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97년 4월 3일 이태원 살인 사건
1997년 4월 3일 밤 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버거킹 1층 남자화장실. 뭔가를 본 남자 손님이 구역질을 하면서 화장실을 튀어나왔고, 이윽고 한 젊은 여자가 달려들어갔다가 바로 다시 나온 뒤 울부짖는다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화장실에는 한 대학생이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죽어 있었다. 살해범은 잔인했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깊게 팬 상처는 아홉 개. 뒤에서 목을 세 번 찔렀고 피해자가 돌아보자 심장을 두 번, 쓰러진 뒤엔 다시 목을 네 번 씩이나 찔렀다.
범행 현장에 있던 혼혈 미국인 아서 패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패터슨은 미8군 기지로 들어가 피가 묻은 옷을 불에 태우고 범행에 사용한 칼을 버렸으나, 다음날 익명의 제보를 받은 범죄 수사대(CID) 요원에게 체포된다. 에드워드 리는 아버지의 추궁을 받고 범죄를 시인, 변호사와 함께 검찰에 자수한다.
4월 6일 미국 출장을 다녀온 에드워드의 아버지는 패터슨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자 에드워드를 추궁했고, 에드워드가 범죄를 시인하자 변호사를 만난 후 4월 8일 검찰에 자수한다. 하지만 패터슨과 에드워드는 서로 상대방이 피해자를 살인했고 자신은 옆에 있기만 했다며 범행을 부인했고, 결국 당시 수사기관은 두 명 모두 처벌하지 못한다. 검찰은 젊은 남자가 저항은 커녕 반항흔조차 남기지 못하고 칼에 아홉 차례나 찔렸다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완력이 우세하기 때문이라고 봤고, 단신의 페터슨보다는 거구의 에드워드에 더 혐의점을 둔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에드워드에게 불리했다. 1심 판결은 에드워드에게 무기징역, 2심은 20년을 선고하지만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뒤집힌다. 증거불충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년만에 에드워드는 무죄로 풀려난다. 증거 인멸 및 불법무기 소지 정도로 형을 살았던 페터슨은 출국 금지가 당국의 착오로 해제된 틈을 타서 잽싸게 미국으로 튀어 버린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는 사건, 바로 ‘이태원 버거킹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가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지금 일본에서 한창 뜨고 있는 장근석이 맡은 역이 페터슨이다. 그리고 그의 재미교포 친구가 에드워드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도 큰 파장을 낳았지만 그 이후로도 이미 가라앉은 듯 보였던 사건들을 수면으로 부상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결국 범인을 밝혀 내지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던 한국 사법 당국에 대한 질타와 더불어,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열망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2009년 12월 29일 검찰도 미국에 범죄인 인도 신청을 한다.
2009년 2년간의 재판 후 무죄를 선고받고 미국으로 갔던 에드워드 리가 다시 귀국한다. 그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며, 그를 위해 재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다. 패터슨이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이유는 당시 페터슨이 성년이었기에 사형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책임을 미룬 것이라고 얘기했다. 2011년 5월 한국 검찰은 페터슨이 미국 현지에서 폭행 혐의로 구속된 것을 파악하고 범죄인 인도를 대비한 보완 수사에 착수한다. 수사 결과는 페터슨이 범인이라는 것.
범행 당시 반항조차 못하고 칼에 찔렸다는 이유로 거구의 에드워드가 범인으로 지목됐지만 그때 피해자가 배낭을 메고 있었다는 것이 간과된 결과였다. 배낭을 낚아챌 경우 키가 작은 페터슨이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꼼짝못하는 상황에서 칼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피 몇 방울 밖에 튀지 않았지만 페터슨의 옷은 피를 뒤집어썼다는 점, 주변 인물의 증언도 확보했다. 검찰은 또 페터슨에게 칼을 건넨 것은 에드워드였으며 살인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동향을 살피는 등 적극 가담했음도 밝혔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기소할 수 없었고 작년 12월 22일 검찰은 페터슨을 살인혐의로 기소한다. 공소시효를 넉 달 앞둔 상황이었지만 검찰은 모처럼 쓸만한 생각을 해 낸다.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모면할 목적으로 해외로 도피하면 출국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올해 4월 2일로 끝나는 공소시효를 연장시킨 것이다.
미국 법정은 작년의 발표에서 2012년 4월 4일, 그러니까 사건이 발생한지 15년하고도 1일을 더한 날, 페터슨 한국 송환 공판 기일을 확정했다고 했다. 아마 이것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가부간에 결판이 날 것이다. 페터슨은 “처벌을 모면할 목적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이 미국으로 간 것 뿐”이라며 공소시효 만료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 법원이 “보석도 가석방도 안되는” 중범죄인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 송환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아들의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으로 죽음 이상의 고통을 당해 왔던 가족들에게 올해 4월 2일은 4월 3일 아들의 기일만큼이나 끔찍할 수 있는 해였다. 살인의 공소 시효가 15년이니 그 날이 지난다면 페터슨이 혀를 빼물고 내가 죽였다고 놀려도 처벌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15년 전 죽어간 한 대학생의 원혼은 여전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이제는 그 진상을 밝히고 죄인을 처벌하여 15년간 피를 토해 왔을 젊은이의 원혼을 위로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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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3일 이태원 살인 사건
1997년 4월 3일 밤 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버거킹 1층 남자화장실. 뭔가를 본 남자 손님이 구역질을 하면서 화장실을 튀어나왔고, 이윽고 한 젊은 여자가 달려들어갔다가 바로 다시 나온 뒤 울부짖는다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화장실에는 한 대학생이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죽어 있었다. 살해범은 잔인했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깊게 팬 상처는 아홉 개. 뒤에서 목을 세 번 찔렀고 피해자가 돌아보자 심장을 두 번, 쓰러진 뒤엔 다시 목을 네 번 씩이나 찔렀다.
범행 현장에 있던 혼혈 미국인 아서 패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패터슨은 미8군 기지로 들어가 피가 묻은 옷을 불에 태우고 범행에 사용한 칼을 버렸으나, 다음날 익명의 제보를 받은 범죄 수사대(CID) 요원에게 체포된다. 에드워드 리는 아버지의 추궁을 받고 범죄를 시인, 변호사와 함께 검찰에 자수한다.
4월 6일 미국 출장을 다녀온 에드워드의 아버지는 패터슨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자 에드워드를 추궁했고, 에드워드가 범죄를 시인하자 변호사를 만난 후 4월 8일 검찰에 자수한다. 하지만 패터슨과 에드워드는 서로 상대방이 피해자를 살인했고 자신은 옆에 있기만 했다며 범행을 부인했고, 결국 당시 수사기관은 두 명 모두 처벌하지 못한다. 검찰은 젊은 남자가 저항은 커녕 반항흔조차 남기지 못하고 칼에 아홉 차례나 찔렸다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완력이 우세하기 때문이라고 봤고, 단신의 페터슨보다는 거구의 에드워드에 더 혐의점을 둔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에드워드에게 불리했다. 1심 판결은 에드워드에게 무기징역, 2심은 20년을 선고하지만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뒤집힌다. 증거불충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년만에 에드워드는 무죄로 풀려난다. 증거 인멸 및 불법무기 소지 정도로 형을 살았던 페터슨은 출국 금지가 당국의 착오로 해제된 틈을 타서 잽싸게 미국으로 튀어 버린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는 사건, 바로 ‘이태원 버거킹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가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지금 일본에서 한창 뜨고 있는 장근석이 맡은 역이 페터슨이다. 그리고 그의 재미교포 친구가 에드워드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도 큰 파장을 낳았지만 그 이후로도 이미 가라앉은 듯 보였던 사건들을 수면으로 부상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결국 범인을 밝혀 내지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던 한국 사법 당국에 대한 질타와 더불어,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열망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2009년 12월 29일 검찰도 미국에 범죄인 인도 신청을 한다.
2009년 2년간의 재판 후 무죄를 선고받고 미국으로 갔던 에드워드 리가 다시 귀국한다. 그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며, 그를 위해 재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다. 패터슨이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이유는 당시 페터슨이 성년이었기에 사형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책임을 미룬 것이라고 얘기했다. 2011년 5월 한국 검찰은 페터슨이 미국 현지에서 폭행 혐의로 구속된 것을 파악하고 범죄인 인도를 대비한 보완 수사에 착수한다. 수사 결과는 페터슨이 범인이라는 것.
범행 당시 반항조차 못하고 칼에 찔렸다는 이유로 거구의 에드워드가 범인으로 지목됐지만 그때 피해자가 배낭을 메고 있었다는 것이 간과된 결과였다. 배낭을 낚아챌 경우 키가 작은 페터슨이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꼼짝못하는 상황에서 칼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피 몇 방울 밖에 튀지 않았지만 페터슨의 옷은 피를 뒤집어썼다는 점, 주변 인물의 증언도 확보했다. 검찰은 또 페터슨에게 칼을 건넨 것은 에드워드였으며 살인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동향을 살피는 등 적극 가담했음도 밝혔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기소할 수 없었고 작년 12월 22일 검찰은 페터슨을 살인혐의로 기소한다. 공소시효를 넉 달 앞둔 상황이었지만 검찰은 모처럼 쓸만한 생각을 해 낸다.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모면할 목적으로 해외로 도피하면 출국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올해 4월 2일로 끝나는 공소시효를 연장시킨 것이다.
미국 법정은 작년의 발표에서 2012년 4월 4일, 그러니까 사건이 발생한지 15년하고도 1일을 더한 날, 페터슨 한국 송환 공판 기일을 확정했다고 했다. 아마 이것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가부간에 결판이 날 것이다. 페터슨은 “처벌을 모면할 목적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이 미국으로 간 것 뿐”이라며 공소시효 만료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 법원이 “보석도 가석방도 안되는” 중범죄인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 송환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아들의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으로 죽음 이상의 고통을 당해 왔던 가족들에게 올해 4월 2일은 4월 3일 아들의 기일만큼이나 끔찍할 수 있는 해였다. 살인의 공소 시효가 15년이니 그 날이 지난다면 페터슨이 혀를 빼물고 내가 죽였다고 놀려도 처벌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15년 전 죽어간 한 대학생의 원혼은 여전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이제는 그 진상을 밝히고 죄인을 처벌하여 15년간 피를 토해 왔을 젊은이의 원혼을 위로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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