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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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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윤민석씨를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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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구경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만의 경험은 아니겠지만, 종로통 청계천변, 그리고 광화문 앞에서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거기서 만난 동아리 학번이 81부터 06까지였으니 스물 몇 해의 세월을 사이에 둔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있었던 셈이죠.  문자도 연신 날아들었습니다. “너 여기 와 있지? 어딨냐? 조심해라” 는 고마운 친구의 문자부터 “야 어딨냐. 대충 하고 술 먹자.”는 예나 지금이나 일생에 도움 안되는 녀석의 유혹까지. 

 하나 불만인 게 있었습니다.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쩌면 그렇게 구닥다리들 밖에 없습니까 그래.  그나마 광우병 시위를 처음 시작했던 중딩 고딩들은 발랄하고 명랑하고 댄스곡도 서슴지 않아 좋았건만 마흔 넘은 사람들이 자기들 젊을 때 부르던 노래를 각잡고 부르는데 그거 참 열적습디다.  아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부르는 건 좋은데 안녕 안녕 군부독재여 안녕을 왜 부르냐고.  군부독재 사라진 게 언젠데 말이야;. 왕년의 운동권 노래들이 난무하니까 신들이 나서는 오만가지 감정 잡아 부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분위기는 영 뒤섞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쿵쾅거리는 앰프 소리와 함께 한 노래가 들려 왔습니다.  아주 경쾌하지만 너무나 쉬운 멜로디, 그리고 그 가사는 굳이 외울 필요가 없었던 한 노래였지요.  ‘대한민국 헌법 1조’였습니다.  도무지 노래 가사로 승화될 것 같지는 않은 딱딱하고 엄숙한 법 조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노래를 듣고 바로 따라 부르면서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야 바로 이거다. 함께 길 가면서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는 노래도 좋고 자유여 민주여 내 생명이여도 감동이지만, 그 순간 이 노래만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심경과 각오를 대변해 주며, 또한 별다른 정서적 준비 없이도 발을 구르며 1분 내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어디 있었겠어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한 음 올려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그리고는 마치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발표하는 자세로 터뜨리는 거지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 력! 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똘복이가 반나절만에 한글을 깨치듯,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단 5분만에 노래를 마스터하고 돌림노래까지 부를 수 있게 만든 건 누구였을까.  ”이거 누가 만든 거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에 저는 불경한 감탄사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윤민석이야 윤민석.“ ”아 젠장.“ 


  왜 그런 감탄사가 나왔느냐.  음 그건 신에게 보내는 항의였습니다.  같이 눈 코 입 박아 놓고 기타칠 손가락과 소리 들을 귀까지 심어 놨으면 좀 재주도 평등하게 주실 것이지, 어떻게 윤민석 같은 사람에게만 축복을 샤워기로 뿌려 주실 수 있냐 하는 불만이었지요.  윤민석의 이름을 모르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80년대 말 이후 대학 생활을 한 사람 치고 그가 지은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전대협 진군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애국의 길> <서울에서 평양까지> <하늘>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지금은 세상에 없는 제 친구는 그의 노래 중에 <사랑하는 동지에게>를 좋아했었습니다. 형편 어려운 법대 장학생이었던 녀석은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장학금을 놓쳤고 아버님이 직접 입영원을 내 버려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지방 집에 갔다가 서울에 올라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녀석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었지요.  

 그리고 며칠 후 5공비리 규탄 국민 대회가 열렸고 거리에선 입학 후 가장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대학로에서 종로까지 행진하고 롯데 앞에서 대가리 터지게 싸우고 하여간 구속 전두환 퇴진 노태우 소리에 목이 쉬어버린 다음에야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단골 술집으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른 동아리방, 뜻밖에 문이 삐죽이 열려 있고 불빛이 새어나왔습니다.  어?  누굴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는데 안에서 노래 가락이 점점 크게 들려 오더군요.  훌륭한 기타에 비음 섞인 노랫 소리 바로 윤민석의 초기작 “사랑하는 동지에게”였습니다.    

동지여 슬퍼마소서 우리는 승리하리니  지금 비록 힘들고 외로울지나 
동지여 슬퍼마소서 그길에 하나되리니 눈을 들어 그날을 바라보소서 
우리의 가는길에 새벽이 살아 숨쉬고 우리의 가슴엔 반도의 청맥이 꿈틀거리오 
가자 동지여 투쟁의 화살되어 해방 그 함성으로 되돌아오자 

 동기 녀석은 여러 사정상 시위 같은 것에 참여한 적이 드물었습니다. 난 투쟁 같은 거  안혀~~~라고 능글능글거리면서도 그는 이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반도의 청맥이 꿈틀거리오’라는 부분을 부를 때는 ‘비암이 가슴속에 기어가는 것 같다’고도 했지요. 사람이 등 뒤에 서서 발바닥 까닥거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는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직한 등을 들먹거리면서 그가 ‘반도의 청맥이 꿈틀거리오’라고 외칠 때 제 마음 속에서도 뱀 몇 마리가 기어가며 제 콧날과 눈두덩을 물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 방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그의 노래일 수도 있겠구나....... 투쟁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해방이 뭔지도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 노래를 친구 녀석과 함께 부르며 목이 메었던 기억을 함부로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검색조차 안되는 노래이지만 그 노래를 불러 준 윤민석씨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친구와의 추억 한 조각을 맘 깊숙이 꽂아 주었으니까요. 더구나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고 술자리에서 건배 정도는 두어 번 나눠 본 것 같지만, 지금은 얼굴 윤곽도 기억나지 않는 그에게 저는 그렇게 약간의 빚을 졌습니다.  그것은 저 뿐이 아닐 겁니다.  <전대협 진군가>를 부르면서 길바닥에 누웠던 이들에게는 그 짧고 아팠던 청춘의 기억일 것이고,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를 부르면서 지금은 서로에게 고통 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 건너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를 부르며 펑펑 눈물 흘리던 전교조 선생님들에게는 다시 없는 위안이었을 것이며, 어느 택시 기사의 넋두리를 그대로 가사로 하여 만든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분단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가장 신명나게, 하지만 가장 서글프게 묘사한 노래로 남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이 존재하는 한, 공화국의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노래이자 무기이자 함성으로 남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의 노래에 약간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오늘 그 약간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제 선배가 올린 글을 가져와 봅니다.  

 “민석이형 아내의 병세가..(아내와 가족을 걱정하여 자세한 말은 함구하라 부탁하셔서)
... 젊은 날부터 시작된 암투병인지라 변변한 보험도 없고 오랜 투병으로 별다른 여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병실이 없어 3일간 응급실 앞 야전침대에서 치료를 받다 겨우 나온 병실이 특실 뿐이라... 급한대로 입원을 했고 일반병실이 비는대로 옮길 계획이지만 그 또한 기약없는 일입니다. 
 젊은 시절 반복된 투옥으로 몸도 맘도 많이 상했고, 작곡가라면 당연히 받아야할 저작권료 한번 변변히 챙기지도 못하고 자신의 음악을 역사에 내어준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에 눈물 흘리고, 그의 음악에 가슴 뛰던 청춘의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관심과 도움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큰 액수이면 좋겠지만 1,2만원이라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 병을 어찌해줄 수는 없지만, 그의 노래가 많은 이들 가슴에 여전히 기억되고 있음을, 믿음을, 희망을 전해주세요.”  

국민은행 043-01-0692-706 윤정환

(윤민석 본명입니다. 계좌번호를 물을 수가 없어서 형이 운영하시는 송앤라이프 계좌를 올립니다. )

 힘을 합쳐야 할 곳도 많고, 이리저리 도와 주어야 할 곳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주 약간만, 제가 졌던 빚을 갚고자 합니다.  윤민석을 아는 분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를 노래로 부르며 신나 했던 분들의 성원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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