의자들의 나쁜 천성 때문에 하디타의 학살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술먹으면 월남 얘기하는 앞집 아저씨가, 상이용사로서 훈장도 자랑스러운 친구 아버지가 꼬마 베트콩의 배를 가르고 인민군에게 국군 소식을 전하려 들었던 중학생의 머리를 박살낸 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민군도 마찬가지고. 

전쟁은 똑같이 더러운 것이다. 외세에 대한 저항은 숭고한 것이고 내부 구성원끼리의 전쟁만 참혹한 것이 아니다. 그 더러운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모두의 의무고 미덕이다. 그런데 나는 이 하디타 학살을 얘기하면서 천만뜻밖의 논리가 세워지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이라크에 핵이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라크 인민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 중의 하나는 후세인같은 전근대적 독재자 (이게 서방 시각이라고 말하지 말아라. 후세인은 독가스를 쿠르드인들에게 뿌려버린 놈이다.)를 스스로의 힘으로 내몰지 못한 것도 있다고 여긴다. 후세인 따위에게 핵이 있고, 그래서 그 힘으로 미국의 공격을 모면했다 하더라도 하디타 학살같은 일이 없었으리라고 믿는 건 비극적인 순진무구함의 결과일 뿐일 것이다. 호치민의 베트남이 핵 없이 미국을 이긴 이유를 까마득히 도외시한 결과일 뿐일 것이다. 


나는 미군의 하디타 학살에 분노한다. 동시에 어린 아이들에게 폭탄을 쥐어주거나 총을 쏘게 만드는 ‘민족 해방 전쟁’에도 반대한다. 그리고 핵이 있었으면 그런 일도 없었으리라는 희한한 논리에는 단호하게 저항한다. 그는 미국놈과 다를바가 없다. 

하디타의 학살이 오늘 가자에서 재연되고 있다. 슬프고 분노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로켓포를 쏘는 이들의 목표가 이스라엘의 소멸이라면 나는 그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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