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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2.16 백백교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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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937년 2월 16일 백백교 드러나다



 어둠이 완전히 땅으로 내려앉은 시각, 경성 동대문서 형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진채 한 흥분한 사내의 두서없는 말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키는 훤칠하게 크고 맞는 모자가 없어 뵐 정도로 머리도 큰,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한 사내는 도무지 못믿을 말만 토해 내고 있었다. 재산 갈취에 엽색행각을 일삼는 사교 교주와 그 집단이 암약하고 있으며 자기는 지금 교주와 격투를 벌이고 교도들을 피해 경찰서로 온 것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사교 집단의 이름은 백백교. 교주는 전용해라는 자였다.

...


 "우리 집안을 다 말아먹었습니다. 한약방해서 웬만핰 천석꾼 부럽잖은 집안이었는데 조부님과 아버님이 그에 빠지셔서 재산 뿐 아니라 여동생까지 바쳤소! 내 남은 재산마저 정리하여 들어바치겠다 하니 교주가 만나자고 합디다. "


 멋모르고 나타난 교주는 한맺힌 그의 주먹질에 나가 떨어졌고 교주를 지키던 이들까지도 몽둥이에 머리가 깨져 나갔다. 아직도 거친 숨을 고르지 못하는 사내의 이름은 유곤룡. 백백교 교주 전용해는 이 사람과 처남매부지간(?)이 된 것이 끝장의 시작이었다.

"백백교? 강원도 금화에서 사건 났던 게 뭐였지? 백도교였나? 그 왜 교주의 애첩들을 생매장한 게 10년만에 밝혀졌던.....그 교주의 아들이 전용해였는데. " 백백교라는 이름에 경찰은 긴장했다. 그 사건 이후 백도교는 된서리를 맞았고 사라진 줄로 알았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그 은밀한 조직과 엽기적인 행각의 꼬리가 드러난 것이다. " 전원 현장으로 가! 다 잡아들여!"
 

급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경득 등 백백교 간부들을 체포했지만 전용해 교주는 자취를 감췄다. 아쉬운 대로 심문에 들어간 일본 경찰은 상상조차 어려운 사이비 종교 잔혹사에 전율했다. 사람 손톱 뽑고 전기로 지지는 것쯤은 일도 아니던 베테랑 형사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였다.

 교주 전용해는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도 더 가볍게 여기는 악마였다. 예배 도중 누군가를 지목하면 그 사람은 쓰러져 죽었다. 물론 이미 그 전에 죽인 뒤 시신망 앉혀 놓은 경우였다.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배신을 방지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거나 재산을 다 바치지 않거나 동요의 움직임을 보이는 신도들은 모조리 죽였다. 한 신도가 수상한 거조를 보여 조사해 보니 백백교 고발장이 나온 일이 있었다. 전용해는 그의 12촌까지 다 죽이라고 명령했고 그의 살인기계들인 '벽력사'들은 그 업무를 수행했다. 여신도들은 그의 성적 노리개였고 거기서 태어난 자신의 핏줄들도 다 죽였다. 후일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벽력사'들의 범죄는 이렇다. 170명을 죽인 김서진, 167명을 죽인 이경득,127명을 죽인 문봉조. 그들은 때려죽인 시체를 거적에 말아 자전거 뒤에 싣고 한강으로 가서 던져 버릴만큼 이미 살인에 둔감해져 있었다.

 일제도 망하고 세상도 끝장난다는 (일제가 망한다는 교리 때문에 신도들은 '보안법'의 적용을 받는다) 말세론으로 얼키설키 짜맞춘 교리, '백백백의의의적적' 주문만 외우면 무병장수하고 팔도 53곳에 정해놓은 백도교의 본소에 가서 살다가 물 심판의 날이 오면 금강산에 있는 피수궁으로 옮겨가고 그 곳에 기다리고 있으면 대원님이 하강하셔서 새 세상이 열린다는 새파란 거짓말에 수천 명이 속았고 그 중에 수백 명이 죽어 없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기사 개명하고 발전했다는 21세기에도 제 자식들에게 마귀가 들렸다는 이유로 구타 끝에 굶겨 죽인 자가 바로 며칠 전에 등장했으니 그 당시에야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한 두 명도 아닌 수백 명이 신도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던 작은 사회에서 명분도, 이유도 빈약한 살육이 이뤄졌음에도 그것이 몇 년 동안이나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사건은 로이터 통신이 선정한 그 해의 10대 뉴스를 장식했다고 한다.


 재판정에서까지 백백백의의의적적적을 읊는 치들도 있었고 그때까지도 그들의 교주에 대해 존대를 잃지 않는 이들도 많았으나 그들 또한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교주에 절대적으로 순종했는지 의아해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회의 없는 믿음이었다. 전용해는 말세론과 실질적인 죽음의 공포를 통해 그들의 회의를 없앴고 회의를 잃은 이들은. 믿음의 길로 일로매진했다. 그 믿음 앞에서 상식과 합리는 물론 인간성마저도 녹아없어졌던 것이다.


 그 도식은 단순히 백백교만의 것은 아니었고 그 대상이 '대원'이라 불린 전용해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때로 그 대상은 이후 숱하게 등장했던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기도 했고 '혁명의 대의'이기도 했고 '반공 방첩'이기도 했으며 '미제 축출'이기도 했고 '자유민주주의'이기도 했다면 과장일까. 비약일까.


 전용해는 후일 경기도 양평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아들이 아버지라고 인정했지만 짐승이 뜯어먹은 상황이라 분명히 확인되지는 못했다. 일제 경찰은 그 목을 잘라 보관했다. 이런 범죄적 인간의 머리는 두고두고 연구 대상이리라 믿어서였을까 이 머리는 그후 70년이 넘도록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돼 있었고 작년에야 화장됐다. 그로써 백백교의 추억은 사라졌다. 그런데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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