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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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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창기를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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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창기를 석방하라 

  이번에 국정원에서 체포된 자주민보 대표 이창기는 대학 동기다.   그는 농악대였고 나는 그 옆 동아리에 있었다.  농악대 덕분에 나는 아무리 시끄러워도 달게 잠들 수 있는 내공을 길렀거니와 창기 녀석과도 잦은 안면이 있었다.  사실 친구라고 부르기엔 교감이 그리 진하진 못하였지만 그래도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먹고 싸고 마시고 토했으니 또 어찌 친구가 아니라 하랴.  

솔직히 말하자.  나는 이 친구의 열렬한 팬이었다.  팬이다뿐인가 그가 운영하는 자주민보 사이트를 틈날때마다 들어가 그 기사들을 탐독했으며 그를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하기까지 했다.   즐겨찾기까지 등록한바 있었으니 '소지'했고 '탐독'했으며 사이트 페이지뷰를 높이는 열혈 '배포'자이기도 했다.  미국에 나타난 UFO가 북한의 비밀병기이며 북한이  대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는 초자연무기를 개발했다는 그 기발하면서도 진지한 (진짜로!) 자주민보 기사들은 우울한 나에게 웃음을 주었었고 목마른 나날에 청량한 포카리스웨트 한 잔이었다.   

 그런데 창기가 잡혀갔다!  나는 창기의 죄를 알지 못한다.  그가 구 민노당의 이정훈 최기영마냥 제 당의 당원정보를 긁어다 바치는 따위의 간첩 행위를 했다면 그는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이 들이민 죄명은 "통신 회합"과 그놈의 "고무 찬양"이다.    일단 무슨 통신과 회합을 어떻게 한 것인지 궁금하다. 북경의 북한 식당에서   "동무 요즘 남한 형편은 어찌 돌아가오"라고 묻고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고생이 큽니다."라고 답하면 회합인가.  "동무 다음에 북경 오면 연락하시오 술은 동무가 사고."라고 전화하고 "지난번에 내가 냈잖아요!"라고 답한다면 통신인가.

   간첩질을 한 게 아니라면, 즉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북으로 넘긴 게 아니라면, 통신과 회합이 문제될 게 뭔가. 정히 문제 삼겠다면 코드네임까지 있는 미국 정보원이었던 모기업 회장님부터 족칠 일이다. 

 두번째로 고무 찬양이라고 했다.  또 한 번 솔직히 말하자.  창기는 친북적인 경향성을 지녔다.  그건 자주민보 사이트를 12분만 읽어보면 안다.  10분은 읽다가 2분은 웃다가 하면 된다.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왜 그가 잡혀가야 할 이유가 되는지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선전하고 싶고, 누가 뭐래도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공론화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에서 왜 죄가 된다는 말인가.   그 선호의 아둔함을 비판할 수는 있되, 그 선전하는 바를 비웃어 줄 수는 있되, 그들이 펴는 공론에 반박하거나 무시하거나 허리띠를 풀고 웃어 줄 수는 있되 왜 그를 잡아가야 한단 말인가.  

 내 친구 창기는 오랜 동안 나의 비웃음과 경멸과 때로는 정신병자 취급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체포됨으로써 그는 공화국 시민으로서 마땅히 구출해 내야 할 시민의 한 사람으로 , 함께 어깨 걸고 전경과 욕싸움했던 전우의 1인으로, "나는 네 생각에 반대하지만 네가 그 생각을 얘기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소중한 인간의 권리로 엄숙하게 솟아오른다.   


나는 김정은을 대가리 피도 안마른 녀석이 애비 잘만나 회장님 소리 듣는 남한의 재벌3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보지만 창기는 그를 외국어에 능통하고 포술의 전문가이며 3대 유훈을 이어갈 장군님으로 볼 자유가 있는 것이다.   

 둘이 만나면 좋이는 말싸움으로, 좀 험악하게는 "이 또라이 새꺄"와 "민족의 반역자"가 오가는 일촉즉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헌법에 명기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를 신고하지 못할 것이고 그가 체포된다면 그 영장 앞에서 일그러진 대한민국 헌법의 초상에 애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를 석방하라고 외치는 것이 나의 의무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창기를 경멸하고 비웃고 깔보던 이유가 사상과 표현의 자유을 지닌 (아니 쟁취해 온)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우월감이었는데 그것이 무너진다면 대관절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행위는 처벌받는다는 이 얼치기 관심법같은 국가보안법, 어디까지가 고무고 어디까지가 찬양인지 개념은커녕 윤곽도 없는 엿장수같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까지 된다면 나는 지금껏 그에게 퍼부었던 조소마저 무안해지 않겠는가.  

 창기의 자주민보가 북한을 고무찬양한 이적표현물이라면 그를 깔깔대고 들여다보며 이마를 짚던 나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다.   친구들에게 얘 아직 왜 이러냐며 아이폰 들이밀던 나도 죄의식을 가져 마땅하다.  하물며 나는 수십 번의 리트윗과 퍼나르기까지 감행했다.  나도 잡혀가야 하지 않은가.  억지 부리지 말라고? 당신은 비웃은 거 아니냐고?  박정근이라는 이름의 시민은 친북트윗을 조롱삼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시라. 


  즉 나도 지금까지의 행위로 잡혀갈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국가보안법은 그 나라의 법이다. 이런 게 법인가? 사람 거죽을 쓰고 이걸 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게 법이라면 가카가 소크라테스다.  촌스러워 못살겠다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나에게 창기를 씹을 자유를 허하라. 아니면 나도 잡아가라 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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