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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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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10 숭례문 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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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아 숭례문 

구정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좌석 하나 빈 곳 없는 KTX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객차 내 모니터에 이상한 글자들이 떴다. “숭례문 화재 발생, 긴급 진화 중” 아이들 챙기고 짐 내리느라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대충 짐 정리한 후 옷 갈아 입고 소파에 걸터앉아 리모콘 버튼을 누른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숭례문, 하지만 그 이름보다는 ‘남대문’에 더 익숙한 옛 도성의 문루가 활활 붙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국보 1호라고는 하지만 왜 그게 국보 1호인지 모르겠다고 툴툴대던 남대문. 솔직히 중국이나 서양, 하다못해 일본의 성에 비해서도 그 규모가 우람하거나 외양이 특출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던 남대문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 그 낡은 목재들이 그저 불쏘시개가 되어 낼름거리는 화신(火神)의 혓바닥에 삼켜지는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느낌으로 가슴팍에 꽂히고 있었다. 마치 늘상 구박하곤 했지만 그저 내 옆을 지켰던 오랜 친구가 불길에 휩싸인 집 창 안에서 나를 보고 서글프게 웃으며 작별의 손짓을 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지. 

숭례문이 완공된 것은 1398년 음력으로 2월 8일이었다. 610년 동안 왕자의 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괄의 난 , 6.25 등 별별 난리를 다 겪으면서도 그 형상을 유지해 온 숭례문은 그렇게 속절없이 불타고 있었다. 소방관들은 필사적으로 진화에 나섰지만 겨울 바람에 바싹 마른 목재들은 순식간에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문루에 내걸린 현판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 천하의 말썽장이였지만 글씨 하나는 호방했던 양녕대군의 글씨. 임진왜란 때 유실됐는데 밤마다 한 구덩이에서 서광이 비춰 이상해서 파 보니 그곳에서 다시 발견됐다는 전설이 서린 그 현판, 관악산에 등천하는 화기를 막기 위해 세로로 걸었다는 그 현판이 꽁꽁 언 땅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로부터 나와 아내는 거의 아무 말도 없이 10분 가까이 그 화면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망연한 서운함과 까닭모를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닌 듯 했다. 어떤 후배는 TV를 지켜보다가 택시 잡아타고 남대문을 불러 불타 오르는 남대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왜 그랬냐는 짖궂은 질문에 도무지 자기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뿐이 아니었다. 흉측한 몰골이 가려지기 전 숯덩이가 된 문루를 인 돌문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탄하고 안타까움을 토해 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 600년 동안 한 도시의 사람들을 굽어보던 숭례문이 없어진 것은, 하필이면 우리 대에 깡그리 불타 없어진 것은 많은 이들이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숭례문을 그렇게 불태운 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한 노인이었다. 그는 ‘토지 수용 보상금’이 적다는 이유로 관청과 시비하던 중 얼마 전에는 창경궁에 불을 질렀다가 미수에 그쳤고 이번에는 숭례문에까지 불을 질렀다. 그에게 주어진 토지보상금은 9천만원. 그는 4억원은 되어야 한다고 우겼다. 가족들조차 그만하면 됐다고 설득했지만 노인의 욕심은 스스로를 억울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 억울함은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뒤 노인은 멀쩡하게 동네 경로당에 출근하여 쓰리고에 피박을 부르짖었다고 했다. 체포된 뒤 현장 검증을 할 때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킨 것”이라며 정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노라며 노무현을 탓하다가 그는 엉뚱한 사람에게 미안해했다. “다음 이명박 대통령께 미안하다.”고 했다고 하니까. 그리고 그는 뇌까렸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되고.” 얼마 전 그를 인터뷰한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이 방화범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듯 하면서도 여전히 토지보상금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 한심한 인생에게 뭐라고 외치고 싶은 맘 지금도 굴뚝같지만, 그 노인의 심경으로 들어가 본다면 일면 이해가 아니 가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장에 총리 후보들도 귀신같이 땅을 사서 백배 천배 이득을 본 사람들이 흔하고 주변에 들리는 얘기마다 아무개 아무개 집 근처에 대로가 나서 떼돈을 벌었다는 소리인데 자신의 땅이 수용대상이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만세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2남 2녀 다 출가시키고 생계가 막막한 편도 아니었지만 말년에 굴러들어온 호박을 맞아 조상님 음덕을 기리는 것이 우리의 상식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게 반토막도 아니고 1/4 토막이 난 것이다. 방화범 노인의 아내 말대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 돈! 을 외치지 않을 재간이 있었겠는가. 역시 그 아내의 말대로 “자기 집을 태우려면 태우지 어떻게 나라 재산을 태웠을꼬” 하는 게 우리의 상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를 옹호할 맘은 추호도 없으나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그가 미안해했던 차기 대통령이나 시세 차익으로 100배의 차익을 벌어들였던 전 인수위원장같은 이들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버일까? 억측일까? 

2008년 2월 10일은 숭례문이 불타 내린 날이고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 라는 밑과 끝이 동시에 없는 구호를 앞세운 대통령이 취임을 보름 앞둔 날이었다. 어린쥐 달라고 해야 오렌지 쥬스라도 얻어먹는다는 영어 몰입의 시대였고 “부자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 되느냐?”는 해괴한 질문이 천연덕스럽게 통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쥐구멍에 볕이 들었다 환호하다가 그 볕이 자신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고 분격한 그 생쥐같은 노인에게만 우리는 분노를 퍼부을 수 있을까? 그런 인간 쓰레기들을 모아 삼청교육이라도 시켜야 할까?

숭례문은 무너졌다. 임진왜란의 불화살도, 병자호란의 대포알도, 6.25의 폭격도 절묘하게 피해 간 숭례문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70 노인의 신나 한 통에 잿더미가 되었다. 더 무너질 것은 없을까. 더 불탈 것은 없을까. 언제까지 우리는 '미친 놈들'에게 욕설만 퍼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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