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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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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1.7 나의 빠삐용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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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80년 11월 7일 나의 빠삐용, 스티브 매퀸 가다

술자리가 있었는데 문득 그런 질문이 나왔다. “네 인생의 영화를 딱 하나 고르라면 뭐겠냐?” 급작스런 질문에 한참 더듬거리다가 끄집어낸 이름이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초반은 좀 지루해 보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사람의 시선과 감정의 끈을 놓아주지 않았던 명화였음은 분명하지만 어제의 대답은 분명한 내 건망증의 소산이었다. 내 어찌...
<빠삐용>을 잊었단 말이냐.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본 이래 수 차례 TV에서 틀어줄 때마다 본방을 사수하며 그 감흥을 기억했던 영화, 두고두고 인상깊은 영화란에는 거의 어김없이 적어 넣었던 영화 <빠삐용>을 잊어버리다니. 하필이면 그날은 11월 7일 스티브 매퀸이 떠난 바로 그 날이었는데.

나는 빠삐용을 두 사람의 비디오와 오디오로 기억한다. 비디오는 당연히 주름살 많고 고양이처럼 파란 눈을 가진 스티브 매퀸이지만 그 목소리는 ‘형사 콜롬보’의 성우였던 故 최응찬씨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후일 DVD로 영화를 다시 감상했을 때 그 감흥이 확 떨어질만큼 최응찬의 목소리와 스티브 매퀸의 외모는 신묘하게 맞아떨어졌었다. 그 유명한 꿈 속 재판 장면에서 “네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심판자들의 평결에 “나는 유죄야.”라고 중얼거리던 순간, 그 목소리와 비디오의 조합은 최고조에 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스티브 매퀸은 많은 명장면을 보여 줬다. 그 영화 속에서 스티브 매퀸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연기들에는 그의 인생의 단면 단면이 녹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형지로부터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비오는 날 호수에 몸을 던지는 빠삐용의 모습은 어린 시절 곡마단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사고나 치고 돌아다니다가 문제아 수용시설에 수용되었던 시절, 툭하면 탈출을 시도했던 요주의 청소년이었던 스티브 매퀸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는 감옥에서 벌레를 잡아 씹어먹어서라도 살려고 노력하던 그 표정은 유조선 선원부터 타일공까지 닥치는 대로 일하며 ‘먹고 살아야’ 했던 즈음에 지었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리가 부러진 친구 드가 (더스틴 호프만)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같이 도망가려고 애쓰던 빠삐용의 모습은 해병대 근무 시절 북극해에서 배가 좌초하면서 그 차가운 바닷물에 동료들이 빠지자 불굴의 용기를 발휘하여 혼자서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해 대통령 표창을 받고 대통령 경호 함대원으로도 근무했던 그의 이력을 비추어 보게 만든다.

그가 무명 여배우와 데이트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배우 스티브 매퀸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강권으로 응했던 오디션에서 그는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합격했고 그의 초반 단역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기 절정의 스타 폴 뉴먼이 주연한 <상처 뿐인 영광>의 단역이었다. 후일에는 70년대 헐리우드를 양분하는 대형 배우로 경쟁하게 되지만 스티브는 <상처 뿐인 영광>에서 폴 뉴먼에게 실컷 두들겨 맞는 찌질한 깡패로 스크린을 장식한다. 그래서일까 스티브 매퀸은 폴 뉴먼에게 강렬한 라이벌 의식을 드러냈고 폴 뉴먼 역시 내색을 심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스티브 매퀸을 이기고자 무진 노력했다고 한다. 폴 뉴먼이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함께 출연하고자 했던 것은 스티브 매퀸이었지만 맥주까지 사들고 설득하러 간 폴 뉴먼의 청을 끝내 거절했고 그 대타를 차지한 것이 로버트 레드포드였다. 하지만 이 두 스타는 <타워링>에서 기어코 그 멋진 호흡을 맞춰 보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건축가 폴 뉴먼. 옥상의 물탱크를 터뜨려 불을 끌 수 밖에 없다는 말에 “나는 어떻게 나오죠?”라고 묻다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소방대장 스티브 매퀸. 열정적인 남자 폴과 쿨한 남자 스티브는 그렇게 엇갈렸다.

<러브스토리>의 생머리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를 홀릴 만큼 매력이 풍부했고 영화 <블리트>에서는 전설적인 자동차 추격신을 스턴트맨없이 본인이 직접 찍었던 터프가이. 그래도 나에게 스티브 매퀸은 역시 <빠삐용>으로 남는다. 비록 그의 말년이 마약에 찌들고 병마로 점철된 고통스런 행보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생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갖은 노력 끝에 코코넛 부대 위에 바다로 떠가면서 “이 개새끼들아 빠삐용이 여기 있다.”고 외치던 그 모습으로, 그는 배우로 성공한 뒤 문제아에 불량청소년 시절 수용되었던 시설을 자주 찾았고 기금을 조성하여 청소년들을 도왔고 유언으로 20만 달러를 남기는 성의까지 보였다. 어쩌면 “스티브 매퀸이 여기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설 앞에는 이런 내용의 동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스티브 맥퀸은 문제아로 여기 왔지만, 사나이가 되어 떠났다. 그는 떠나 영화계에서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 캠퍼스로 돌아와 자주 그 자신과 그의 재산을 나누었다. 그의 유산은 이곳 학생들과 앞으로 올 학생들에게 희망과 격려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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