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20일 신창원 교도소를 뚫다
‘프리즌 브레이크’가 ‘미드’ 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쇼생크 탈출>의 드라마틱한 탈옥 이야기가 관객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그런데 <쇼생크....>를 본 친구 (녀석은 데모하다가 별을 달았었는데)가 이런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그런 감옥이 어딨냐. 프라이버시 보장돼, 책도 맘대로 봐, 음악도 가끔 틀어주고 맥주도 먹는 감옥이 어딨어. 한국 감옥 같아 봐라 어림 짝도 없다. 탈옥은 얼어죽을."
사실이 그렇다. 언젠가 교도소 내부 취재를 위해 교도소 감방에 카메라 들고 들어갔을 때, 내가 봤던 다섯평 남짓한 방에는 다섯 명의 사내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몸만 뒤척여도 상대방이 잠을 깰 것 같은 그 방 안에서 무슨 탈옥을 꿈꾼단 말인가. 호송 과정에서 탈출을 하거나 작업차 나간 외출에서 몸을 뺀 경우는 간혹 있었을지 모르나 서너 길 담장에 철창 둘러친 교도소에서 ‘탈옥’에 성공한 예는 일제 시대부터 지금까지를 통틀어도 진귀하기만 하다.
그런데 1997년 1월 20일 한 사내가 그걸 해 냈다. 이름은 신창원.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였다. 공범과 함께 강도짓을 했고 그 와중에 사람이 죽었다. 신창원 본인이 행한 일은 아니었지만 기타 전과나 등등 상황이 고려되어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이 선언된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 형에 몹시도 분노했다고 한다. 즉 자신의 범죄에 비해 너무나 무거운 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허구헌날 싸움질에 사고를 연발하다가 이감을 거듭하던 그는 부산교도소에 온 이후 거짓말처럼 사람이 변했다.
얌전하기 이를데없는 모범수가 됐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몸을 가꾸는 건실한 수용자 (이게 법무부가 교도소 안의 이들을 부르는 공식 명칭이라고 들었다)로 생활했다. 원래 80킬로그램이 넘던 그가 60킬로의 날렵한 체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비만에 고민하던 중년의 교도관들 일부는 다이어트 비법을 문의하고도 싶었으리라. 그런데 그의 다이어트 비법은 감방 화장실에 있었다. 교도소 내 교회 공사를 위해 교도소 외벽 일부가 철거되고 철제 울타리로 대체된 뒤였고, 화장실 환풍구의 쇠창살이 허술하게 보였던 것이 그의 초인적인 다이어트의 동기가 된 것이다. 그는 몰래 손에 넣은 쇠톱으로 쇠창살을 조금씩 잘랐고 몰라보게 날씬해진 몸으로 그 사이를 통과했다. 1997년 1월 20일 새벽이었다. 정확히 몇 시였는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그날 아침, 교도관들은 '쇼생크 탈출'과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 신창원은 자신의 이부자리에 베개를 넣고 풍성하게 해 놓음으로서 누군가 자고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해 놓았고 "야 신창원 일어나!" 하면서 이불을 들춘 수용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진다. 점호에도 신창원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이번에는 교도관들의 얼굴이 황토흙빛이 됐다. 탈옥.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교도소에서의 탈옥.
이후 그의 행적은 탈출 후 행적을 꼼꼼히 적은 일기로 널리 알려졌으니 굳이 언급할 것이 없다. 국가기록원 서술에 따르면 그는 탈옥 후 2년 6개월 동안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도강간 1건 등 총 142건에 달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범행지역 또한 서울 42건, 부산 3건, 대전 5건, 대구 9건, 충남 32건, 경기 23건, 충북 10건, 전북 8건, 경남 2건 등 전국구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1건'의 강도강간 죄명이 조금 특이하다. 대개 범죄자들은 '동종'의 전과를 지니고 경찰들도 사건이 나면 '유사 수법'의 용의자를 찾게 마련인데, 절도를 100건이 넘게 한 그였지만 강간은 단 1건이었다. 그런데 그를 변호했던 엄상익 변호사의 글을 보면 그 1건에는 좀 특이한 사연이 서려 있었다. 결론적으로 신창원은 강간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피해자라고 내세운 사람은 아니라고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강간 혐의가 유죄로 판결된다면 감수하겠다고 변호사에게 말한다. 왜? 강간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피해자가 신창원을 감동시킨 '천사'였기 때문에.
신창원은 범행을 저지른 후 탈주자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피해자에게 털어놓는다. 미안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고 드러누워 버렸는데 그녀는 바깥에 두고 온 신창원의 신발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밥상을 차려서 신창원에게 먹인다. 그녀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한 처지였다. 이 얘기를 들은 신창원은 자신이 훔쳐 마련한 돈 4천만원과 달러 뭉치를 내놓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한 짓을 다른 이에게 하지 말 것을 약속하라고 말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나같은 가난한 사람이나 아저씨같은 죄지은 사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어요. 그 분은 분명 아저씨를 사랑하실 거예요."
"숨소리조차 거짓말"이라는 범죄자로 일생을 산 신창원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려고 지어낸 거짓말치고는 신창원 속 증언 속 그녀의 말이 너무나 또랑또랑하다. 그리고 정말 그런 사람이..... 그런 피해를 당하고도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상대에게 신은 당신조차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해진다. 신창원의 인생에서 그런 사람이 몇 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그가 스스로의 인생을 보다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사람이 더 있었더라면 신창원의 인생도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 아닌 착각 때문이다.
경찰인 내 친구는 말했다. "사람은 안 바뀐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들이 누군지 아나? 지 애인은 변할 끼라고, 지가 옆에 있어 주면 괜찮을 끼라고 착각하고 사는 여자들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제일 불쌍하다." 사실 나도 동의한다. 고발 프로그램을 맡아 하면서 세상에 말도 꺼내기 싫은, 저런 인간은 어느 귀신이든 송곳니를 콱 정수리에 박아버리는 게 인류와 지구를 위해 좋을 것 같은 망종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의 변화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그 순간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발전할 수 있는 인간, 바뀔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고 나아가 변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마저 버릴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에.
신창원은 체포된 이후 특급의 감시를 받는 죄수로 10년이 넘도록 독방 생활을 하고 있고 얼마 전 자살 기도까지 했다. 그는 그 시도 이전에 문성호 자치경찰연구소장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성적인 문제, 성격적인 문제, 그리고 사회성이 부족한 문제 때문에 수용자들이 재범을 반복하고 있어요. 범죄중독이란 이러한 문제가 복합되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지 범죄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현상을 범죄 중독이라고 하지 않죠? 그런데 수용자가 교도소에 구금되어 격리된 생활을 할 경우 수용자의 문제가 치유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많아 재범 이상의 수용자가 사회복귀를 제대로 하기 힘들지요......."
그는 자신의 죄값을 치르고 있다. 그가 했든 하지 않았든 그가 있었던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고, 수백 명에게 아픔을 주었고,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가 창살을 자르고 탈출했던 1월 20일 오늘, 나는 그의 말이 뻔뻔스럽게만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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