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64년 11월 10일 황용주 필화와 매카시즘
군정에서 민정으로 바뀐 지 몇 해 안되던 그 심란한 세월의 어느 날, 야당의 김준연 의원이 준열한 어조로 누군가의 글을 두고 '용공'(容共)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글을 쓴 이는 황용주 부산 MBC 사장. 그는 월갑 잡지 '세대'에 자신의 통일론을 설파하는 글을 썼는데 당시로서는 꽤 진보적인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을 담고 ...
1964년 11월 10일 황용주 필화와 매카시즘
군정에서 민정으로 바뀐 지 몇 해 안되던 그 심란한 세월의 어느 날, 야당의 김준연 의원이 준열한 어조로 누군가의 글을 두고 '용공'(容共)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글을 쓴 이는 황용주 부산 MBC 사장. 그는 월갑 잡지 '세대'에 자신의 통일론을 설파하는 글을 썼는데 당시로서는 꽤 진보적인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을 담고 ...
있었다. '북괴'라고 쓰지 않고 북한이라고 일컬어도 흰눈으로 돌아보던 시대,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서로 그 체제를 인정하자는 주장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걸 야당 의원이 문제 삼았을까.
김준연 의원은 "왜 황용주를 당장 집어넣지 않느냐?"고 길길이 뛰었다. 그 이유는 그의 뒷말에서 간단히 드러난다. "우리는 지도자(박정희)가 반공 반공 하면서 나중에 용공으로 돌아설까 무섭단 말이오. 한 배의 모든 승객이 샌프란시스코로 가기를 원하나 선장이 키를 돌리면 배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고 마는 것이오." 황용주는 박정희의 대구 사범 후배로서 박정희의 절친한 후배였던 것이다.(그리고 정수장학회를 박정희가 빼앗는 데 있어 중개인 노릇도 했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그의 사상을 의심하여 사재를 털어 그의 뒤를 캐고 다녔던 민간인들도 있었다는 증언이 있을만큼 '빨갱이'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헐크가 되던 시대, 야당 인사들로서는 황용주의 글은 그야말로 뜸 잘 든 밥상이었다.
김준연 의원의 활약상(?)은 참 경악할만하다. 그 자신도 일제 강점기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일찍이 대통령선거에서 "간첩 황태성은 박정희씨의 친형인 박상희씨와 친면이 있는 사이이고, 고 박상희씨는 대구폭동 당시 군위 인민보안서장으로 활약했다가 토벌경찰에 의해 사살되었고, 여순 반란 사건 때 박정희씨가 남로당 책임자였다는 것, 또한 박씨의 조카사위인 김종필씨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인하고 공산세계와 일맥이 통하는 소위 교도민주주의를 제창하였다는 것 등으로 미루어 그의 사상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고, 국민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공격하는 등 악착같이 박정희를 공격했다. 박정희가 "악랄한 매카시즘"이라고 반발할만큼.
황용주 필화 사건에서 김준연은 또 한 번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흥분했다. 국회에서 "수사중"이라고 답변하는 내무 장관 앞에서 김준연은 책상을 두드리면서 "개00"라는 말을 수십 번이나 연발했다. 그는 역시 "박정희 대통령과 그가 친한 사이라는 사실에 전율을 금할 수 없다."고 박정희를 들먹였고 이에 15년 뒤 박정희 대통령의 저승길 동료가 되는 공수부대 대위 출신 차지철이 격하게 반발한다. 그답게 단순하지만 꽤 올바른 논리로. "황용주가 빨갱이면 빨갱이지 왜 각하 이름을 들먹이는 거요." 차지철 역시 책상을 난타하며 분연히 맞섰고 국회는 일촉즉발의 난장판으로 변한다.
그런데 또 엉뚱한 얘기가 야당 의원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서울 시내 어느 다방에서 소련 국가가 흘러 나왔다."는 것이다. 발언자는 민정당 유청 의원. 소련 국가가 '인터내셔널'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노래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야당 의원들은 또 불같이 흥분했다. "부산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를 해임해라. 다방의 음반을 조사하라." 가히 정신질환에 가까운 레드 콤플렉스였다. 오히려 당시 정부 여당 측의 반응에 절로 공감이 갈 정도다. 국회의원들의 호통이 이어지던 국회에 출석해 있던 공보부의 모 국장은 기자들에게 "공보부장관이 어떻게 민간 방송사 사장을 해임할 수 있으며, 다방의 음반을 조사할 수 있겠느냐며 하소연했다.
공화당 의원들마저 이 가공할 빨갱이 처단판에 대부분 가담한 가운데 공화당 박종태 의원의 반박은 매우 이채로울만큼 상식적이다. "남북통일이 터부가 아닌 다음에야 통한론(統韓論) 자체가 범죄가 될 수 없으며, 북한에 정권이 있는 것을 인정하니까 통한론이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통한론이 나오겠는가." 하지만 한국 보수야당의 대부라 할 위인이자 우리도 아는 정대철 의원의 아버지인 정일형조차 "이 논문(의 용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딱 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태에서 나온 코멘트 중 우리가 가장 값지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공화당 대변인으로부터 나온다. "각자가 자기의 소견을 밝히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당으로서 관여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작가 김승옥이 가슴 저리게 묘사한 "1964년 겨울"의 서울에서 '매카시즘'의 공격 대상은 다름아닌 박정희였다. 박정희에게 언론의 힘을 일깨워 준 사람이며 정수장학회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박정희의 친구 중의 하나이면서, 3.15 부정선거 후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보도 통제를 뚫고 그 사진과 기사를 역사 앞에 폭로했던 용기 있는 언론인이기도 한 황용주는 이 필화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그 후 그다지 큰 족적을 남기지 않은 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물론 야당의원들이 공격하려던 것은 그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것도 '악랄한 매카시즘'으로.
그로부터 몇 년 못가서 자신을 공격하던 왕년의 공산주의자 김준연처럼, 박정희 대통령 역시 매카시즘의 악랄한 계승자로 변신해 간다. 맞은 놈이 더 때리는 법이고 시집살이 매웠던 며느리가 더 독해진다고 그는 매카시도 놀랄 수법으로 자신들의 국민들을 쥐잡듯 잡았고, 수많은 이들에게 '빨갱이'의 딱지를 씌워 댔다. 역시 배교자가 더 무섭더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오늘날 그 악랄한 매카시즘이 박근혜 후보에게 유전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 바람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툭하면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입버릇인 박근혜 후보에게 그 아버지의 왕년을 일깨워 주고는 싶다. 그 아버님께서 얼마나 "악랄한 매카시즘"에 괴로워하셨던가를
김준연 의원은 "왜 황용주를 당장 집어넣지 않느냐?"고 길길이 뛰었다. 그 이유는 그의 뒷말에서 간단히 드러난다. "우리는 지도자(박정희)가 반공 반공 하면서 나중에 용공으로 돌아설까 무섭단 말이오. 한 배의 모든 승객이 샌프란시스코로 가기를 원하나 선장이 키를 돌리면 배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고 마는 것이오." 황용주는 박정희의 대구 사범 후배로서 박정희의 절친한 후배였던 것이다.(그리고 정수장학회를 박정희가 빼앗는 데 있어 중개인 노릇도 했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그의 사상을 의심하여 사재를 털어 그의 뒤를 캐고 다녔던 민간인들도 있었다는 증언이 있을만큼 '빨갱이'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헐크가 되던 시대, 야당 인사들로서는 황용주의 글은 그야말로 뜸 잘 든 밥상이었다.
김준연 의원의 활약상(?)은 참 경악할만하다. 그 자신도 일제 강점기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일찍이 대통령선거에서 "간첩 황태성은 박정희씨의 친형인 박상희씨와 친면이 있는 사이이고, 고 박상희씨는 대구폭동 당시 군위 인민보안서장으로 활약했다가 토벌경찰에 의해 사살되었고, 여순 반란 사건 때 박정희씨가 남로당 책임자였다는 것, 또한 박씨의 조카사위인 김종필씨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인하고 공산세계와 일맥이 통하는 소위 교도민주주의를 제창하였다는 것 등으로 미루어 그의 사상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고, 국민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공격하는 등 악착같이 박정희를 공격했다. 박정희가 "악랄한 매카시즘"이라고 반발할만큼.
황용주 필화 사건에서 김준연은 또 한 번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흥분했다. 국회에서 "수사중"이라고 답변하는 내무 장관 앞에서 김준연은 책상을 두드리면서 "개00"라는 말을 수십 번이나 연발했다. 그는 역시 "박정희 대통령과 그가 친한 사이라는 사실에 전율을 금할 수 없다."고 박정희를 들먹였고 이에 15년 뒤 박정희 대통령의 저승길 동료가 되는 공수부대 대위 출신 차지철이 격하게 반발한다. 그답게 단순하지만 꽤 올바른 논리로. "황용주가 빨갱이면 빨갱이지 왜 각하 이름을 들먹이는 거요." 차지철 역시 책상을 난타하며 분연히 맞섰고 국회는 일촉즉발의 난장판으로 변한다.
그런데 또 엉뚱한 얘기가 야당 의원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서울 시내 어느 다방에서 소련 국가가 흘러 나왔다."는 것이다. 발언자는 민정당 유청 의원. 소련 국가가 '인터내셔널'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노래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야당 의원들은 또 불같이 흥분했다. "부산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를 해임해라. 다방의 음반을 조사하라." 가히 정신질환에 가까운 레드 콤플렉스였다. 오히려 당시 정부 여당 측의 반응에 절로 공감이 갈 정도다. 국회의원들의 호통이 이어지던 국회에 출석해 있던 공보부의 모 국장은 기자들에게 "공보부장관이 어떻게 민간 방송사 사장을 해임할 수 있으며, 다방의 음반을 조사할 수 있겠느냐며 하소연했다.
공화당 의원들마저 이 가공할 빨갱이 처단판에 대부분 가담한 가운데 공화당 박종태 의원의 반박은 매우 이채로울만큼 상식적이다. "남북통일이 터부가 아닌 다음에야 통한론(統韓論) 자체가 범죄가 될 수 없으며, 북한에 정권이 있는 것을 인정하니까 통한론이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통한론이 나오겠는가." 하지만 한국 보수야당의 대부라 할 위인이자 우리도 아는 정대철 의원의 아버지인 정일형조차 "이 논문(의 용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딱 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태에서 나온 코멘트 중 우리가 가장 값지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공화당 대변인으로부터 나온다. "각자가 자기의 소견을 밝히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당으로서 관여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작가 김승옥이 가슴 저리게 묘사한 "1964년 겨울"의 서울에서 '매카시즘'의 공격 대상은 다름아닌 박정희였다. 박정희에게 언론의 힘을 일깨워 준 사람이며 정수장학회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박정희의 친구 중의 하나이면서, 3.15 부정선거 후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보도 통제를 뚫고 그 사진과 기사를 역사 앞에 폭로했던 용기 있는 언론인이기도 한 황용주는 이 필화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그 후 그다지 큰 족적을 남기지 않은 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물론 야당의원들이 공격하려던 것은 그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것도 '악랄한 매카시즘'으로.
그로부터 몇 년 못가서 자신을 공격하던 왕년의 공산주의자 김준연처럼, 박정희 대통령 역시 매카시즘의 악랄한 계승자로 변신해 간다. 맞은 놈이 더 때리는 법이고 시집살이 매웠던 며느리가 더 독해진다고 그는 매카시도 놀랄 수법으로 자신들의 국민들을 쥐잡듯 잡았고, 수많은 이들에게 '빨갱이'의 딱지를 씌워 댔다. 역시 배교자가 더 무섭더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오늘날 그 악랄한 매카시즘이 박근혜 후보에게 유전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 바람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툭하면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입버릇인 박근혜 후보에게 그 아버지의 왕년을 일깨워 주고는 싶다. 그 아버님께서 얼마나 "악랄한 매카시즘"에 괴로워하셨던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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