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1월 17일 "김일성이 죽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7시 30분 등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나오던 내 발걸음은 얼어붙은 듯 멈췄다. 집 앞에 떨어져 있던 호외에 적힌 기사 때문이었다. 그 호외에는 주먹만한 글씨로 이렇게 휘갈겨져 있었다. "김일성 총 맞아 피살" 그때까지 김일성의 실제 모습을 신문에 싣는 것은 금기였다. 그날도 김일성의 사진 아닌 캐리커처가 사망설 기사의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죽었다. 김일성이 죽었다.
...
공산당은 무찔러야 하고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해야 하고, 맨주먹 붉은 피로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 되면 반공 포스터에 반공 표어에 반공 글짓기에 반공 연설대회까지 반공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몸으로서 김일성이 총을 맞아 죽었다는 뉴스는 그야말로 머리를 꿰뚫는 충격이었다. 학교 가는 버스 안도 웅성거리고 있었다. "총 맞아 죽었다 카네?" "아들내미가 죽인 거 아니가?" "뭐 김정일도 연금됐다 카던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를 정보(?)의 교환부터 "야 전쟁 나면 우짜노 니 예비군 끝났나?" 하는 현실적인 우려까지 만원버스를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분위기도 5미터는 허공으로 붕 떠 버렸다. 교문 앞에 항상 서 있던 교련 선생님 '개주디'도 보이지 않았고, 정숙해야 할 자습 시간에 아이들이 와글와글거려도 제지하는 선생님이 없었다. 해방 이후 40년 불구대천의 원수의 대명사가 스러졌다는 흥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듯 했다. 한 놈이 농담조로 외쳤다. "민족의 별이 떨어졌다!" 그러자 저 구석에서 날선 소리가 날아갔다. "시끄럽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한켠에선 제법 전문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하고 호위총국장인가 하는 오백룡이가 싸우다가 김일성이 총맞았을끼라. 그라모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은 우찌 됐으꼬? " 고딩들이 그렇게 북한의 고위층을 주워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탤런트 김병기를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반공 드라마 "지금 평양에선"의 여파였다. 탤런트 김병기가 '뽀글이 파마'의 김정일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누군가 가져온 신문에 보면 김일성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은 거의 분명했다. 휴전선 전역에서 인공기가 조기로 내걸렸으며, "열차 타고 가다가 피격 사망하셨다"고 대남방송에 나왔고, 장중한 장송곡이 연방 울리는 것이 소련 공산당 서기장 죽었을 때하고 똑같으며, 일부 북한 인민군 장교들이 '중공'으로 피신했고 군부 내에 권력 투쟁이 심각하게 진행 중이라는 눈으로 본 듯한 기사가 신문을 메우고 있었다. 조선일보였는데 신문 한켠에는 "세계적인 특종"을 낚았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거기다 국방 장관까지 나서서 그 기사의 신빙성을 일부 확인하고 있었다. 야 이거 참말이구나.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있었다. 휴전선의 대남 방송에선 김일성이 열차 타고 가다가 피격 사망했다는데 평양 방송에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방문 예정이던 몽골 국가 원수가 일정을 중지한다는 소식도 없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눈이 커지고 귀가 쫑긋해졌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영락없이 죽긴 죽은 거 같은데 그렇다고 죽었다고 확신하기는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관건은 몽골 국가원수의 방북이었다. 그때 김일성이 뭔가를 이유로 나오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고,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빵 하고 허탈한 풍선이 터질 일이었다. 마침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던 17일이 지나고 18일이 왔다. 몽골 국가원수가 방북하는 날이었다. 아마 그때만큼 몽골의 국가원수에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일은 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이래 없었으리라.
그런데..... 김일성은 멀쩡하게 나타났다. 기차 타고 총격이고 인공기 조기고 인민군 내부 투쟁이고 뭣이고 모든 사망설은 일순간에 봄볕 받은 눈처럼 사라졌다. 도대체 그 말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누가 그런 거짓말을 지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었고, 되레 조선일보는 "그들 수령의 죽음까지 고의적으로 유포하면서 그 무엇을 노리는 북괴의 작태"에 분노하면서 "정상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에다가 자신들의 오보의 책임을 돌렸다. 아마도 북한은 "남의 수령의 죽음까지 제멋대로 지어내면서 도대체 뭘 노리는지 알 수 없는 남조선 아새끼들의 행태"에 무척이나 의아해했을 테지만.
진상은 무엇일까. 몇 가지 설이 있다. <체험적 기자론>에서 동아일보 기자 출신 남시욱 교수는 "북한군의 선전방송에 나온 다른 사람에 대한 추도문을 들은 우리측 병사가 김일성이 죽어서 추도하는 줄 잘못 판단하여 상부에 보고하자 이것이 김일성 사망으로 확대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북한 방송을 감청하던 미국 병사가 "김일성 수령님 가신 길을 지도자 동지가 따르신다."는 투의 방송을 듣고 '갔다'는 것을 '죽었다'고 해석한 후 확인 요청 표시를 했는데 여기에 실수로 '확인필'로 표기함으로써 미국 정부를 놀라게 했고 이것이 일본과 한국에 역수입되어 김일성 사망설을 낳았다는 얘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진상이야 무엇이든 1986년 11월 17일 우리는 대단한 쇼를 세계에 펼쳐 보였다는 점이다. 한 나라가 분명하지도 않은 헛소문에 놀아나고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듣고, 뵈지도 않는 것을 보았던 이 분단성 망상 장애는 너무나 웃겨서 슬펐다. 이 망상장애는 또 하나의 거대한 코미디 '금강산 댐'으로 면면히 이어지게 되고 김일성 사망설에 흥분했던 우리 고딩들은 때 아닌 "금강산 댐 규탄 시위"에 동원되게 된다. 그때 우리 반의 구호는 이것이었다. "민족말살 획책하는 수공음모 말도 안돼" 그런데 그래도 데모라고 대학생들을 본떠 마지막 넉 자를 세 번 부르짖었는데 그러자 그 구호는 묘하게 변했다. "민족말살 획책하는 수공음모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열심히 악을 쓰는 내 뒤에서 몇 놈들이 투덜거렸다. "말이 되냐? 씨바." 우리는 참으로 웃기는 세월을 살았다.
tag : 산하의오역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7시 30분 등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나오던 내 발걸음은 얼어붙은 듯 멈췄다. 집 앞에 떨어져 있던 호외에 적힌 기사 때문이었다. 그 호외에는 주먹만한 글씨로 이렇게 휘갈겨져 있었다. "김일성 총 맞아 피살" 그때까지 김일성의 실제 모습을 신문에 싣는 것은 금기였다. 그날도 김일성의 사진 아닌 캐리커처가 사망설 기사의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죽었다. 김일성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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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은 무찔러야 하고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해야 하고, 맨주먹 붉은 피로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 되면 반공 포스터에 반공 표어에 반공 글짓기에 반공 연설대회까지 반공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몸으로서 김일성이 총을 맞아 죽었다는 뉴스는 그야말로 머리를 꿰뚫는 충격이었다. 학교 가는 버스 안도 웅성거리고 있었다. "총 맞아 죽었다 카네?" "아들내미가 죽인 거 아니가?" "뭐 김정일도 연금됐다 카던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를 정보(?)의 교환부터 "야 전쟁 나면 우짜노 니 예비군 끝났나?" 하는 현실적인 우려까지 만원버스를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분위기도 5미터는 허공으로 붕 떠 버렸다. 교문 앞에 항상 서 있던 교련 선생님 '개주디'도 보이지 않았고, 정숙해야 할 자습 시간에 아이들이 와글와글거려도 제지하는 선생님이 없었다. 해방 이후 40년 불구대천의 원수의 대명사가 스러졌다는 흥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듯 했다. 한 놈이 농담조로 외쳤다. "민족의 별이 떨어졌다!" 그러자 저 구석에서 날선 소리가 날아갔다. "시끄럽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한켠에선 제법 전문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하고 호위총국장인가 하는 오백룡이가 싸우다가 김일성이 총맞았을끼라. 그라모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은 우찌 됐으꼬? " 고딩들이 그렇게 북한의 고위층을 주워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탤런트 김병기를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반공 드라마 "지금 평양에선"의 여파였다. 탤런트 김병기가 '뽀글이 파마'의 김정일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누군가 가져온 신문에 보면 김일성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은 거의 분명했다. 휴전선 전역에서 인공기가 조기로 내걸렸으며, "열차 타고 가다가 피격 사망하셨다"고 대남방송에 나왔고, 장중한 장송곡이 연방 울리는 것이 소련 공산당 서기장 죽었을 때하고 똑같으며, 일부 북한 인민군 장교들이 '중공'으로 피신했고 군부 내에 권력 투쟁이 심각하게 진행 중이라는 눈으로 본 듯한 기사가 신문을 메우고 있었다. 조선일보였는데 신문 한켠에는 "세계적인 특종"을 낚았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거기다 국방 장관까지 나서서 그 기사의 신빙성을 일부 확인하고 있었다. 야 이거 참말이구나.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있었다. 휴전선의 대남 방송에선 김일성이 열차 타고 가다가 피격 사망했다는데 평양 방송에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방문 예정이던 몽골 국가 원수가 일정을 중지한다는 소식도 없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눈이 커지고 귀가 쫑긋해졌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영락없이 죽긴 죽은 거 같은데 그렇다고 죽었다고 확신하기는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관건은 몽골 국가원수의 방북이었다. 그때 김일성이 뭔가를 이유로 나오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고,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빵 하고 허탈한 풍선이 터질 일이었다. 마침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던 17일이 지나고 18일이 왔다. 몽골 국가원수가 방북하는 날이었다. 아마 그때만큼 몽골의 국가원수에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일은 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이래 없었으리라.
그런데..... 김일성은 멀쩡하게 나타났다. 기차 타고 총격이고 인공기 조기고 인민군 내부 투쟁이고 뭣이고 모든 사망설은 일순간에 봄볕 받은 눈처럼 사라졌다. 도대체 그 말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누가 그런 거짓말을 지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었고, 되레 조선일보는 "그들 수령의 죽음까지 고의적으로 유포하면서 그 무엇을 노리는 북괴의 작태"에 분노하면서 "정상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에다가 자신들의 오보의 책임을 돌렸다. 아마도 북한은 "남의 수령의 죽음까지 제멋대로 지어내면서 도대체 뭘 노리는지 알 수 없는 남조선 아새끼들의 행태"에 무척이나 의아해했을 테지만.
진상은 무엇일까. 몇 가지 설이 있다. <체험적 기자론>에서 동아일보 기자 출신 남시욱 교수는 "북한군의 선전방송에 나온 다른 사람에 대한 추도문을 들은 우리측 병사가 김일성이 죽어서 추도하는 줄 잘못 판단하여 상부에 보고하자 이것이 김일성 사망으로 확대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북한 방송을 감청하던 미국 병사가 "김일성 수령님 가신 길을 지도자 동지가 따르신다."는 투의 방송을 듣고 '갔다'는 것을 '죽었다'고 해석한 후 확인 요청 표시를 했는데 여기에 실수로 '확인필'로 표기함으로써 미국 정부를 놀라게 했고 이것이 일본과 한국에 역수입되어 김일성 사망설을 낳았다는 얘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진상이야 무엇이든 1986년 11월 17일 우리는 대단한 쇼를 세계에 펼쳐 보였다는 점이다. 한 나라가 분명하지도 않은 헛소문에 놀아나고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듣고, 뵈지도 않는 것을 보았던 이 분단성 망상 장애는 너무나 웃겨서 슬펐다. 이 망상장애는 또 하나의 거대한 코미디 '금강산 댐'으로 면면히 이어지게 되고 김일성 사망설에 흥분했던 우리 고딩들은 때 아닌 "금강산 댐 규탄 시위"에 동원되게 된다. 그때 우리 반의 구호는 이것이었다. "민족말살 획책하는 수공음모 말도 안돼" 그런데 그래도 데모라고 대학생들을 본떠 마지막 넉 자를 세 번 부르짖었는데 그러자 그 구호는 묘하게 변했다. "민족말살 획책하는 수공음모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열심히 악을 쓰는 내 뒤에서 몇 놈들이 투덜거렸다. "말이 되냐? 씨바." 우리는 참으로 웃기는 세월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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