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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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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3.30 팔레스타인 땅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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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76년 3월 30일 팔레스타인 “땅의 날”

교회에 다니지는 않더라도 주일학교라도 가 보고 성경 몇 줄 읽어 본 사람에게도 친숙한 지명이 있다. ‘갈릴리’다. 예수가 누빈 주요한 포교의 현장이며, 예수는 12 제자 가운데 11명을 이곳에서 거둔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행해진 것도 갈릴리였고, 믿음이 부족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풍덩 빠진 곳은 갈릴리 호수였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는 팔복(八福)의 산상수훈이 베풀어진 곳도 산 위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한,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이었다. 예수가 살던 시대에는 확실히 유대인들의 터전이었고 밥줄이었고, 삶의 무대였다. 그러나 로마 제국에 반항하여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선 크고 작은 반란에 진저리를 친 로마 황제의 추방령으로 유대인들이 제국 곳곳, 또는 동방으로 흩어지면서 이곳은 유대인 아닌 이들의 거처가 된다. 그렇게 속절없는 세월이 2천년 가까이 흘렀다.

오랜 동안 아랍인들이 자신들의 누대의 고향으로 알고 살아온 팔레스타인에 별안간 불한당같은 다비드의 깃발들이 꽂히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였다. 세계대전을 벌이는 와중에 다급했던 영국이 유태인들과 아랍인들 양쪽에 전혀 다른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천대받고 차별받던 유럽을 벗어나 수천 년 전 자신의 조상들이 천신만고 끝에 차지했던(또는 차지했다고 주장하는) 약속의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뒤통수 맞은 아랍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그 이후 팔레스타인은 총성과 비명의 광란에서 놓여나지 못하게 된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을 지낸 샤론의 말은 이스라엘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를 웅변으로 드러내 준다. “우리를 나치 이스라엘이라 불러도 관계없다. 죽은 성자보다는 산 나치가 낫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이스라엘 독립과 더불어 수십만의 난민이 생겨났고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이 유럽에서 독일인들에게 당했던 그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에 나선다. 철조망을 치고, 벽을 쌓았으며 히틀러가 아리안 인종의 ‘레벤스라움’ 즉 생활 영역을 요구했던 것처럼 유태인들의 정착촌은 스스럼없이 아랍인들의 땅으로 파고들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독립과 함께 이스라엘 땅이 됐다. 그나마 그 주변은 아랍 국들이 장악하고 있어 이제나 저제나 이스라엘을 물리칠 초승달 군대의 희망이 있었으나 6일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인근의 골란 고원까지 장악해 버림으로써 갈릴리에서의 이스라엘의 입지는 공고해졌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던 버릇 그대로를 또 다시 실천에 옮긴다.

“갈릴리의 유대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계획은 갈릴리에 50개의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는 갈릴리 지역의 인구 분포 주류를 팔레스타인인에서 유대인으로 바꿔 놓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이러한 ‘알박기’를 통해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유대인의 ‘실효적 지배’를 실현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거나 재산을 잃어야 했다. 이스라엘 당국의 노골적이고도 사악한 토지 몰수 정책에 대응하여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일대 반대 투쟁을 계획한다. 1976년 3월 30일이었다.
봉화는 갈릴리에서 올랐지만 시위는 갈릴리에 한정되지 않고 이스라엘 전역으로, 서안 지구로, 가자 지구로,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퍼져나간다. 갈릴리의 아랍 주민들에게 각지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연대’를 보여 준 것이다. 항상 하나되어 숙적 이스라엘을 격멸하겠다고 찰떡같이 말했지만 늘 결정적일 때 주저하거나 또는 너무 서두르거나 엇박을 내서 이스라엘 에게 개떡처럼 망신을 당했던 아랍국들과는 달리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당신들은 우리들이다”면서 시위에 가담했다.

4천 명 이상의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들은 이스라엘 내에서,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서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진압했고, 그 결과 6인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단결된 그들의 모습에 스스로 감동받았다. 시위 지도자 타우피크 지아드의 외침은 그 감동의 축약이자 선언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지역간의 차이도, 종교 분파도 없을 것이며, 팔레스타인 민족의 일부로써 단일한 아랍 소수민족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3월 30일은 ‘땅의 날’로서 기념된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팔레스타인 인들은 대규모 시위와 문화제가 열려 팔레스타인의 생존을 과시하고 그 의지를 증거한다. 이미 압도적인 무력의 보유자가 되어 버린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신들의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면서 그들은 해마다 돌아오는 오늘 땅의 날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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