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893년 8월 29일 지퍼의 발명
돌이켜보면 내 또래의 필수 관람 영화가 몇 개 있었다. 안소영의 <애마부인>이나 선우일란의 <산딸기>도 있었지만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개인교수>는 연상의 개인교수가 우리 또래의 남학생에게 ‘가르쳐준다’는 설정으로서 그야말로 대인기였다. 부산의 노동극장 (이 극장의 소유주가 노총쯤 되었는지 극장 앞에는 노동3권 보장하라가 붙어 있던) 에서 <개인교수>를 2본동시 상...
1893년 8월 29일 지퍼의 발명
돌이켜보면 내 또래의 필수 관람 영화가 몇 개 있었다. 안소영의 <애마부인>이나 선우일란의 <산딸기>도 있었지만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개인교수>는 연상의 개인교수가 우리 또래의 남학생에게 ‘가르쳐준다’는 설정으로서 그야말로 대인기였다. 부산의 노동극장 (이 극장의 소유주가 노총쯤 되었는지 극장 앞에는 노동3권 보장하라가 붙어 있던) 에서 <개인교수>를 2본동시 상...
영할 때 어찌 어찌 들어갔지만 운집한 스포츠 머리들 틈에서 키가 좀 작았던 나는 실비아 크리스텔의 살색을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나오는 재앙을 당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또 한 번 공전의 히트를 친 ‘청소년 필수 영화’가 <어우동>이었다. 요즘은 할머니급으로 등장하는 이보희와 만년 국민 배우 안성기가 주연한 ‘조선 왕조 최고의 섹스 스캔들’이라는 카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왔던 친구의 말이 걸작이었다.
“아 씨바. 무슨 옷이 그래 많고 벗기기는 와 그리 힘드노.”
영화 속 베드신 아니아니 조선왕조 때 이야기니 ‘요신’ 또는 ‘이불신’에서 어우동의 옷을 하나 하나 벗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 생각에는 옷도 지겹게 껴 입은데다가 그걸 하나 하나 옷고름 풀다가는 미쳐 버릴 거 같더라는 것이다. 녀석은 <개인교수>도 넉넉하게 보고 온지라 그와 비교하여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개인교수 때는 자꾸 (지퍼) 한 번 찍 내리면 되더구만.” 친구의 말은 사실 핵심을 찌른 말이었다. 이는 2008년 뉴욕 타임즈가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은 20세기의 베스트 패션”으로 ‘지퍼’를 들면서 한 말을 들으면 한결 명확해진다.
“지퍼는 옷을 입는 문화 뿐만 아니라 옷을 벗는 문화에도 혁신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그로 인해 남녀의 성관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나란히 배열된 단추로 여민 드레스는 낭만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남자가 그 단추를 벗기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솜씨 그리고 매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반쯤 열린 지퍼는 빨리 오라고 말없이 재촉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강준만, 월간 인물과 사상 2010.2)
19세기 여성용 정장 드레스에는 30개의 단추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영화 <어우동>의 조선 남성들이 알렉산더 같으면 확 칼로 잘라버릴 고르디아스의 매듭같은 옷고름을 푸느라 곤욕을 치렀다면 서양의 남성들은 빼곡히도 달아놓은 단추를 풀며 애를 태워야 했다. 장담하는데 손가락 둔한 놈은 그거 풀다가 풀다가 화딱지 난 여자가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퍼는 그 모든 고민을 일순간에 해결했으니 그 얼마나 위대하고 고마운가.
1893년 8월 29일 이 지퍼 형태의 발명품이 세상에 나왔다. (물론 비슷한 류의 아이디어는 이전에도 있었다고는 한다.) 하지만 그 출발은 로맨틱함과 섹시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고 그 발명자도 애인이나 아내의 단추를 풀다가 나빠지는 성질 때문에 지퍼를 연구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발명자는 휘트콤 저드슨. 그는 여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몸이 매우 뚱뚱한 편이었다. 군화를 즐겨 신던 그는 그 대단하게 튀어나온 배 때문에 군화 끈을 낑낑거리고 묶고 풀어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이거 끈 풀고 묶는 거 말고 다른 방식으로 신을 신고 벗을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던 그는 “신발용 죔쇠 잠금 또는 해제 장치‘ 등의 발명으로 특허를 냈고 지퍼의 원형이 달린 신발까지도 고안해 내지만 생김새가 너무 조악하고 실용적으로도 이가 맞물리게 여며 주는 죔쇠가 쉽게 풀려 버리는 등 효용도가 적어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스웨덴 출신의 미국 기술자 기드온 선드백이 이 문제를 해결하여 그때 당시 이름으로는 ‘플라코 패스너’라고 했던 지퍼를 지갑, 벨트 등에 응용했고 미군의 비행복에도 달았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쉽게 돈을 꺼냈다 넣었다 할 수 있고 결코 돈이 떨어질 리가 없는 지갑”은 꽤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더하여 비행복같은 특수복 말고 일반 옷에도 지퍼를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머리를 굴린 것은 역시 재단사 쿤 모스라는 사람이었다. 또 세계적인 고무제품 회사 굿리치에서는 자사 생산품인 장화와 덧신에 지퍼를 달았고 지퍼가 오르내릴 때 나는 소리가 ‘지퍼 업’ (우리말로 하면 찌익~)같이 들린다는 이유로 ‘지퍼 부츠’라는 이름의 상표 출원을 한다. 이때부터 ‘지퍼’는 본격적으로 인류 앞에 등장한 것이다. ( 장화의 이름에서 힘이 연상되어야 한다고 해서 Zip(영어로 원기)er 라고 부르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지퍼는 꼭 남녀관계에서만 필요한 혁명은 아니었다. 지퍼가 없었다면 당장 일상복을 걸치고 벗는 시간이 지금의 두 배였을 것이고 툭 하면 떨어지는 단추를 위해 실과 바늘을 상시 구비하고 다녀야 했을 테고, 여행 가방 같은 거 한 번 잠그려면 무지하게 고생을 해야 했을 게다. 야영 가서 텐트 문은 찍찍이로나 여닫아야 했을 것이고 침낭 속에 들어가려면 끈 묶느라 무지하게 고생했으리라. 어떤 의사는 수술이 잦은 환자의 배에 지퍼를 달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우주비행사의 우주복에는 열 개가 넘는 지퍼가 달려 있다니 그 용도와 범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1893년 8월 29일 우리가 무심코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올렸다 내렸다 하는 지퍼가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수십 년간 여러 사람의 ‘집단 지성’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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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베드신 아니아니 조선왕조 때 이야기니 ‘요신’ 또는 ‘이불신’에서 어우동의 옷을 하나 하나 벗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 생각에는 옷도 지겹게 껴 입은데다가 그걸 하나 하나 옷고름 풀다가는 미쳐 버릴 거 같더라는 것이다. 녀석은 <개인교수>도 넉넉하게 보고 온지라 그와 비교하여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개인교수 때는 자꾸 (지퍼) 한 번 찍 내리면 되더구만.” 친구의 말은 사실 핵심을 찌른 말이었다. 이는 2008년 뉴욕 타임즈가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은 20세기의 베스트 패션”으로 ‘지퍼’를 들면서 한 말을 들으면 한결 명확해진다.
“지퍼는 옷을 입는 문화 뿐만 아니라 옷을 벗는 문화에도 혁신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그로 인해 남녀의 성관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나란히 배열된 단추로 여민 드레스는 낭만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남자가 그 단추를 벗기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솜씨 그리고 매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반쯤 열린 지퍼는 빨리 오라고 말없이 재촉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강준만, 월간 인물과 사상 2010.2)
19세기 여성용 정장 드레스에는 30개의 단추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영화 <어우동>의 조선 남성들이 알렉산더 같으면 확 칼로 잘라버릴 고르디아스의 매듭같은 옷고름을 푸느라 곤욕을 치렀다면 서양의 남성들은 빼곡히도 달아놓은 단추를 풀며 애를 태워야 했다. 장담하는데 손가락 둔한 놈은 그거 풀다가 풀다가 화딱지 난 여자가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퍼는 그 모든 고민을 일순간에 해결했으니 그 얼마나 위대하고 고마운가.
1893년 8월 29일 이 지퍼 형태의 발명품이 세상에 나왔다. (물론 비슷한 류의 아이디어는 이전에도 있었다고는 한다.) 하지만 그 출발은 로맨틱함과 섹시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고 그 발명자도 애인이나 아내의 단추를 풀다가 나빠지는 성질 때문에 지퍼를 연구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발명자는 휘트콤 저드슨. 그는 여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몸이 매우 뚱뚱한 편이었다. 군화를 즐겨 신던 그는 그 대단하게 튀어나온 배 때문에 군화 끈을 낑낑거리고 묶고 풀어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이거 끈 풀고 묶는 거 말고 다른 방식으로 신을 신고 벗을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던 그는 “신발용 죔쇠 잠금 또는 해제 장치‘ 등의 발명으로 특허를 냈고 지퍼의 원형이 달린 신발까지도 고안해 내지만 생김새가 너무 조악하고 실용적으로도 이가 맞물리게 여며 주는 죔쇠가 쉽게 풀려 버리는 등 효용도가 적어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스웨덴 출신의 미국 기술자 기드온 선드백이 이 문제를 해결하여 그때 당시 이름으로는 ‘플라코 패스너’라고 했던 지퍼를 지갑, 벨트 등에 응용했고 미군의 비행복에도 달았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쉽게 돈을 꺼냈다 넣었다 할 수 있고 결코 돈이 떨어질 리가 없는 지갑”은 꽤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더하여 비행복같은 특수복 말고 일반 옷에도 지퍼를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머리를 굴린 것은 역시 재단사 쿤 모스라는 사람이었다. 또 세계적인 고무제품 회사 굿리치에서는 자사 생산품인 장화와 덧신에 지퍼를 달았고 지퍼가 오르내릴 때 나는 소리가 ‘지퍼 업’ (우리말로 하면 찌익~)같이 들린다는 이유로 ‘지퍼 부츠’라는 이름의 상표 출원을 한다. 이때부터 ‘지퍼’는 본격적으로 인류 앞에 등장한 것이다. ( 장화의 이름에서 힘이 연상되어야 한다고 해서 Zip(영어로 원기)er 라고 부르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지퍼는 꼭 남녀관계에서만 필요한 혁명은 아니었다. 지퍼가 없었다면 당장 일상복을 걸치고 벗는 시간이 지금의 두 배였을 것이고 툭 하면 떨어지는 단추를 위해 실과 바늘을 상시 구비하고 다녀야 했을 테고, 여행 가방 같은 거 한 번 잠그려면 무지하게 고생을 해야 했을 게다. 야영 가서 텐트 문은 찍찍이로나 여닫아야 했을 것이고 침낭 속에 들어가려면 끈 묶느라 무지하게 고생했으리라. 어떤 의사는 수술이 잦은 환자의 배에 지퍼를 달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우주비행사의 우주복에는 열 개가 넘는 지퍼가 달려 있다니 그 용도와 범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1893년 8월 29일 우리가 무심코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올렸다 내렸다 하는 지퍼가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수십 년간 여러 사람의 ‘집단 지성’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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