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둘러메고 서울 온 것도 거지반 25년이고, 부산 살았던 시간보다 서울살이가 길어진 것도 꽤 오래 전입니다. 그래도 혀에 밴 부산 말투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또 하나, 30년을 가든 40년을 가든 저는 롯데 자이안츠 팬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삽질을 하고 개발로 축구하는 거 같고, 집게발로 농구하는 거 같아도, 8888577을 몇 년을 해도 죽어도 롯데 살아도 롯데지요.
롯데가 처음으로 우승하던 게 1984년이었지요? 지금은 하늘나라 간 최동원이 혼자서 4승 다 따오고 유두열이 쓰리런홈런 빵 쳐서 삼성 사자 눈두덩을 시퍼렇게 그쪽 유니폼 색깔로 만들어 놨지 않겠습니까. 근데 그 다음 해 2월에 부산은 또 한 번 전국을 들었나 놨다 했던 거 기억 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1985년 2.12 총선이라꼬.
85년 초봄, 고삐리 올라가는 나이였는데 동네 학교에서 열린 합동유세장 갔다가 와 이거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광주 학살부터 시작해서 전두환이 무슨 짓을 했던가, 외채는 얼마고, 전두환 처삼촌이 누구고 등등 전에는 감히 돌지 못하던 얘기들이 유세장에 아주 만개를 하는데 무서워가지고 말이죠. 선거 결과는 대박이었지요. 물론 여당인 민정당이 1당을 했지만도 창당한지 얼마 안되는 신한민주당이 50석인가 먹으면서 제1야당으로 부상한 겁니다.
그 중에서도 부산은 화려했습니다. 그때는 지역구에서 두 명을 뽑았는데, 제가 살던 부산진구에서는 아 글쎄 민정당 현역의원이 2등도 못하고 똑 떨어졌고요, 부산 중,동,영도에서도 민정당 후보가 야당표가 갈리는 와중에서도 2등 턱걸이 못하고 영도 앞바다에 고마 빠져 버렸지요. 부산 선거구가 여섯 개인가 그랬는데, 그 중에 딱 한 군데만 여당이 1등으로 붙었지 다른 데는 전부 야당이 1등이었지요. 그런 곳은 전국에 부산 뿐이었습니다. (마산도 하나 있었던가) 서울도 2등으로는 거의 민정당을 붙여 줬었거든요. 그때 돌던 말이 있습니다. “서울에는 서울 사람이 살고, 부산에는 부산 양반이 산다.” 그 시절 부산은 가히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최동원같은 존재였습니다.
영화 <퍼펙트 게임> 보셨나요? “이기던 지던 최동원이 게임은 최동원이 끝냅니더 왜 최동원이니까!” 하고 일갈하던 그 포스로 부산은 전국에 호령을 했습니더.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부산이 끝낸다. 와? 부산이니까!” 그 시절 살던 부산 사람들은 아마 다음의 경구를 아스라한 전설로 기억할 겁니다. “부산하고 마산이 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다.” 멀리는 3.15 마산 의거부터 부마항쟁을 거쳐서 위에 말한 85년 2.12를 지나서 87년 6월까지. 부산은 정국을 좌우하는 도시였고, 그만큼 활력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였지요. 87년 6월에 서면에서 초량 KBS까지 대로를 장악하고 몇날 밤을 새워가며 데모해서 전두환을 기절초풍하게 했던 장면은 부산 현대사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87년 6월이 롯데 자이안츠의 92년 같습니더. 야구 명문의 절정이자 하강의 시작. 그리고 민주화의 상징 도시로도 동일한.
롯데 자이안츠는 그 팬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단이라고 말들 합니다. 팬들은 그렇게 충성을 다하고 일편단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롯데 자이안츠 파이팅을 외치는데, 서울 사는 나도 롯데가 4등이라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이놈의 롯데 구단은 대관절 어땠던가요. 선수들 단물 빼묵고 버리는 거는 1등, 구단 눈에 거슬리면 스타건 뭐건 방출, 선수들 연봉하고 팬 서비스가 소태처럼 짠 것은 8개 구단 중 으뜸에다가 팬들의 호소와 여망에는 마이동풍. 꼴찌를 하든 5등을 하든 별 관심이 없어 뵈고, 아무리 그런들 부산 시민들은 롯데 팬일 수밖에 없으니, 불만 있으면 야구장 오지 말라는 투의 배짱. 어디 말할 게 하나 둘이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보기에 부산에는 그런 존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예 새누리당입니다. YS가 호랑이 잡으려고 들어갔다가 자기가 호랑이가 되어버린 호랑이굴 민자당이었고, 신한국당이었고, 한나라당이었고, 이번에 새누리당이 된 그 정당을, 90년 이후 부산 시민 여러분은 롯데 자이안츠모냥 엉성시럽게 응원해 왔지요. 충성을 다했지요. 개죽을 쑤건 피죽을 쑤건 미워도 너밖에 없다고 매달렸지요. 노무현 같은 사람이 나와도 사정없이 떨어뜨렸지요. 부산 북구에 노무현 유세하는데 얼라들하고 개새끼 몇 마리 앞에서 연설하던 모습 지금도 선연합니다. 언젠가 사직구장에 촬영 갔을 때 롯데 상대로 안타치는 마해영이보고 배신자라고 욕하던 (누가 누굴 배신했는데?) 꼬라지처럼 정말 바보스러울만큼 충성을 다했었지요.
20년이 넘도록 새누리당에 충성을 다한 부산 시민 여러분. 한 번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지금 부산이 어떻게 변했는가.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어떻게 됐으며, 한때 부산이 일어나면 대한민국 정국이 바뀐다 등등하던 그 기세는 어찌 쪼그라들었으며, 여러분 자신은 어떻게 됐나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자살율, 고령화율, 실업률은 단연코 1위, 은행대출금액 1위. 출산율, 고용률, 문화 활동기반 시설은 전국에서 꼴찌. 정몽주도 이렇게 일편단심하다가는 한 번쯤 내가 잘못된 거 아이가 한 번 고개를 돌아볼 것이고 춘향이도 아몽룡 이 자슥 사깃꾼 아이가 의심해 볼 겁니다. 강산도 두 번 변한 20년이면 한 번쯤은 여러분 충성의 대상에 대해 의심하고 추궁해 봐야 할 때가 된 거 아닙니까.
이번에 새누리당이 부산에서 벌이는 일들을 보면서 저는 기함을 했습니다. 아무리 부산 시민들을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을 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저런 카드들을 내밀고 고수하고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 혀를 차다가 꼬일 지경이었지요. 적장이 와서 승부를 내자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데 어차피 버거운 상대이니 철모르는 어린 아이 내보내서 져도 아플 것 없고 이기면 천행이라는 심보로 내세운 손수조 후보가 그렇고, 표절을 넘어서서 복사학 학위를 딴 듯 보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내 강의 한 번 들어보시라.”면서 부산 시민들 볼따구니를 돌려차기하고 있는 문대성 후보가 그러하고, “30년대 이후 우리 선조들은 자신의 조국을 일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하태경 후보가 그렇습니다.
새누리당은 손수조 후보를 내세우면서 문재인 후보를 이겨도 본전, 지면 패망이라는 궁지에 빠뜨렸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부산 시민 여러분의 자존심 또한 그 궁지에 몰린 셈입니다. 문재인이 이겨 봐야 그 선택의 의미는 폄하될 것이고, 손수조가 이긴다면 스물 일곱 살의 아무런 경력도 없고 신뢰도 가지 않는 젊은이를 오로지 새누리에 대한 팬심으로 뽑은 꼴통 도시민으로 떨어질 뿐이니까요. 문대성 후보나 하태경 후보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만약 수도권에서 출마했더라면 장담컨대 그들은 배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이 버티는 건 부산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말뚝만 세워도 부산 시민들이 찍어 줄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겁니다. 즉 여러분을 바지 저고리로 보고 있는 겁니다. 꼴찌를 하든 삽질을 하든 사직구장을 찾아 찢어진 신문지 들고 목이 터져라 외칠 사람들은 올해도 올 거라고 오불관언하는 롯데 구단처럼 말입니다.
왜 그 장단에 여전히 놀아나십니까. 왜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코 베이십니까. 왜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왜 선거 때만 되면 바보가 되십니까. 85년 민정당 후보 떨어뜨리기로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야당 후보들에게 절묘하게 표를 나눠 주던 정치 의식이 왜 ‘못무도 (먹어도) 새누리’의 고장난 레코드에 갇히고, 부산이 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다던 호연지기는 왜 박근혜 공주 한 번 왔다 가면 헤벌레 하는 난쟁이의 순정으로 후퇴했습니까. 태종대 파도 소리 자장가 삼아 세계로 뻗어가는 꿈을 꾸다가 부화도 못한 낙동강 청둥오리 알이 되어 남해로 흘러가는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로이스터 감독을 구단 멋대로 잘라 버리고 롯데 자이언츠가 계속 허우적거릴 때 부산 시민 여러분은 ‘무관중 경기라도 조직하자.’면서 그 무기력과 무성의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제 딱 그만큼이라도 행동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아도 속아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면서 교활한 남자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그러고도 자신은 순정파이노라 착각하는 미련한 여인이 될 뿐입니다. 잃어도 잃어도 화수분처럼 돈 갖다 바치는 노름판의 호구가 될 뿐입니다. 저는 내 고향 사람들이 호구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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