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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12.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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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68년 12월9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위에 쓴 한 마디로 오늘 어떤 사람이 등장할는지는 대부분 눈치를 채실 것이다. 맞다 이승복이다. 1959년 태어나 1968년 오늘 딱 아홉살이 되었던 강원도 소년이다. 즉 오늘은 그의 생일이었고 동시에 기일이 된다.

울진 삼척 지구에 침투한 중대 규모의 인민군들은 '해방군'이 아닌 '공비'로서 행동했다. 태백산맥의 험산준령을 넘나들며 남한 군경과 맞서던 그들이 강원도 평창 산골의 이승복의 집으로 스며든 것이 또한 오늘이기도 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살아남은 승복의 형의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어쨌든 인민의 군대로 훈련받은 그들은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 여자와 아이들을 돌로 쳐서 죽인 것이다.

문제는 아홉살 승복이가 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한 마디로 죽은 아이는 반공 정신의 고갱이요 알멩이요 결정체가 됐다. 산지사방에 이 아이의 동상이 세워졌고 이 아이를 기리는 반공 웅변 대회가 열렸으며 이 아이의 짧은 일생은 교과서에 실렸고 큼직한 기념관까지 지어져 학생들의 순례지가 됐다. 기실 내가 배운 신화는 더 있었다. 공비들이 연필을 보고 이런 건 미제 아니냐고 하자 국산품이라고 외쳤다거나 숨이 끊길 때까지 공산당이 싫다고 부르짖었다거나.

그래도 핵심은 "공산당이 싫어요"였다. 아이가 이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뭣보다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살아가던 한 가족이 느닷없이 찾아든 침입자에 의해 박살을 당했고 그 악마들의 손은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을 "공비 앞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부르짖은 반공투사"로 만드는 오버를 감행한 것은 분명한 무리수였다. 이승복의 죽음은 반공 어린이의 비장한 최후라서가 아니라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하며 어떠한 위난에서도 먼저 구원받아야 할, 심지어 저 잔악한 몽골군들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던 어린 아이가 유린당한 것만으로 충분히 슬프다.


그런데 진보 쪽에서 똑같은 오류를 범한다. 사건의 의미는 저만치 놔둔 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그 말을 처음 인용한 조선일보의 기사가 작문인지 아닌지에 대해 시비를 건 것이다. 승복이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부르짖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일보를 공격하는 것도 좋고, 그 허위 취재를 밝히는 것도 환영이다. 하지만 그 프레임은 너무도 억울하게 생일상으로 칼과 돌을 받았던 어린아이의 죽음을 비껴나고 있었다.


반공을 위해 이승복을 이용한 정부처럼 진보는 조선일보를 까기 위해 이승복의 죽음을 이용했다. 그 허위 공방 속에 이승복의 살아남은 형은 거짓말장이가 됐고 자칭 진보 사이에서 이승복은 하나의 유령으로 치부됐다. "공 상당히 싫어요" 또는 "콩사탕이 싫어요" 때문에 죽었을 거라는 낄낄거림이 그의 죽음을 희롱했고 그의 짧았던 삶 자체가 조선일보의 가공인양 치부됐다.

이승복이 뭐라고 부르짖었는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 살려달라고 빌다가 죽었다고 해서 가련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나는 공산당이 싫다고 외쳤다고 해서 존경스럽지도 않다. 그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되는 아이였다는 게 중요하다.

사람의 권리가 시대와 영역과 정권과 진영을 초월하여 존중받을때 민주주의는 첫발을 뗀다.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권리를 이용하고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권리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등가의 죄다.

승복이는 이미 43년전에 죽었다. 하지만 그 뒤 그의 동족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보내지 못했고 되레 그 백골이 된 송장을 업고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이승복의 반공 정신 이어받아 어쩌고 하는 울음이 난무하고 "북한은 그 나름의 특수성이 있으니 그 인권을 논함은 불가하다"는 짖음이 버젓함은 그 본보기가 되겠다.

승복아 잘 가라. 오늘 네 생일이자 기일에 지금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네 고향을 내려다보고 있을 승복아. 이제 그만 푹 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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