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97

고 손문권 PD의 명복을 빌며

$
0
0

 작년에 <트루맛쇼>라는 다큐 영화가 나와서 방송에 소개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속살을 들춘 바 있는데,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11년 전 <리얼 코리아> 때 생각이 떠나질 않았었다.  맛집 취재가 주요한 아이템이었으니까.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리얼 코리아>의 맛집 컨셉은 요즘과는 좀 달랐다. 주인의 인생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었으니까. 그러다보니 번듯한 식당보다는 허름하고 바퀴벌레도 종종 발견되는 순대국집, 설렁탕집, 삼겹살집 등이 많이 걸렸고, 정 반대의 의미로 사기꾼으로 몰리기도 했다. "우리 집같이 별볼일 없는 곳이 방송에 나온다니 아무래도 저 PD라는 사람 사기꾼 같다고 생각했지."라는 얘길 직접 듣기도 했으니까.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

 어떻든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끝내면 간혹 고맙다고 봉투를 내미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다들 젊은 PD들이어서 그랬는지 거기에 대해 좀 결벽증들이 있었다. 촌지 거부 방식도 다양했다. 나는 촬영 끝날 때쯤 카메라 챙긴 뒤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고선 바깥으로 나가서 방송 일정 알려주고 잽싸게 뒤돌아 뛰는 방식을 택했고, 한 PD는 촬영 후에 먹은 자신의 식사값 (혼자서 촬영했으니 1인분)까지 들이밀 사장님의 기를 질리게 해서 아예 촌지의 출현을 가로막기도 했다. 단, 방송 후 사장님들이 고맙다고 팀원들 데리고 오라는 요청을 되풀이하실 때는 가끔 팀원들이 출동하는 경우는 있었다.

 


 한 PD가 "오늘은 제가 촬영한 곳으로 갑시다. 사장님이 매일 전화가 와서 못견디겠습니다."고 했다. 왜 매일 전화오게 하냐 진작에 가지! 팀원들은 퇴근 후 그곳으로 향하여 포식을 했다. 삼겹살이었던 것 같은데,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은 오늘은 자기가 사는 거니 맘껏 먹으라고 선언하셨다. 실컷 먹은 뒤에 일어서는데 사장님이 나를 살짝 보자신다. 담당 PD도 아닌 나를 왜? 풀어놓은 허리띠도 채우지 않은 채 뒤뚱뒤뚱 갔더니 이 예순 넘은 사장님 뜻밖의 말을 꺼냈다. "저기 이 자리에서 제일 연장이신 거 같은데......"

 

그때 팀장님은 참석을 못하셨지만 내 위로 선임이 있었는데 나를 찍은 것은 이 사장님의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됐을 가능성 99퍼센트, 그리고 내가 좀 늙어 보였을 가능성 1퍼센트다. 그래도 뭐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네 네 했더니 사장님 말투가 간절해진다. "저기 여기 찍은 후배 PD 있지요?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내가 촬영 끝나고 너무 고마워서 봉투를 준비를 했었어요....." 음 그랬구나 녀석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 프로그램에 온 지 얼마 안됐는데..... 사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고마워서 드리려 했던 거고, 또 당연히 드려야 하는 걸로 알고 계속 받으라고 하고 PD님은 난처해 하면서 사양하고 한참 실랑이를 했습니다. 저는 그러다가 받을 줄 알았어요. 어쩔 줄 몰라하던 이 양반이 갑자기 카메라 가방을 뒤지더니 테이프를 딱 꺼내는 겁니다. 그리고는 제 앞에 놓더군요. 그러면서 '이거 오늘 찍은 테이프인데 이걸로 다시 사시겠다는 겁니까? 아니라면 이제 그만 가게 해 주세요.' 하는데 그 눈빛이 얼마나 절절하던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야 이건 뇌물도 아니지만, 내가 더 이상 권하면 안되겠구나 싶더라구요. 아 정말로 훌륭한 직원입니다." 식당 사장님의 눈빛 또한 절절했다.

 

 아하 그런 수가 있었구나..... 테잎을 꺼내서 딱 놓고 "그 봉투로 이거 다시 사시겠다는 겁니까?" 야 표현도 멋있다. 멋있는 건 배워야지, 이후 나도 가끔 그 퍼포먼스를 본따 했다. 그 PD의 이름은 손문권이었다. SBS 교양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섭렵한 뒤 우리 팀에 합류했던 PD였고 프로그램도 잘 만드는데다가 훤칠한 키에 잘생긴 미남이었던 '완소남'이었다. 드라마 팀으로 건너간 후 괴짜로 소문난 임성한 작가와 이해하기 힘든 결혼을 한 뒤, 어느 모임에선가 "돈에 팔려간 거 아닌가?"하고 깝치는 속 모르는 연예부 기자에게 "말 함부로 하지 마시라."며 공연한 면박을 줘서 분위기에 얼음물을 부었던 것은 <리얼코리아> 때 그의 기억 때문일 터이다. 결혼 선물로 뭘 받았네, 차를 뭘 타고 다니네 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해도, 그를 아는 사람들은 "남녀 사이 알 수 없다."고 했지 "걔 그럴 줄 몰랐다."고 얘기하지 않았었다. 참 착했고, 상식적으로 일했고, 성실했던 PD였다.

 


그는 결혼 후 모든 것이 끊겼다. 원래 드라마 팀으로 옮겨간 후 좀 소원해지긴 했지만 핸드폰 등등도 모두 바뀌었고, 연락도 잘 닿지 않았다. 또 구태여 본인이 그렇게 하는데 기를 쓰고 연락할 건 아니라 생각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행동은 내가 아는 그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걔 그럴 줄 몰랐다."는 얘기는 이 지점에서 나왔다. 그렇게 다 끊어버릴 사람이 아닌데....... 이후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만들고 나름 히트도 치고 하면서 잘 살고 있구나 싶었는데 오늘, 또 한 번 사람을 놀래키는 소식으로 사람의 가슴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죽은 것은 1월 21일. 목을 맸다는데 아내는 다섯 시간 뒤에야 부모를 불렀고, 그 외 가족들에게는 자세한 내막을 알리지도 않은 채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다른 유족의 말로는 그렇다.) 강단 있고 성실하던 한 PD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그 내막에 별다른 일이야 없을 것이라 믿지만, 너무나 상식적이었던, 반듯하기 그지없었던 한 PD가 너무나 황망하게 죽어가고, 그가 함께 했던 사람들의 문상도 받지 못한 채 마지막 길을 떠나야 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힘겹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9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