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78년 1월 14일 기구한 최은희
영화 <괴물> 기억나시죠? 한강에서 괴물이 별안간 나타나 시민들을 쓸어 버리는 장면에서 우리의 봉테일 감독은 이 영화가 반미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듯 한 용감한 미군 병사를 등장시킵니다. 송강호와 함께 괴물과 맞섰던 유일한 사람이죠. 그때 괴물에 덤비려는 미군 병사에게 매달리며 말리는 애인이 나오는데 그 애인 역을 맡은 여배우는 꽤 유명한 사람의 딸입니다. 바로 신상옥 감독의 딸 신승리지요.
신승리씨는 전혀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 탄생으로 말미암아 한국 영화사상 최고로 명망이 드높다 할 스타 부부의 파탄을 가져온 이이기도 합니다. 신상옥 감독은 여배우 최은희와 결혼했으면서 여배우 오수미와 몰래 사랑을 키웠고 아들을 얻지요. 여기까지는 최은희도 아이 못 가지는 죄도 죄려니 하고 용서를 하려 했는데 두 번째 애가 태어나면서는 그만 인내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둘째가 신승리였다죠.
최은희씨는 아시다시피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영화사 최고의 여배우입니다. <상록수>의 채영신, <춘향전>의 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의 별당아씨 등 한국 여성의 대표적 캐릭터 가운데 안해 본 것이 없을 정도고 본인도 기억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영화의 히로인으로 한국 영화를 빛냈죠. 저는 EBS에서 가끔 해주는 한국 영화 걸작선에서 최은희씨를 만나 본 적 있는데 요즘 기준으로 빼어난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그 둥근 얼굴과 야무진 이목구비에서 배어나오는 신비한 매력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철모르는 옥희 앞에서 속내를 숨기려고 애쓰던 <사랑방 손님의 어머니>에서는 더욱요. 한국적 여인상이라는 말에 한(恨)이 많이 배어나 있기 때문일까요. 그녀는 과부 배역을 많이 맡았던 여배우라고 합니다.
그녀는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에 출연하여 영화계에 데뷔한 뒤 이미 한반도 전체에서 유명해집니다. 남과 북 모두에서 말이죠. 47년이면 38선을 넘나들며 장사하던 사람들도 많을 때였죠. 하지만 그 유명세가 결국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이 됩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 그녀는 목포에서 영화 촬영 중이었다고 합니다.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진 와중에 그녀는 서울에 있던 카메라 촬영기사 남편을 찾아 남들이 피난 가던 길을 거슬러 올라 27일 서울로 올라옵니다. 서울 함락이 28일이었으니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어도 머리 깎고 들이민 셈이죠.
최은희의 회고에 따르면 결핵에 걸린 남편을 부양하며 죽은 듯 숨어 지내던 7월의 어느 날 남산길을 걸어 내려오다가 한 인민군 장교에게 뒷덜미가 잡힙니다. “동무 최은희 동무 아니오. 나 심영이오.” 일제 때 유명했던 배우로서 월북했다는 소문이 났던 심영이 최은희를 알아본 겁니다. 최은희는 졸지에 인민군 내무성 소속 경비대 협주단의 단원이 됩니다. 쉽게 말해 문화선전대가 된 거죠. 배우 김승호, 엄앵란씨 삼촌 엄토미, 성악가 오현명 등이 끌려와 있었다죠. 이들은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북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다가 폭격 와중에 기회를 포착해서 최은희는 죽을힘을 다해 탈출을 감행합니다.
도망하다가 그녀는 북진하던 국군 6사단과 마주합니다. “대한민국 만세, 국군 만세를 불렀다. 나는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지요. 그런데 6사단 정훈 장교는 그녀에게 선무 공작을 요구합니다. 즉 국군의 문화선전대 노릇을 하라는 거였지요. 며칠 상간으로 그는 정반대의 공연을 하며 다른 편의 군인들을 위무해야 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부역자 딱지가 위태롭게 등짝에 붙어 있었던 이유도 있었죠.
어느 날 헌병대에서 그녀의 부역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리고 다음에 벌어진 일은 그녀의 회고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헌병대원은 잔뜩 겁먹은 나를 한적한 민가로 데려갔다. 술상 앞에 헌병대장이 앉아있었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얼굴만 반반한 줄 알았더니 피부도 곱구먼"이라며 다가왔다. 그를 확 밀어젖혔다. 하지만 그는 씩씩거리며 권총을 겨누더니, 내 몸 위로 쓰러졌다. 발버둥을 치고 비명을 질렀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한겨울에 숙소로 돌아오면서 한없이 흐느껴 울었다.” 이후 6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으로 산산조각이 나지요. 국군이 후퇴하면서 최은희는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의 회고는 정말로 마음이 아픕니다. “납북됐다가 살아 돌아오니 ‘최은희가 인민군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는 등 별의별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정작 나를 욕보인 사람은 아군이었다.”
전쟁 후 그녀는 다시 화려한 배우가 되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전담하다시피 했던 신상옥 감독과 사랑에 빠집니다. 전쟁 통에 목포에서 자신을 걱정해 올라왔던 아내 최은희를 종종 두들겨 팼다는 남편은 이 둘을 간통죄로 걸어버리는 바람에 간통죄 1호의 오명도 쓰게 됩니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을 일생의 남자로 삼고 사랑했지만 그 양반에게도 앞서 말한 배신을 당하게 되지요. 그리고 1978년 1월 14일 또 한 번 남북 분단의 희생양이 됩니다.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를 당한 거죠. 영화광으로 소문났던 김정일 위원장의 소행으로 추정됩니다만 어쨌든 그녀는 홍콩에서 평양으로 위치이동됩니다. 그 후 신상옥 감독도 북으로 납치되어 (또는 제발로) 들어와서 그들은 난데없는 북한에서 다시 결합하지요. 그리고 그 뒤 이야기는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전쟁이 터져도 남편 걱정하느라 서울로 올라왔던 여배우는 적군의 문화선전대원이 됐다가 아군에 구출된 뒤에는 아군에게 능욕을 당하고, 수십 년을 살았던 고국을 생판 타의로 등지고 상상해 보지도 않은 땅에서 배우 노릇을 해야 했고 다시 기회를 보아 그곳을 탈출했습니다. 아마 분단 이후 그녀만큼 남과 북을 처절하고 뼈아프게 경험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요. 한국 영화사상 우뚝 선 최고의 여배우 최은희의 삶은 실로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굴곡이 크고 굽이가 많았습니다.
1978년 1월 14일 전혀 본의 아니게 배에 실려 황해를 가로지르던 최은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남포항까지 마중나왔다는 김정일을 보면서 또 그녀는 무슨 기겁을 했을까요. 대체 이게 무슨 팔자냐 한탄하는 와중에 갑자기 난데없이 심상옥 감독이 떡 하고 나타났다면 이건 또 무슨 조화냐 기절초풍하지 않았을까요....... 밤이나 낮이나 빛났던 여배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의 인생역정은 참으로 역사에 남을만큼 기구했습니다.
1978년 1월 14일 기구한 최은희
영화 <괴물> 기억나시죠? 한강에서 괴물이 별안간 나타나 시민들을 쓸어 버리는 장면에서 우리의 봉테일 감독은 이 영화가 반미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듯 한 용감한 미군 병사를 등장시킵니다. 송강호와 함께 괴물과 맞섰던 유일한 사람이죠. 그때 괴물에 덤비려는 미군 병사에게 매달리며 말리는 애인이 나오는데 그 애인 역을 맡은 여배우는 꽤 유명한 사람의 딸입니다. 바로 신상옥 감독의 딸 신승리지요.
신승리씨는 전혀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 탄생으로 말미암아 한국 영화사상 최고로 명망이 드높다 할 스타 부부의 파탄을 가져온 이이기도 합니다. 신상옥 감독은 여배우 최은희와 결혼했으면서 여배우 오수미와 몰래 사랑을 키웠고 아들을 얻지요. 여기까지는 최은희도 아이 못 가지는 죄도 죄려니 하고 용서를 하려 했는데 두 번째 애가 태어나면서는 그만 인내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둘째가 신승리였다죠.
최은희씨는 아시다시피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영화사 최고의 여배우입니다. <상록수>의 채영신, <춘향전>의 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의 별당아씨 등 한국 여성의 대표적 캐릭터 가운데 안해 본 것이 없을 정도고 본인도 기억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영화의 히로인으로 한국 영화를 빛냈죠. 저는 EBS에서 가끔 해주는 한국 영화 걸작선에서 최은희씨를 만나 본 적 있는데 요즘 기준으로 빼어난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그 둥근 얼굴과 야무진 이목구비에서 배어나오는 신비한 매력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철모르는 옥희 앞에서 속내를 숨기려고 애쓰던 <사랑방 손님의 어머니>에서는 더욱요. 한국적 여인상이라는 말에 한(恨)이 많이 배어나 있기 때문일까요. 그녀는 과부 배역을 많이 맡았던 여배우라고 합니다.
그녀는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에 출연하여 영화계에 데뷔한 뒤 이미 한반도 전체에서 유명해집니다. 남과 북 모두에서 말이죠. 47년이면 38선을 넘나들며 장사하던 사람들도 많을 때였죠. 하지만 그 유명세가 결국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이 됩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 그녀는 목포에서 영화 촬영 중이었다고 합니다.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진 와중에 그녀는 서울에 있던 카메라 촬영기사 남편을 찾아 남들이 피난 가던 길을 거슬러 올라 27일 서울로 올라옵니다. 서울 함락이 28일이었으니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어도 머리 깎고 들이민 셈이죠.
최은희의 회고에 따르면 결핵에 걸린 남편을 부양하며 죽은 듯 숨어 지내던 7월의 어느 날 남산길을 걸어 내려오다가 한 인민군 장교에게 뒷덜미가 잡힙니다. “동무 최은희 동무 아니오. 나 심영이오.” 일제 때 유명했던 배우로서 월북했다는 소문이 났던 심영이 최은희를 알아본 겁니다. 최은희는 졸지에 인민군 내무성 소속 경비대 협주단의 단원이 됩니다. 쉽게 말해 문화선전대가 된 거죠. 배우 김승호, 엄앵란씨 삼촌 엄토미, 성악가 오현명 등이 끌려와 있었다죠. 이들은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북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다가 폭격 와중에 기회를 포착해서 최은희는 죽을힘을 다해 탈출을 감행합니다.
도망하다가 그녀는 북진하던 국군 6사단과 마주합니다. “대한민국 만세, 국군 만세를 불렀다. 나는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지요. 그런데 6사단 정훈 장교는 그녀에게 선무 공작을 요구합니다. 즉 국군의 문화선전대 노릇을 하라는 거였지요. 며칠 상간으로 그는 정반대의 공연을 하며 다른 편의 군인들을 위무해야 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부역자 딱지가 위태롭게 등짝에 붙어 있었던 이유도 있었죠.
어느 날 헌병대에서 그녀의 부역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리고 다음에 벌어진 일은 그녀의 회고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헌병대원은 잔뜩 겁먹은 나를 한적한 민가로 데려갔다. 술상 앞에 헌병대장이 앉아있었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얼굴만 반반한 줄 알았더니 피부도 곱구먼"이라며 다가왔다. 그를 확 밀어젖혔다. 하지만 그는 씩씩거리며 권총을 겨누더니, 내 몸 위로 쓰러졌다. 발버둥을 치고 비명을 질렀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한겨울에 숙소로 돌아오면서 한없이 흐느껴 울었다.” 이후 6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으로 산산조각이 나지요. 국군이 후퇴하면서 최은희는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의 회고는 정말로 마음이 아픕니다. “납북됐다가 살아 돌아오니 ‘최은희가 인민군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는 등 별의별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정작 나를 욕보인 사람은 아군이었다.”
전쟁 후 그녀는 다시 화려한 배우가 되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전담하다시피 했던 신상옥 감독과 사랑에 빠집니다. 전쟁 통에 목포에서 자신을 걱정해 올라왔던 아내 최은희를 종종 두들겨 팼다는 남편은 이 둘을 간통죄로 걸어버리는 바람에 간통죄 1호의 오명도 쓰게 됩니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을 일생의 남자로 삼고 사랑했지만 그 양반에게도 앞서 말한 배신을 당하게 되지요. 그리고 1978년 1월 14일 또 한 번 남북 분단의 희생양이 됩니다.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를 당한 거죠. 영화광으로 소문났던 김정일 위원장의 소행으로 추정됩니다만 어쨌든 그녀는 홍콩에서 평양으로 위치이동됩니다. 그 후 신상옥 감독도 북으로 납치되어 (또는 제발로) 들어와서 그들은 난데없는 북한에서 다시 결합하지요. 그리고 그 뒤 이야기는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전쟁이 터져도 남편 걱정하느라 서울로 올라왔던 여배우는 적군의 문화선전대원이 됐다가 아군에 구출된 뒤에는 아군에게 능욕을 당하고, 수십 년을 살았던 고국을 생판 타의로 등지고 상상해 보지도 않은 땅에서 배우 노릇을 해야 했고 다시 기회를 보아 그곳을 탈출했습니다. 아마 분단 이후 그녀만큼 남과 북을 처절하고 뼈아프게 경험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요. 한국 영화사상 우뚝 선 최고의 여배우 최은희의 삶은 실로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굴곡이 크고 굽이가 많았습니다.
1978년 1월 14일 전혀 본의 아니게 배에 실려 황해를 가로지르던 최은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남포항까지 마중나왔다는 김정일을 보면서 또 그녀는 무슨 기겁을 했을까요. 대체 이게 무슨 팔자냐 한탄하는 와중에 갑자기 난데없이 심상옥 감독이 떡 하고 나타났다면 이건 또 무슨 조화냐 기절초풍하지 않았을까요....... 밤이나 낮이나 빛났던 여배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의 인생역정은 참으로 역사에 남을만큼 기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