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64년 7월 21일 붉은거미 살인마의 출현
반미의식이 충만한 친구들이 주위에 널려 있던 무렵,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열변을 토했다. "미국은 막장 사회야. 그 통계 들어봤냐? 전 세계의 연쇄살인마의 90퍼센트가 미국에 몰려 있다고!"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이나 사이코 연쇄살인마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판을 칠 때로 기억하는데, 그때 그런 통계(?)가 신문 귀퉁이에 등장한 걸 나도 봤었다. 하지만 꽤 냉철한 친구 하나가 이런 반격을 가하면서 미제국주의의 막장을 성토하는 열기는 급속도로 식었다.
"아닐걸. 그런 놈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어. 단지 미국은 그 존재를 알아채고 밝혀내고 연구하고 하니까 많아 보이는 거지."
사실 그 말이 맞다. 살인을 일종의 유희로 즐기는 악마적 인간들은 사실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1964년 7월 21일 공산 국가 폴란드에서 출현한 한 살인마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보자. 7월 22일은 폴란드의 국경일이었다. 친공산주의 성격의 폴란드민족해방전선이 나찌에 저항하여 '폴란드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선언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전날 바르샤바의 신문사에 한 편지가 배달되어 왔다.
"눈물 없이는 행복이 없으며,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편지를 쓴 잉크는 붉은 색이었다. 언뜻 보면 무슨 잠언같기도 한 글은 마구 갈겨 쓴 듯 제멋대로였다. 그건 필체만이 아니었다. 내용은 점점 음산하고 기괴스러워졌다. ‘명심하라. 당신들 눈에서 눈물을 쏟게 할 테니까.’ 그리고 다음날 어느 공원에서 나이 열 일곱 살의 소녀가 토막나서 발견됐다. 전날의 편지와 국경일의 시신은 범인이 보낸 또 한 통의 편지로 입증됐다. "난 예쁜 꽃을 꺾었고, 어딘가에서 또 그럴 것이다. 장례식이 없는 공휴일은 없지.’ 범인은 기념일을 맞아 살인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고 이를 착실하게 실행에 옮긴다.
1965년 11월 1일 만성절을 맞아 범인은 젊은 여성을 습격해 클로로포름으로 마취시킨 후 성폭행하고 역시 사체를 토막낸 다음 나무상자에 넣어 팽개쳐 버렸다. 그리고 예의 붉은 글씨의 편지를 보냈다. "오직 슬픈 눈물만이 부끄러움을 씻어낼 수 있다. 뼈아픈 고통만이 욕망의 불길을 감출 수 있다." 이는 폴란드 작가 제롬스키의 1928년 작 소설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이 붉은 날림체 글씨 때문에 이 살인마는 "붉은 거미"라는 별명을 얻는다. 기념일을 맞아 살인을 자행하고 그를 '전시'하고 '공표'하는 살인마는 곧 폴란드 전역의 공포의 대상이 됐다. 폴란드 경찰은 사색이 돼서 사건 발생 주변을 봉쇄하고 범인을 쫓았지만 도무지 단서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66년 5월 1일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명절 메이데이에 범인은 또 한 번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다. 이번에는 연쇄살인마의 '원조'라 할 영국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찢어죽이는 잭)의 범죄 수법을 모방한 듯 보였다.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낸 뒤 그를 전시해 놓은 것이다. 폴란드 국민들은 이제 명절 공포증에 걸림직했다. 이 괴물이 히죽이죽거리며 달력을 넘기다가 어느 날을 골라 누구를 죽일지 모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이브에 또 한 번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세 명의 군인들이 예약한 기차칸 방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기절초풍했다. 나이 열 일곱 살의 소녀가 난자당한 채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기차는 이후 정차하지 않고 종착역까지 내처 달려갔고 경찰은 승객들 하나 하나를 수색했지만 피가 튀었거나 의심갈만한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은 단서를 찾아 냈다. 이 희생자가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남편'이라고 일컬은 동행이 있었으며 이 희생자의 자매도 2년 전 살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이 희생자는 범인과 잘 아는 사이였고, 희생자의 자매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자매가 이 한 예술 동호회 회원이었음도 새롭게 발견됐다. 더욱이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알려온 그 붉은 글씨체의 잉크의 정체는 조사 결과 그림물감이었다.
폴란드 경찰은 예술 동호회원들을 일일이 추적한 끝에 국립 인쇄소 직원 루시안 스타니악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의 사물함을 열어 봤을 때 경찰은 경악했다. 배가 갈라진 여성의 속에서 꽃이 피어난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이놈이다! 경찰은 그의 주소지를 급습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다. 또 하나의 희생물을 찾아 나선 참이었다. 자유 기차 여행권을 가지고 있던 스타니악은 기차 안에서 18세의 여성을 선택해서 그녀를 따라가 익숙한 방식으로 살해한 뒤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체포된다. 그는 최고 20명을 죽였다고 자백했지만 6건의 살인만 유죄로 인정되어 (나머지는 증거불충분) 정신병원에 갇힌다.
1964년 7월 21일 붉은거미 살인마의 출현
반미의식이 충만한 친구들이 주위에 널려 있던 무렵,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열변을 토했다. "미국은 막장 사회야. 그 통계 들어봤냐? 전 세계의 연쇄살인마의 90퍼센트가 미국에 몰려 있다고!"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이나 사이코 연쇄살인마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판을 칠 때로 기억하는데, 그때 그런 통계(?)가 신문 귀퉁이에 등장한 걸 나도 봤었다. 하지만 꽤 냉철한 친구 하나가 이런 반격을 가하면서 미제국주의의 막장을 성토하는 열기는 급속도로 식었다.
"아닐걸. 그런 놈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어. 단지 미국은 그 존재를 알아채고 밝혀내고 연구하고 하니까 많아 보이는 거지."
사실 그 말이 맞다. 살인을 일종의 유희로 즐기는 악마적 인간들은 사실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1964년 7월 21일 공산 국가 폴란드에서 출현한 한 살인마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보자. 7월 22일은 폴란드의 국경일이었다. 친공산주의 성격의 폴란드민족해방전선이 나찌에 저항하여 '폴란드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선언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전날 바르샤바의 신문사에 한 편지가 배달되어 왔다.
"눈물 없이는 행복이 없으며,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편지를 쓴 잉크는 붉은 색이었다. 언뜻 보면 무슨 잠언같기도 한 글은 마구 갈겨 쓴 듯 제멋대로였다. 그건 필체만이 아니었다. 내용은 점점 음산하고 기괴스러워졌다. ‘명심하라. 당신들 눈에서 눈물을 쏟게 할 테니까.’ 그리고 다음날 어느 공원에서 나이 열 일곱 살의 소녀가 토막나서 발견됐다. 전날의 편지와 국경일의 시신은 범인이 보낸 또 한 통의 편지로 입증됐다. "난 예쁜 꽃을 꺾었고, 어딘가에서 또 그럴 것이다. 장례식이 없는 공휴일은 없지.’ 범인은 기념일을 맞아 살인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고 이를 착실하게 실행에 옮긴다.
1965년 11월 1일 만성절을 맞아 범인은 젊은 여성을 습격해 클로로포름으로 마취시킨 후 성폭행하고 역시 사체를 토막낸 다음 나무상자에 넣어 팽개쳐 버렸다. 그리고 예의 붉은 글씨의 편지를 보냈다. "오직 슬픈 눈물만이 부끄러움을 씻어낼 수 있다. 뼈아픈 고통만이 욕망의 불길을 감출 수 있다." 이는 폴란드 작가 제롬스키의 1928년 작 소설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이 붉은 날림체 글씨 때문에 이 살인마는 "붉은 거미"라는 별명을 얻는다. 기념일을 맞아 살인을 자행하고 그를 '전시'하고 '공표'하는 살인마는 곧 폴란드 전역의 공포의 대상이 됐다. 폴란드 경찰은 사색이 돼서 사건 발생 주변을 봉쇄하고 범인을 쫓았지만 도무지 단서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66년 5월 1일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명절 메이데이에 범인은 또 한 번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다. 이번에는 연쇄살인마의 '원조'라 할 영국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찢어죽이는 잭)의 범죄 수법을 모방한 듯 보였다.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낸 뒤 그를 전시해 놓은 것이다. 폴란드 국민들은 이제 명절 공포증에 걸림직했다. 이 괴물이 히죽이죽거리며 달력을 넘기다가 어느 날을 골라 누구를 죽일지 모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이브에 또 한 번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세 명의 군인들이 예약한 기차칸 방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기절초풍했다. 나이 열 일곱 살의 소녀가 난자당한 채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기차는 이후 정차하지 않고 종착역까지 내처 달려갔고 경찰은 승객들 하나 하나를 수색했지만 피가 튀었거나 의심갈만한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은 단서를 찾아 냈다. 이 희생자가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남편'이라고 일컬은 동행이 있었으며 이 희생자의 자매도 2년 전 살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이 희생자는 범인과 잘 아는 사이였고, 희생자의 자매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자매가 이 한 예술 동호회 회원이었음도 새롭게 발견됐다. 더욱이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알려온 그 붉은 글씨체의 잉크의 정체는 조사 결과 그림물감이었다.
폴란드 경찰은 예술 동호회원들을 일일이 추적한 끝에 국립 인쇄소 직원 루시안 스타니악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의 사물함을 열어 봤을 때 경찰은 경악했다. 배가 갈라진 여성의 속에서 꽃이 피어난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이놈이다! 경찰은 그의 주소지를 급습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다. 또 하나의 희생물을 찾아 나선 참이었다. 자유 기차 여행권을 가지고 있던 스타니악은 기차 안에서 18세의 여성을 선택해서 그녀를 따라가 익숙한 방식으로 살해한 뒤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체포된다. 그는 최고 20명을 죽였다고 자백했지만 6건의 살인만 유죄로 인정되어 (나머지는 증거불충분) 정신병원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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