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86년 5월 1일 한 택시노동자의 죽음
변형진은 강화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중학교조차 입학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 더 보탤 것이 없다. 시커먼 교복과 교모 한 번 못 써 보고서 그는 구두창 공장에서 가죽을 기워야 했고 연탄 공장에서 숯검덩을 얼굴에 묻혀야 했다. 어렸을 적 동네 연탄 가게 총각이 “깜장 마후라는 연탄집 아저씨~~ 아가씨야 이 내맘 잊지 말아라. 이래뵈도 세수하면 미남이란다.”라고 노래하며 동네 사람들을 웃긴 적이 있는데 술 좋아하고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다는 그도 아마 비슷한 노래 부르며 시름을 달랬을지도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가 택시 운전대를 잡게 된 것은 나이 서른 넷 되던 해였다. 이곳 저곳을 거쳐 그는 삼환택시라는 택시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택시 회사 사장이 좀 걸물이었다. 그는 아침마다 군대식 조회를 실시했고 115명의 기사들을 택시 43대에 10-12 시간씩 내돌리면서도 연장수당 한 푼 주지 않는 강심장이었다. 그것까지도 그렇다고 치는데 세차비까지 택시 노동자들에게 부담시킨 것은 강심장에 털난 경우라고 할 것이다. 당연히 기사들의 불만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술 사주는 데에는 1등이고 오지랖은 바다처럼 넓었다는 그는 운행 도중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병원으로 실어나른 것도 여러 번이고, 부모님의 병환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를 대신해 그 부모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병구완까지 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러니까 주변에 꼭 하나씩은 있는, 제 셈속은 차리지 못해도 남 안되는 꼴은 못보는,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지만 희귀한 건 분명한 인간형이었던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 역시 그런 사람 꼴을 못보는 성품이니까.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른 말 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잘 쓰는 말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다. 법이 누구 편인지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이런 법이 어디 있나면서 상대의 부당함을 성토한다. 세차비 내지 못하겠다고 하자 3일 동안 운행 정지 시켜 버리고는 월급에서 까 버리는 삼환택시 사장에게도 그는 그렇게 따졌을 것이다. 아니 사장님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사장은 기탄없이 경찰을 불렀다고 한다. 경찰이 파출소로 연행을 해도 별 혐의가 없어 두 팔 벌리고 풀어줬지만 변형진이 따지고 들 때마다 사장은 112 다이얼을 돌렸다. “법은 내 편이야 임마.”를 시위하듯이.
삼환 택시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자고 외치던 노동조합장이 해고됐다. 이에 격렬히 항의하던 변형진은 완전히 회사 눈 밖에 났고 어느 날 희한한 이유로 해고의 쓴잔을 들게 된다. 회사에서 운행 나가는 길에 사장 차와 맞닥뜨렸는데 공손히 서서 사장님 가시는 길을 바라본 뒤 나가지 않고 그 앞을 웽~~ 나가 버렸다는 이유로 해고장을 날려 버린 것이다. 이른바 불경죄라고나 할까. 사납금을 삥땅한 것도 아니고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사장님 차 앞을 불경스럽게 지나간 것이 해고 사유가 되는 세상이었다. (해고의 유연화라는 건 이때로 돌아가자는 얘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웃통 벗어던지고 이게 말이 되냐며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분통을 터뜨리던 변형진은 1986년 4월 30일 스스로 몸에 불을 당기고 만다. 신나를 끼얹고 항의하는 그 앞에서 사장은 뒈질 테면 뒈져 보라고 하고 있었다니 보통 이상으로 나쁜 놈이었던 것 같다. 변형진을 병원으로 옮긴 뒤 달려온 가족들에게 회사는 이미 변형진은 죽었으니 합의금이나 맞춰 보자고 설레발을 떨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변형진은 힘겹게라도 숨을 쉬고 말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1986년 5월 1일 평생을 모진 꿈만 꾸었던, 그 와중에도 남 좋은 일은 혼자 다 시키던 택시 노동자 변형진은 죽었다. “미안하지만 이 길 밖에 없었다. 노동자들도 떳떳하게 잘 사는 세상이 와야 할 텐데.....”가 유언이었다. 죽음을 투쟁의 도구로 쓰는 것은 결코 권장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몸뚱이에 불을 지르는 것 밖에는 달리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만드는 사회는 살아있는 괴물의 사회다. 변형진이 죽어간 그 한강 성심 병원에는 오늘도 변형진처럼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긴 현대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학종씨가 입원해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 줄 수 없다.”고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세월은 간데없는데 왜 그 말들은 이리도 의구한가.
한 번도 조직노동자인 적 없고 이제는 조직원이 될 자격조차 상실한 처지에 메이데이라는 단어가 부활하기도 전의 1986년 5월 1일 죽어간 한 노동자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뭔가 씁쓸하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