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876년 2월 26일 잘못된 첫단추 병자수호조약
1876년 2월 강화부 연무당 앞. 수염 허연 조선 관리 하나가 착잡한 낯빛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 양복을 입은 동양인들 몇 명이 득의양양하게 제 갈길로 갔다.
... 조선 관리의 이름은 신헌.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무신이었으나 학문에도 밝고 개화론의 영수였던 박규수의 문하에 있기도 했던 신헌은 막 조선의 앞길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는 조약을 조정의 대표로서 체결한 참이었다. 병자수호조약이라고도 하고 강화도 조약이라고도 하는 조약이 조선 대표 신헌과 일본 대표 구로다 사이에서 1876년 2월 26일 체결됐다.
신헌은 접견대신으로 임명되어 강화도에 온 뒤의 일을 하나 하나 떠올렸다. 갑자기 대포를 쏘아대어 놀라 항의하니 "예포라는 것도 모르시오? 당신네를 환영하기 위한 거요."라고 찍찍 내갈기듯 말하던 일본인들. 한눈에 봐도 군기가 들어보이는 병정들. 자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거느리던 낡은 배들로는 도저히 어째 볼 자신이 안서는 서양식 군함. 수교냐 전쟁이냐는 식으로 윽박지르던 구로다. 그에 견주어 파리한 눈만 팬들거리는 남루한 군복의 조선군들과 이래도 예 저래도 예 그래서 예예정승이라 불린 영의정 이최응 이하 조정. 관심이라고는 자신들의 권력 확보 밖에 없는 민씨 척족들. 청나라 사신까지 개항을 권유한 이후 어차피 누가 체결해도 체결할 일이었지만 신헌은 가슴이 답답했다. 이후 그는 임금에게 고한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지(聖志)를 분발하셔서 신속하게 우환을 막을 수 있는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군국(軍國:統軍治國)에 큰 다행일 것입니다."
병자수호조약의 마지막 고비는 병자수호조약의 불평등한 조항을 둘러싼 시비가 아니었다. 조선국왕의 이름을 적느냐 적지 않느냐를 둘러싼 실랑이였다. 신헌은 임금의 이름이란 부르지도 못하는 것인데 어찌 문서에 적고 그 위에 도장까지 찍겠느냐고 항변했고 구로다는 '절교장'까지 건네면서 압박했다. 결국 은둔의 왕국은 일본에 굴복한다.
강화도 조약의 몇몇 부분을 다시 읽어 본다. 내용은 무척 부드럽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제 1'조. 조선국은 자주 국가로써 일본국과 동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이제부터 양국은 화친한 사실을 표시하려면 모름지기 서로 동등한 예의로 대우하여야 하고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권리를 침범하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이전부터 사귀어온 정의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여러 가지 규례들을 일체 없애고 되도록 너그러우며 융통성있는 규정을 만들어서 영구히 서로 편안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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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자주국으로 규정한 것이 청나라의 종주권을 부정하기 위함이었다 트집을 잡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 않으면 일본 대표 자신 강화도에 올 이유가 없지 않았겠는가. 어찌 보면 당연한 조항.
제4조.
조선국 부산 초량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공관이 세워져있어 양국 백성들의 통상 지구로 되어왔다. 지금은 응당 종전의 관례와 세견선 등의 일은 없애버리고 새로 만든 조약에 준하여 무역 사무를 처리한다. 조선국 정부는 제5조에 실린 두 곳의 항구를 개항하여 일본국 백성들이 오가면서 통상하게 하며 해당 지방에서 세를 내고 이용하는 땅에 집을 짓거나 혹은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을 짓는 것은 각기 편리대로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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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정하고 새로운 교역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소리. 이 와중에서 기존의 조선의 법과 제도가 무력화하는 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 "각기 편리대로 한다"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제6조.
이제부터 일본국의 배가 조선국 연해에서 혹 큰 바람을 만나거나 혹 땔 나무와 식량이 떨어져서 지정된 항구까지 갈 수 없을 때에는 즉시 가닿은 곳의 연안 항구에 들어가서 위험을 피하고 부족되는 것을 보충할 수 있으며 배의 기구를 수리하고 땔나무를 사는 일 등은 그 지방에서 공급하며 그에 대한 비용은 반드시 선주가 배상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지방의 관리와 백성들은 특별히 진심으로 돌보아서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도록 하며 보충해 주는 데서 아낌이 없어야 한다. 혹시 양국의 배가 바다에서 파괴되어 배에 탔던 사람들이 표류되어 와닿았을 경우에는 그들이 가닿은 곳의 지방 사람들이 즉시 구원하여 생명을 건져주고 지방관에 보고하며 해당 관청에서는 본국으로 호송하거나 가까이에 주재하는 본국 관리에게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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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점은 일본에 찍히고, 일본 상인들을 위한 조항임을 전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양국의 배'를 곁들여 니들도 보호받을 수 있다고 은근슬쩍 말 돌리는 센스.
제7조.
조선국 연해의 섬과 암초를 이전에 자세히 조사한 것이 없어 극히 위험하므로 일본국 항해자들이 수시로 해안을 측량하여 위치와 깊이를 재고 도면을 만들어서 양국의 배와 사람들이 위험한 곳을 피하고 안전한 데로 다닐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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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주권침해이고 양국의 배와 사람들의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영토와 영해를 헤집겠다는 소리인데 또 딴에는 그럴 듯하다. 통상의 안전을 위하여.
제9조.
양국이 우호관계를 맺은 이상 피차 백성들은 각기 마음대로 무역하며 양국관리들은 조금도 간섭할 수 없고 또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도 없다.
만일 양국 상인들이 값을 속여서 팔거나 대차료를 물지 않는 등의 일이 있으면 양국 관리들이 빚진 상인들을 엄히 잡아서 빚을 갚게 한다. 단 양국 정부가 대신 갚아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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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자유무역이라는 것이란다라고 훈계하는 일본 구로다의 말이 들리는 듯. 이 조항 하에서 조선 정부의 '어떠한 간섭'도 조약 위반이 되는 상황이 되는 건 좀 그렇다고 치고
제10조.
일본국 사람들이 조선국의 지정한 항구에서 죄를 저질렀을 경우 만일 조선과 관계되면 모두 일본국에 돌려보내어 조사 판결하게 하며 조선 사람이 죄를 저질렀을 경우 일본과 관계되면 모두 조선 관청에 넘겨서 조사 판결하게 하되 각기 자기 나라의 법조문에 근거하며 조금이라도 감싸주거나 비호함이 없이 되도록 공평하고 정당하게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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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고는 이게 왜 문제냐고, 우리도 똑같은 권리가 생긴 거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경제와 수혜자들의 규모 등을 따지지 않는다면 평등한 조약
제11조.
양국이 우호관계를 맺은 이상 따로 통상 규정을 작성하여 양국 상인들의 편리를 도모한다. 그리고 지금 토의하여 작성한 각 조항 중에서 다시 보충해야 할 세칙은 조목에 따라 지금부터 1개월 안에 양국에서 따로 위원을 파견하여 조선국의 경성이나 혹은 강화부에서 만나 토의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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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아주 평등해 보인다. 양국 상인들의 편리를 도모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제12조
이상의 11개 조항을 조약으로 토의 결정한 이날부터 양국은 성실히 준수시행하며 양국 정부는 다시 조항을 고칠 수 없으며 영구히 성실하게 준수함으로써 우의를 두텁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약 2본을 작성하여 양국에서 위임된 대신들이 각기 날인하고 서로 교환하여 증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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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정부는 다시 조항을 고칠 수 없으며 영구히 성실하게 준수함으로써 우의를 두텁게 할 것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아 "래칫 조항"이라고. 한 번 돌아간 톱니바퀴는 되돌릴 수 없다는 그 조항과 비슷한 조항이 140년 전에도 등장하고 있다.
흔히 병자수호조약을 '잘못된 첫 단추'에 비교한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은 단추 잘못 꿰어 비틀어진 옷매무시가 아니다. 말로는 "어 단추 잘못 꿰었군." 이라고 말하면서 꾸역꾸역 나머지 단추를 엉뚱한 구멍에 끼워넣고 있다면 그것만큼 배꼽을 잡을 일도 없을 것이다. 설마 우리가 그토록 우스워 보이지는 아니하리라. 아니하리라. 병자수호조약은 그때의 일일 뿐이리라. 우리는 신헌처럼 "성지(聖志)를 분발하셔서 신속하게 우환을 막을 수 있는 처분을 내려주시옵기를" 상주해야 할 일 따위는 전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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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2월 26일 잘못된 첫단추 병자수호조약
1876년 2월 강화부 연무당 앞. 수염 허연 조선 관리 하나가 착잡한 낯빛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 양복을 입은 동양인들 몇 명이 득의양양하게 제 갈길로 갔다.
... 조선 관리의 이름은 신헌.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무신이었으나 학문에도 밝고 개화론의 영수였던 박규수의 문하에 있기도 했던 신헌은 막 조선의 앞길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는 조약을 조정의 대표로서 체결한 참이었다. 병자수호조약이라고도 하고 강화도 조약이라고도 하는 조약이 조선 대표 신헌과 일본 대표 구로다 사이에서 1876년 2월 26일 체결됐다.
신헌은 접견대신으로 임명되어 강화도에 온 뒤의 일을 하나 하나 떠올렸다. 갑자기 대포를 쏘아대어 놀라 항의하니 "예포라는 것도 모르시오? 당신네를 환영하기 위한 거요."라고 찍찍 내갈기듯 말하던 일본인들. 한눈에 봐도 군기가 들어보이는 병정들. 자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거느리던 낡은 배들로는 도저히 어째 볼 자신이 안서는 서양식 군함. 수교냐 전쟁이냐는 식으로 윽박지르던 구로다. 그에 견주어 파리한 눈만 팬들거리는 남루한 군복의 조선군들과 이래도 예 저래도 예 그래서 예예정승이라 불린 영의정 이최응 이하 조정. 관심이라고는 자신들의 권력 확보 밖에 없는 민씨 척족들. 청나라 사신까지 개항을 권유한 이후 어차피 누가 체결해도 체결할 일이었지만 신헌은 가슴이 답답했다. 이후 그는 임금에게 고한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지(聖志)를 분발하셔서 신속하게 우환을 막을 수 있는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군국(軍國:統軍治國)에 큰 다행일 것입니다."
병자수호조약의 마지막 고비는 병자수호조약의 불평등한 조항을 둘러싼 시비가 아니었다. 조선국왕의 이름을 적느냐 적지 않느냐를 둘러싼 실랑이였다. 신헌은 임금의 이름이란 부르지도 못하는 것인데 어찌 문서에 적고 그 위에 도장까지 찍겠느냐고 항변했고 구로다는 '절교장'까지 건네면서 압박했다. 결국 은둔의 왕국은 일본에 굴복한다.
강화도 조약의 몇몇 부분을 다시 읽어 본다. 내용은 무척 부드럽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제 1'조. 조선국은 자주 국가로써 일본국과 동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이제부터 양국은 화친한 사실을 표시하려면 모름지기 서로 동등한 예의로 대우하여야 하고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권리를 침범하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이전부터 사귀어온 정의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여러 가지 규례들을 일체 없애고 되도록 너그러우며 융통성있는 규정을 만들어서 영구히 서로 편안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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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자주국으로 규정한 것이 청나라의 종주권을 부정하기 위함이었다 트집을 잡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 않으면 일본 대표 자신 강화도에 올 이유가 없지 않았겠는가. 어찌 보면 당연한 조항.
제4조.
조선국 부산 초량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공관이 세워져있어 양국 백성들의 통상 지구로 되어왔다. 지금은 응당 종전의 관례와 세견선 등의 일은 없애버리고 새로 만든 조약에 준하여 무역 사무를 처리한다. 조선국 정부는 제5조에 실린 두 곳의 항구를 개항하여 일본국 백성들이 오가면서 통상하게 하며 해당 지방에서 세를 내고 이용하는 땅에 집을 짓거나 혹은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을 짓는 것은 각기 편리대로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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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정하고 새로운 교역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소리. 이 와중에서 기존의 조선의 법과 제도가 무력화하는 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 "각기 편리대로 한다"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제6조.
이제부터 일본국의 배가 조선국 연해에서 혹 큰 바람을 만나거나 혹 땔 나무와 식량이 떨어져서 지정된 항구까지 갈 수 없을 때에는 즉시 가닿은 곳의 연안 항구에 들어가서 위험을 피하고 부족되는 것을 보충할 수 있으며 배의 기구를 수리하고 땔나무를 사는 일 등은 그 지방에서 공급하며 그에 대한 비용은 반드시 선주가 배상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지방의 관리와 백성들은 특별히 진심으로 돌보아서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도록 하며 보충해 주는 데서 아낌이 없어야 한다. 혹시 양국의 배가 바다에서 파괴되어 배에 탔던 사람들이 표류되어 와닿았을 경우에는 그들이 가닿은 곳의 지방 사람들이 즉시 구원하여 생명을 건져주고 지방관에 보고하며 해당 관청에서는 본국으로 호송하거나 가까이에 주재하는 본국 관리에게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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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점은 일본에 찍히고, 일본 상인들을 위한 조항임을 전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양국의 배'를 곁들여 니들도 보호받을 수 있다고 은근슬쩍 말 돌리는 센스.
제7조.
조선국 연해의 섬과 암초를 이전에 자세히 조사한 것이 없어 극히 위험하므로 일본국 항해자들이 수시로 해안을 측량하여 위치와 깊이를 재고 도면을 만들어서 양국의 배와 사람들이 위험한 곳을 피하고 안전한 데로 다닐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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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주권침해이고 양국의 배와 사람들의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영토와 영해를 헤집겠다는 소리인데 또 딴에는 그럴 듯하다. 통상의 안전을 위하여.
제9조.
양국이 우호관계를 맺은 이상 피차 백성들은 각기 마음대로 무역하며 양국관리들은 조금도 간섭할 수 없고 또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도 없다.
만일 양국 상인들이 값을 속여서 팔거나 대차료를 물지 않는 등의 일이 있으면 양국 관리들이 빚진 상인들을 엄히 잡아서 빚을 갚게 한다. 단 양국 정부가 대신 갚아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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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자유무역이라는 것이란다라고 훈계하는 일본 구로다의 말이 들리는 듯. 이 조항 하에서 조선 정부의 '어떠한 간섭'도 조약 위반이 되는 상황이 되는 건 좀 그렇다고 치고
제10조.
일본국 사람들이 조선국의 지정한 항구에서 죄를 저질렀을 경우 만일 조선과 관계되면 모두 일본국에 돌려보내어 조사 판결하게 하며 조선 사람이 죄를 저질렀을 경우 일본과 관계되면 모두 조선 관청에 넘겨서 조사 판결하게 하되 각기 자기 나라의 법조문에 근거하며 조금이라도 감싸주거나 비호함이 없이 되도록 공평하고 정당하게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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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고는 이게 왜 문제냐고, 우리도 똑같은 권리가 생긴 거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경제와 수혜자들의 규모 등을 따지지 않는다면 평등한 조약
제11조.
양국이 우호관계를 맺은 이상 따로 통상 규정을 작성하여 양국 상인들의 편리를 도모한다. 그리고 지금 토의하여 작성한 각 조항 중에서 다시 보충해야 할 세칙은 조목에 따라 지금부터 1개월 안에 양국에서 따로 위원을 파견하여 조선국의 경성이나 혹은 강화부에서 만나 토의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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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아주 평등해 보인다. 양국 상인들의 편리를 도모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제12조
이상의 11개 조항을 조약으로 토의 결정한 이날부터 양국은 성실히 준수시행하며 양국 정부는 다시 조항을 고칠 수 없으며 영구히 성실하게 준수함으로써 우의를 두텁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약 2본을 작성하여 양국에서 위임된 대신들이 각기 날인하고 서로 교환하여 증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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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정부는 다시 조항을 고칠 수 없으며 영구히 성실하게 준수함으로써 우의를 두텁게 할 것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아 "래칫 조항"이라고. 한 번 돌아간 톱니바퀴는 되돌릴 수 없다는 그 조항과 비슷한 조항이 140년 전에도 등장하고 있다.
흔히 병자수호조약을 '잘못된 첫 단추'에 비교한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은 단추 잘못 꿰어 비틀어진 옷매무시가 아니다. 말로는 "어 단추 잘못 꿰었군." 이라고 말하면서 꾸역꾸역 나머지 단추를 엉뚱한 구멍에 끼워넣고 있다면 그것만큼 배꼽을 잡을 일도 없을 것이다. 설마 우리가 그토록 우스워 보이지는 아니하리라. 아니하리라. 병자수호조약은 그때의 일일 뿐이리라. 우리는 신헌처럼 "성지(聖志)를 분발하셔서 신속하게 우환을 막을 수 있는 처분을 내려주시옵기를" 상주해야 할 일 따위는 전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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