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87년 11월 29일 KAL858과 김현희
16년만에 부활한 대통령 선거의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던 즈음 또 하나의 태풍이 인도양 상공에 형성됐다. 그때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로서 중동에서 일하던 한국인들이 많았던 시절, 그들을 가득 싣고 돌아오던 KAL 858 편이 1987년 11월 29일 버마 안다만 해 상공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후의 사건 전개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 너무도 선명하게 각인된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전날 마스크를 쓴 채 트랩을 내려왔던 '미모의' 여자. "언니 미안해"라고 얘기하며 술술 자신의 정체를 불었다는 북한 공작원. 그리고 초췌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시인하던 테러범 김현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
"범죄로 인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는가?"라는 질문은 범죄 수사의 기본이자 인간적인 상식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봐도 뻔했다. 16년만에 부활한 대통령 선거였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수류탄을 까겠다."고 육군 장군이 대놓고 말하던 시절, "안정이냐 혼란이냐?"를 부르짖던 진영에 김현희가 일으킨 테러는 천군만마의 응원군임에 분명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막 올라왔던 신입생 시절, 어떤 집안 모임 자리에서 나는 학교에서 주워 들은 어줍잖은 지식과 그때까지의 상식을 총동원하여 김현희 날조론을 폈다. 북한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한창 남한의 선거판이 벌어지는데 노태우를 돕는 삽질을 할 이유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가장 이익을 본 것은 노태우 정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때 오래 군문에 계셨던, 그것도 정보사령부 즉 북한에 간첩 보내는 부대의 대령으로 제대하셨던 집안 어르신이 싱긋 웃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북한 아이들이 남한의 민주화 세력 돕는 줄 아니? 걔들은 이쪽에서 독재 정권이 유지되길 바라고 그쪽을 돕는다." 사뭇 이해가 안가는 말이었고 나는 김현희가 가짜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 믿음이 조금 이그러진 것은 96년 이후였다. 1996년의 총선 며칠 전에도 북한은 까닭을 알 수 없는 무력 시위를 벌인 바 있었다. 한국 총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을 뻔히 아는 북한이 하필 왜 그때 그런 일을 했는지, 판문점을 중계방송하다시피 한국 국방부는 난리굿판을 벌였지만 왜 그리 미국은 시큰둥했는지, 무력 시위가 있은 후에도 외국인 관광이 중단되지 않은 이유는 뭔지, 의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1997년 대선 때에는 아예 이쪽의 공무원과 대권 주자의 측근들이 북한에게 돈을 주고 총을 쏴 달라고 요청하다가 발각된 '총풍' 사건이 벌어졌다.
한바탕 난리법석이 났고 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긴 했다. 그런데 의아했던 것은 북한이었다. 어찌 되었든 남측의 인사들이 그런 짓을 주문할 생각을 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보수 진영의 인사가 북쪽과 접촉하여 '사바사바'를 해 왔다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고, 김현희에 대한 재조사가 당연히 시작됐다.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고, 여러 차례의 재조사가 진행됐고 한홍구나 안병욱 등 진보적 인사들까지 가세한 위원회가 가동하여 KAL 858 사건을 파헤쳤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정원 내부에서도 엄청난 물갈이가 있었고, KAL 858 정도의 대형 사건이 조작된 것이었다면 충분히 뒤집을만한 증언이 나올 법도 하건만 그런 소식은 없었다.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KAL기 사건을 조사했습니다. 조사해보니 김현희가 KAL기를 터뜨린 것이 맞더라고요. 적어도 우리의 판단으로는 그렇습니다. KAL기 폭파 사건 관련해서 엄청나게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민간 쪽에서 KAL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하던 분을 모셔다가, 그 모든 의혹을 다 적어 놓고, 하나하나 풀면서 지워나갔습니다. 몇몇 문제를 빼놓고는 거의 대부분 김현희가 범인이라는 정황이 증명되었습니다. 김현희는 분명 남쪽 출신이 아니었고요...... 민간에서는 아직도 KAL기를 안기부가 터뜨린 것이다, 라고 많이들 믿고 있는데요. 저희가 조사한 사항의 거의 대부분이 김현희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는데, 그게 다 맞더라고요. 김현희도 약을 먹고 죽으려다가 살아났잖아요. 만약 김현희가 죽었다면 오히려 안기부가 꼼짝없이 뒤집어쓸 수밖에 상황이 됐을 겁니다."
물론 저 말이 진실임이 확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로 볼 때 가장 객관적인 팩트에 근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도 이른바 진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틈에서 KAL 858은 북한이 터뜨린 것이고 그 범인이 김현희라는 주장을 하기에는 좀 껄끄러운 것 또한 현실이다. 한홍구도 매수되었다고 우기는 사람도 보았고, "모든 의혹을 적어 놓고 지워 나간" 의혹들을 새삼스레 늘어놓으면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이미 김현희는 진보의 '타진요'가 되었다면 과장일까. 회의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고, 의심 없이는 진실에 다다르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의심과 회의가 또 다른 믿음과 스스로 인정하는 '진실'의 외피에 불과하다면 이는 완고한 불통의 단초들에 불과하게 된다.
김현희든 누구든 1987년 오늘 858을 떨어뜨린 날, 다시 김현희를 생각한다. 그로 상징되는 남북 관계와 남쪽의 '진보'를 생각한다. 진보는 모든 것에 회의하는 것이 그 발걸음의 시작이다. 어떤 진실이 반드시 '진실이어야 할 때', '진실임을 믿을 때', 오히려 그 당위와 믿음은 진실로부터 멀어져 가게 된다.
1987년 11월 29일 KAL858과 김현희
16년만에 부활한 대통령 선거의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던 즈음 또 하나의 태풍이 인도양 상공에 형성됐다. 그때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로서 중동에서 일하던 한국인들이 많았던 시절, 그들을 가득 싣고 돌아오던 KAL 858 편이 1987년 11월 29일 버마 안다만 해 상공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후의 사건 전개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 너무도 선명하게 각인된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전날 마스크를 쓴 채 트랩을 내려왔던 '미모의' 여자. "언니 미안해"라고 얘기하며 술술 자신의 정체를 불었다는 북한 공작원. 그리고 초췌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시인하던 테러범 김현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
"범죄로 인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는가?"라는 질문은 범죄 수사의 기본이자 인간적인 상식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봐도 뻔했다. 16년만에 부활한 대통령 선거였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수류탄을 까겠다."고 육군 장군이 대놓고 말하던 시절, "안정이냐 혼란이냐?"를 부르짖던 진영에 김현희가 일으킨 테러는 천군만마의 응원군임에 분명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막 올라왔던 신입생 시절, 어떤 집안 모임 자리에서 나는 학교에서 주워 들은 어줍잖은 지식과 그때까지의 상식을 총동원하여 김현희 날조론을 폈다. 북한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한창 남한의 선거판이 벌어지는데 노태우를 돕는 삽질을 할 이유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가장 이익을 본 것은 노태우 정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때 오래 군문에 계셨던, 그것도 정보사령부 즉 북한에 간첩 보내는 부대의 대령으로 제대하셨던 집안 어르신이 싱긋 웃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북한 아이들이 남한의 민주화 세력 돕는 줄 아니? 걔들은 이쪽에서 독재 정권이 유지되길 바라고 그쪽을 돕는다." 사뭇 이해가 안가는 말이었고 나는 김현희가 가짜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 믿음이 조금 이그러진 것은 96년 이후였다. 1996년의 총선 며칠 전에도 북한은 까닭을 알 수 없는 무력 시위를 벌인 바 있었다. 한국 총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을 뻔히 아는 북한이 하필 왜 그때 그런 일을 했는지, 판문점을 중계방송하다시피 한국 국방부는 난리굿판을 벌였지만 왜 그리 미국은 시큰둥했는지, 무력 시위가 있은 후에도 외국인 관광이 중단되지 않은 이유는 뭔지, 의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1997년 대선 때에는 아예 이쪽의 공무원과 대권 주자의 측근들이 북한에게 돈을 주고 총을 쏴 달라고 요청하다가 발각된 '총풍' 사건이 벌어졌다.
한바탕 난리법석이 났고 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긴 했다. 그런데 의아했던 것은 북한이었다. 어찌 되었든 남측의 인사들이 그런 짓을 주문할 생각을 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보수 진영의 인사가 북쪽과 접촉하여 '사바사바'를 해 왔다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고, 김현희에 대한 재조사가 당연히 시작됐다.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고, 여러 차례의 재조사가 진행됐고 한홍구나 안병욱 등 진보적 인사들까지 가세한 위원회가 가동하여 KAL 858 사건을 파헤쳤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정원 내부에서도 엄청난 물갈이가 있었고, KAL 858 정도의 대형 사건이 조작된 것이었다면 충분히 뒤집을만한 증언이 나올 법도 하건만 그런 소식은 없었다.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KAL기 사건을 조사했습니다. 조사해보니 김현희가 KAL기를 터뜨린 것이 맞더라고요. 적어도 우리의 판단으로는 그렇습니다. KAL기 폭파 사건 관련해서 엄청나게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민간 쪽에서 KAL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하던 분을 모셔다가, 그 모든 의혹을 다 적어 놓고, 하나하나 풀면서 지워나갔습니다. 몇몇 문제를 빼놓고는 거의 대부분 김현희가 범인이라는 정황이 증명되었습니다. 김현희는 분명 남쪽 출신이 아니었고요...... 민간에서는 아직도 KAL기를 안기부가 터뜨린 것이다, 라고 많이들 믿고 있는데요. 저희가 조사한 사항의 거의 대부분이 김현희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는데, 그게 다 맞더라고요. 김현희도 약을 먹고 죽으려다가 살아났잖아요. 만약 김현희가 죽었다면 오히려 안기부가 꼼짝없이 뒤집어쓸 수밖에 상황이 됐을 겁니다."
물론 저 말이 진실임이 확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로 볼 때 가장 객관적인 팩트에 근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도 이른바 진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틈에서 KAL 858은 북한이 터뜨린 것이고 그 범인이 김현희라는 주장을 하기에는 좀 껄끄러운 것 또한 현실이다. 한홍구도 매수되었다고 우기는 사람도 보았고, "모든 의혹을 적어 놓고 지워 나간" 의혹들을 새삼스레 늘어놓으면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이미 김현희는 진보의 '타진요'가 되었다면 과장일까. 회의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고, 의심 없이는 진실에 다다르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의심과 회의가 또 다른 믿음과 스스로 인정하는 '진실'의 외피에 불과하다면 이는 완고한 불통의 단초들에 불과하게 된다.
김현희든 누구든 1987년 오늘 858을 떨어뜨린 날, 다시 김현희를 생각한다. 그로 상징되는 남북 관계와 남쪽의 '진보'를 생각한다. 진보는 모든 것에 회의하는 것이 그 발걸음의 시작이다. 어떤 진실이 반드시 '진실이어야 할 때', '진실임을 믿을 때', 오히려 그 당위와 믿음은 진실로부터 멀어져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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