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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에게 보내는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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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에게 보내는 충고

전제부터 시작하자.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사과해야 할 의무가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딸은 딸이다. 이것은 연좌율이 횡행하던 시대를 깨고 나온 근대적 법 의식의 소중한 소산이며 흔들리지 말아야 할 가치다. 아버지가 친일 헌병이든 중추원 의장이든 그 때문에 아들이나 딸이 공직에서 물러나야 할 의무는 없다. 동시에 아버지가 연쇄살인마이든 어린이 성추행범이든 그 아들이 아버지...
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고 죄값을 치러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자연인 박근혜가 아니라 민주 공화국의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한 이상 박근혜 후보에게는 공화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토로하고 검증받아야 할 책임이 생긴다. 즉 18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했던 아버지의 시대의 ‘공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과(功過)의 공과 과란 원래 물과 기름 같은 것이다. 즉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따로이 평가하고 그 속에서 역사적 교훈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지 그를 뭉뚱그려 과보다 공이 크다느니 공보다 과가 크다느니 입씨름하는 것은 물과 기름을 억지로 뒤섞어 물에 가깝니 기름에 가깝니 하여 물과 기름 양쪽을 다 못쓰게 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따질 생각은 없다. 단지 대한민국의 현재 여당의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후보가 전임 대통령의 행적을 평가하는 자세에 대해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전임 대통령 박정희가 저지른 가운데 가장 큰 ‘과’(過) 중의 하나는 바로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 살인일 것이다. 체포된 후 변호인들과 가족의 접견조차 차단당한 채 무지막지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사형 선고를 받은 다음날 새벽 바로 목이 매달렸다가 가족의 입회도 없이 불구덩이에 들어가야 했던 사람들의 원혼은 지금도 광화문 이순신 동상 위를 맴돌고 있을 터이다.

그 가족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불구대천의 원수다.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뜻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국가는 이를 위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할 권리를 진다.”(유신헌법 8조)고 못 박은 헌법이 엄존하는 공화국에서 그렇게 야만적으로 사람 목숨들을 앗아가 버린 행위는 그 가족들로서는 숨을 멈출 때까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정신 나간 신문사 논설위원이 저승에서 박정희와 인혁당 희생자들이 막걸리를 먹으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저승에서는 말이 될지 몰라도 이승에서는 그것은 막걸리지 말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이들을 끌어안고자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거나 대법원 판결이 두 개가 있다거나 생뚱맞은 반응을 보였으나 그로 인해 된서리를 맞은 탓인지 새로이 역사 공부를 한 때문인지 5.16과 ‘민혁당’ 사건이 ‘헌법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인혁당 관련자 가족들을 만나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사과라는 것은 원래 하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법이다. 이미 상처난 사람들의 가족을 후벼 팔 대로 후벼 파고 소금도 찰지게 뿌린 뒤에야 나의 진심은 그것이 아니었다거나 전임대통령이자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 어찌 그 사과가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으랴.

나는 여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한다.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던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고 또 지금도 치를 떨고 살아가는 그 가족들의 마음을 풀어줄 열쇠를 드리고자 한다. 이것만 실행에 옮긴다면 박근혜 후보는 자신의 공화국 대통령 후보로서의 개인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 인식면에서도 하자 없음을 공인받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박정희 대통령은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불구대천’의 원수이지만 박근혜 대표 또한 ‘불구대천’의 원수를 지니고 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쏘았던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그 부하들이다. 부모를 죽인 원수를 어찌 용서할 수 있으랴......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그들을 용서하고 끌어 안아야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었는데 우리도 좀 죽인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경호실장과 “안되면 내가 발포명령을 내리겠다.”는 절대권력자 앞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당긴 방아쇠는 당시 계엄령 하에서도 시위를 벌이던 부산과 마산의 시민들의 목숨 뿐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명예룰 지켰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부마항쟁 때 박정희가 발포령을 내렸다면 그는 카다피 이상으로 비참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딸 가진 아버지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즉 박정희 대통령이 찍은 여자들을 그 앞에 대령하는 것을 일삼아 했던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 청렴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군 동기들과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박흥주 대령이 대통령 살해에 가담했던 것은 그들로서도 참을 수 없는 유신의 무거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한 번 이해한다. 그들은 박근혜 후보에게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다. 부모를 죽인 원수와 어찌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있으랴. 불구대천. 그들을 용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요구한다. 그들을 용서하라. 그리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라. 죽는 자리에까지 가수와 여대생을 좌우에 불러앉혔던 그 엽색행각을 권력을 통해 자행하고 사람 목숨 수십만을 제 권력의 깔개 이상으로 보지 않는 듯 행동하던 전임 대통령을 그 시점에서만큼은 비판하라. 별 조직적 연계도 없이, 권력에 대한 구체적인 의지도 없이 일단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고 봤던 그 성급한 사내들을 용서하고 끌어안으라. 그 정도의 진정성은 보여야 인혁당 가족들 앞에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1979년 10월 26일의 박정희는 이성을 상실한 독재자였으며, 그 독재를 끝장낸 것이 차라리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불구대천의 원수이지만 그들의 행동이 불의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진정성이 무엇이 있겠는가.

박근혜 후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인혁당 관련자 가족들에게 공없는 사과 메시지만 날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구대천의 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줄 아는 깜냥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통합이란 땡중의 도로아미타불 이상일 수 없고 제 새끼에게 교회 세습한 목사의 아멘 소리와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묘소에 가서 그 묘비를 쓰다듬으며 “아버지도 당신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위해 불가피한 사람이었습니다.” 라는 정도로만 말하며 울먹인다면, 수십년 간 ‘국가원수 시해’의 역천(逆天)의 혐의 하에서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외면해 온 그들을 끌어안는다면 나는 그제야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과를 믿을 수 있을 것이고 그제야 박근혜 후보의 ‘정책’을 눈여겨 볼 것이다.

그래도 부모를 죽인 원수인데 그러겠느냐고? 그렇다면 무슨 염치로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릴 것인가.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를 파리 잡듯 죽여버린 자의 딸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고 대법원 판결은 두 개 아닌가.”라고 감히 말하던 그 딸이 느닷없이 내미는 화해의 손길에 무슨 진정성이 담길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후보의 성찰을 요구한다. 당신은 아버지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왔지만 아버지 말대로 그 무덤에 침을 뱉지 못하면 그 이상을 나아갈 수 없다. 그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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