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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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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2.14 "꽃의 여왕"의 피의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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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81년 2월 14일 산적 ‘꽃의 여왕’의 발렌타인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다. 서기 269년 결혼이 젊은이들의 용기를 좀먹는다고 여긴 로마 황제 클로디우스는 군인에 대한 결혼 금지령을 내린다. 그러나 인테렘나의 주교 발렌타인은 이를 어기고 사랑하는 남녀의 결혼식을 올려 주었고, 이에 진노한 황제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후 발렌타인은 연인들을 위한 수호 성인으로 떠받들어지고 오늘에 이른다는 것이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라고 한다. 물론 초콜렛 회사들의 상술일지언정,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교환되고, 회사 여직원에게라도 초콜렛을 받아먹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기분 좋은 날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1981년 2월 14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베마이 마을은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카스트가 높고 재산도 많은 이들이 모여 살던 이른바 ‘부촌’이었던 베마이 마을에는 뜻밖의 공포가 밀려와 있었다. 아니 어찌 보면 그 마을의 남자들이 자초한 공포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22명이라고도 하고 26명이라고도 하는 마을 남자들은 한 여자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입장은 완전히 반대였다. 산적의 일당으로서 마을로 끌려왔던 여자는 토끼처럼 파들파들 떨고 있었고, 건장한 마을 남자들은 빙글빙글 웃으며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 카스트 높은 남자들은 카스트 제도 자체에 들까말까 천민이었던 여자를 윤간했다. 그것도 며칠을 두고. 잔인하고, 끔찍하게, 기억하는 것조차 힘겹도록.

그런데 그 여자가 산적 두목이 되어 그 마을을 습격한 것이다. 카빈총을 빼든 여자의 눈에는 살기가 번득였다. 인도 북부 광야를 휩쓸던 산적 두목으로서 지주들을 습격하여 그 재산을 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의적 노릇을 하던 “꽃의 여왕” 풀란 데비는 자신을 유린한 남자들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산적들의 총이 불을 뿜었고 지체높은 카스트의 남자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22명이라고도 하고 24명 또는 26명이라고도 하는 지주들이 죽었다.

풀란 데비의 일대기는 참 파란만장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좀 특이했던 것이 인도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노동을 꺼리고 싫어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침대 하나와 자건거 하나, 염소 한 마리를 받고 마흔 한 살의 남자에게 그녀를 팔아버렸고, 풀란은 초경도 치르기 전에 ‘남편’의 ‘아내’가 된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학대를 못이겨 도망도 쳐 봤지만 “남편은 신이야, 잘 섬겨야 다음에 좋은 카스트로 태어나.”라고 조언하는 인도에서 갈 곳은 많지 않았다. 끝내 남편과 이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녀는 각지를 헤매다가 산적에게 납치됐고 거기서 그는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자신에게 따스하게 대해 주는 남자를 만났다.

비크람이라는 산적 두목의 애인으로 살면서 그녀가 했던 행동 중의 하나는 전 남편을 찾아가 작심을 하고 때려 준 일이었다. 열한 살 소녀를 물건 몇 개와 염소 한 마리로 사 와서는 짐승같이 하지만 인도에서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다뤘던 남편 역시 게거품을 물고 그녀 앞에서 기어야 했다. 또 그녀는 그녀처럼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팔려가는 소녀들을 구출해 돌려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산적들 사이에서 알력이 일어나 비크람이 죽고 상층 카스트 출신의 산적이 그 뒤를 이었는데 바로 그가 풀란 데비를 베마이 마을로 끌고 가서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던져 버렸다. 그 뒤 절치부심한 풀란의 복수가 1981년 발렌타인 데이에 벌어진 것이다. 한 인간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짓밟고 팽개쳤던 인간들은 복수의 여신이 주는 강철로 된 초콜렛을 받았다.

그녀는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거대한 산적 집단을 이루며 지주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또 천민들의 희망으로 활동했다. 악에 받친 공권력이 그녀의 조직을 죄어 들어가면서 풀란 데비는 더 큰 희생을 낳기 전 정부와 협상하여 자수할 것을 결심한다. 그녀가 내세운 조건은 여성에 대한 강간 금지, 아동 학대 금지, 동지들의 안전, 그리고 계급제 폐지였다. 그녀의 자수는 거창한 이벤트가 되어 수천 명의 지지자가 운집하여 환호하며 의적의 종말을 기념했다. 그녀가 2월 14일의 학살 등을 이유로 11년 동안의 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녀의 투쟁 지역에서는 천민과 여성의 차별을 합리화는 법안 55개가 철폐됐고 마침내 천민 정부가 들어섰다. 출소 후 그녀는 성차별과 천민 탄압에 항거하는 사회운동가로 변신한다.

“소위 강간은 인도의 시골 마을 곳곳에서 지금도 자주 일어난다. 카스트 높은 이들이 한 여자를 강간하려 할 때 그 가족들이 반대한다고 해 보자. 카스트 높은 이들은 그 가족들을 앉혀 놓고 그 앞에서 강간할 것이다. 당신들은 결코 그 굴욕감을 이해할 수 없다.” 면서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는 자신의 일대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 <밴디트 퀸>에도 불만을 터뜨렸다. “영화 속 나는 매일같이 훌쩍거리는 여성으로, 스스로 지각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여성으로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단순히 강간의 피해자로만 그려져 있지 않은가.” 이후 풀라 데비는 국회의원까지 되어 인도의 지긋지긋한 카스트 제도와 여성 차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끝내 그녀는 인도 남자와의 악연을 끊지 못한다. 2001년 7월 25일 그녀는 뉴델리에서 복면을 한 남자들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했던 것이다. 암살자들은 그녀의 얼굴을 주로 노렸다. 자동소총 총알 가운데 3발이 그녀의 뺨을 관통하여 갈갈이 찢어 놓았으니 그 참상이 오죽했으랴.

남편이 죽으면 그 몸이 화장되는 불길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오랫 동안 당연했던 나라, “남편은 신이니 잘 섬갸야 다음 세상에 좋은 카스트로 태어난다.”는 설교가 익숙한 나라에서 그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이들에게 어떻게든 응징을 감행했던 ‘여장부’ 풀란 데비는 그녀의 말처럼 슬프게 세상을 떠났다. “내 인생은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아마 그 끝도 그럴 것 같다.” 1981년 2월 14일 짐승같이 자신을 물어뜯던 야수같은 남자들을 응징하면서 그녀는 무슨 말을 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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