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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9.16 끝나지 않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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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73년 9월 16일 끝나지 않은 노래

1973년 9월 11일은 또 하나의 끔찍한 9.11이었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에 대항하여 칠레의 군부가 쿠데타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여러 번의 '자본가 파업'을 통해 아옌데의 뒷덜미를 잡아챘던 보수 세력과 혹여 제2의 카스트로가 남미의 대국 ABC.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가운데 하나인 칠레를 장악할까봐 노심...
초사하던 미국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항복을 거부하는 아옌데의 대통령궁을 향하여 쿠데타군은 공군의 폭격을 퍼붓는다. 한때 그들이 마지못해나마 충성을 맹세했던 대통령에게 그들은 한치의 예우도 인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옌데는 자신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경호원들을 설득해 내...보내지만 그 자신은 기관단총을 들고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냥을 당하듯 죽음을 당하는 판이었으니 나라 분위기가 어쨌을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좌파 사냥 빨갱이 사냥의 허리케인이 초특급 규모로 그 길쭉한 칠레의 영토를 남북으로 휩쓸었다. 그 와중에 지방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던 한 예술가다 잡혀 온다. 쿠데타 소식을 듣고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분노한 그의 이름은 빅토르 하라.

1932년 소작민의 아들로 태어난 하라는 한때 산티아고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그의 무대는 좁고 어두컴컴한 극장이 아니었다. 인디언의 혈통을 이어받은 어머니로부터 전통 민요의 세계를 발견하여 칠레를 관통하는 안데스 산맥 곳곳을 쏘다니며 민요를 채집했던 그는 특권층과 지주 집단의 횡포에 허덕이던 칠레 민중을 다독이고, 위로하고 때로는 격동시키는 노래와 연극을 만들어낸 문화 전사였다. 그에게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는 슬로건의 누에보 깐시온 (새 노래) 운동의 창시자였던 비올레따 빠라와의 만남은 날개를 단 격이었다. 그의 기타는 자동소총보다 더 고성능의 무기였고 그 육성은 어떤 포성보다도 더 크게 세상을 울렸다.

그의 노래 <선언>의 가사는 이렇다.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좋아하거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지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는 성수(聖水)와 같아 내 노래는 고귀해지네
비올레따의 말처럼 나는 목표를 찾았다.
노동하는 기타, 봄의 내음나는 기타
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도 아니고 그것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지
내 노래는 사다리. 저 별에 닿는 사다리.
노래하며 죽기로 한 남자.
진실한 노래를 부르며 죽는 남자의 핏줄 속에 고동치는 노래는 그만한 의미가 있다.

나의 노래는 덧없는 게 아니다. 나의 노래는 이 좁다란 나라를 위한 것
땅 속 깊이까지 이 나라를 위한 것
만물이 여기 잠들고 모든 것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그동안 용감했던 그 노래는 영원히 새롭게 태어나리라.

의미를 지닌 노래는 핏줄 속으로 흐른다는 그의 노래처럼, 그의 노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칠레 민중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흘렀다. 1970년 선거에서 그는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인민연합의 승리를 위해 기타를 든 문화 전사로 나섰고 특권층의 부패와 학정, 그리고 칠레 사회를 짓누르던 사회적 모순을 폭로하고 그들을 통렬하게 비웃는 노래들을 만들었고, 인민들의 단결과 승리를 호소하는 노래를 지어 온 칠레에 물결치게 했다. 그 대표적인 곡이 유명한 벤세레모스다.

조국의 깊은 시련으로부터 민중의 외침이 일어나네.
이미 새로운 여명이 밝아와 모든 칠레가 노래 부르기 시작하네
불멸하는 모범을 보여준 한 용맹한 군인을 기억하며
우리는 죽음에 맞서 결코 조국을 저버리지 않으리.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많은 사슬은 끊어지고,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비극을 이겨내리라.
농부들, 군인들, 광부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여성과 학생, 노동자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이룩할 것이다. 영광의 땅에 씨를 뿌리자. 사회주의의 미래가 열린다.
모두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자. 이룩하자, 이룩하자, 이룩하자.

마침내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옌데가 당선되지만 앞서 말한 대로 그는 칠레의 우익들에게 부자들에게 지주들에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에게 찍어내야 할 곁가지였다. 그들은 경제를 마비시켰고 혼란을 조장하면서 아옌데 정권을 위협했으며 미국은 칠레의 밥줄이라 할 국제 구리 가격에 장난을 치면서 칠레의 목을 죄었다. 아옌데는 국민들의 재신임 투표를 통해 이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지만 피노체트는 바로 그 투표일로 예정되어 있던 9월 11일을 D데이로 삼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옌데가 죽은 뒤 각지에서 끌려온 반쿠데타 인사들, 좌익들은 한 체육관에 짐승들처럼 수용됐다. “이 빨갱이 새끼들 너희들은 다 죽은 목숨이다.”는 폭언과 함께 무수한 발길질과 구타가 7년 뒤 지구 반대편의 나라 서남쪽의 한 도시에서처럼 난무했으리라. 죽음의 공포가 체육관을 뿌연 안개처럼 뒤덮을 즈음,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벤세레모스>였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빅토르 하라였다.

군인들은 당연히 짐승같은 폭력을 휘둘렀지만 짙은 신음 사이에서도 노래는 끊어지지 않았다. 가느다랗지만 창날처럼 곧게 펴진 그의 노래는 수만 갈래로 갈라져 체육관에 처박힌 채 눈만 굴리고 있던 겁많은 영장류들의 존엄을 회복시켰다. 벤세레모스 벤세레모스....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독창은 합창으로 번졌고 그 합창은 어떤 무력보다도 위대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송가로서 체육관을 메아리치게 된다. 그리고 하라는 그에 걸맞는 복수를 당한다.
 
무자비한 구타는 기본으로 하고 끝내 용서가 없는 총알에 몸이 뚫린 것은 물론, 그의 시신을 본 아내는 기가 막힌 사실을 하나 발견한다. 그의 손이 모두 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코드를 짚건 그의 손, 여섯 개의 줄을 힘차게 튕기던 그의 손이 얼마나 미웠으면,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군인들은 죽이기 전에 그 손을 못 쓰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건 군인들에게는 일종의 ‘무장해제’의 절차였는지도 모른다. 기타는 그의 무기고 노래는 그의 총알이었기에. 부활하더라도 그 무기를 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하라는 그렇게 1973년 9월 16일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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