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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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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1.5 포먼 챔피언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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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94년 11월 5일 조지 포먼 챔피언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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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고 순진한 산하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으나 일종의 EDPS성 퀴즈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세계에서 가장 정력이 센 사나이는? 답은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지 포먼이다. '조지' 네 개씩이나 있는 사나이 (Four Man)이니 그 절륜함을 가히 누가 당하랴. 키득거리고 말 농담이긴 하지만 일말의 진실은 가지고 있다. 그는 네 번 이혼했고 다섯 번 결혼했으며 열 명을 헤아리는 자식을 낳았다. 기이한 건 아들들의 이름이 죄다 '조지'라고 한다. 조지 원 조지 투 이렇게 부르는지 아님 독특한 구별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로 돌아와서 그는 실로 무지막지한 괴력의 사나이였다.

그는 열 여섯 살 때까지 동네의 부랑아로서 감옥도 심심찮게 드나들던 일자무식의 흑인 청년이었다. 글도 읽을 줄 몰랐고 잘하는 일이라고는 '빅'이라는 별명 답게 큰 덩치로 상대를 죽도록 두들겨 패는 것 밖에 없던 암담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직업 학교에서 권투를 배우면서 그의 인생은 급전직상하게 된다. 열 여덟의 나이에 그는 세계를 제패한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소련 선수를 허벌나게 두들겨 주고 RSC승을 거둔 것이다.

그 후 프로로 전향한 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주먹으로 상대를 때려눕힌다. 그의 주먹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무패의 챔피언 로키 마르시아노나 주먹만큼이나 유명한 이빨을 지녔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을 능가하는 역대 최고의 등급으로 평가된다.

빗나가는 얘기 하나 하자면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 시리즈에 영감을 준 복서가 있었다. 처크 웨프너. 그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도전해서 그야말로 영웅적인 혈투를 치른다. 실력이야 차이가 완연했지만 웨프너는 천하의 무하마드 알리에게 다운까지 빼앗으며 15회까지 버틴다. 코뼈가 부러지고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TKO를 당하지만 그는 거친 솜 몰아쉬며 계속 링 위에 서 있었다. 이 경기를 지켜본 실베스타 스탤론은 영감에 사로잡혀 영화 록키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끈질긴 투혼의 웨프너도 포먼 앞에서는 3라운드를 넘기지 못하고 링바닥을 기어야 했다. 그 시대 최고의 맷집이라는 츄발로도 마찬가지였고.

포먼은 무하마드 알리를 꺾은 챔피언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한다. 조 프레이저는 일종의 작은 탱크처럼 폭발적인 인파이팅을 자랑했고 죽어라 밀고 들어오는 그 기세에 알리마저 진저리를 쳤던 절정기의 복서였다. 하지만 포먼의 주먹 앞에 그는 거의 어린아이처럼 당하고 말았다. 주먹 한 방 한 방에 온몸을 움찔움찔거리다가 1회에 세 번 2회에 세 번 나자빠진 끝에 KO 당하고 말았다. 가히 세계 최강이었다.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과 함께 당대 헤비급의 최고 기량으로 꼽힌 켄 노턴이 도전했지만 그 역시 개구리처럼 고꾸라지고 말았다. 39전 39승 36KO. 포먼의 적수는 없어 보였다.

그때 한물이 아니라 두물쯤 간 복서로 보이는 무하마드 알리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곱살이나 위였던 알리가 한창 전성기를 맞이한 젊은 챔피언 조지 포먼의 주먹을 피해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 봐야 곰같은 앞발에 한 방 맞으면 그만일 터였다. 하지만 포먼은 경쾌하게 도망다니는 알리를 뒤쫓다가 지친다. 그리고 8라운드 알리의 스트레이트성 잽을 맞고 휘청이더니 이내 쏟아진 말벌같은 펀치에 그만 나가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정신을 잃을 강펀치를 허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KO패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누구도 나에게 일어나는 법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즉 때려눕힐 줄만 알았지 자신이 캔버스에 누우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고, 그 충격이 그의 몸을 내리눌렀다고나 할까.

그 경기 이후 재기에 노력했지만 지미 영이라는 복서의 교묘한 복싱에 휘말려 판정패하고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입은 후 그는 쓸쓸히 은퇴한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는 포먼에게서 빼앗은 타이틀을 스핑크스에게 내주었다가 다시 찾아와 헤비급 타이틀을 세 번씩이나 차지한 위대한 복서로 남고.

알리는 포먼과 여러 모로 라이벌이었다. 인종차별에 비분강개하여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 속에 던져 버린 60년 로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알리와 68년 동료 흑인 선수들이 미국 국가가 울리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올리고 미국내에서도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활활 타오르던 무렵, 전혀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않던 68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조지 포먼, 캐시어스 클레이에서 이름까지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며 이슬람 교도가 된 알리에 맞서기라도 한 듯 은퇴 후 목사가 되어 예수를 믿으라고 목청을 돋운 포먼. 알리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으로 추앙을 받지만 포먼은 그의 첫 은퇴 후가 더 드라마틱했다.

청소년 센터를 세워 아버지도 모른 채 자라나면서 범죄의 유혹에 늘상 노출되었던 자신처럼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던 그는 돈이 거덜나자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나이 마흔을 넘어서 난다 긴다 하는 복서들이 판을 치는 링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것은 해외 토픽감이었다. 포먼이 챔피언일 때는 내 나이 네 살 때였고 그가 복귀한다고 할 때는 대학교를 거의 마칠 즈음이었으니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쇼를 해도 참 구질구질하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실제 그의 몸은 복서의 몸이 아닌 배 나온 아저씨였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팔팔한 복서들이 그의 주먹 앞에 나가 떨어졌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영리하게 싸우는 법을 개발했고 젊은 선수들의 헛점을 연구했다. 젊어지려고 한 게 아니라 현재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도 사람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꿈을 꾸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마침내 1994년 10월 5일 그는 기적을 창조한다. 지금의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나이 마흔 다섯에 아들 뻘 되는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를 10라운드에 KO시켰던 것이다. 역대 최고령 헤비급 챔피언의 탄생이었다. 아마 마이클 무어러도 링에 나뒹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라고 부르짖었을지도 모른다. 포먼은 또 포먼대로 20년전 서른 살을 훌쩍 넘은 퇴물 복서 무하마드 알리에게 허무하게 KO되었던 날을 떠올렸을 것이다. "마이클! 20년 전에 내가 너였어." 그 경기는 그에게 악몽 중의 악몽이었으리라. 그 경기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관심이 되고 질문의 소재가 됐다. 여기에 맞서 포먼이 한 얘기가 또한 감동이다.

"그 경기는 내게 가장 치욕스런 경험 중의 하나였지만 그걸 지워 버린다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날아가는 것이다. 과거를 포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배우되 과거의 노예는 되지 말라. 과거의 삶은 당신의 미래의 방향을 좌우할 수 없다."

그는 사업에도 성공했다. 그의 이름을 빌려 주고 사업에도 동참한 프라이팬 사업에서 대박을 터뜨려 그때까지 권투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불굴의 투사였다면 조지 포먼은 낙관적인 승부사였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외람되지만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는 안된다 너는 못한다 하는 말을 무시하면 당신은 뭔가를 이룰 수 있다. 나릃 보라. 내가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니가 무슨 목사냐? 권투나 해라."고 얘기했을 것이고 내가 권투를 다시 하겠다고 했읋 때 사람들은 권투선수하기엔 너무 늙었으니 목사나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노력하고 있다. "


바로 그 노력과 의지로, 그는 1994년 11월 5일 20년 전 그가 힘도 못쓰고 잃어버린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되찾는다. 그가 타이틀을 잃어버린지 꼭 20년 하고 일 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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