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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11.25 나는 자유로운 시민이다 - 헐리우드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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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1월 25일 "나는 자유로운 시민이다" 헐리우드 텐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자" 7-80년대 삼천리 방방곡곡 어느 두메산골이나 깡깡어촌이나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표어다. 그런데 이 가공할 신고 정신(?)은 전쟁을 치른 분단국가, 군부 독재의 히스테리가 가득하던 나라 고유의 특산물만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신성시되고 그것을 자기네 나라의 정체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미국에서도 저 표어와 비슷한 '신고 정신'이 깃발을 날릴 때가 있었던 것이다.
...
2차 세계 대전 내내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막대한 양의 미제 물품들이 소련으로 쏟아져 들어갔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분홍빛 햄 '스팸'은 러시아 인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었다. 미국이 대 소련 물자 지원을 선언한 순간 미국 주재 소련 대사는 환호하며 외쳤었다. "이제 우리는 전쟁에 이긴다!" 하지만 절대절명의 적 독일이 쓰러지고 일본도 두 손을 든 순간부터 양국은 서로에 대한 경계와 적대의 눈초리를 치켜들기 시작한다. 내부의 국민들도 덩달아 새로운 적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 주된 과녁이 된 것은 젊은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던 미국 공산당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3년도 되지 않은 1947년 10월 헐리우드에서 각각의 업무에 종사하던 43명에게 '비미(非美)활동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 Committee) 에 나와 증언할 것을 명하는 출두 요구서가 날아갔다. 43명은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있거나 그렇다고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위원회 이름 자체가 가관이다. Anti - America도 아니고 Un-America다. 일본인들이 말 안듣는 조선인들에게 '비국민(非國民)이라고 우기던 걸 알았던 것일까, 이 '비미위원회'는 일제 파쇼 당국이나 할 '조사'를 시작했다. 43명이 "작품을 통해 순진무구한 대중을 의식화시키려 했을 가능성"에 대한 조사였다.

43명 중 19명이 증거 제출을 거부했고 11명이 소환됐는데 막판에 저 유명한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입장을 바꿔 조사위원회에서의 증언을 수락한다. 남은 것은 10명이 됐다. 알바 베시, 허버트 비버만, 레스터 콜, 에드워드 드미트릭, 링 라드너, 존 로슨, 알버트 말츠, 새뮤얼 오르니츠, 애드리안 스코트, 달턴 트럼보.

이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과거 우리의 고문기술자들이 "너 북한이 좋지?"라고 물었던 것처럼. "당신은 공산당원을 현재 알고 있거나 과거에 알고 지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모른다고 하면 그것이 거짓임을 입증할 태세였고, 알고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다고 하면 그를 '신고'하라는 강요였다. 인간의 양심의 밑바닥을 헤집는 갈고리같은 질문이었다. 헐리우드 텐은 여기에 저항한다. 어떤 이는 조사위원회에서 대답 대신 미국 수정 헌법 1조를 유장하게 읊는다. "의회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청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 수십 년 뒤 어느 나라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을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처럼.

'헐리우드 텐'은 의회 모독죄로 기소됐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1947년 11월 25일 오늘, '미국 영화 협회'는 마침내 그 10명의 이름을 일일이 읽어 내리면서 이들이 "의회모독죄를 면하지 못하고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선언하지 못한다면" 이들은 헐리우드에서 밥줄이 끊길 것이며 회원 가운데 누구도 그들을 고용하지 않으리라고 선언한다. 헐리우드 블랙리스트의 탄생이었다.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배우협회장 로널드 레이건과 게리 쿠퍼, 로버트 테일러 등은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모여 ‘우리 영화인들은 공산주의자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미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기관이나 단체의 회원과는 앞으로 일체 공동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못박는다.

헐리우드 텐은 영화계에서 추방됐다. 혹자는 가명을 쓰기도 하고, 또는 유럽으로 가서 창작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10여년 간 헐리우드에서는 완벽하게 추방됐다. 그러나 그 숨막히는 분위기에서도 이것은 미국이 아니라고 분연히 일어나 항의한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의 한국식 영어로 하면 "소셜테이너", 존 휴스턴 감독과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 로렌 바콜은 워싱턴을 행진하며 헐리우드 텐의 양심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항의했다. 그들이 외친 것도 수정헌법 1조였다.

블랙리스트는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각본자가 헐리우드 텐 중의 하나인 달톤 트럼보임이 밝혀짐으로써 힘을 잃는다. 원래 금기는 무너지기 시작하면 모래성만도 못한 법이다. <스파르타쿠스>에서 트럼보는 개인의 양심을 무너뜨리는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럼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로마 장군이 패배한 노예군을 앞에 두고 의기양양하여 "누가 스파르타쿠스냐? 그만 죽이고 다 살려 주겠다."고 호언한다. 누구 하나를 턱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살 수 있는 유혹 앞에서 노예들은 저마다 일어나서 외친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그리고 그들은 노예로서 살지 않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는다. 트럼보는 이 대목을 쓰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한 마디만 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양심을 위해 버텼던, 자신을 포함한 10명의 동료들의 영상이 HD 화질로 눈 앞을 흘러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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