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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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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11.26 4전 5기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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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77년 11월 26일 4전 5기의 신화

세상에는 믿기 힘든 일이 종종 벌어진다. 만화가인 내 친구가 들으면 화를 낼 얘기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표현을 하자면 ‘만화 같은’ 일들이 눈 앞에서 버젓이 펼쳐지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1977년 11월 26일 파나마에서 벌어진 일이 그랬다.

그곳에서는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홍수환은 갓을 쓰고 링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파나마 사람들은 비라도 오면 머리 죄다 젖어 버릴 것 같은 기묘한 모자를 쓴 동양인에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벼락같은 함성으로 체육관을 덮어 버렸다.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을 가졌던 카라스키아가 등장한 것이다. 11전 11승 11 KO승,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진 적 없는 공포의 주먹이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1라운드는 탐색전으로 끝났지만 2라운드부터 카라스키아의 주먹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왼손잡이였던 카라스키아의 왼주먹에 제대로 걸려든 홍수환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파나마 사람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홍수환은 벌떡 일어났으나 카라스키아는 매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두 번째 다운.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지만 또 링 위에 나뒹굴었다. 세 번째 다운. 보통의 경기 같으면 그것으로 게임 셋이었다. 세 번 다운이면 자동 KO승이 일반적인 룰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무시하고 “누가 죽을 때까지 싸워 보자.”고 싱글거렸던 건 카라스키아 쪽이었다. 카라스키아는 참 룰을 잘 바꿨다는 듯 신나게 홍수환을 두들겼고 홍수환은 한 라운드에 네 번 다운되는 수모를 겪는다.

‘만화’는 3라운드에 벌어진다. 아니 사실 만화가도 그런 상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만화가 문하생이 2라운드에 네 번씩이나 링 바닥을 헤맸던 복서가 3라운드에 딴 사람이 되어 상대를 몰아붙여 KO승을 거둔다는 스토리를 그려서 스승에게 보여줬다면 그는 스승의 펜대에 맞아 머리에 혹이 태백산맥처럼 솟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벌어졌다. 기세 좋게 밀고 들어가던 카라스키아의 턱에 홍수환의 카운터가 멋지게 들어간 뒤 전세가 역전됐고 로프에 몸을 기대는 카라스키아의 턱에 도끼질하듯 하는 홍수환의 레프트 훅이 작렬한 순간 카라스키아가 드러눕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세계챔피언이 된 건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군인의 신분으로 역시 지구 반대쪽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날아가서 챔피언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방송국의 주선으로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그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을 남긴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제 엄마 고생 끝났어” 따위의 효도 멘트도 아니고 “이게 다 누구 덕분이야”의 공치사도 아닌 솔직하고도 귀엽기까지 한 군인 아저씨의 내지름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공감어린 폭소를 샀다. 거기에 아들보다는 더 정치적으로(?) 노련했던 어머니의 “그래 대한민국 만세다,”라는 화답으로 “챔피언 먹었어,”는 더욱 빛났다.

홍수환의 거침없음은 카라스키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홍수환보다 더 흥분했던 아나운서가 소감을 물을 때 홍수환의 대답은 또 하나의 걸작이었다. “짜식이 건방져서 꼭 이길라고 그랬습니다!” 아 그 속시원함이라니.


남아공에서 따왔던 타이틀은 머지않아 세기의 강타자 알폰소 사모라에게 넘어갔다. 당대의 KO왕 사모라는 홍수환을 정신없도록 두들겨 패고 벨트를 풀어갔다. 이때 홍수환은 한국 남자들에게서 가끔 발견되는 ‘오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때껏 벌었던 모든 돈을 털고, 집까지 팔아서 사모라와의 재대결을 추진한 것이다. 결과는 또 패배. 다운되지도 않았는데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켰기에 관중도 홍수환 자신도 단단히 화가 났다. 그때 사모라가 말다툼 끝에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어떻게 알아들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임마 넌 펀치력이 없어. 펀치력 기르려면 도끼질부터 해.”

뭐에 하나 ‘꽂히면’ 정신을 못차리는 한국인의 하나답게 홍수환은 그때부터 도끼질로 세월을 보낸다. 어떤 분께서 삽질에 꽂혀서 5년을 보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도끼질 체력 훈련은 카라스키아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게 얼마나 효과적이었던지 홍수환 본인에 따르면 다리 하나만 가지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로프에 기대서 흐느적대던 카라스키아를 내리찍은 레프트 훅은 그대로 도끼질이었다.


그는 질 때도 기분파 한국인이었다. 4전 5기의 신화를 낳고 차지한 타이틀 2차 방어전에서 홍수환은 리카르도 카르도나라는 콜롬비아 선수에게 고전하다가 그냥 경기를 포기해 버렸다. 4번을 다운당하고도 벌떡 벌떡 일어나 파이트! 하며 주먹을 내밀던 투혼은 어디로 갔는지, 무기력하기 그지없었다. 주먹은 헛돌았으며 스스로 헛심만 쓰다가 지쳐 버렸고 약이 올라서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경기하다가 말고 상대방에게서 돌아서 버린 채,주심의 카운트 텐을 듣던 그 허연 등짝은 (흑백TV였으니) 처절하게 왜소했고 화나도록 비겁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 선수가 1년 전 카라스키아를 패대기치고 환호했던 그 선수란 말인가. 4전 5기의 영웅이 졸전의 패잔병으로 전락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4전 5기의 신화의 날 홍수환의 영광과 몰락을 더듬으면서 나는 묘한 생각을 했다. 그는 정말로 한국인다운 복서였다. 한국인다운 것 따로 있고 일본인다운 것 별도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의 언행과 이력을 보면 어딘지 역사 속에서 한국인들이 보여 준 다양한 면모가 골고루 박혀 있다는 생각이었다. 무슨 적을 만나든 너 누구? 나 아무개 하면서 대들 줄도 알고, 오기 하나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세상과 맞설 줄도 알았으며 군홧발이든 탱크든 그에 억눌리고 짓밟혀도 끝끝내 고개를 들고 일어섰던 역사를 지녔으되, 뭔가 잘 안 풀리거나 버거워지는 경우 그럴 수 없이 시원시원하게 싸움을 포기해 버리고 왜소하게 패배에 순응했던 과거와 현재를 간직한 것이 또 우리 아니었던가.

1977년 11월 26일 나는 그 경기를 온전하게 기억한다. 갓 쓰고 링 위에 올라갔던 한 한국인 복서. 엉덩방아를 수시로 찧어도 발딱 발딱 일어나던 오뚜기가 낳은 기적은 지금도 내가 받은 상장처럼 머리 속 한 켠에 보관되어 있다. 그 오뚜기만을 기억하고 싶다. 제풀에 지쳐 돌아서 버린 추한 모습은 박박 지워서 없애 버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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