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산하의 오역
1995년 3월 20일 광기의 독가스 일본을 덮치다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경이었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러시아워의 지하철 안. 한 주의 시작을 준비하느라 머리 속이 분주한 직장인들의 눈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는 뾰족한 우산 끝으로 비닐 봉지에 구멍을 내려고 애쓰고 있었고 구멍이 나자마자 잽싸게 내려 버렸던 것. 잠시 후 사람들은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코를 찔렸다. 그리고 화살을 심장에 맞은 듯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사린 가스였다. 1차대전 때에는 독가스가 즐겨 사용됐지만 2차대전 때에는 거의 쓰인 적이 없다. 양쪽 다 그 파괴력을 익히 알기에 자제하기도 했거니와 우선 수백만 슬라브족과 유태인과 저항자들을 독가스로 죽여버렸던 히틀러까지도 사린 가스 등 전투시 독가스의 사용을 금했다. 히틀러 자신이 1차대전에서 실명위기에 처하는 등 독가스의 맛을 톡톡히 본 적이 있어 그 위력을 심히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 사린가스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의 하나 도꾜의 지하철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도쿄 도 내의 제도고속도교통영단(현재의 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 선, 히비야 선에서 각 2편 지요다 선에서 1편 등 총 5편의 지하철 차내에서 사린가스 공격이 발생했고 12명 죽고 외국인을 포함한 5,5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일본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화학병기가 사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일본의 경시청은 신흥 종교단체 옴진리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의 엄중한 추궁 끝에 교단 간부 하야시 이쿠오의 자백에 의해 전모가 밝혀졌다. 놀랍게도 사린 가스를 살포하게 된 이유는 조직내 신도 살해 사건으로 자신들을 죄어들어오는 수사망을 교란하고자 한 데에 있었다.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절대자유’ 상태에 이르기 위해 개인 재산을 교단에 기부하고 단체생활을 강요했고 또한 옴진리교의 신자들이 1995년 아마겟돈을 극복하고 천년왕국을 영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었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를 따르고 그의 지시를 받아 살인을 저지르고 사린가스를 지하철에 터뜨린 이들의 대부분은 동경대나 와세다,게이오 등 일본 유수의 명문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었다.
와세다대학원 졸업생으로서 사린 가스를 터뜨린 이 중의 하나인 히로세이 겐이치는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의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하지만 우리의 교리는 인간의 감정이 사물을 잘못 인식한 결과라고 가르쳤다. 그 감정을 극복해야 했다." 의사였던 하야시 이쿠도는 경찰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의사로서 무수한 생명을 구한 나였다. 현장에서도 몇 번 나 스스로에게 스톱을 외쳤지만 교주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
요즘 인터넷 신조어 가운데 '멘붕'이라는 것이 있다. 이른바 '멘탈의 붕괴'다. 그 뜻이야 여러 가지로 통용되겠지만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조차 자신의 교조와 신앙의 지시대로 옳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켜야 했던 엘리트 옴진리교도들의 상태에도 이 단어를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멎어가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고자 발버둥치던 의사가 자기 앞에서 재잘대는 아가씨, 한 가족의 가장임이 분명한 넥타이맨들이 숨막혀 죽어갈 것을 알면서도 사린 봉지에 우산끝을 찔러넣은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었고, 이전의 그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던 행동을 감행했다. 그들은 악한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상식을 저버린 믿음은 스스로를 살인마로 변모시켜 갔다.
믿음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대상이 신이든 사람이든. 단 자신의 믿음을 종종 상식의 저울에 대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 노력을 게을리할 때 종종 믿음은 사람을 벼랑으로 떠민다.
1995년 3월 20일 광기의 독가스 일본을 덮치다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경이었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러시아워의 지하철 안. 한 주의 시작을 준비하느라 머리 속이 분주한 직장인들의 눈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는 뾰족한 우산 끝으로 비닐 봉지에 구멍을 내려고 애쓰고 있었고 구멍이 나자마자 잽싸게 내려 버렸던 것. 잠시 후 사람들은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코를 찔렸다. 그리고 화살을 심장에 맞은 듯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사린 가스였다. 1차대전 때에는 독가스가 즐겨 사용됐지만 2차대전 때에는 거의 쓰인 적이 없다. 양쪽 다 그 파괴력을 익히 알기에 자제하기도 했거니와 우선 수백만 슬라브족과 유태인과 저항자들을 독가스로 죽여버렸던 히틀러까지도 사린 가스 등 전투시 독가스의 사용을 금했다. 히틀러 자신이 1차대전에서 실명위기에 처하는 등 독가스의 맛을 톡톡히 본 적이 있어 그 위력을 심히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 사린가스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의 하나 도꾜의 지하철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도쿄 도 내의 제도고속도교통영단(현재의 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 선, 히비야 선에서 각 2편 지요다 선에서 1편 등 총 5편의 지하철 차내에서 사린가스 공격이 발생했고 12명 죽고 외국인을 포함한 5,5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일본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화학병기가 사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일본의 경시청은 신흥 종교단체 옴진리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의 엄중한 추궁 끝에 교단 간부 하야시 이쿠오의 자백에 의해 전모가 밝혀졌다. 놀랍게도 사린 가스를 살포하게 된 이유는 조직내 신도 살해 사건으로 자신들을 죄어들어오는 수사망을 교란하고자 한 데에 있었다.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절대자유’ 상태에 이르기 위해 개인 재산을 교단에 기부하고 단체생활을 강요했고 또한 옴진리교의 신자들이 1995년 아마겟돈을 극복하고 천년왕국을 영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었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를 따르고 그의 지시를 받아 살인을 저지르고 사린가스를 지하철에 터뜨린 이들의 대부분은 동경대나 와세다,게이오 등 일본 유수의 명문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었다.
와세다대학원 졸업생으로서 사린 가스를 터뜨린 이 중의 하나인 히로세이 겐이치는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의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하지만 우리의 교리는 인간의 감정이 사물을 잘못 인식한 결과라고 가르쳤다. 그 감정을 극복해야 했다." 의사였던 하야시 이쿠도는 경찰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의사로서 무수한 생명을 구한 나였다. 현장에서도 몇 번 나 스스로에게 스톱을 외쳤지만 교주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
요즘 인터넷 신조어 가운데 '멘붕'이라는 것이 있다. 이른바 '멘탈의 붕괴'다. 그 뜻이야 여러 가지로 통용되겠지만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조차 자신의 교조와 신앙의 지시대로 옳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켜야 했던 엘리트 옴진리교도들의 상태에도 이 단어를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멎어가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고자 발버둥치던 의사가 자기 앞에서 재잘대는 아가씨, 한 가족의 가장임이 분명한 넥타이맨들이 숨막혀 죽어갈 것을 알면서도 사린 봉지에 우산끝을 찔러넣은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었고, 이전의 그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던 행동을 감행했다. 그들은 악한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상식을 저버린 믿음은 스스로를 살인마로 변모시켜 갔다.
믿음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대상이 신이든 사람이든. 단 자신의 믿음을 종종 상식의 저울에 대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 노력을 게을리할 때 종종 믿음은 사람을 벼랑으로 떠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