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63년 8월 28일 I have a dream, 루터 킹이 우리나라에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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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 28일 I have a dream, 루터 킹이 우리나라에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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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서 마틴 루터 킹은 역사적인 연설을 한다. 만약 2012년 대한민국에 온다면 (나이 여든 넷이니 생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는 이런 연설을 하지 않았을까...... 그 두 연설(?)을 발췌하여 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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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킹 (2012. 8. 28) I have a dream in Seoul
한국 역사에서 감동적인 자유를 위한 노래가 태어난 날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오늘 작곡됐다)로 역사에 기록된 오늘 나는 한국인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42년 전, 그리고 제가 워싱턴 기념관에서 제 꿈을 외쳤던 날로부터 꼭 7년 뒤 한 한국인이 고심 끝에 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작곡가의 의도를 훨씬 넘어서는 위대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이라고 부르짖으면서 수많은 젊음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라는 선언은 독재와 폭력에 시들어가던 수천만 한국인들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의 횃불로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후에도, 여러분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후에도, 여러분 머리 위의 태양은 한낮의 찌는 더위로 여러분의 숨을 막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그 맘에 알알이 맺힌 설움들을 버리고 광야로 떠나야 합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중년을 맞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물질적 번영이라는 거대한 대양의 한가운데 떠나디는 쓰레기의 바다처럼, 빈곤에 허덕이는 한국인들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40년 전 아버지의 독재 정권의 마스코트였던 이가 이 나라의 권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백 년이 지난 후에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선진 조국에 진입했다는 나라의 한 구석에서 여전히 풀이 죽고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수치스런 상황을 알리고자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저는 대한민국의 수도에 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그 헌법에 숭고한 단어들을 써넣었으며, 모든 한국인들이 상속받아야 할 약속어음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약속어음은 모든 국민들에게 행복의 추구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가 그 약속어음에 대한 지급 의무를 방기하고 있음은 명백합니다.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지 않고서, 대한민국은 잔고부족이라고 표기되어 되돌아 온 수표, 부도수표를 그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주었습니다.
(중략)
이건 아니다!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쯤 당신들은 만족하겠느냐?"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공권력도 아닌 사적인 깡패들의 폭력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두려움의 희생자가 되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뼈빠지는 노동이 평온한 저녁과 내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사용자의 이익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 때에 절은 몸을 씻으려 할 때 "정규직 전용 샤워 시간"이라 쓰여진 문구 앞에서 맥없이 돌아서야 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출근 시간에 쫓겨 투표조차 할 수 없고 찍어 줄래도 도무지 찍어 줄 사람들이 없다고 한탄하는 한.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정당함이 거대한 흐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거대한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여기에 왔다는 것을 나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좁은 감방에서 이제 막 나왔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자유에 대한 당신의 요구가 당신을 박해의 폭풍 앞에서 부서지게 하고 공권력의 만행이란 바람에 비틀거리게 했던 곳에서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의미 있는 고통에 익숙해진 노련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고통도 과분하다 여기고 보상을 받으리란 믿음으로 계속 해나가십시요.
돌아가십시오. 울산과 거제로, 인천으로, 빛고을 광주로, 5대 대도시들의 빈민가와 임대주택단지들로, 어떻게든 지금의 이 상황이 변화될 수 있다는 그리고 변화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서 돌아가십시요. 절망의 계곡에서 몸부림치지 말자고,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과 내일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대한민국 헌법에 깊이 뿌리를 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일어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참뜻대로 살아가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 부산의 한진 조선소 크레인 밑에서 한때 짓밟고 짓밟히던, 그리고 목이 쉬게 외치던 그 모든 이들이 형제애로 뭉쳐 평등하게 노를 저을 수 있으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묻지 마 지지의 열기로 무더운, 비이성의 광기로 찌는 듯한 경상도마저도 그들이 20년 전만 해도 늠연히 간직했던 자유와 정의의 깃발을 다시 들어올리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의 아이들과 손주들이 재력과 스펙과 외모로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개별적인 존엄이 존중되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세습해 보겠다며 제 새끼들을 우선적으로 취직시키라는 단협을 내세우는 ‘정규직’ 노동자들, 똑같이 노동하는데 너는 내 돈 절반을 받아가도 비정규직이니 할 수 있냐는 인간차별주의자들, 헌법에 규정된 노동권과 파업권조차 “연봉 얼마짜리가 무슨 파업이냐”고 무시하는 대통령, 빳다로 직원들을 후려치고 슬리퍼로 뺨을 때리고 용역들을 투입시켜 자신의 부를 형성해 준 노동자들을 짓밟는 사악한 이들이 무릎을 꿇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들은 메워지고, 모든 언덕과 산들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희망이며, 이것이 내가 평생을 지켜 온 신념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는 절망의 산을 깎아 희망의 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는 대한민국의 살벌한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가 언젠가는 자유로워 질 것이라 믿으면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며,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날이, 이 날이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그리고 세계 인류가 새로운 의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날이 될 것입니다.
(중략)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는 마침내 자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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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가서..... 1963년 8월 28일 킹의 진짜 연설 발췌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자유를 위한 가장 위대한 시위가 있었던 날로서
역사에 기록될 오늘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백년 전,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의 상징적 그림자의 주인공인,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중대한 법령은 억압적 불평등의 불길에 타들어가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위대한 희망의 횃불로서 다가왔습니다. 그 법령은 그들의 길었던 구속의 밤을 종식하는 기쁨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분리의 수갑과 차별의 쇠사슬에 의해 흑인들의 삶은 여전히 슬픈 불구의 상태입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물질적 번영이라는 거대한 대양의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빈곤의 섬에서 흑인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흑인들은 미국사회의 한 구석에서 여전히 풀이 죽고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수치스런 상황을 알리고 바꾸고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수도에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건국한 사람들은 헌법과 독립선언문에 숭고한 단어들을 써넣었으며, 모든 미국인들이 상속받게 될 약속어음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약속어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백인들처럼 흑인들에게도, 생존,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시민들의 피부색과 관련하여서만은 지금까지 그 약속어음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지 않고서, 미국은 잔고부족이라고 표기되어 되돌아 온 수표, 부도수표를 흑인들에게 주었습니다.
(중략)
(지금의)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흑인들이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고 적당히 만족할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만약 이 나라가 예전의 그 일상으로 되돌아 가려고 한다면,
거친 깨달음을 얻게 될 것 입니다. 흑인들이 그들의 시민권을 인정받기 전까지 미국에는 휴식도 평온도 없을 것입니다. 저항의 회오리바람은 정의가 출현하는 밝은 날이 올 때까지
우리나라의 기반을 흔들 것입니다.
(중략)
인권운동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쯤 당신들은 만족하겠느냐?"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들이 경찰들의 만행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두려움의 희생자가 되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여행의 피곤으로 무거울 때 고속도로의 모텔과 시내의 호텔에서 잠자리를 얻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들의 이주의 권리가 (그저) 작은 구역에서 큰 구역으로의 이동인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자존심을 박탈당하고 "백인 전용"이라 쓰여진 문구에 자신들의 존엄성을 강탈당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미시시피의 흑인들이 투표조차 할 수 없고 뉴욕의 흑인들이 투표할 대상이 없다고 믿는 한.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정당함이 거대한 흐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거대한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여기에 왔다는 것을 나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좁은 감방에서 이제 막 나왔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자유에 대한 당신의 요구가 당신을 박해의 폭풍 앞에서 부서지게 하고 공권력의 만행이란 바람에 비틀거리게 했던 곳에서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의미있는 고통에 익숙해진 노련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고통도 과분하다 여기고 보상을 받으리란 믿음으로 계속 해나가십시요.
돌아가십시요, 알라바마로, 남부 캘리포니아로, 조지아로, 루이지애나로, 북부 도시들의 빈민가와 흑인거주지로, 어떻게든 지금의 이 상황이 변화될 수 있다는 그리고 변화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서 돌아가십시요. 절망의 계곡에서 몸부림치지 말자고,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과 내일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일어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진실을 우리는 자명으로 유지한다"라는 이 나라 강령의 참뜻대로 살아가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들의 후손들과 노예소유주들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서 함께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로 무더운, 억압의 열기로 무더운, 저 미시시피마저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모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이 그들의 피부 색깔로서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개별성으로 판단되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악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는 알라바마주, 연방정부의 법과 조치를 따르지 않겠다는 발언을 내뱉는 주지사가 있는 알라바마주, 언젠가는 바로 그 알라바마주에서, 어린 흑인 소년들과 어린 흑인 소녀들이, 어린 백인 소년들과 어린 백인 소녀들과 형제자매로서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들은 메워지고, 모든 언덕과 산들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며, 이것이 내가 남부로 돌아갈 때 함께 하게 될 신념입니다. 이 신념으로서, 우리는 절망의 산을 깎아 희망의 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는 우리나라의 소란한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가 언젠가는 자유로워 질 것이라 믿으면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며,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날이, 이 날이 모든 하나님의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날이 될 것입니다.
(중략)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마침내 자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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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킹 (2012. 8. 28) I have a dream in Seoul
한국 역사에서 감동적인 자유를 위한 노래가 태어난 날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오늘 작곡됐다)로 역사에 기록된 오늘 나는 한국인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42년 전, 그리고 제가 워싱턴 기념관에서 제 꿈을 외쳤던 날로부터 꼭 7년 뒤 한 한국인이 고심 끝에 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작곡가의 의도를 훨씬 넘어서는 위대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이라고 부르짖으면서 수많은 젊음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라는 선언은 독재와 폭력에 시들어가던 수천만 한국인들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의 횃불로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후에도, 여러분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후에도, 여러분 머리 위의 태양은 한낮의 찌는 더위로 여러분의 숨을 막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그 맘에 알알이 맺힌 설움들을 버리고 광야로 떠나야 합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중년을 맞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물질적 번영이라는 거대한 대양의 한가운데 떠나디는 쓰레기의 바다처럼, 빈곤에 허덕이는 한국인들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40년 전 아버지의 독재 정권의 마스코트였던 이가 이 나라의 권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백 년이 지난 후에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선진 조국에 진입했다는 나라의 한 구석에서 여전히 풀이 죽고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수치스런 상황을 알리고자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저는 대한민국의 수도에 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그 헌법에 숭고한 단어들을 써넣었으며, 모든 한국인들이 상속받아야 할 약속어음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약속어음은 모든 국민들에게 행복의 추구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가 그 약속어음에 대한 지급 의무를 방기하고 있음은 명백합니다.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지 않고서, 대한민국은 잔고부족이라고 표기되어 되돌아 온 수표, 부도수표를 그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주었습니다.
(중략)
이건 아니다!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쯤 당신들은 만족하겠느냐?"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공권력도 아닌 사적인 깡패들의 폭력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두려움의 희생자가 되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뼈빠지는 노동이 평온한 저녁과 내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사용자의 이익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 때에 절은 몸을 씻으려 할 때 "정규직 전용 샤워 시간"이라 쓰여진 문구 앞에서 맥없이 돌아서야 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출근 시간에 쫓겨 투표조차 할 수 없고 찍어 줄래도 도무지 찍어 줄 사람들이 없다고 한탄하는 한.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정당함이 거대한 흐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거대한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여기에 왔다는 것을 나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좁은 감방에서 이제 막 나왔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자유에 대한 당신의 요구가 당신을 박해의 폭풍 앞에서 부서지게 하고 공권력의 만행이란 바람에 비틀거리게 했던 곳에서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의미 있는 고통에 익숙해진 노련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고통도 과분하다 여기고 보상을 받으리란 믿음으로 계속 해나가십시요.
돌아가십시오. 울산과 거제로, 인천으로, 빛고을 광주로, 5대 대도시들의 빈민가와 임대주택단지들로, 어떻게든 지금의 이 상황이 변화될 수 있다는 그리고 변화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서 돌아가십시요. 절망의 계곡에서 몸부림치지 말자고,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과 내일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대한민국 헌법에 깊이 뿌리를 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일어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참뜻대로 살아가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 부산의 한진 조선소 크레인 밑에서 한때 짓밟고 짓밟히던, 그리고 목이 쉬게 외치던 그 모든 이들이 형제애로 뭉쳐 평등하게 노를 저을 수 있으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묻지 마 지지의 열기로 무더운, 비이성의 광기로 찌는 듯한 경상도마저도 그들이 20년 전만 해도 늠연히 간직했던 자유와 정의의 깃발을 다시 들어올리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의 아이들과 손주들이 재력과 스펙과 외모로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개별적인 존엄이 존중되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세습해 보겠다며 제 새끼들을 우선적으로 취직시키라는 단협을 내세우는 ‘정규직’ 노동자들, 똑같이 노동하는데 너는 내 돈 절반을 받아가도 비정규직이니 할 수 있냐는 인간차별주의자들, 헌법에 규정된 노동권과 파업권조차 “연봉 얼마짜리가 무슨 파업이냐”고 무시하는 대통령, 빳다로 직원들을 후려치고 슬리퍼로 뺨을 때리고 용역들을 투입시켜 자신의 부를 형성해 준 노동자들을 짓밟는 사악한 이들이 무릎을 꿇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들은 메워지고, 모든 언덕과 산들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희망이며, 이것이 내가 평생을 지켜 온 신념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는 절망의 산을 깎아 희망의 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는 대한민국의 살벌한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가 언젠가는 자유로워 질 것이라 믿으면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며,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날이, 이 날이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그리고 세계 인류가 새로운 의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날이 될 것입니다.
(중략)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는 마침내 자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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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가서..... 1963년 8월 28일 킹의 진짜 연설 발췌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자유를 위한 가장 위대한 시위가 있었던 날로서
역사에 기록될 오늘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백년 전,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의 상징적 그림자의 주인공인,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중대한 법령은 억압적 불평등의 불길에 타들어가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위대한 희망의 횃불로서 다가왔습니다. 그 법령은 그들의 길었던 구속의 밤을 종식하는 기쁨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분리의 수갑과 차별의 쇠사슬에 의해 흑인들의 삶은 여전히 슬픈 불구의 상태입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물질적 번영이라는 거대한 대양의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빈곤의 섬에서 흑인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도, 흑인들은 미국사회의 한 구석에서 여전히 풀이 죽고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수치스런 상황을 알리고 바꾸고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수도에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건국한 사람들은 헌법과 독립선언문에 숭고한 단어들을 써넣었으며, 모든 미국인들이 상속받게 될 약속어음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약속어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백인들처럼 흑인들에게도, 생존,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시민들의 피부색과 관련하여서만은 지금까지 그 약속어음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지 않고서, 미국은 잔고부족이라고 표기되어 되돌아 온 수표, 부도수표를 흑인들에게 주었습니다.
(중략)
(지금의)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흑인들이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고 적당히 만족할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만약 이 나라가 예전의 그 일상으로 되돌아 가려고 한다면,
거친 깨달음을 얻게 될 것 입니다. 흑인들이 그들의 시민권을 인정받기 전까지 미국에는 휴식도 평온도 없을 것입니다. 저항의 회오리바람은 정의가 출현하는 밝은 날이 올 때까지
우리나라의 기반을 흔들 것입니다.
(중략)
인권운동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쯤 당신들은 만족하겠느냐?"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들이 경찰들의 만행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두려움의 희생자가 되는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여행의 피곤으로 무거울 때 고속도로의 모텔과 시내의 호텔에서 잠자리를 얻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들의 이주의 권리가 (그저) 작은 구역에서 큰 구역으로의 이동인 한.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자존심을 박탈당하고 "백인 전용"이라 쓰여진 문구에 자신들의 존엄성을 강탈당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미시시피의 흑인들이 투표조차 할 수 없고 뉴욕의 흑인들이 투표할 대상이 없다고 믿는 한.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정당함이 거대한 흐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거대한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여기에 왔다는 것을 나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좁은 감방에서 이제 막 나왔습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자유에 대한 당신의 요구가 당신을 박해의 폭풍 앞에서 부서지게 하고 공권력의 만행이란 바람에 비틀거리게 했던 곳에서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의미있는 고통에 익숙해진 노련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고통도 과분하다 여기고 보상을 받으리란 믿음으로 계속 해나가십시요.
돌아가십시요, 알라바마로, 남부 캘리포니아로, 조지아로, 루이지애나로, 북부 도시들의 빈민가와 흑인거주지로, 어떻게든 지금의 이 상황이 변화될 수 있다는 그리고 변화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서 돌아가십시요. 절망의 계곡에서 몸부림치지 말자고,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과 내일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일어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진실을 우리는 자명으로 유지한다"라는 이 나라 강령의 참뜻대로 살아가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들의 후손들과 노예소유주들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서 함께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로 무더운, 억압의 열기로 무더운, 저 미시시피마저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모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이 그들의 피부 색깔로서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개별성으로 판단되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악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는 알라바마주, 연방정부의 법과 조치를 따르지 않겠다는 발언을 내뱉는 주지사가 있는 알라바마주, 언젠가는 바로 그 알라바마주에서, 어린 흑인 소년들과 어린 흑인 소녀들이, 어린 백인 소년들과 어린 백인 소녀들과 형제자매로서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들은 메워지고, 모든 언덕과 산들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며, 이것이 내가 남부로 돌아갈 때 함께 하게 될 신념입니다. 이 신념으로서, 우리는 절망의 산을 깎아 희망의 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는 우리나라의 소란한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써, 우리가 언젠가는 자유로워 질 것이라 믿으면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며,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날이, 이 날이 모든 하나님의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날이 될 것입니다.
(중략)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마침내 자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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