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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31 조선 태형령 페지 -행동으로 얻은 볼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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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20.3.31 조선 태형령 폐지 - 행동을 통해 얻은 볼기짝의 자유



 뭔가 일이 안 풀리거나 꼴같잖은 꼴을 봤을 때 ‘넨장할.....’,이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젠장’이라는 감탄사(?) 역시 이 ‘넨장할’ 또는 ‘넨장맞을’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넨장의 어원은 난장(亂杖)이다. 즉 넨장할 또는 넨장맞을의 뜻은 장형(杖刑)에서 매의 굵기와 종류와 쳐야 할 부위를 가리지 않은 채 마구 두들겨 팰 일이라는 뜻이다. 매를 때려 사람을 징벌하는 일의 역사는 유구하다. 21세기의 한국에서도 교사라는 분들이 ‘매를 금지하면 교육이 안된다.’고 떠들고 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의 호통과 “저놈을 매우 쳐라.”의 선고는 갑오경장 때 일단 막을 내렸다. 죄인에 대한 형벌에서 태형을 제외한 것이다. 일본보다는 늦었지만 중국보다는 빨랐다. 중국은 중화민국이 서기 전까지 태형 제도가 살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19세기에 폐지됐던 태형은 20세기에 되살아난다. 일본 총독부에 의해서였다. 경술국치가 있던 그 해에 떨어진 범죄 즉결령에 따르면 즉결권을 가진‘경찰서장, 헌병분대장 및 분견소장’들은 ‘3개월 이하의 징역, 100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야 할 죄, 구류·과료’에 해당한 경우 혐의자를 태형에 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12년 3월에는 아예 ‘조선 태형령’을 선포한다.



이에 따르면 태형은 3월 이하의 징역 또는 구류에 처해야 할 자에 대해 정상이 있을 때와 100원 이하의 벌금 및 과료에 처할 자가 일정한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자산이 없을 때 부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일본 총독부는 자애롭게도(?) 여자는 이 태형에서 제외하여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자에 한하도록 하였다. 조선인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하루에 태 30대를 기준으로 하되 1·2회 나눠 집행토록 하는가 하면, 꼭 ‘마실 물’을 주어야 한다고 규정했고 매를 때리다가 ‘냉각’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그리고 이 수치스런 광경은 비밀로 한다는 친절까지도 베풀었다. 거미줄에 걸린 파리에게 베푸는 거미의 선의라고나 할까. 먹이를 삼키면서 흘리는 악어의 눈물이라고나 할까.


 일본에는 1882년 사라진 태형이었건만 일본 관헌들은 이 태형령 하에서 마음놓고 조선인들을 두들겨 팼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조선인들은 천하의 등신들이었다. 한 나라가 송두리째 남의 나라에 넘어갔건만 주먹 부르쥐고 일어선 것은 낫 들고 도끼 흔드는 일부 농민들과 말단의 병사들이었을 뿐이고 일본인들이 생각하기에 할복을 해야 마땅하고, 아니면 최소한 싸우다가 죽어야 할 왕이나 최고급 양반들은 양순히 일본의 ‘보호’를 받아들이거나 되레 속곳 벗고 발가벗은 모습으로 자신들에게 아양을 떨고 있었다. 저런 배알도 없는 것들에게 나으리 나으리 하며 굽신거리는 나약한 무골충들에게 무엇을 거리낀단 말인가. “조선놈들은 맞아야 정신이노 차린다데스.”



 순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도 일제 시대를 경험한 이모가 “순경 온다 순경!”이라고 경찰에 대한 공포로 울음을 그치게 했던 기억이 있거니와, 주재소 순사에게 걸리면 일단 ‘맞고 시작’하는 것이 조선인들의 다반사였다. 어지간한 범죄나 시비는 태형으로 끝냈다. 재판과 행형 시스템에 드는 경비가 부족한 이유가 컸지만, 그 근저에는 겁 주면 겁 먹고,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양순한 조선인들에 대한 멸시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경찰범처벌규칙’ 87개조 가운데 한 가지에 해당할 경우에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이런 조항들이 있다. 일정한 주거 또는 생업 없이 배회하는 자 (2조). 함부로 대중을 취합하여 관공서에 청원 또는 진정을 남용하는 자 (19조) 불온한 연설을 하거나 또는 불온문서·도서·시가詩歌를 제시·반포·낭독하거나 큰 소리로 읊는 자 (20조) 이유 없이 관공서의 소환에 불응하는 자.(30조) 경찰관서에서 특별히 지시하거나 명령하는 사항을 위반하는 자 (32조) 즉 일본 당국이 보기에 껄끄러운 행동을 하는 이들은 모조리 잡아들일 수 있었고, 그들이 벌금을 낼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어김없이 태형이었다.



“경찰이 범죄자로 지목한 모든 사람은 사법에 정해진 절차에 의하지 않고 바로 체포하고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친족이나 친구에 주련株連하여 사실의 유무와 경중을 불문하고 신문에 앞서 혹형을 가하였다. 그 결과 인사불성이 되게 하여 여러 날을 감금한 뒤에 비로소 심문하였다.” (박은식)


“까불면 맞는다.”를 고수하던 일본이 태형령을 거둔 것은 1920년 3월 31일 오늘이었다. 우리는 그 전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 밟으면 꿈틀하는 지렁이보다도 못하다고 여기던 조선인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던 3.1 항쟁이었다. 일부 별종을 제외하면, 일본인들이 때리는 매에 아이쿠 아이쿠 울부짖고 눈물 훔칠 줄만 아는 약종으로만 치부했던 조선인들이 총칼 앞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덤비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조선 인민 대중이 그 우두머리를 졸졸 따르는 들쥐같지만은 않으며, 자신들의 권리와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 줄 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매로만 다스린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3.1 운동 후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은 태형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도록 한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매질에 맛들려 있던 총독부 관료들은 “조선의 실정과 민도에 비해 너무 이르다.” (참 내, 이 논리가 21세기 학교 교사들에 의해 반복되다니)고 반대하지만 사이토는 이를 무릅쓰고 조선 태형령 폐지를 결정한다. “본 형벌과 같이 육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는것은 현대문명사상에 의한 형벌의 성질과 어긋날 뿐아니라 현재 조선인은 현저하게 향상 자각했고 그 민도(民度)가 옛날같지 않기에 태형을 폐지하여 기본형인 징역 또는 벌금으로 임하는것도 형정상 조금도 지장이 없다고 인식한 까닭이다.” 조선인들의 향상(?)된 민도를 보여 준 것은 바로 조선인들의 행동이었다.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설 줄 알고, 주먹을 쥘 때 쥘 줄 알고, 소리쳐야 할 때 소리칠 줄 안다는 것을 증명한 3.1 항쟁이었다. 우리 민족은 그렇게 볼기짝의 자유를 얻었다.



2011년 오늘에 이르러 다시금 행동을 통해 얻어낸 권리와 자유를 생각한다. 비단 일제가 아니더라도 어느 시대 어느 세상의 지배층도 그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자발적으로 그들이 다스리고 지배하는 인민들에게 선의를 베푼 적은 없다. 우는 아이에게 젖 주고, 밟으면 꿈틀이라도 해야 발걸음을 조심하는 법이다. 대한민국 제 6공화국의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게 권력을 준 국민을 사찰했다. 국헌을 준수할 것을 선서한 맹약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헌법이 규정한 감시당하지 않을 국민의 권리를 짓밟았다. 그러고도 “80퍼센트는 전임 정부가 한 것”이라는 포항 과메기도 웃다가 배 터져 죽을 변명을 변명이라고 하고 앉았다. 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충성도를 별점으로 매겼더란 말인가.



공무원이나 공무를 담임할 자의 태도나 능력, 평판과 자질을 점검하고 조사하는 일은 천국의 정부도 한다. 그러나 그 판단 기준을 자신에게 순종하느냐 거스르느나에 두고, 거기서도 한 발 더 나아가서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옅으냐 짙으냐로 별점을 매기고 못마땅한 이들은 잡아들여 곤욕을 치르게 했다면 이것은 악마의 정부가 하는 일이며, 볼기짝을 까고 몽둥이를 치지 않았을망정 공화국의 시민에게 정신적 태형을 가하는 야만에 다름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정부가 한 일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는다면, 그러고도 에이 세상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간다면 우리는 일본 순사가 부르는데 왜요? 한 마디 했다는 이유로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맞고도 어 운수 나쁜 날이구나 침 한 번 뱉고 넘어갔던, 나무로 깎은 등신같은 조선인들에 다름아니게 될 것이다. “조선놈들은 맞아야 정신차린다데스”라고 지껄이던 일본 순사는 “걱정하지 말고 신상 다 뒤져. 조사하면 다 나와. 이명박 때도 별 일 있었나 뭐.”라고 자신만만해하는 통치자로 현신하게 될 것이다.



국민사찰 인권유린 이명박 정권 타도하자. 촛불 시위 때에도, 또는 이명박 정부가 무슨 삽질을 할 때에도 개인적으로 ‘타도’를 입에 담은 적은 없었다. 밉든 곱든 선거로 뽑힌 정권이고, 공화국의 국기와 헌법을 현저히 유린하지 않는 한 쉽사리 타도를 외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정권은 기어코 그 말을 들을 자격에 도달하고 말았다. 나라의 시침을 송두리째 수십 년 전으로 돌려놓고 말았다. 그들은 우리의 볼기짝을 때렸다. 모질고 혹심하게 볼기짝을 까고 난장을 쳤다. 행동하지 않으면 권리도 없다 그 매든 손을 비틀고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허구헌날 볼기짝을 까고 아이고 아이고 소리나 내는 바보 천치로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조선 태형령이 폐지된 3월 31일, 다시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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