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77년 11월 23일 <우상과 이성> 필화 사건
1977년 11월 23일 쌀쌀한 초겨울 아침 한 이발소 앞에 건장한 사내들이 진을 쳤다. 그들은 이발소 안을 흘낏흘낏 들여다보며 한 중년 신사의 이발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발이 끝나자마자 사내들은 중년 신사를 둘러쌌다.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사내들은 치안본부 대공분실 직원이었고, 중년의 신사는 한양대 해직 교수 리영희였다.
...
<전환시대의 논리>로 파장을 일으킨데다가 <8억인과의 대화>로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미운털이 박힐 대로 박혀 있던 리영희 교수가 1977년 11월 초, <우상과 이성>이라는 평론집을 냈고 이것이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가자 드디어 당국이 그 성마른 성미를 견디지 못하고 칼을 뺀 것이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는 책의 서문처럼 그는 예상은 했지만 그를 뛰어넘는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첫 번째 필화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금방 풀려나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북한 대표가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우리말로 했다는 것이 작년 겨울 한때 화제가 되었지만, 긴 눈으로 높은 차원의 '효능'을 생각할 때, 이데올로기의 정치를 떠나서 같은 민족으로서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으니 대역죄와 맞먹는 반공법 위반이었고, 모택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에드가 스노의 평을 옮겨다 놓은 것도 역시 그놈의 반공법 위반이었다.
한 달 가량 대공분실과 검사실을 오간 뒤 기소되던 날,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맞게 된다. 구속되는 길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나왔던 어머니가 여든 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영전에 분향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안팎에서 애끓는 호소를 했지만 잠시의 틈도 허용되지 않았다. 리영희는 사과 한 알과 관식, 그리고 김지하가 보내 준 사탕을 놓고 제사를 지내야 했다. “어디로 간다고 말씀도 드리지 못한 채 집을 나와 지금 이곳 몸의 자유를 잃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들을 찾는 소리와 몸짓을 늘 듣고 보는 듯 하였습니다...” 혼자 쓰고 읽은 아들의 제문은 흩뿌려진 눈물에 이곳저곳이 번져 있다.
몇 년 뒤 다시 감옥에 들어간 리영희는 뜻밖의 인물에게서 호출을 받는다. 베테랑 대공 수사관이라는 그는 중장정보부에서도 <우상과 이성>등의 책만 가지고는 반공법 공소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을 자신이 청와대까지 직소해서 바꿔 놓았고 어머니 영전을 지키지 못하게 한 것이 자신이노라 자랑한다. 그의 둘째 손가락 마디에는 굳은살이 배겨 있었다. “30년 동안 펜대를 잡고 빨갱이 잡는 조서를 밤낮으로 쓴 유물이 바로 이 뚝살이오.” 그의 이름은 박처원이었다. 바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때 조작을 주도한 이로서, 고문 경관에게 니들이 뒤집어쓰라면서 2억을 내줬던 인물이고 카지노 대부 전낙원에게서 돈을 뜯어내 이근안에게 쥐어주면서 도피를 지시한 바로 그 작자다.
빨갱이의 공포가 아무리 지대했다고 해도, 전쟁의 상흔이 하늘을 가르도록 지독했다고 해도, 전쟁 뒤 대한민국을 사로잡아 온 ‘반공’의 광기는 야만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야만의 거친 손길은 엉성하고 추하기 이를데없는 우상을 빚었고, 우상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는 이성의 허리를 꺾고 머리를 깨뜨렸다. 빨갱이들을 “수천 명 골로 보낸” 것을 자랑하던 박처원과 그가 총애했던 이근안은 그 우상의 사제이고 졸개였다. 그들과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고 선언하면서 우상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리영희의 존재는 글자 그대로 “우상" 앞의 " 이성”일 뿐이었다.
리영희가 깨뜨린 우상 가운데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우상이 있다. UN 결의 제 195호 Ⅲ의 2항에 따르면 "(유엔) 임시위원단이 감시 및 협의할 수 있었고, KOREA 인민의 과반수(Majority)가 거주하고 있는 KOREA의 ‘그 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행정권과 사법권을 갖는 합법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 이 정부가 KOREA의 ‘그 지역’의 유권자의 자유 의사의 정당한 표현이며, (유엔) 임시위원단이 감시한 선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정부가 KOREA의 ‘그 지역’에서의 그와 같은(such) 유일한 정부임을 선언한다."고 되어 있는바, UN은 대한민국은 선거가 실시된 ‘남한 지역’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만을 선언했을 뿐이었다.
즉, 대한민국 정부가 ”UN이 승인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되뇜은 잘못된 주문이고 공허한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우상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교과부는 부득부득 이 우상을 교과서에 모시고자 하고, 학자라는 분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신묘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리영희에 반박한다, ”미국이 소련의 위상을 고려해 ‘총선이 가능한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표현했지만 북한은 총선을 거부했기 때문에 실질적 의미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맞다”는 것이다. UN이라는 국제 기구의 공문서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저런 독심술을 동원할 수 있고, ‘실질적 의미’를 창출하는 저 유능함 앞에서 나는 리영희에게 자신의 이력을 자랑하던 박처원을 떠올린다. 우상과 이성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제 나라 국민의 이유 있는 항변에 "극소수 반미분자"의 딱지를 붙이고, 안보를 위한 것도 시간을 다투는 일도 아닌 '잘 먹고 잘살자는 협정'을 힘으로 빌어붙여 놓고도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고 외치는 우상이 오늘 새롭게 출현했다.
1977년 11월 23일 <우상과 이성> 필화 사건
1977년 11월 23일 쌀쌀한 초겨울 아침 한 이발소 앞에 건장한 사내들이 진을 쳤다. 그들은 이발소 안을 흘낏흘낏 들여다보며 한 중년 신사의 이발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발이 끝나자마자 사내들은 중년 신사를 둘러쌌다.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사내들은 치안본부 대공분실 직원이었고, 중년의 신사는 한양대 해직 교수 리영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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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로 파장을 일으킨데다가 <8억인과의 대화>로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미운털이 박힐 대로 박혀 있던 리영희 교수가 1977년 11월 초, <우상과 이성>이라는 평론집을 냈고 이것이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가자 드디어 당국이 그 성마른 성미를 견디지 못하고 칼을 뺀 것이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는 책의 서문처럼 그는 예상은 했지만 그를 뛰어넘는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첫 번째 필화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금방 풀려나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북한 대표가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우리말로 했다는 것이 작년 겨울 한때 화제가 되었지만, 긴 눈으로 높은 차원의 '효능'을 생각할 때, 이데올로기의 정치를 떠나서 같은 민족으로서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으니 대역죄와 맞먹는 반공법 위반이었고, 모택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에드가 스노의 평을 옮겨다 놓은 것도 역시 그놈의 반공법 위반이었다.
한 달 가량 대공분실과 검사실을 오간 뒤 기소되던 날,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맞게 된다. 구속되는 길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나왔던 어머니가 여든 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영전에 분향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안팎에서 애끓는 호소를 했지만 잠시의 틈도 허용되지 않았다. 리영희는 사과 한 알과 관식, 그리고 김지하가 보내 준 사탕을 놓고 제사를 지내야 했다. “어디로 간다고 말씀도 드리지 못한 채 집을 나와 지금 이곳 몸의 자유를 잃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들을 찾는 소리와 몸짓을 늘 듣고 보는 듯 하였습니다...” 혼자 쓰고 읽은 아들의 제문은 흩뿌려진 눈물에 이곳저곳이 번져 있다.
몇 년 뒤 다시 감옥에 들어간 리영희는 뜻밖의 인물에게서 호출을 받는다. 베테랑 대공 수사관이라는 그는 중장정보부에서도 <우상과 이성>등의 책만 가지고는 반공법 공소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을 자신이 청와대까지 직소해서 바꿔 놓았고 어머니 영전을 지키지 못하게 한 것이 자신이노라 자랑한다. 그의 둘째 손가락 마디에는 굳은살이 배겨 있었다. “30년 동안 펜대를 잡고 빨갱이 잡는 조서를 밤낮으로 쓴 유물이 바로 이 뚝살이오.” 그의 이름은 박처원이었다. 바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때 조작을 주도한 이로서, 고문 경관에게 니들이 뒤집어쓰라면서 2억을 내줬던 인물이고 카지노 대부 전낙원에게서 돈을 뜯어내 이근안에게 쥐어주면서 도피를 지시한 바로 그 작자다.
빨갱이의 공포가 아무리 지대했다고 해도, 전쟁의 상흔이 하늘을 가르도록 지독했다고 해도, 전쟁 뒤 대한민국을 사로잡아 온 ‘반공’의 광기는 야만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야만의 거친 손길은 엉성하고 추하기 이를데없는 우상을 빚었고, 우상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는 이성의 허리를 꺾고 머리를 깨뜨렸다. 빨갱이들을 “수천 명 골로 보낸” 것을 자랑하던 박처원과 그가 총애했던 이근안은 그 우상의 사제이고 졸개였다. 그들과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고 선언하면서 우상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리영희의 존재는 글자 그대로 “우상" 앞의 " 이성”일 뿐이었다.
리영희가 깨뜨린 우상 가운데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우상이 있다. UN 결의 제 195호 Ⅲ의 2항에 따르면 "(유엔) 임시위원단이 감시 및 협의할 수 있었고, KOREA 인민의 과반수(Majority)가 거주하고 있는 KOREA의 ‘그 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행정권과 사법권을 갖는 합법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 이 정부가 KOREA의 ‘그 지역’의 유권자의 자유 의사의 정당한 표현이며, (유엔) 임시위원단이 감시한 선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정부가 KOREA의 ‘그 지역’에서의 그와 같은(such) 유일한 정부임을 선언한다."고 되어 있는바, UN은 대한민국은 선거가 실시된 ‘남한 지역’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만을 선언했을 뿐이었다.
즉, 대한민국 정부가 ”UN이 승인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되뇜은 잘못된 주문이고 공허한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우상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교과부는 부득부득 이 우상을 교과서에 모시고자 하고, 학자라는 분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신묘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리영희에 반박한다, ”미국이 소련의 위상을 고려해 ‘총선이 가능한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표현했지만 북한은 총선을 거부했기 때문에 실질적 의미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맞다”는 것이다. UN이라는 국제 기구의 공문서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저런 독심술을 동원할 수 있고, ‘실질적 의미’를 창출하는 저 유능함 앞에서 나는 리영희에게 자신의 이력을 자랑하던 박처원을 떠올린다. 우상과 이성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제 나라 국민의 이유 있는 항변에 "극소수 반미분자"의 딱지를 붙이고, 안보를 위한 것도 시간을 다투는 일도 아닌 '잘 먹고 잘살자는 협정'을 힘으로 빌어붙여 놓고도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고 외치는 우상이 오늘 새롭게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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