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과 하루카의 해바라기
일본에 ‘고베’(神戶)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안 건 1985년 그 도시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릴 때였다. 요즘이야 유니버시아드 대회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지만 스포츠 공화국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폐막식을 생중계했고 그 대회 와중에 대회 찬가라 할까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배를 쥐었었다. “고베 유니버시아드”를 이 참으로 발음 후진 일본인들이 “고베 유니바시아도~~~~”라고 목청껏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고베라는 도시도 있구나.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이며 일본 최대의 항구였던 고베를 다른 연유로 기억한다. 1995년 1월 17일 고베 시를 쑥밭으로 만든 고베 대지진이 그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를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부르고, 공식적으로 효고현 남부 지진이라 명명된 강도 7.2의 대지진이 고베 시와 한신 지역을 덮친 것이다. 땅이 흔들린 시간은 단 14초였지만 사망자는 6434명에 달했고 부상자는 4만3천명을 넘어섰다. 1초에 450명 정도의 사람이 죽어간 셈이다.
땅은 뒤틀렸고 빌딩은 주저앉았다. 고베와 오사카를 잇는 거대한 고가도로는 장난감처럼 무너져 내렸다. 지진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그나마 안전 지대로 여겨져 온 고베 지역은 지진의 기습에 속절없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작년 겨울 고베에 들렀을 때 말끔히 재건된 항구 근처에는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장난감처럼 부서져 나간 콘크리트 항만 시설들은 지진의 위력적인 손의 지문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저렇게 망가지고 부서진 재산은 1000억 달러에 달했다. 경제대국 일본 GNP의 2.5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였다. (20퍼센트를 넘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후쿠시마 쓰나미 때 보여주었듯 불가사의하게까지 보이는 질서 의식과 인내력으로 재난에 대처했다. 고베 전체 인구와 맞먹는 자원봉사자들이 고베로 몰려들었고 매점매석이나 약탈 같은 행동은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세계가 감탄했지만 그 감탄의 대열에 동참하면서도 좀 다른 생각을 하는 나라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었다. 저 질서 의식을 1923년 관동 대지진 때는 왜 발휘하지 못했더란 말이냐..... 죽음에 이르러서도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릴 줄 알고 살았다는 기쁨보다 구조대에 감사를 먼저 표할 줄 아는 예의바른 일본인들이 어떻게 수천 수만의 ‘조센징’들에게는 악마로 돌변했더란 말이냐. 그런데 이 생각을 속에만 묻어두지 못하고 그를 토해 냄으로써 스스로 악마가 되는 이도 있었다. 고소하다는 둥, 천벌을 받은 것이라는 둥.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최대 피해자들이라 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 오던 수요 시위를 한 차례 중단함으로써 일본의 고통에 대한 예의를 진켰다.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고베 대지진을 맞아 수요시위를 계속하여 규탄의 목소리를 이을 것인지 한 차례 거를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정신대 문제는 일본이 만든 인재(人災)이고 지진은 천재(天災)인데 시위를 중단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강경론도 나왔고 거기에 동조하는 이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 할머니의 말씀이 다른 의견들의 창끝을 누그러뜨렸다. “오늘만큼은 우리가 피해자로서 참변을 당한 가해자들을 용서합시다.” 92년 1월 시작된 수요집회 이후 150 주 연속하여 단 한 번의 무산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동설한이나 삼복더위나 계속된 집회를 할머니들은 일본인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스스로 중단했다. 일본 대사관 직원이 “할머니들의 관용에 부끄러우면서도 참으로 감격스럽다.”고 말했다고 하거니와 (한겨레 95.1.20) 할머니들의 예의는 일본인들의 무책임을 그렇게 이긴 것이다.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후 고베 시의 어느 동네에서 한 초등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는 몸을 피했지만 가토 하루카라는 열 한 살 아이는 끝내 집을 빠져나오지 못했고 희생자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아이는 무척 예의 바르고 동네 사람들에게 해맑게 인사하고 다녀 사람들로부터 귀염 받던 아이였음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이후의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
지진의 상처로부터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던 그 해 여름, 동네 사람들은 공터가 되어 버린 하루카의 집 근처에서 탐스럽게 피어난 해바라기들을 보게 된다. 난데없는 해바라기의 출현에 의아해하던 동네 사람들은 곧 내막을 알게 된다. “해바라기씨야. 하루카가 귀여워하던 앵무새에게 주던 해바라기씨가 지진 때문에 땅에 묻히면서 이렇게 피어난 거야.” 살아남은 가족들도, 하루카를 귀여워했고 그 아이를 못 잊어하던 동네 어른들은 하루카가 살아온 듯 해바라기 앞에 모였다. “하루카. 하루카 네가 해바라기로 되돌아왔구나.”
희망같은 태양을 향해 환하게 피어난 해바라기 앞에서, 명랑하고 씩씩했던 소녀 하루카의 유품(?)이 피어올린 해바라기 앞에서 하루카의 가족과 동네 사람들은 이 해바라기 씨를 고베 곳곳에 옮겨 심기로 한다. 하루카의 넋을 기리면서 또 희망을 잃지 말자는 뜻에서 도시 도처에 해바라기가 피어났고 그때까지 수국을 상징으로 했던 고베 시도 그 상징을 해바라기로 바꾸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 경기가 고베에서 열렸을 때 참가 선수단과 내빈들이 감탄해마지 않았던 해바라기의 물결은 바로 하루카의 해바라기에서 그 싹을 틔운 풍경이었다.
인간은 때로 상상도 못할만큼 잔인한 존재다.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겠다며 무기를 들고 설치는 일은 역사에서 그리 귀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포심을 주어 저들을 지배할까 하는 것에 날이 새고 저무는 사람들은 비로 쓸어낼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그 암흑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사람들이 없었던 적도, 스러지는 것들 사이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인류의 본능적인 행동이 그친 적도 없었다. 1995년 1월 20일 자신들의 피맺힌 포한을 토해내는 수요 시위를 포기하면서 가해자의 나라에 위로를 전했던 할머니들과 슬프게 죽어간 하루카의 해바라기씨로부터 희망을 발견한 일본인들처럼. 2013년 오늘 우리에게 해바라기씨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바라기씨로 삼아야 할까. 무엇으로부터 희망을 찾고 그를 누구에게 전달해야 할까.
tag : 산하의오역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과 하루카의 해바라기
일본에 ‘고베’(神戶)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안 건 1985년 그 도시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릴 때였다. 요즘이야 유니버시아드 대회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지만 스포츠 공화국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폐막식을 생중계했고 그 대회 와중에 대회 찬가라 할까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배를 쥐었었다. “고베 유니버시아드”를 이 참으로 발음 후진 일본인들이 “고베 유니바시아도~~~~”라고 목청껏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고베라는 도시도 있구나.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이며 일본 최대의 항구였던 고베를 다른 연유로 기억한다. 1995년 1월 17일 고베 시를 쑥밭으로 만든 고베 대지진이 그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를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부르고, 공식적으로 효고현 남부 지진이라 명명된 강도 7.2의 대지진이 고베 시와 한신 지역을 덮친 것이다. 땅이 흔들린 시간은 단 14초였지만 사망자는 6434명에 달했고 부상자는 4만3천명을 넘어섰다. 1초에 450명 정도의 사람이 죽어간 셈이다.
땅은 뒤틀렸고 빌딩은 주저앉았다. 고베와 오사카를 잇는 거대한 고가도로는 장난감처럼 무너져 내렸다. 지진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그나마 안전 지대로 여겨져 온 고베 지역은 지진의 기습에 속절없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작년 겨울 고베에 들렀을 때 말끔히 재건된 항구 근처에는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장난감처럼 부서져 나간 콘크리트 항만 시설들은 지진의 위력적인 손의 지문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저렇게 망가지고 부서진 재산은 1000억 달러에 달했다. 경제대국 일본 GNP의 2.5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였다. (20퍼센트를 넘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후쿠시마 쓰나미 때 보여주었듯 불가사의하게까지 보이는 질서 의식과 인내력으로 재난에 대처했다. 고베 전체 인구와 맞먹는 자원봉사자들이 고베로 몰려들었고 매점매석이나 약탈 같은 행동은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세계가 감탄했지만 그 감탄의 대열에 동참하면서도 좀 다른 생각을 하는 나라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었다. 저 질서 의식을 1923년 관동 대지진 때는 왜 발휘하지 못했더란 말이냐..... 죽음에 이르러서도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릴 줄 알고 살았다는 기쁨보다 구조대에 감사를 먼저 표할 줄 아는 예의바른 일본인들이 어떻게 수천 수만의 ‘조센징’들에게는 악마로 돌변했더란 말이냐. 그런데 이 생각을 속에만 묻어두지 못하고 그를 토해 냄으로써 스스로 악마가 되는 이도 있었다. 고소하다는 둥, 천벌을 받은 것이라는 둥.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최대 피해자들이라 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 오던 수요 시위를 한 차례 중단함으로써 일본의 고통에 대한 예의를 진켰다.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고베 대지진을 맞아 수요시위를 계속하여 규탄의 목소리를 이을 것인지 한 차례 거를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정신대 문제는 일본이 만든 인재(人災)이고 지진은 천재(天災)인데 시위를 중단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강경론도 나왔고 거기에 동조하는 이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 할머니의 말씀이 다른 의견들의 창끝을 누그러뜨렸다. “오늘만큼은 우리가 피해자로서 참변을 당한 가해자들을 용서합시다.” 92년 1월 시작된 수요집회 이후 150 주 연속하여 단 한 번의 무산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동설한이나 삼복더위나 계속된 집회를 할머니들은 일본인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스스로 중단했다. 일본 대사관 직원이 “할머니들의 관용에 부끄러우면서도 참으로 감격스럽다.”고 말했다고 하거니와 (한겨레 95.1.20) 할머니들의 예의는 일본인들의 무책임을 그렇게 이긴 것이다.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후 고베 시의 어느 동네에서 한 초등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는 몸을 피했지만 가토 하루카라는 열 한 살 아이는 끝내 집을 빠져나오지 못했고 희생자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아이는 무척 예의 바르고 동네 사람들에게 해맑게 인사하고 다녀 사람들로부터 귀염 받던 아이였음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이후의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
지진의 상처로부터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던 그 해 여름, 동네 사람들은 공터가 되어 버린 하루카의 집 근처에서 탐스럽게 피어난 해바라기들을 보게 된다. 난데없는 해바라기의 출현에 의아해하던 동네 사람들은 곧 내막을 알게 된다. “해바라기씨야. 하루카가 귀여워하던 앵무새에게 주던 해바라기씨가 지진 때문에 땅에 묻히면서 이렇게 피어난 거야.” 살아남은 가족들도, 하루카를 귀여워했고 그 아이를 못 잊어하던 동네 어른들은 하루카가 살아온 듯 해바라기 앞에 모였다. “하루카. 하루카 네가 해바라기로 되돌아왔구나.”
희망같은 태양을 향해 환하게 피어난 해바라기 앞에서, 명랑하고 씩씩했던 소녀 하루카의 유품(?)이 피어올린 해바라기 앞에서 하루카의 가족과 동네 사람들은 이 해바라기 씨를 고베 곳곳에 옮겨 심기로 한다. 하루카의 넋을 기리면서 또 희망을 잃지 말자는 뜻에서 도시 도처에 해바라기가 피어났고 그때까지 수국을 상징으로 했던 고베 시도 그 상징을 해바라기로 바꾸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 경기가 고베에서 열렸을 때 참가 선수단과 내빈들이 감탄해마지 않았던 해바라기의 물결은 바로 하루카의 해바라기에서 그 싹을 틔운 풍경이었다.
인간은 때로 상상도 못할만큼 잔인한 존재다.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겠다며 무기를 들고 설치는 일은 역사에서 그리 귀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포심을 주어 저들을 지배할까 하는 것에 날이 새고 저무는 사람들은 비로 쓸어낼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그 암흑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사람들이 없었던 적도, 스러지는 것들 사이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인류의 본능적인 행동이 그친 적도 없었다. 1995년 1월 20일 자신들의 피맺힌 포한을 토해내는 수요 시위를 포기하면서 가해자의 나라에 위로를 전했던 할머니들과 슬프게 죽어간 하루카의 해바라기씨로부터 희망을 발견한 일본인들처럼. 2013년 오늘 우리에게 해바라기씨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바라기씨로 삼아야 할까. 무엇으로부터 희망을 찾고 그를 누구에게 전달해야 할까.
tag : 산하의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