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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2 새벽의 75인 - 프로야구선수협의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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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2000년 1월 22일 새벽의 75인 -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결성


프로야구는 이미 한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웬만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있고, 한국시리즈쯤 되면 출전 팀의 연고 지역민들에게는 지대한 이벤트가 된다. 2009년이었던가 오래간만에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했을 때 나는 광주에 있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김대중 대통령 당선 때의 분위기였달까. 하기사 나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 시리즈에 올라온다면 휴가를 내서라도 사직구장에 달려갈 태세였으니까.



 2000년 1월 22일은 이 프로야구가 “존폐의 위기”에 몰린 날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존폐의 위기”라고 누군가가 몰아간 날이었다. 그 누군가는 프로야구 구단주들이었다. 그들은 이날 새벽 한 시 75인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프로야구 선수협의회’를 결성하자 구단들은 그들을 모두 방출하고 ‘직장폐쇄’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문제를 두고 100분토론에 나온 KBO 사무차장 이상일은 “선수협이 노조처럼 행동하고 있다”면서 그 ‘불순함’과 ‘배후세력’ 운운하다가 사회자 정운영에게 핀잔을 받기도 했거니와, 프로야구 선수협 사태는 가히 한국 사회에서 흔히 발생했던 ‘노사대결’의 축소판이자 축약판이었다.


 원래 선수협을 결성하기로 한 날은 전날인 21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형태의 방해 공작과 내부의 분열과 반목, 의리와 배신의 파노라마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오긴 왔는데 “저 팀이 들어가면 우리도 들어간다.”는 어처구니없는 눈치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기껏 선수들 끌고 참석한 삼성의 고참 선수가 별 것도 아닌 문제로 언성을 높인 끝에 “삼성은 노조 없어. 다 따라나와.” 하면서 후배들을 때릴 듯이 몰고 나가자 삼성 눈치를 보고 있던 LG 선수들도 빠져나갔다. (이때 삼성 선수들을 휘몰고 나갔던 이가 지금 감독 자리를 꿰찼으니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



각 팀의 대표로 온 선수들도 외롭고 고달팠다. 이를테면 해태 유니폼을 입고 있던 양준혁은 일부 해태 선수들로부터 “네가 해태냐?” 하는 노골적인 견제를 받고 있었고, 서명은 400명 가까이 받았으나 21일 저녁 7시 결성 장소인 63빌딩에 나타난 선수들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눈치를 보다가 빠지는 이도 있었고, 팀 선배가 선동해서 물러갔다가 다시 찾은 이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서명을 다 무효로 하고, 다시 선수협 결성 서명을 받겠습니다. 일단 선수협 출범이 중요하고 그 뒤에 회원을 늘려나가면 됩니다.” 서명 용지가 돌기 시작하자,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현대 선수들이 이탈했다.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75명. 새벽 1시 30분 그들이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결성을 선언한다. 사실 회장을 누가 할 지도 사전에 결정되지 않았던 엉망진창에 엉성하고 조악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날이 역사에 남아야 하는 이유는 송진우, 양준혁, 강병규, 박정태, 최태원, 마해영, 김재현, 박명환 등 이른바 총대를 멘 사람들은 ‘선수협’ 없이도 배가 터지게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친목단체’ 선수협을 만든다고 해도 ‘노조’를 만드는 것이고 ‘노조’는 불순한 것이며 한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다는 삼단논법을 구사하는 구단주들 앞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보다는 구단의 말 한 마디에 찍 소리를 못하고 보따리를 싸야 하고, 협상은 커녕 주는 대로 받으면서 “싫으면 관둬” 한 마디에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후배들과 2군 선수들을 위해 선수협이 필요하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양준혁은 8개 구단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면서 외쳤다. “간다. 나 혼자라도 간다.” 회장 송진우는 “왜 고액연봉자인 당신들이 구태여 이렇게 하느냐”고 건조하게 캐묻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었다. “"고액 연봉자들이 왜 이러느냐구요? 그 질문 백번도 더 듣겠네. 아니 당연히 우리가 총대를 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이해 안돼요? 연봉 천 만원 받고도 감사합니다 하는 애들이 이런 거 할 수 있겠어요? 우리한테도 지금 이렇게 대하는데 걔들이 나서 봐요. 어떻게 되나."
 
그리고 1월 22일 새벽 떠나가는 선수들, 철수할 준비를 하는 기자들에게 강병규는 이렇게 외쳤었다. ”우리가.... 우리가... 순수한 의도로 이곳에 모였다는 것만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그는 그 ‘의도’가 이 일을 하면서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야구위 총재가 프로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프로야구선수로서 긍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지만, 비로소 우리가 왜 이 일을 꼭 해내야만 하는지도 뚜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미약하지만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신보다 못한 이를 위해 사용한 경우는 상상 외로 드물다. 제 자식들 대를 이어 정규직으로 삼는다는 단협에는 눈이 시뻘걸망정, 비정규직 많아 밥 먹기 불편하니 식사 시간 따로 정하자는 이들은 많았지만, 자기들 월급은 당연히 인상되어야 하지만 외주제작비는 마땅히 깎여야 한다는 발상을 하는 듯한 오늘날의 방송사 정규직 노동자같은 이들은 허다했지만, 정작 자신의 기득권을 희생해 가면서 우리 후배들은 이런 꼴 보지 않게 하자고 일어선 사람들은 참 드물었다. 2000년 1월 22일은 그런 이들이 간만에 우리 역사에 출몰했던 날이었다.


 비록 강병규의 오늘이 슬프다 해도, 그랬던 양준혁이 2009년이었나 선수협의회장 손민한의 노조 전환 시도에 반대하는 어이없는 행동을 보였다 해도,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만들었던 선수협 회장자리가 “선수협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며 선수협을 음해했던 이호성에게로 넘어가는 황당한 일이 이어졌다 해도, 오늘의 의미는 그렇게 작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는다.



P.S. 산하의 오역 목요일까지 쉽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기 오시는 분들... 근데 누가 오시긴 하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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