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년치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저 좋아서 끄적이기 시작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기쁘기도 뿌듯하기도 하고, 하여간 제가 했던 뻘짓 가운데에서는 개중에 꽤 괜찮은 뻘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했는데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 그 서문입니다.
서문 수정
한 1년 8개월 쯤 전이었을까요. 트위터를 뒤적이다가 이왕 끄적일 바에는 신변잡기 외에도 의미도 있고 제 스스로에게 남는 것도 있는 포스팅을 해 보자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보이려는 마음보다는 저 혼자 재미로 140자 트위터를 채운 일은 과거의 ‘오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습관이 됐습니다.
우선 쉬웠습니다. 탁월하고도 성능 좋은 검색 엔진들은 정말 없는 게 없는 정보력을 가졌더군요. 과거 같으면 몇날 며칠 도서관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수고가 스마트폰 클릭 몇 번으로 대체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자애로운 문명의 혜택인지요. 그에 더하여 매해 돌아오는 하루 하루에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으며 이미 세월과 문자의 틀에 갇혀 버린 그날 하루 하루에 사람들의 피와 땀이, 눈물과 환호가 알알이 맺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쏠쏠한 재미였습니다. 꼭 공부 못하는 놈들이 쉬는 시간에 공부한다고, 대학 때에는 제대로 전공 (사학) 공부하지도 않은 녀석이 느지막히 역사의 잔재미를 즐기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서는 트위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요약, 생략해야 했던 이야기들을 조금 더 자세히 올리게 됐고, 어영부영 그것이 1년을 채웠습니다. 글을 올리면서 나름 글들을 묶을 제목을 고민했었습니다. 그게 ‘산하의 오역’이었습니다. 그 동안 “산하는 네 닉넴이라고 치고, 오역은 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간단하게 답변하자면 ‘오늘의 역사’의 준말입니다. 그렇게 별 뜻 없는 말줄임이었지만 시간을 쌓아 나가다보니 부수적인 뜻이 첨가됐던 것 같습니다.우선 오늘의 역사이기도 하며 둘째로는 나만의 역사를 뜻하는 ‘오역’(吾歷)이고 그러하다하보니 당연하게 발생할 수 있고 경계해야 하는 오역(誤歷)일 수도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이야기하는 사람의 시각과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 객관’은 없을 테고, 그 와중에 당연히 발생할 것이니까요.
그 다음으로 받은 질문은 “왜 조선 시대나 그 이전의 얘기는 거의 없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설명드리자면 제가 정했던 몇 가지 기준을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양력 날짜 우선입니다. 트위터에서 짤막하게 올릴 때 충무공 이순신을 두 번 죽인 (그분의 전사 날짜를 양력, 음력 모두 기록한 통에) 이후 양력을 고수하기로 했고, 그래서 간혹 서양 얘기는 과거로 거슬러 오르지만 우리를 비롯한 동양쪽 역사는 근현대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겁니다.
둘째 아이들 위인전들에 등장하는 큰 위인들이나 역사를 직접적으로 바꾼 대사건보다는 미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쉽게 잊혀지고 있는 듯한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역사란 “특별하게 빛나는” 사람들의 기록이면서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이들의 삶의 총합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옛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되새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는체 하실만한 은사님도 하나 없이 전공과 담을 쌓았던 처지에 감히 ‘역사’를 들먹이는 것은 솔직히 면구스러운 일이었지만, 하나 또렷이 기억하는 경구가 있다면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크로체의 말을 들겠습니다. 오늘 일어났던 일은 어제 일어났던 일이고, 결국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역사, 그리고 나만의 역사, 그래서 틀릴 수도 있는 사연들을 ‘과거의 오늘’에 빗대어 얘기하면서 저는 그들이 살았던 오늘 역시 땀 냄새와 발고린내와 거친 숨결이 생생하게 배어 있는 ‘오늘’임을 깨달았습니다. 제 눈길에 채였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역시 결국 ‘역사’가 아니라 ‘오늘’이기도 했던 겁니다. 역사라는 것이 교과서속의 글줄만도 아니고 무덤 속의 먼지만이 아닌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작년 12월 31·일, 이렇게 한 해가 가는구나 장탄식을 하며 신문을 뒤적이던 저는 한 기사에 눈이 못박혀야 했습니다. 어느 대학의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송년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였습니다.
차비가 없어서, 정말로 차비가 아까와서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형편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그 처지에 누구를 돕는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겁니다. ‘제 코가 석 자’인 처지에 누가 누굴 돕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역시 신문에 나올만 했습니다. 자신의 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3년간이나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아주머니들을 도와 학교 당국과 싸움도 하고 협상도 도왔던 그는 마침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그는 길어질 대로 길어진 자신의 코 앞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도무지 등록금을 내지 못할 처지임을 깨달은 겁니다.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돈 나올 구멍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나섰습니다. 그 박봉을 쪼개고 파지 팔아 모은 돈을 보태어 1백만원을 마련했고, 아주머니들이 막간을 이용해 차린 송년회 자리에 문제의 학생을 초대하여 전달했다고 합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학생은 제가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이고, 박수를 치는 노동자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학생에게 아주머니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더 고맙다.”
이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자신의 어려움만큼이나 남의 어려움을 살필 줄 알았던 한 아름다운 청년을 통해서, 자신들을 도왔던 이의 어려움을 저버릴 수 없었던 아주머니들을 통해서, 저는 이런 식으로 역사의 퍼즐들이 맞춰져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맥이 끊기지 않고 흘러온 역사의 물줄기의 물방울들이란 바로 이런 모습들이겠거니 하는 상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청년은 평생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그와 함께 했던 3년을 망각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 작은 개인의 기억들은 사회적 기억으로 승화될 것이고, 때로는 좌절하고 더러는 기념되면서 역사라는 거대한 돌탑의 일부를 이루겠지요.
21세기 한국 어느 대학교의 고학 청년과 같았던, 또 그와 함께 눈물 흘렸던 아주머니들과 비슷했던 수많은 이들, 평범하지만 위대하기도 했던 이들, 또 반대로 탁월하지만 사악했던 이들, 그들이 얼키고 설켜낸 역사 속 오늘, ‘그들이 살았던 오늘’들을 이렇게 모아 봅니다. 또한 우리의 오늘도 언젠가는 ‘그들이 살았던 오늘’로 남을 것임을 되새겨 봅니다.
그렇게 내세울 것도 없는 책으로 묶을 결심을 해 주신 도서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보경님과 보잘것 없는 원고를 갈고 닦아 환골탈태하도록 도움 주신 편집자 공성아님, 그리고 멋진 디자인으로 책의 품위를 열 곱은 더해 주신 디자이너 000님, ‘내가 살았던 오늘’들을 함께 했던 직장의 선후배, 그리고 동료 여러분, 그리고 별 것 아닌 이야기에 웃어 주시고 맞장구쳐주셨던 트친과 페친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의 가장 중요한 부분,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부모님들께도 정말로 사랑한다는 인사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특히 사춘기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아들 녀석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정말로 기쁘기 한량이 없겠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을 뒤적이다 보니 1년 365일 의미 없는 날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365일도 그러하겠지요. 아무리 허투루 보낸 날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늘이겠지요. 그리고 그날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역사를 만들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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