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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군과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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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군과 박은정

삼국사기에 보면 이런 인물이 나온다. 대사라는 벼슬을 지낸 구문의 아들 검군. 대사(大舍)라는 벼슬은 신라 관등 가운데 12번째 벼슬로 4두품에게도 허락된 것이었으니 지체 높은 집안의 자제였다고 보긴 어렵겠다. 검군도 사량궁(沙梁宮)의 사인(舍人)이라 했으니 고만고만한 벼슬아치였을터. 서기 627년 가을 음력 8월 이른 서리가 내려 여러 농작물을 말려 죽이는 바람에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팔아 끼니를 메우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 사량궁의 관리들은 작당을 해서 나라 창고의 곡식을 나눠 착복한다. 그런데 검군만이 그를 받지 않았다. 이에 다른 사인들이 검군을 꼬드긴다.

"아니 다들 받았는데 왜 자네만 마다하는 건가? 적어서 그래? 그럼 좀 더 신경써 줄께.".

사람 사는 건 천 년 전이나 2천 년 전이나 다를 것이 없다. "새끼 혼자 잘난 척은" 하면서 침을 찍 뱉는 치들도 있었을 것이고 괜히 걱정해 주는 체 하면서 "모난 돌이 정 맞어. 다 자네를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하면서 "자 내가 신경 좀 썼네" 하면서 두둑한 곡식 주머니 내미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검군은 '웃는다'. 정색을 한 것이 아니고 웃는다. "내가 명색이 이찬 나으리의 자제 근랑의 문도로 이름을 걸어 두고 화랑의 뜰[風月之庭]에서 수행을 했는데 옳은 일이 아니라면 천금을 준대도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겠소."

또 한 번 사람 사는 것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직한 사람은 항상 있었고 그를 중뿔난 놈으로 몰아부치고 조직에 해를 입히는 존재로 폄하하여 그를 찍어내고야 마는 쥐새끼같은 소인배들은 항상 더 많이 있었다. 검군의 동료들이 그랬다. 그리고 좀 더 막나가는 이들이었다. " 이놈을 죽이지 않으면 말이 새나갈 거야. 그럼 우린 다 죽는 거라고." 작당을 한 그들은 이미 양심 같은 것은 손톱처럼 잘라 버린다. 그들은 드디어 검군을 독 먹여 죽이기로 하고 그 음모의 술자리로 부른다.

검군은 그를 초대한 자리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화랑으로 모시던 이찬의 아들 근랑을 찾아가 이별을 고한다. "오늘 이후에는 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근랑은 크게 놀랐다. 두 번 세 번 이유를 물은 뒤에야 검군은 '대략' 내막을 밝힌다. 소상히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가 음모를 꾸며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고해 바치고 도움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님을 뜻할 것이다.

근랑이 말한다. "왜 담당 관청에 알리지 않는가?" 그러자 검군은 이렇게 답한다. "제 목숨이 두려워 남을 죄에 빠지게 하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

거듭 거듭 예나 지금은 다를 것이 없다. "그냥 내가 피해보고 말지 일 시끄럽게 만들기 싫습니다." 라는 얘기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무지하게 많이 듣지 않는가.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쓸쓸히 사라지는 이의 뒤켠에서 얼마나 많은 쥐새끼들이 찍찍거리는지 알지 않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 자신이 사실을 밝히고 발고한들 자신의 동료들보다 더 해쳐먹었을 '담당 관청'의 관원들의 행태가 어떨지는 검군 그리고 그를 이끄는 화랑인 근랑 자신이 더 잘 알지 않았겠는가. 오늘날의 우리들도 검군 같은 이들이 부딪치게 되는 그 높고도 살벌한 장벽의 두려움에 대해 암암리에 또는 공공연하게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검군은 이런 심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죄를 짓기는 죽기보다 싫고 죄에 가담하지 않자니 죽을 만큼 답답하고, 차라리 나 혼자 죽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근랑은 갑자기 위엄을 잃는다. 그리고 임전무퇴를 뼈에 새긴 화랑으로서는 상상 못할 비겁한 소리를 입 밖에 낸다. "그...그럼 어떻게 도망이라도 가지 그러나."

그때 검군은 하늘같이 모시던 화랑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굽은 건 저들이고 곧은 건 저인데 되레 도망가는 것이 어찌 대장부겠습니까." 이때 근랑의 표정이 어떠하였는지는 기록이 없다. 누군가의 희생을 말릴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무능한, 그러나 고귀한 신분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검군은 동료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곳으로 갔다.

동료들은 검군에게 사과의 뜻으로 술자리를 펼쳐 놓고 (酒謝) 사죄하였다. 그런데 그 음식에는 독이 섞여 있었다. 검군은 이를 알고도 음식을 꿋꿋이 먹었다 (劒君知而强食) 그리고 죽었다. 독 기운에 온몸이 굳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검군 앞에서 그 동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였을까. 장담하는데 “녀석 잘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사악한 치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안타까와하면서 “조금만 생각을 고쳐 먹었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고, “검군 때문에 다 죽을 수는 없잖아. 처자식이 몇 명인데.” 하면서 애써 위안하는 새가슴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리라. 그러나 결론은 같다. 그 모두는 살인자들이었다. 살인의 공모자들이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의로움을 생매장한 파렴치한들이었다.

네 번째로 말한다. 사람들이 벌이는 일은 서기 627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검군의 죽음을 본다. 어느 날, 대한민국 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연수원 깃수 한참 위의 선배 판사로부터 느닷없는 전화를 받았고 그 판사는 국회의원의 남편이었으며 검사는 그 국회의원과 관련한 사건을 맡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문제의 국회의원 나경원을 제외한 모든 이가 안다. 판사가 검사에게 전화하여 ‘기소’를 청탁하는 것은 내놓고 도둑질을 하겠다는 시러베아들의 선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화한 건 맞는데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우긴다면 음주는 했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어느 딴따라의 치졸한 변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남편이 기소 청탁을 했다는 보도에 국회의원은 발끈했고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해당 언론사를 고발했다. 검사가 입을 다물면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후임 검사의 말대로 “오래 되어 기억에 없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건방지게 국회의원을 물고 늘어진 장삼이사쯤은 벌금 몇 푼으로 다스리면 될 일인데 결기 세울 것도 없었다. 사량궁의 나라 곡식들을 알아서 분배하던 검군의 동료들처럼 ‘우리들만 입 다물면’ 아무 일도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박은정 검사는 그 편리한 합의를 거부하고 말았다. 상습 절도범이 된 지적장애인에게 중형을 구형하는 대신 치료를 주선하고 그 비용까지 경감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 주던 오지랖 넓은 검사는 자신이 해당 판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이 공개됐다.

상식이 있는 나라라면 불러들여 감찰을 해야 하는 것은 그 판사다. 무릎맞춤을 시켜서라도 네가 전화했던 것이 사실이냐를 묻고 또 ‘오래 돼서 기억에 없다’거나 ‘청탁한 적이 없다.’고 붕어를 삶아드셨다면, IT 강국답게 엔터 한 번이면 드르륵 뽑히는 통화 내역을 손에 쥐고 이 통화는 그럼 데이트 신청이었느냐고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무 감찰을 받았다고 소문이 난 것은 난데없게도 검사였다. 그녀의 죄라면 자신이 겪은 범죄적 사실을 공개한 죄 밖에 없는데. 양심을 지킨 죄 밖에 없고, 정말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 죄 밖에 없는데...... 그리고 오늘 박은정 검사는 사의를 표했다.

도대체 왜 그녀가 사직해야 하는가. 지구상 어느 구석진 곳의 토후국도 아니고, 천 년 전의 골품제 왕국도 아닌, 법치주의를 숭상한다는 공화국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검사가 ‘정들었던 검찰’을 떠나야 하는 이런 개 같은 경우는 없다. 검군이 섬겼던 근랑이 검군에게 “왜 담당 관청에 고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던 것처럼 “조용히 내부에서 해결하면 되지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한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근랑이 검군에게 “도망이라고 가라.”고 한 것처럼 자기가 정히 더러우면 사표 쓰고 나가 변호사 사무실 차려 전관 예우 장히 받아먹으면 될 일을 꼬장꼬장 검군처럼 잘난 체한 죄를 입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법치국가를 자임하는 나라의 사법부와 검찰 내부에 온통 신라 시대 검군의 동료들같은 쥐새끼들이 들끓고 있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사표를 반려하겠다고 대검이 밝혔다지만, 문제는 사실을 얘기한 한 검사가 그 때문에 ‘사의’를 표하게 되는 그 칠흑같은 분위기다.)

판사가 어이 박 검사 그건 좀 잘 부탁한다고 부탁하고, 검사가 판사에게 전화하여 형님 이번 재판 좀 잘 봐 주시오 뻗대고, 그렇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일정한 자리에 오른 뒤 옷 벗고는 여어 후배님들 선배 사정 좀 봐 주게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는 게 당연한 사법부라면, 그에 반하는 검사 나부랭이쯤은 일 터진지 하룻만에 사표를 결심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스스럼없는 법의 탈을 쓴 양아치들이라면, 백성들이 자식 팔아 끼니를 메우는 동안 나라 곡식을 사이좋게 나눠 먹고 그를 거절하는 검군에게 독주를 먹였던 시궁쥐같은 검군의 동료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다섯 번째로 말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 검군은 그렇게 죽었는데 삼국사기 열전은 “ 검군은 죽어야 할 바가 아닌데 죽었으니 태산을 기러기 털보다 가벼이 본 사람이라 할 만하다.”는 어느 군자(君子)의 평으로 끝난다. 자기 낭도의 어이없는 죽음에 분노한 근랑이 그 생쥐같은 관리들을 징치했다거나 검군에게 독을 먹인 동료들이 후일 자신들의 죄를 늬우치고 그 묘소에서 통곡했다거나, 성난 백성들이 관리들 목을 매달고 의로운 검군을 추모했다거나 하는 이야기의 흔적조차 비치지 않는다.

아마 우리도 그럴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성실한 검사였는지를 얘기하고 그녀가 사직서를 낸 것에 "그러면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자신의 식견을 과시하는 것 말고는 박 검사를 몰아낸 쥐새끼들에 대해서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다가 세월이 가면 잊어갈 것이다. 역시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토록 훌륭하게 그 습속을 고스란히 유전 받아 후세에게 물려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유전도 아니고 복제에 가깝지 않은가. 검군이 있고 검군의 동료들이 있고 근랑이 엄존하고 제 새끼 팔아서 끼니 때우면서도 관리들이 무슨 짓을 하든 넋놓고 있던 백성들이 유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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