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00년 1835년 11월 30일 오스카 와일드, 마크 트웨인
밤샘 일하는 와중에 몇 자 끄적인다. 영화 '더 롹'을 본 사람들은 그 멋있음이 절정에 달했던 노배우 숀 코네리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 가운데 명장면 중의 하나가 부하들의 희생을 저버린 조국에 미사일을 겨눈 험멜 장군이 알카트라즈 탈출에 성공했지만 붙잡혀 오랜 옥살이를 했던 영국 첩보원 메이슨과 나누는 대화다. 험멜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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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1835년 11월 30일 오스카 와일드, 마크 트웨인
밤샘 일하는 와중에 몇 자 끄적인다. 영화 '더 롹'을 본 사람들은 그 멋있음이 절정에 달했던 노배우 숀 코네리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 가운데 명장면 중의 하나가 부하들의 희생을 저버린 조국에 미사일을 겨눈 험멜 장군이 알카트라즈 탈출에 성공했지만 붙잡혀 오랜 옥살이를 했던 영국 첩보원 메이슨과 나누는 대화다. 험멜 장군
이 먼저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로 키워진다. 토머스 제퍼슨”이라며 스스로의 행위를 미화하자 메이슨은 영국인 특유의 냉소로 이렇게 되받는다. “애국이란 보통 악한의 미덕이다. 오스카 와일드요 장군.”
게으르게도 나는 이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내가 잊기 힘든 동화를 쓴 사람이다. 죽어서 동상이 세워진 뒤에야 오지랖이 눈물 날 만큼 넓어진 왕자와 그 오지랖을 감당하며 왕자의 동상에 박혀 있던 보석들을 부리로 떼어 가난한 이들에게 실어 나르다 끝내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지 못하고 동상 아래 떨어져 죽어야 했던 제비의 이야기는 언제 다시 생각해도 가슴에 화기(火氣)를 당긴다. 자신의 눈까지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 달라는 왕자의 청에 응한 제비는 그예 그를 떠나지 못하고 왕자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왕자에게 전하며 살다가 왕자의 발치에 떨어져 죽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일종의 연대였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고 전염되며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감동하며 놓지 못하는 손들이 빚어내는 인간 최고의 미덕 중의 하나. 그래서 동화 속에서 천사는 그 도시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왕자의 깨진 심장과 제비의 시체를 꼽고 그를 들고 하느님 앞에 갔으리라.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자주 인용되는 그의 아포리즘들을 보면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들이 많다. “영혼은 늙게 태어났으나 젊어져 간다. 그것은 인생의 희극이다. 그리고 육체는 젊게 태어나서 늙어간다. 그게 인생의 비극이다.”는 말 앞에서 나는 싱긋 웃는다. 지금도 옛 학교에 가면 족구하자고 아이들 불러 낼 것 같은 마음이지만 대학 4학년 때에는 되레 애고 몸이 전같지 않다는 둥 시건방을 다 떨었었던 것도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이는 들수록 마음은 젊어가고 마음이 젊을수록 몸은 쭈글쭈글해지는 게 인간사의 이치인가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들으면 그건 동서고금에 똑같은 것 같고.
1900년 11월 30일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에 떠났지만 그로부터 65년 전 1835년 11월 30일은 한 탁월한 문학가가 세상에 왔다. 그 이름은 새뮤얼 클레멘스였지만 그는 측량기사 노릇을 하던 시절 얻었던 별명 마크 트웨인을 평생의 필명으로 사용한다. 그의 작품들은 내 어린 시절의 일부를 생생히 구성하고 있다. 온 마을을 골탕먹이던 톰 소여의 장난기와 허클베리핀의 모험도 물론 그렇지만 나에게 마크 트웨인은 사회적 모순(?)을 처음으로 알려 준 작가였고 사람에게 사람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 작가였다.
<왕자와 거지>에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쌍둥이처럼 닮은 톰 칸티와 옷을 바꿔 입는 바람에 졸지에 거지가 되어 거리를 누비게 되는 왕자 에드워드는 동료(?) 거지가 훔친 새끼 돼지를 떠안기고 도망가는 바람에 붙잡혀 도둑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다. 재판장은 새끼돼지의 주인인 여자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다. “부인 이 아이를 교수형 받게 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여자는 화들짝 놀란다. “아니 이만한 일로 이 아이가 교수형을 당해요?”
판사는 설명한다. “그게 법입니다. 훔친 물건이 6펜스 이상이면 교수형을 받지요.”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크게 저으며 그럴 수는 없노라고 자신이 새끼돼지 가격을 그 이하로 적겠노라 대답하고 서명한다. 그런데 이를 본 경찰관이 그녀의 뒤를 따라붙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머니 이 돼지 내게 3펜스에 파시오.” “아니 이 양반이 내가 10펜스를 주고 산 걸 어떻게 3펜스에 팔아요?” 여자가 앙칼지게 쏘아부치자 경찰은 엄숙하게 말한다. “당신 판사 앞에서 위증을 했군.” 그리고는 돼지를 빼앗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 그 대목을 읽으며 사람이 나쁘면 참 한없이 나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와 소설들이 다시 생각나는 걸 보면 역시 내 영혼은 늙게 태어나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 마크 트웨인이 오고 오스카 와일드가 떠난 날 우리 나이로 마흔 세 살이 되는 (내 나이를 헛갈리다니! 참 심신이 미약해지고 있다) 나는 문득 그들이 내게 선물했던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악한 인간상을 되씹으며 긴긴 밤을 지새고 있다.
게으르게도 나는 이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내가 잊기 힘든 동화를 쓴 사람이다. 죽어서 동상이 세워진 뒤에야 오지랖이 눈물 날 만큼 넓어진 왕자와 그 오지랖을 감당하며 왕자의 동상에 박혀 있던 보석들을 부리로 떼어 가난한 이들에게 실어 나르다 끝내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지 못하고 동상 아래 떨어져 죽어야 했던 제비의 이야기는 언제 다시 생각해도 가슴에 화기(火氣)를 당긴다. 자신의 눈까지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 달라는 왕자의 청에 응한 제비는 그예 그를 떠나지 못하고 왕자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왕자에게 전하며 살다가 왕자의 발치에 떨어져 죽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일종의 연대였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고 전염되며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감동하며 놓지 못하는 손들이 빚어내는 인간 최고의 미덕 중의 하나. 그래서 동화 속에서 천사는 그 도시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왕자의 깨진 심장과 제비의 시체를 꼽고 그를 들고 하느님 앞에 갔으리라.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자주 인용되는 그의 아포리즘들을 보면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들이 많다. “영혼은 늙게 태어났으나 젊어져 간다. 그것은 인생의 희극이다. 그리고 육체는 젊게 태어나서 늙어간다. 그게 인생의 비극이다.”는 말 앞에서 나는 싱긋 웃는다. 지금도 옛 학교에 가면 족구하자고 아이들 불러 낼 것 같은 마음이지만 대학 4학년 때에는 되레 애고 몸이 전같지 않다는 둥 시건방을 다 떨었었던 것도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이는 들수록 마음은 젊어가고 마음이 젊을수록 몸은 쭈글쭈글해지는 게 인간사의 이치인가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들으면 그건 동서고금에 똑같은 것 같고.
1900년 11월 30일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에 떠났지만 그로부터 65년 전 1835년 11월 30일은 한 탁월한 문학가가 세상에 왔다. 그 이름은 새뮤얼 클레멘스였지만 그는 측량기사 노릇을 하던 시절 얻었던 별명 마크 트웨인을 평생의 필명으로 사용한다. 그의 작품들은 내 어린 시절의 일부를 생생히 구성하고 있다. 온 마을을 골탕먹이던 톰 소여의 장난기와 허클베리핀의 모험도 물론 그렇지만 나에게 마크 트웨인은 사회적 모순(?)을 처음으로 알려 준 작가였고 사람에게 사람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 작가였다.
<왕자와 거지>에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쌍둥이처럼 닮은 톰 칸티와 옷을 바꿔 입는 바람에 졸지에 거지가 되어 거리를 누비게 되는 왕자 에드워드는 동료(?) 거지가 훔친 새끼 돼지를 떠안기고 도망가는 바람에 붙잡혀 도둑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다. 재판장은 새끼돼지의 주인인 여자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다. “부인 이 아이를 교수형 받게 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여자는 화들짝 놀란다. “아니 이만한 일로 이 아이가 교수형을 당해요?”
판사는 설명한다. “그게 법입니다. 훔친 물건이 6펜스 이상이면 교수형을 받지요.”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크게 저으며 그럴 수는 없노라고 자신이 새끼돼지 가격을 그 이하로 적겠노라 대답하고 서명한다. 그런데 이를 본 경찰관이 그녀의 뒤를 따라붙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머니 이 돼지 내게 3펜스에 파시오.” “아니 이 양반이 내가 10펜스를 주고 산 걸 어떻게 3펜스에 팔아요?” 여자가 앙칼지게 쏘아부치자 경찰은 엄숙하게 말한다. “당신 판사 앞에서 위증을 했군.” 그리고는 돼지를 빼앗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 그 대목을 읽으며 사람이 나쁘면 참 한없이 나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와 소설들이 다시 생각나는 걸 보면 역시 내 영혼은 늙게 태어나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 마크 트웨인이 오고 오스카 와일드가 떠난 날 우리 나이로 마흔 세 살이 되는 (내 나이를 헛갈리다니! 참 심신이 미약해지고 있다) 나는 문득 그들이 내게 선물했던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악한 인간상을 되씹으며 긴긴 밤을 지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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