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89년 1월 20일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죄!
1988년 가을, 서울 올림픽의 손에 손 잡고 로고송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울려 대던 즈음의 어느 날 밤, 나이 서른 두 살의 주부가 경북 어느 소도시의 으슥한 밤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두 명의 젊은 남자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 마주침과 이후 상황에 대한 설명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부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달려든 두 남자가 자신의 팔을 잡아 꼼짝 못하게 한 뒤 골목길로 끌고 간 뒤 쓰러뜨려 놓고 한 남자가 음부를 만지면서 옆구리를 걷어찬 뒤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입 안에 뱀같은 혀가 들어오자 여자는 어금니를 악물고 그 혀를 깨물었고 여자는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몰캉한 뭔가가 입 안에 머금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남자는 짐승같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고 있었죠. 혀가 뜯겨나간 겁니다.
남자들의 입장은 매우 달랐습니다. 남자들에 따르면 다른 친구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가 귀가하던 도중 길바닥에 앉아 있던 주부가 갑에게 매달려 어떤 식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여 그녀를 부축하여 골목길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부축하면서 몸이 밀착하여 뺨이 맞닿게 되자 ‘술김에’, ‘호기심으로’ 주부에게 키스하였다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번복하기는 하지만 그는 주부가 먼저 키스를 시도했다고 우겨대기도 하지요. 또 하나의 남자는 땅바닥에 앉아 있는 변월수를 보고 그냥 지나가자고 하였으나 자신의 친구가 그녀를 부축하여 골목길로 들어갔고 자신은 따라가기만 했다고 증언합니다.
사건은 묘하게 전개됩니다. 되레 혀를 잘린 가해자측이 주부를 찾아 잘린 혀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했고 이에 분개한 여자는 남자들을 성폭행 혐의로 고발하고 남자들은 주부를 무고 혐의로 맞고발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 여자는 폭행 혐의로 구속까지 됩니다.
1심에서 남자들은 강제추행치상죄로 기소됩니다. 당연하죠. 어쨌건 남의 입 안에 혀를 집어넣었다가 잘렸으니 더 이상 또렷한 증거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변호사는 여자가 밤에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면서 다녔고 집안 문제로 불화를 일으키는 부도덕한 여성으로 몰아붙이고 그 여성의 마수(?)에 걸린 전도양양한 청년들의 상처를 부각시킵니다. 덩달아 ‘과잉방어’로 주부를 기소한 검사는 여자가 폭행 피해 진술이 자꾸 바뀐다며 몰아붙이지요. 즉 옆구리를 먼저 맞았는지 뺨을 먼저 맞았는지 헛갈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검사를 딱 열 대만 기습적으로 때리고 싶어지지요. 그러고 나서 어디를 맞았는지 그 순서를 기억해 내면 대당 100만원 희사할 용의도 있구요. 어쨌건 대한민국 검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 다 기소합니다.
이 사건이 기사화된 것은 1988년 9월 10일이었습니다. "폭행범 혀 깨문 주부에 1년 구형"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죠. 검찰 구형이 나온 이후 여성의 전화는 이 사건을 여론화하기로 결정하고, 9월 20일 "성폭력추방을 위한 긴급시민대토론회- 강간에 대한 정당방위도 죄인가"를 개최합니다. 그런데 판사 또한 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토론회가 열린 다음 날,판사는 주부에게 징역5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합니다. “정당방어라 인정될 수 없는 지나친 행위”라는 게 판사의 판결이었지요. ‘상가가 밀집돼 있고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으니 피해자가 공포에 질려 혀를 깨물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럼 정당한 방어는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정당한 방어이고 어디까지가 과잉 방어인가? 도대체 여성의 인권은 강간범의 혀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하는 분노가 폭발적으로 제기되고 여론은 물 끓듯 일어납니다. 여성의 전화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강간범을 옹호하는 안동지원 유죄판결에 항의하며’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7인의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여 항소심준비에 들어갑니다. 변씨의 무죄판결을 위한 범시민 가두서명을 전개했고, 항소심 1차공판시 대구 고등법원 앞에서 무죄 선고 촉구 집회도 개최되지요. 여기에는 100여명의 여성들이 참여하여 무죄를 소리높이 외칩니다. 마침내 1989년 1월 20일 역사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그래도 의미있는 무죄 판결이 내려집니다.
“피고인 1의 위와 같은 행위는 그 자신의 성적순결 및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로서 이는 법률상 범죄의 성립을 조각하는 사유인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피고인 1이 당시 술을 먹었다거나 식당을 경영한다거나 밤 늦게 혼자 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결국 피고인 1에 대한 이 사건 폭력행위 등 처벌에관한법률위반의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 소정의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죄가 된다 할 것임에도 원심이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는 피고인 1 및 그 변호인의 위 항소논지는 이유 있다.”
‘술을 먹었다거나 식당을 경영한다거나 밤 늦게 혼자 돌아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기초 중의 기초가 법적인 판례로 남게 되거니와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인정되어 “차라리 그냥 그 날 그들에게 당하고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울부짖던 주부는 그 결백함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하지만 판례는 판례일 뿐,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식당 주인인 줄 알고” 여기자 가슴에 손을 넣었던 국회의원도 봤고 “왜 밤늦게 돌아다녀 범죄를 유발하는가?”하는 질문이 태연하게 등장하는 세상에 살고 있긴 하지요. 대법원 무죄 판결이 끝나고 한 그녀의 인터뷰의 일부는 홀연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상 또한 참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제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우리 동네에서 세 건의 강간 사건이 일어났는데 저를 위문하러 왔다가 돌아가던 여자분도 당했어요.”
사진은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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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월 20일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죄!
1988년 가을, 서울 올림픽의 손에 손 잡고 로고송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울려 대던 즈음의 어느 날 밤, 나이 서른 두 살의 주부가 경북 어느 소도시의 으슥한 밤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두 명의 젊은 남자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 마주침과 이후 상황에 대한 설명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부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달려든 두 남자가 자신의 팔을 잡아 꼼짝 못하게 한 뒤 골목길로 끌고 간 뒤 쓰러뜨려 놓고 한 남자가 음부를 만지면서 옆구리를 걷어찬 뒤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입 안에 뱀같은 혀가 들어오자 여자는 어금니를 악물고 그 혀를 깨물었고 여자는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몰캉한 뭔가가 입 안에 머금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남자는 짐승같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고 있었죠. 혀가 뜯겨나간 겁니다.
남자들의 입장은 매우 달랐습니다. 남자들에 따르면 다른 친구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가 귀가하던 도중 길바닥에 앉아 있던 주부가 갑에게 매달려 어떤 식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여 그녀를 부축하여 골목길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부축하면서 몸이 밀착하여 뺨이 맞닿게 되자 ‘술김에’, ‘호기심으로’ 주부에게 키스하였다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번복하기는 하지만 그는 주부가 먼저 키스를 시도했다고 우겨대기도 하지요. 또 하나의 남자는 땅바닥에 앉아 있는 변월수를 보고 그냥 지나가자고 하였으나 자신의 친구가 그녀를 부축하여 골목길로 들어갔고 자신은 따라가기만 했다고 증언합니다.
사건은 묘하게 전개됩니다. 되레 혀를 잘린 가해자측이 주부를 찾아 잘린 혀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했고 이에 분개한 여자는 남자들을 성폭행 혐의로 고발하고 남자들은 주부를 무고 혐의로 맞고발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 여자는 폭행 혐의로 구속까지 됩니다.
1심에서 남자들은 강제추행치상죄로 기소됩니다. 당연하죠. 어쨌건 남의 입 안에 혀를 집어넣었다가 잘렸으니 더 이상 또렷한 증거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변호사는 여자가 밤에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면서 다녔고 집안 문제로 불화를 일으키는 부도덕한 여성으로 몰아붙이고 그 여성의 마수(?)에 걸린 전도양양한 청년들의 상처를 부각시킵니다. 덩달아 ‘과잉방어’로 주부를 기소한 검사는 여자가 폭행 피해 진술이 자꾸 바뀐다며 몰아붙이지요. 즉 옆구리를 먼저 맞았는지 뺨을 먼저 맞았는지 헛갈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검사를 딱 열 대만 기습적으로 때리고 싶어지지요. 그러고 나서 어디를 맞았는지 그 순서를 기억해 내면 대당 100만원 희사할 용의도 있구요. 어쨌건 대한민국 검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 다 기소합니다.
이 사건이 기사화된 것은 1988년 9월 10일이었습니다. "폭행범 혀 깨문 주부에 1년 구형"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죠. 검찰 구형이 나온 이후 여성의 전화는 이 사건을 여론화하기로 결정하고, 9월 20일 "성폭력추방을 위한 긴급시민대토론회- 강간에 대한 정당방위도 죄인가"를 개최합니다. 그런데 판사 또한 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토론회가 열린 다음 날,판사는 주부에게 징역5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합니다. “정당방어라 인정될 수 없는 지나친 행위”라는 게 판사의 판결이었지요. ‘상가가 밀집돼 있고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으니 피해자가 공포에 질려 혀를 깨물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럼 정당한 방어는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정당한 방어이고 어디까지가 과잉 방어인가? 도대체 여성의 인권은 강간범의 혀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하는 분노가 폭발적으로 제기되고 여론은 물 끓듯 일어납니다. 여성의 전화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강간범을 옹호하는 안동지원 유죄판결에 항의하며’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7인의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여 항소심준비에 들어갑니다. 변씨의 무죄판결을 위한 범시민 가두서명을 전개했고, 항소심 1차공판시 대구 고등법원 앞에서 무죄 선고 촉구 집회도 개최되지요. 여기에는 100여명의 여성들이 참여하여 무죄를 소리높이 외칩니다. 마침내 1989년 1월 20일 역사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그래도 의미있는 무죄 판결이 내려집니다.
“피고인 1의 위와 같은 행위는 그 자신의 성적순결 및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로서 이는 법률상 범죄의 성립을 조각하는 사유인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피고인 1이 당시 술을 먹었다거나 식당을 경영한다거나 밤 늦게 혼자 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결국 피고인 1에 대한 이 사건 폭력행위 등 처벌에관한법률위반의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 소정의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죄가 된다 할 것임에도 원심이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는 피고인 1 및 그 변호인의 위 항소논지는 이유 있다.”
‘술을 먹었다거나 식당을 경영한다거나 밤 늦게 혼자 돌아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기초 중의 기초가 법적인 판례로 남게 되거니와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인정되어 “차라리 그냥 그 날 그들에게 당하고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울부짖던 주부는 그 결백함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하지만 판례는 판례일 뿐,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식당 주인인 줄 알고” 여기자 가슴에 손을 넣었던 국회의원도 봤고 “왜 밤늦게 돌아다녀 범죄를 유발하는가?”하는 질문이 태연하게 등장하는 세상에 살고 있긴 하지요. 대법원 무죄 판결이 끝나고 한 그녀의 인터뷰의 일부는 홀연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상 또한 참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제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우리 동네에서 세 건의 강간 사건이 일어났는데 저를 위문하러 왔다가 돌아가던 여자분도 당했어요.”
사진은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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